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의 계곡 룩소르

2006-01-13     트래비

ⓒ 트래비


scene 1. 죽음 마저도 풍요로운 신비의 땅 

 

룩소르(Luxor)의 풍요로움은 이른 아침 호텔 객실 창밖 풍경에서부터 느껴진다. 나일강변에 위치한 호텔의 리버뷰 객실이라면 눈 뜨자마자 창문을 열고 심호흡부터 해보자. 물안개 피어 오르는 나일강과 한적한 강변 풍경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번잡한 수도 카이로를 먼저 체험했던 여행객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여유로움과 달리 여행 일정은 바쁘게 진행된다. 대부분 한국 여행객들이 룩소르에 머무르는 일정은 하루, 이틀 정도인데 비해 볼 것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또 여름이면 한낮의 수은주가 너무 올라가기 때문에 점심 식사 후 잠깐 쉬는 것까지를 고려한다면 투어는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진행된다.

 

ⓒ 트래비

 

동과 서 삶과 죽음이 갈리다

 

룩소르 투어는 일반적으로 나일(Nile)강의 서쪽과 동쪽을 나눠서 진행한다. 이집트인들에게 해가 뜨는 동쪽은 ‘삶’을 의미하고 해가 지는 서쪽은 ‘죽음’을 의미한다. 왕의 무덤들이 즐비한 왕가의 계곡과 제사를 지내는 장제전(葬祭殿)들은 나일강 서쪽에, 번영을 상징했던 신전들은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루 일정이라면 오전엔 서쪽을, 오후엔 동쪽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호텔이 위치한 시내에서 20여 분 지나 나일강을 건넌다. 거대한 모래 산이 푸른 하늘과 초록의 대지를 사이에 두고 떡 하니 들어서 있다. 저 산 반대편이 왕가의 계곡이다. 멤논거상은 이 산과 나일강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이름처럼 20m 높이의 2개의 거대한 조각상은 마치 외부의 칩입으로부터 왕의 무덤들을 지키려는 듯 묵묵히 서 있다. 900t짜리 돌덩어리 하나로 깍아 만들었다는 이 거상 뒤로는 신전이 있는데 지금은 폐허 속에 간신히 흔적만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아멘호텝 3세 석상으로 불리는 멤논거상은 세월의 흐름 속에 얼굴의 형태조차 분간하기 어렵게 손상을 입긴 했지만 강인한 면모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끝도 보이지 않은 사막 평야에 서 있는 모래산 또한 심상치 않다. 10여 분을 넘게 차를 타고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바로 옛 이집트의 영광을 짐작케 하는 각종 보물들이 발견된 곳이다. 나일강을 바라보는 쪽은 귀족들의 무덤이 차지하고 있고 반대편은 왕의 무덤들이 차지하고 있는 왕가의 계곡이다. 낮은 언덕들을 헤치고 입구에 닿으니 오목하게 들어간 골짜기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왕가의 계곡. 잘 알려져 있는 ´투탕카멘´ 왕 등 지금까지 발굴된 24개의 왕 무덤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지금도 계속 발굴 중이다.

 

운명처럼 ‘투탕카멘’과 만나다

 

외형부터 보는 이를 압도하는 피라미드와는 달리 신왕국시대의 무덤은 골짜기로, 땅속으로 들어간다. 피라미드가 일찍부터 도굴꾼들의 표적이 된 것을 보자 신왕국시대의 왕들은 이러한 도굴을 피하기 위해 땅속으로 무덤을 팠고 왕이 묻히고 난 후 입구 또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봉쇄해 버렸다. 그러나 도굴꾼의 강탈은 피할 수 없었고 신왕국시대가 지난 제3혼란기에만 62개의 무덤 중 61개의 무덤이 파헤쳐졌다.


