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둘러보아도 끝이 없다. 넘실대는 황금빛 파도를 눈대중으로 넘는다. 이다지도 광활하니 마음이 둥실둥실 높이 날 수밖에. 맞닿은 경계를 가늠하는 일은 따뜻하니 아득했다. ●하늘을 가르는 바람의 이름은 사랑한낮의 푸른 들판을 생각한다. 내 유년기의 기억은 바람결에 묻어나는 까칠한 풀 내음. 김제로 가는 기차 안에서 어린 날의 촉촉한 감각들을 상상했다. 김제역에서 벽골제마을까지는 차로 10분. 마을 어귀에 내리자 꿈희망여행의 특별한 시골 밥상이 한 상 가득 맞이한다. 지역 특산물을 이용해 마을 주민이 정성껏 차려 낸 한 끼다. 나물
과거 보러 한양 가는 길에 이 마을에서 새 신을 갈아 신곤 했다는 옛 선비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맨발이어도 좋을 만큼 맑고 청정하다. 이쯤에서 신을 벗고 쉬어 가도 좋으리. ●신을 벗으시오! 경천 싱그랭이 에코빌마을의 시작을 알려 주는 장승과 솟대를 지나 이제 싱그랭이 마을에 도착했음을 알려 주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 싱그랭이 마을을 500년 동안 보호해 온 느티나무다. 동네에서 가장 큰 그늘을 찾아 모인 아주머니들이 멸치 대가리를 톡톡 따 내며 흉금을 털어 내고 있었다. 원님도 쉬어 갔다는 야외 쉼터를 중심으로 ㄷ자 대형을
예스러움과 모던함을 맛있게 비볐다.혀끝에서 전주의 멋과 맛이 달콤하게 맴돌았다. ●전통과 신념, 소중함을 지킨다는 건눈길마다 한국이 묻어난다. 한옥의 유려한 처마 곡선 아래 한복을 입은 연인들이 거닌다. 전주 한옥마을은 ‘우리 것’에 대한 전주인들의 사랑과 이를 지키기 위한 투쟁정신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상인들이 전주에 대거 거주하며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이에 반발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짓기 시작했다고.한옥마을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먼저 옷을 갈아입어볼까? 곳곳에서 전통 한복부터 개화기 의상
무르익은 봄을 이고 선 저 산은 또 왜 이리 높고, 공기는 어찌 그리 맑은가. 푸른 만춘의 하늘에 붉은 이파리 홍단풍이 한가득 피어나, 신록의 계절에 화색을 더한다. 주(朱)에서 적(赤)으로, 홍(紅)에서 단(丹)으로 간다. 죄다 빨갛다는 의미다. 호남 땅 무주(茂朱)는 고을 주(州)가 아닌 붉을 주(朱)를 지명에 쓰는 고을이다. 전주(全州)나 진주(晉州), 경주(慶州)와는 다르다. 홍(紅)이 아니라 주(朱)다. 귀신 쫓고 역마를 피할 수 있는 이름이니 어찌 청정하지 않을까. 조선조 민간 예언서 에 등장하는 십승지
아주 오래 전, 군산으로 불렸던 바다에는 섬들이 오밀조밀했다.지금, 군산으로 불리는 도시에는 근대 역사의 흔적이 아련했다.아니 다녀간 듯 살며시, 두 군산을 다녀왔다.●옛 군산 섬들의 향연 군산과 부안을 잇는 길이 33.9km의 새만금방조제, 2010년 8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에 오른 이 기다란 둑길의 거의 정중앙에서 선유도로 이어지는 길이 옆으로 샌다. 선유도는 한 때 군산도라 불렸다. 조선시대 수군 기지 역할을 했는데 수군기지가 지금의 군산으로 옮겨간 후 선유도로 불리게 됐다. 섬의 두 봉우리가 마치 두 신선이 바
사실 여행은 생태적인 행위다.항상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여행자는 말하자면 외래종이므로.지역의 생태계를 교란하지 않는 방식으로 여행하기! 그래서 보타닉원정대가 됐다. 무려 1호다.●숲을 건너 마을로 정읍 솔티달빛생태숲 솔티마을겨울비가 내장산 구석구석을 적시던 날, 정읍에 도착했다. 고즈넉한 내장산 조각 공원이 이번 원정대 탐험의 출발지였다. 내장산 북쪽 자락 숲속에 위치한 솔티마을(현 송죽마을)의 화전민들이 직접 발로 다져 만든 옛길을 걸어 볼 참이다. 옛사람들의 노고에 비하면 새로 놓인 내장생태탐방로마루길의 데크는 비단길이다. 그래
