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튀르키예가 낯설다면 비단 변경된 국호 때문만은 아니다. 그건 그가 빠르게 어제와 이별하고 있단 증거다. 그리고 그 중심엔, 예술 신세계가 있다. ●낡고 날것들의 동네“그 이름, 진짜 마음에 안 들었었다니까요. 우린 겁쟁이가 아니라고요.” 호텔 테라스에서 꿀 넣은 시리얼을 우물거리며 가이드가 말했다. 유엔(UN)의 승인을 받아 터키의 국호가 ‘튀르키예(Turkiye)’로 변경됐다는 뉴스가 뜬 아침이었다. “터키(turkey)가 영어로 칠면조 말고 겁쟁이, 루저란 뜻도 있잖아요. 그래서 작년부터 정부가 국호 변경 캠페인을 진행해
바다와 라임스톤.지중해의 작은 섬나라를 다녀왔다. ●몰타의 미감 지중해의 중앙 그리고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남쪽, 그곳에 몰타가 있다. 몰타는 작다. 제주도의 6분의 1, 강화도와 비슷한 크기. 이토록 작은 지중해 섬나라는 다시 6개의 섬으로 나뉜다. 그중 사람이 사는 섬은 3곳. 크기 순서대로 몰타섬, 고조섬, 코미노섬이다. 코미노섬에 거주하는 주민은 단 3명이다.몰타는 화창하다. 지중해성 기후 특성상 365일 중 300일이 맑으며 겨울철 강수량이 많다곤 하지만 춥지 않은 수준이다. 겨울철 평균 낮 기온은 10~15도를 맴돈다. 몰
여행의 해빙기, 스위스로 떠났다.여행의 해빙기, 알프스로 가다해외입국자에 대한 격리 의무 해지 소식은 여행의 해빙이기도 했다. 냉큼 떠난 곳은 스위스 알프스였다. 빼앗겨 본 후에야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오래 품어 온 여행을 떠나기 가장 좋은 때라는 걸! 웬만한 여행자라면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에서 신라면컵 먹은 이야기쯤은 기본 레퍼토리인데, 이제야 알프스의 봉우리에 시선을 돌렸다. 아이거(Eiger), 묀히(Monch), 융프라우(Jungfrau) 삼총사의 아래로. 사실 ‘오른다’고 하기 좀 민망한 것은, 안
유럽의 지도를 들여다보면 폴란드는 의외로 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국명이 평원을 뜻하는 ‘pole’이란 말에서 유래됐듯 폴란드는 평평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평평한 땅과 숲이 뒤얽힌 풍경은 남부로 갈수록 완만한 언덕으로, 그리고 푸른 산들이 펼쳐져 보이는 하이랜드로 바뀌어 간다. 이번에 소개하는 곳은 하이랜드의 현관문이라 할 수 있는 크라쿠프부터 푸른 산맥과 계곡의 물로 마음이 치유되는 포트할레까지 100km 남짓한 보석처럼 아름다운 지역이다. 한국에서 포트할레로 가려면, 크라쿠프를 경유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크라쿠
어떤 기억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자연히 과거의 시간 속에서 방부처리가 된다.어제의 프랑스가 그렇다.가장 맛있는 기억 지루한 얼음땡 놀이가 끝났다. 꼬박 2년 만이다. 쾅, 적막했던 여권에 입국 심사 도장이 찍혔다. ‘쾅’이 ‘땡’이 되는 순간. 최대치의 해방감이 몰려온다. 아, 얼마나 기다렸던 해동인지. 코로나는 정말이지 최악의 술래였다. 그 어떤 여행보다 알차야 했다. 하루 평균 3만보씩 걸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짧은 일정 안에 많은 걸 보고 싶다면 답은 역시 근교 여행이다. 기차에 올랐다. 파리에서 출발해 르망(Le Mans),
흑사병을 이겨 낸 자리엔 흑사탑이 세워졌고 300년 동안 이어진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난 자리엔 붉은 태양이 내려앉았다. 오늘도, 내일도, 체코는 그럴 것이라는 믿음. 아니, 확신. ●Karlovy Vary카를로비 바리 황제를 낫게 한 온천수2021년 12월 기준 전 세계 2억6,500만명 이상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경험이 있고, 사망자는 525만명을 넘어섰다. 이중 약 2억3,700만명은 코로나19를 이겨 냈다. 하지만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다고 해서 마냥 괜찮은 것도 아니었다. 제한된 일상생활에서의 크고 작은 불편함, 걱정으로