유일하게 남은 무덤이 18세의 나이에 요절한 어린 왕 투탕카멘의 것이었다. 19세기 말에 발견된 투탕카멘 왕의 무덤 덕분에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비밀이 어느 정도 벗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즉위한 지 9년 만에 요절한 덕분에 그의 무덤 규모는 다른 왕들보다 작은 40m의 정도의 깊이였고 그래서 도굴꾼들의 주목을 피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다른 왕의 무덤을 도굴할 때 파내느라고 쌓아올린 흙 때문에 그의 무덤 입구가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아니 세계 고고학, 인류학, 이집트학 학자들은 투탕카멘의 손상되지 않은 무덤 발굴을 두고 ‘운명’이라고 부른다.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왕이 즉위하는 순간부터 무덤 공사가 시작되며 제위 기간이 길수록 무덤 안이 깊고 넓으며 벽과 천장은 각종 부조와 벽화 등으로 더욱 화려하게 장식된다. 고작 9년간 즉위한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굴된 각종 부장품들이 수도 카이로의 카이로박물관의 2층을 모두 채우고도 남을 정도이니 60여 년을 즉위했던 람세스2세의 무덤을 채웠던 각종 보물들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다.


일부 무덤들은 직접 방문객들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물론 보물들은 남아 있지 않지만 벽과 천정의 부조와 벽화들을 감상하는 것만 해도 놀랍기만하다. 가장 화려한 무덤 중의 하나로 꼽히는 것은 람세스3세의 무덤이다. 이집트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으로 칭송받는 람세스3세의 무덤은 깊고 화려하다. 무덤 길이만 해도 140m에 이르며 무덤 안에는 크고 작은 방들이 들어서 있다. 부조와 벽화들은 신과 왕의 얘기를 전하고 있다. 알록달록 3,000여 년 전 색채감이 그대로 살아 있는 부조와 벽화들은 그 내용을 잘 모르더라도 벅찬 감동을 준다. 여백보다는 꽉 채운 완성의 미를 추구했던 고대 이집트인들의 미적 감각은 현대와 비교해도 전혀 뒤처짐이 없다.

 


* 그림으로 보는 카이로박물관


이집트 문명 최대의 보물창고에서
´투탕카멘´ 황금마스크를 보다

 

ⓒ 트래비

 

1. 이집트 박물관의 하이라이트 ´투탕카멘왕의 황금마스크´

2. ´황금마스크´의 뒷모습

3. 노예모형의 지팡이들

4. 미이라의 간,허파, 위, 창자를 따로 보관하는 키노푸스 단지

5. 전시물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6. 1층에는 조각상과 석관들이 전시되고 있다

7. 색색의 화려한 장신구들

 

 

박물관마다 대표선수가 있다. 너무 방대한 유물들을 보유한 까닭에 몇 날 며칠을 둘러봐야 하는 곳이라면 꼭 눈도장을 찍어 줘야 하는 그런 스타가 있기 마련이다. 고대 문명의 화려한 유산을 지닌 이집트 카이로박물관에 방문했다면 투탕카멘 왕의 황금마스크(Gold Mummy Mask of King Tutankhamen)를 꼭 봐야 한다.


투탕카멘은 제18왕조의 통치자로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오히려 이집트 역사에서는 그다지 각광받지 못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람세스2세, 네페르티티여왕, 하트셉수트, 투트모스3세, 쿠프왕 등 쟁쟁한 이들을 제치고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로제타스톤을 비롯해 수많은 유물들을 해외로 빼앗긴 것이 이집트 고고학의 안타까운 현실이라면, 지난 1922년에 발굴된 투탕카멘 무덤에서는 파라오와 관련된 모든 유물들이 고스란히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 부장품들을 통해 파라오의 일상과 죽음과 관련된 풍습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황금마스크와 함께 또 다른 감동적인 전시물로는 3,300년 전 투탕카멘의 젊은 부인이 이승을 하직한 왕에게 바친 꽃다발이다. 비록 지금은 볼품없는 드라이 플라워지만 이 꽃다발이 3,000년이나 넘는 세월 동안 먼지가 되지 않고 남아 있다는 점과 20세도 되지 않아 사망한 왕 그리고 남겨진 왕비의 애틋함이 오늘날에도 심금을 울린다.