여백이 가득하다. 백제의 찬란한 역사를 확 트인 공터에 상상으로 써내려갔다.●미래를 기다리는 미륵사지 석탑낯설지만 익숙하다. 익산의 첫 감상이다. 역사책 속에서 수도 없이 봤으니 눈으로는 가까우나, 한 번도 와본 적은 없으니 발로는 먼 곳이다. 올해 봄, 장장 20년간의 복원을 마치고 익산 미륵사지 석탑(서탑)이 모습을 드러냈다니, 익산을 방문할 이유는 이것 하나로도 충분했다. 미륵사지 서탑과 동탑은 휑한 공터에 다소 거리를 두고 일직선으로 배열돼있다. 하나는 9층, 다른 하나는 6층. 비대칭적인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
백제는 단연코 찬란했다. 그들의 독창성과 기술력은 현재의 보석 세공술로 이어졌고 혼과 얼은 왕궁리와 미륵사지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보다 가까이 백제를 느끼기 위해 익산으로 향했다. 3,500여 개의 장독대를 볼 수 있는 고스락 ●반짝이는 건 다 좋아!어렸을 적부터 반짝이는 것이라면 다 좋아했다. 밤하늘의 별은 물론이고 도시의 불빛, 바스락거리며 반짝대는 사탕 봉지까지도. 그런 내게 보석 박물관이라니, 그 존재부터 흥미롭게 다가오는 건 당연했다. 보석 박물관에서 보낸 시간은 그래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보석박물관에는 실제
1930년대 일본의 세력 확장에 반발한 조선인들은 교동과 풍납동 일대에 한옥을 짓기 시작했고, 그것이 곧 현재 전주 한옥마을의 시초다. 우리 것을 지키려 했던 이들의 굳은 노력 덕분일까.세련된 전주의 한옥에서는 오랫동안 다져 온 단단함이 느껴진다. ●이리도 세심할 데가 홍시 홍시는 1939년에 지어진 한옥이다. 보온과 방음을 위해 섀시 대신 좀 더 두꺼운 황토벽과 2중 창살문을 택했고, 황토는 전북 고창의 것을 고집했다. 내부 목재는 소나무를 사용해 건강한 황토 한옥을 완성했으며, 벽지와 장판은 한지 소재를 이용했다. 숨 쉬는 한옥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했을 땐 거센 비바람에 은행잎들이 다 떨어져 노랑카페트가 돼 있었다. 연인들은 한쪽 어깨가 다 젖어도 좁은 우산을 함께 썼다. 비바람 따위는 하나도 무섭지 않은 사춘기 소녀들은 대여점에서 빌린 한복을 차려입고, 츄러스와 초코파이를 들고 다녔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동성당은 저 혼자 마을 끝자락에 뾰족하게 솟아 있지만, 이상하게 잘 어울린다. 성당 주춧돌은 전주 읍성의 성곽 돌로, 벽돌은 성벽 흙으로 만들어졌다는데 그 이유 때문일까. 그렇게 전주 한옥마을은 옛것과 지금 것, 우리 것과 서양문화가 공존해 있다. 전주
당연하다고 방심하진 마임실에 치즈라. 반전 없는 조합이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뜻은 아니다. 고소하고 쫄깃한 맛, 임실에는 그 이상의 이야기와 재미가 있었으니. 터덜터덜. 임실 치즈마을로 향하는 수단은 자동차도 자전거도 아니었다. 푸른 논밭을 가로지르는 경운기다. 눈치 챘을까. 반전이 없다 했지만 반전이 있는 게 임실의 반전이란 사실을. 산과 나무와 지붕이 서로 맞닿아 있는 필봉문화촌의 취락원 장담한다. 임실 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에 ‘지정환’ 신부는 당연히 있을 거라고. 벨기에 출신의 지정환 신부*는 1966년,
●타임머신을 탄 오후 시간에는 힘이 있다. 동네 구멍가게 앞에서 이런 심오한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어릴 적 살던 곳에도 꼭 이만 한 슈퍼가 있었다. 학교가 파하면 어김없이 들러 군것질을 하곤 했는데, 있는지도 몰랐던 그 기억들이 여기서야 문득 떠오른 것이다. 20년을 훌쩍 뛰어넘은 오후였다. 군산 근대역사거리는 구수하고 정겹다. 지나치는 벽화마저도 초원사진관에는 정원과 다림의 사랑이,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향수가 담겼다 전라북도, 군산 근대역사거리에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마을 한편에 자리한 초원사진관도 20여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