프라하 포토 에세이 - 프라하와 사랑에 빠지다

2006-02-24     트래비


ⓒ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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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시청사 탑에서 내려다 본 골즈킨스키 궁전과 틴 성당 
2. 프라하 성의 동문과 흑탑야경

눈이 온다. 천년 고도는 온통 하얀 세상이다. 밤에도 눈빛에 사위가 환하다. 프라하가 늘 그리웠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립다는 것은 아직도 네가 내 안에 남아 있다는 뜻이다’라는 이정하 시인의 시 한 구절이 그 이유가 될까. 늘 가슴 한켠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던 도시 프라하. 그곳의 눈 내리는 풍경을 담고 싶었다. 

옛 보헤미아 왕국의 역사가 살아 있는 도시 프라하를  ‘백탑의 도시’, ‘천년의 도시’, 그리고 ‘사랑의 도시’라 부른다. 체코 남쪽 고원에서 시작되는 블타바 강이 프라하 도심을 가르고 강 왼편 흐라트차니 언덕 위로는 프라하 성이 솟아 있다. 오른쪽에는 일 년 내내 사람들이 붐벼, 젊음과 활기가 느껴지는 구시가 광장을 중심으로 중세의 도시가 펼쳐진다.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늘어선 아름다운 거리를 걷다 보면 어느새 행복한 여행자 된다.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곧 오겠지만 이른 아침 차가운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겨울이 금세 그리워질 것 같다. 겨울이 지나가는 끝자리, 이렇게라도 겨울의 정취를 붙들고 싶었다. 


 
체코 프라하는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많은 눈이 내린다. 편서풍을 타고 밀려든 습한 공기 때문이다. 소담스럽게 눈이 내리는 프라하를 담고 싶었으나 사실 여행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와중에도 눈은 밤에 잠깐 진눈깨비를 뿌리는 정도였다. 그나마 해가 뜨면 다 녹아버려 화이트 프라하를 카메라에 담기란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그날 난 너무 운이 좋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날 새벽 5시 잠에서 깨어 불현듯 창밖을 보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 게 아닌가. ‘아~’ 나지막한 탄식이 먼저 흘러나왔다. 천년고도의 도시는 순백색의 눈 속에 잠겨 가고 있었다. 급히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 들고 나왔다. 화약탑을 지나 구시가 광장에 이른다. 구시청사, 틴성당, 얀후스 군상 위에도 눈이 내리고 있다. 외장 플래시를 터트려 가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사랑의 다리, 소원의 다리인 카를교를 지난다. 네포묵 신부의 성상에도, 블타바 강에도 말없이 눈이 쏟아지고 있다. 프라하 성 동문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눈이 오지 않아도 좋은데 눈이 오면 어떨까 상상을 하며 올라갔다. 가히 압권이다. 탐스럽게 쏟아지는 눈송이 사이로 도시는 동화 속에나 등장하는 설국의 궁전 같다. 붉은 지붕 위로 하얗게 쌓이는 눈, 거리를 따뜻하게 밝혀 주는 가로등, 서서히 밝아 오는 여명이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가? 

쏟아지는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출근하는 시민들은 바삐 움직이는데 나는 여전히 세상과는 한발자욱 떨어져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그래, 꿈이라도 꾸자. 이 시간이 지나 다시 내가 발 붙이고 살아가는 현실로 돌아갈 텐데 지금 꿈이라도 실컷 꾸자. 여행은 그렇게 꿈과 같은 것이 아니었더냐.


 

천문시계 오를로이가 있는 구시청사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프라하의 또 다른 상징이 된 천문시계 오를로이는 프라하 여행의 시작과 같은 곳이다. 매일 11시 정각이면 천문시계 오른쪽에 있는 해골인형이 줄을 당기며 모래시계를 뒤집고 동시에 위의 창 두 개가 열리면서 예수의 열두 제자 밀랍인형이 지나간다. 닭 울음소리로 마감되는 이 장면을 지켜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매시 정각이면 이곳으로 모여든다. 