한국에서 폴란드까지는 LOT폴란드항공 직항편으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11시간 남짓이면 바르샤바에 도착한다. 착륙하기 전에 비행기 좌석 창 너머로 만나게 되는 풍경은 유유히 흐르는 비스와(Wisła)강과 광활한 암녹색 숲. 바르샤바는 녹지가 매우 풍부한 도시로, 도시 총면적의 40% 가까이가 삼림과 공원을 포함하는 녹지다. 200만 명 정도인 바르샤바 시민 1인당 42㎡나 되는 넓은 삼림을 보유한 숲의 도시다. 그럼, 푸른색 가득한 바르샤바를 한 번 걸어볼까.바르샤바 시내 중심부에는 옛 정취가 묻어나는 역사적
여권만큼이나 중요한 백신패스를 받고 파리로 떠났다. 2021년 가을에. 프랑스 입국 절차는 너무나 간단해서 의아하기까지 했다. 야외에선 노마스크가 가능한 파리. 첫날은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이튿날부턴 마스크를 벗었다. 도시의 향기가 훅 들어왔다. 까마득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파리의 공기, 빗방울, 햇살 한 줌조차 소중해서 온몸의 표피로 흡수했다. 마스크 없이 센 강가에서 조깅하고 공원에서 스파링 연습을 하는 파리지앵을 보며 곧 돌아올 우리의 모습이라고 결의 같은 걸 했다. 여행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늘 하던 고민인데, 파리에
1인용 모카 포트에 보골보골 커피를 끓이는 아침.로마에서 온 메시지가 도착했다. ●여행의 전조그날도 피온(Fionn)은 거침이 없었다. is가 아닌 was, have been이 아닌 had been, get보다는 take가 좋겠다며 내 입에서 나오는 문장들을 사정없이 토막 내는 것이다. 아일랜드 더블린 어학연수 2개월 차. 이름만 귀여운 델핀 어학원(Delphin English School)의 ‘인터미디어트(Intermediate, 중급)’ 클래스에서의 나의 일상은 말하고 까임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부끄러울 건 없었는데 다들
그날 리스본의 해는 유난히 길고 눈부셨다. ●뛴다, 뛴다 6월 여름, 포르투갈 리스본. 시작은 좋았다. 호기롭게 질러 버린 KLM 항공 비즈니스 클래스 덕이다. 돈을 썼으면 티를 내는 게 자본주의의 도리지. 샴페인도 들고, SNS용 허세숏도 찍고, 괜히 안 보던 흑백 영화까지 보고. 뭐 하여튼 남들 하는 온갖 천진난잡한 짓은 다 했다. 그땐 지금보다 여행을 더 즐길 줄 알았던 것 같다.그 후 얼마간의 여행도 행복했다. 이름만 들어도 1만408km의 거리가 느껴질 만큼 낯선 나라. 모든 게 신기했고, 좋았다. 아침엔 상 조르제 성이
일생에 잘한 일 두 가지를 꼽으라면 첫 번째는 아내와 결혼한 것,두 번째는 리스본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것이다.7개의 언덕마다 빛나던 그것 리스본과 로마의 공통점은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로마와 리스본의 풍경이 그토록 다른 이유는, 탁 트인 바다 풍경 때문이다. 매일 조금씩 다른 얼굴의 일몰이, 항상 그녀의 오른쪽 뺨으로 떨어지는 그 시간이 영원히 반복되었으면 했던 여행. 역시 다녀오길 잘했어! 리스본 허니문. ●무르익은 와인 한 병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 Miradouro das Portas do Sol드넓
모르면 따분하고 알면 보석처럼 귀한 것이 궁전 여행이다. 포르투갈에서 보물을 찾았다. 편히 들어가 보겠습니다이베리아반도를 양분하고 있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르다. 80일간의 여행 기간에서 5분의 1 정도를 포르투갈에서 보낸 것은, 두 나라가 자치하고 있는 면적 및 비율과 비슷하다. 즉, 포르투갈에 대한 나의 애정의 지분은 결코 작지 않다. 상징적이지만 아직도 왕이 있는 스페인과 달리 포르투갈의 군주제는 110년 전, 1910년 10월5일 혁명으로 막을 내렸다. 1,050년간 이어졌던 역사의 한 챕터의 그렇게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