카이로박물관이라고도 부르는 이집트박물관(The Egyptian Museum)은 기원전 화려했던 이집트 문명을 엿볼 수 있는 고대 유물을 비롯해 약 10만여 점의 소장품을 지니고 있다. 설립자는 이집트 학자 오귀스트 마리에트. 처음에는 카이로 부근 블락 지방에 있었던 것이 1902년 지금의 타흐리르 광장 북쪽으로 옮겨왔고 다시 오는 2008년에 완공 예정인 기자에 위치한 보다 큰 규모의 새 이집트대박물관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현재 박물관은 2층 건물로 전체 전시실은 107개이다. 1층에는 거대한 조각상들과 석관 등이, 2층에는 투탕카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과 미이라, 조각상, 장신구 등이 전시돼 있다.

 

사진촬영이 금지돼 안타까운 관람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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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일부 벽화나 그림 등을 제외하면 후래시를 터뜨리지 않는 상태에서 사진촬영을 허용했었으나 지금은 카메라, 캠코더의 반입을 일절 금하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서 1차 탐지기를 지나야 한다. 정원에서는 기념촬영을 할 수 있다. 그 유명한 식물 파피루스와 연꽃이 정원 한가운데 심겨 있고, 스핑크스 조각상을 올라타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에 눈길이 간다. 박물관 본관 입구에는 엑스레이로 카메라 소지 여부를 감지해 내는 2차 탐지기가 설치돼 있다. 때문에 관람객들은 입구 옆에 위치한 보관소에 카메라를 맡기고 입장토록 한다.

 

 


분홍색 외관보다 인상적인 것은 박물관 내부의 분위기다. 우리의 국립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 등이 현대적이고 차가운 인상을 준다면 이집트박물관은 마치 오래된 도서관에 온 느낌이다. 영화 <투모로우>에서 봤던, 혹은 <인디아나존스>에서 고고학 자료를 참고하기 위해 찾은 그런 도서관의 풍경이다. 에어컨 시설도 없다.

 


 이집트 문명해독의 열쇠 ‘로제타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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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박물관에 들어서면 거대한 석상들 사이에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지는 비석이 전시되어 있다. 오른쪽으로 꺾어 계단을 올라가면 있는 투탕카멘 전시실로 향하는 바쁜 발걸음도 이곳에서는 잠시 멈출 필요가 있다. 바로 초라해 보이는 이 돌조각이 이집트 상형문자 히에로클리프 해석의 실마리가 된 로제타스톤이기 때문이다. 진품은 아니다. 진품은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이 대표선수로 소장하고 있다. 또 영국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www.thebritishmuseum.ac.uk)에 보면 ´이집트에 관한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는 소개글과 더불어 로제타스톤이 실제로 이집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로제타스톤은 높이 117cm, 너비 약74cm로 기원전 196년 당시 12살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5세의 즉위를 축하하며 새긴 비석이다. 그리스어와 민중문자, 상형문자 3가지로 기록돼 있다. 1799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때 알렉산드리아 동쪽 나일강의 서부 지류에 위치한 라시드항 부근 로제타라는 마을에서 발견됐다. 후에 영국과 프랑스 전쟁 때 영국이 가져가게 됐고 오늘에 이른다. 상형문자 해석의 실마리를 찾아낸 사람은 샹폴리옹이라는 학자로 이전에는 상형문자인 이집트 문자가 한자와 같이 뜻글자일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그는 비석에 새겨져 있을 프톨레마이오스와 그리스어 기록이 남아 있는 클레오파트라의 이름에 공통적으로 P. O. L이 있음을 주목하고, 라틴어나 영어처럼 발음에 따라 쓰여진 표음문자(表音文字)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 scene 1. 죽음마저도 풍요로운 신비의 땅
                   * 사진으로 보는 카이로박물관


scene 2.
룩소르 신전 vs 카르나크 신전

 

scene 3. beyond Luxor 룩소르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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