프라하의 또 다른 상징인 틴 성모교회 앞 틴 학교는 갤러리로 이용되고 있는데 마침 체코의 대표적인 사진작가 얀 샤우덱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유태인 출신의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유태인의 비애, 프라하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 등을 명확히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아름다운 도시 풍경에 취해 사람들조차 고고하게 살고 있을
것만 같았던 환상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치열하게 현실을 고민하며 사진 속에 담으려는 작가 정신이 인상적이었다. 자유를 향한 인간의 순수한 갈망을 보여 주는 ‘프라하의 봄’은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닌 바로 이곳의 이야기다. 그 정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사진을 둘러보고 나와 후스의 군상 아래 벤치에 앉아 핫도그와 핫와인으로 추위를 달랬다. 따뜻하게 덥힌 와인 덕인지 몸이 훈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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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시가 광장, 천문시계가 있는 구시청사의 전경 
2. 카를 다리 위에서 본 교탑야경


프라하의 또 다른 상징이라면 구시가 광장과 프라하 성을 연결해 주는 카를 다리가 있다. S자로 굽이치는 블타바 강을 가로 질러 1402년 세워진 다리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다리를 건너면 영원히 아름다운 사랑으로 남는단다. 

다리 위에는 전문가 빰치는 실력을 자랑하는 악사들, 초상화나 일러스트를 그려 주는 화가, 프라하 풍경을 담은 그림과 사진을 파는 노점 등이 있다. 다소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없이 연인들은 과감히 애정을 주고받는다. 다리 위에는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얀 네포묵 신부의 성상이 있다. 얼마나 많이 소원들을 빌었는지 동판이 황금 빛이 될 지경이다. 해도 바뀌었으니 나도 소원 하나 빌어 본다. 

조망이 좋다는 카를 다리의 동쪽 구시가 교탑에 올랐다. 명성대로 카를 다리와 블라타 강 뒤로 펼쳐지는 프라하 성이 한 폭의 풍경화를 연출한다. 나도 더불어 그 풍경 속에 녹아든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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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라하 성-성비투스 대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2. 성 비투스 대성당의 얀 네포룩 신부의 관 
3. 성 비투스 대성당 외부 
4. 성 이르지 교회 설경
5. 프라하 성의 위병
6. 불타바 강의 아침 풍경

안델역에서 12번 트램을 타고 말라스트라나 광장에서 내렸다. 흐라트차니 광장으로 이어지는 ‘블루 프라하’라 이름 붙여진 네루도바 거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크리스탈이며 목각인형과 마리오네트 인형을 파는 상점, 고급 레스토랑, 각국 대사관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아름다운 거리다.

제법 가파른 길을 오르다 오른쪽으로 돌면 흐라트차니 광장이다. 이 광장 주변으로 슈바르첸베르크궁, 스텐베르크궁, 대주교 궁전 등이 있다. 광장 동쪽 끝 전망 좋은 카페에서 진한 에소프레스 커피를 마시며 프라하 도심의 풍광을 즐긴다. 

프라하를 상징하는 여러 건축물 가운데서도 으뜸은 프라하 성이다. 도시 어디에서나 보이는 프라하 성은 프라하의 명물이자 바로 프라하 그 자체이다. 규모는 흐라트차니 광장에 면한 서쪽 정문과 말라스트라나 쪽 동문에 이르기까지 길이 570m, 폭 128m로 동서로 길게 펼쳐져 있다. 성 안에는 정원과 마티아스의 문, 성 십자가 예배당, 성 비투스 대성당, 구왕궁, 성 이르지 교회, 로프코비츠 궁전, 화약탑, 백탑, 달리보르카 탑, 흑탑이 있고 아름다운 카페와 갤러리 등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성은 9세기 중엽 보르지보이 왕이 건설한 것을 기초로 14세기 카를 4세 때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됐단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성립하면서 대통령 관저가 되었으며, 지금도 건물의 일부를 대통령 집무실과 영빈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이곳은 프라하가 낳은 20세기의 문호 카프카가 즐겨 산책하던 곳으로 그의 소설 <성>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멋진 제복의 위병들이 지키는 정문을 지나 마티아스의 문을 지난다. 제2 정원에서 제3 정원으로 빠져나오자 하늘을 찌를 듯 웅장한 고딕 양식의 성 비투스 대성당이 나온다. 장엄함과 섬세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자 성경의 천지창조를 주제로 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 중 20세기 초 아르누보 양식의 대가였던 알폰스 무하의 녹색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끈다. 어두운 내부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고개를 들게 될 테고 자연스럽게 하느님을 떠올리도록 한 구조다.

걸음을 옮기자 체코의 수호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는 네포묵 신부의 무덤이 보인다. 왕의 명을 거역하여 순교한 신부의 거룩한 삶을 기리기 위해 카를 다리 난간에 성상을 만들고 이곳에 순은으로 만든 관을 안치시켰단다. 

정면에 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파이프 오르간. 보통 큰 성당이라도 파이프는 4,000개쯤 되는데, 이곳은 6,000개의 파이프로 만들었단다. 미사 때 울려퍼지는 연주의 장엄함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지하로 내려가자 왕실 무덤이다. 카를 4세, 바츨라프 4세, 이르지 왕, 루돌프 2세의 관이 안치된 묘를 볼 수 있다.  

프라하에 와서 비투스 성당을 보지 않았다면 프라하를 제대로 본 것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아름다움과 장엄함, 신비로운 기운과 충만한 아우라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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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라하 성의 구왕궁
2. 눈 쌓인 황금소로
3. 황금소로에서 만난 프라하의 아이들

비투스 성당을 나와 인접한 구왕궁으로 향한다. 기둥 없이 지어 큰 홀이 특징인 구왕궁은 12세기에 보헤미아 왕이 머물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3층에는 거대한 규모의 블라디슬라프 홀이 있다. 이 홀에서는 실내 경기가 열렸으며, 기사들이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의 폭도 넓다. 홀의 안쪽에는 왕실 전용 예배당이 있고 북쪽에는 의회의 방이 있다. 천정과 벽에는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토지 공문서 관리관 역할을 한 귀족들의 문장이 빼곡히 그려져 있어 중세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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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양식의 성니콜라스 성당

비투스 성당을 지나 이르지 교회에서 동문으로 가는 길 중간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과거 왕실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금은 세공사들과 성을 지키는 초병들이 살았던 골목이다. 그래서 황금 골목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장인들이 살았던 집에서는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 중 파란 색 벽에 ‘N22’라 표시된 집은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곳이다. 소설가 카프카가 1916년 11월부터 1917년 5월까지 머물면서 집필 활동을 한 곳이다. 이곳은 카프카의 막내 여동생이 오빠를 위해 마련했던 집이다. 카프카가 살았던 집에 들어서자 그의 소설을 비롯 책을 파는 서점이다. 매서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그의 흔적을 찾아서 그의 작품을 생각하며 걷는 황금 골목은 그래서 더 운치가 있다.


 
프라하 여행의 마지막 여정은 젊음의 거리 바츨라프 광장이다. 이 광장은 국립박물관에서 무스테크역으로 이어지는 길이 750m, 폭 60m의 긴 광장이다. 14세기에는 말을 사고 파는 마(馬)시장과 곡물시장이 있었던 곳이다. 프라하 중앙역이 가까이 있고, 두 개의 지하철 역과 시내 구석구석을 누비는 트램이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이며 호텔, 레스토랑, 카페, 백화점, 은행, 고급 상점 등이 들어서 있는 상업의 중심지이다. 또한 1968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외치며 알렉산더 두브첵이 선두가 되었던 민주혁명과 1989년 벨벳혁명을 거쳐 민주화를 이룩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지금도 민주 시위가 필요하면 차량을 통제하고 집회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19세기에 만들어진 국립박물관 앞에 바츨라프 기마상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그 광장 한복판에 서 있다. 어디선가 함성이 들려 오고 있는 것 같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곧 현실로 돌아가지만 발품 팔며 누볐던 이곳에서의 작은 행복을 가슴과 프레임 안에 묻고 가려 한다. 그렇게 여행은 끝나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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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박물관에서 본 바츨라프 광장과 프라하의 연인
2. 프라하 성의 연인
3. 프라하 거리 풍경
4. 카를 다리 네포묵 성상에 내리는 눈 


정리 : 김남경 기자 nkkim@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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