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이 지면의 첫머리를 어떤 문장으로 채워야 할지 심히 고민합니다. 이건 어떨까요, 살구빛 봄입니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 탈락입니다. 잡지의 계절은 독자님들이 머무는 시간보다 한 달쯤 이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민할 때 딴짓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후배 기자들이 옆자리에 오갈 때마다 눈치가 보입니다. 뭐라도 적어 봐야겠습니다. 그렇다고 하나의 주제로 내용을 풀어 가기에는 최근 너무나도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치렀고 울진, 삼척 일대에서 산불이 났습니다. 무려 213시간 만에 주불 진화에 성공했는데, 이
하나부터 열까지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 INTJ. 지루한 건 싫고 재밌으면 오케이인 사람, ENTP. 싸움이 나면 말리다 본인이 싸우는 사람, ENTJ. 식당 메뉴 선택을 전부 결정하는 사람, ISTJ. 여행 가자고 설득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 INFP. 사람 말 안 듣고 이상한 소리 하는 사람, INTP. MBTI를 맹신하진 않지만, 거의 맞는 것 같습니다.저는 INTP입니다. INTP의 특징은 사람에 대해 관심이 적고, 염세주의자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계획을 철저하게 계획했다 한들 즉흥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다분하고, 영혼 없
임인년(壬寅年), 벌써 2월입니다. 범상치 않은 1월을 보냈습니다. 얼마 전 소파에서 일어나다가 컵을 세로(?)로 밟았습니다. 유리컵을 발바닥으로 부항 뜨듯 짓이겼는데 워낙 깔끔히 뭉갠 탓에 다치지 않았습니다. 화장실에서 핸드폰도 떨어트렸습니다. 액정이 박살 났지만, 다행히 3년 약정이 갓 끝난 갤럭시였습니다. 마감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안경다리가 부러졌고, 고향 집에서 양파(푸들, 8살)의 똥을 밟았습니다. 엉킨 파김치 하나를 들어 올리듯 조심조심하는데도 시뻘건 김치 국물이 튀는 듯한 시작이었습니다. 2022 흑범
새해 첫날부터 머릿속이 펄펄 끓는 사골 떡국 같습니다. 뿌옇고 하얗고 뜨겁습니다. 김도 납니다. 당분간 천소현 부편집장의 뒤를 이어 레터를 채우게 됐습니다. 첫 줄부터 현기증이 나는데 이 페이지를 무르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오늘, 저희 마감날입니다. 먼저 의 독자님들,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한 살이 늘었고 새해입니다. 이 지면은 일종의 ‘예고편’ 아니겠습니까. 2022년에 대한 의 기대와 방향을 가득 적어야 마땅하겠지만, 저는 생각보다 철저하고 꼼꼼하고 세심하고, 뭐 대충 그런 종류 비스름한 사람입니다. 선
이건 영업비밀입니다만, 글의 결정적 순간은 ‘제목(혹은 첫 문장)’에 있습니다. 여행글쓰기 강의를 수년간 진행하면서 과제 피드백의 비중을 높여 왔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건 제목의 중요성입니다. 제목 없는 글(정확히는, 마땅한 제목이 찾아지지 않는 글)은 제목 없는 여행이었고, 그건 제목이 없는 시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아직 아침이지만 오늘 하루의 제목은, ‘스승이란’입니다. 이 레터를 마감하지 못한 찝찝함으로 새벽 3시 반에 저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그래서 물감통을 열었습니다. 굳은 붓을 깨워 물감을 입히고, 지난겨울 광주에서 멈춰
두 번째 가을입니다. 명절을 앞두고 긴장감이 흐르는 시대라니요, 이번 명절에도 대가족은 핵가족이 되고, 귀향자는 불효자가 될는지, 영 적응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미 위드 코로나(WITH COVID-19) 시대로 태세전환 중인데 말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인지라, 확진자 집계를 중단하고 코로나를 독감 수준으로 관리하는 싱가포르의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지긴 합니다. ‘지속 가능한 방역’ 외엔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상처 입은 우리의 여행은 어떻게 될까요? 코로나만 종식되면 보복여행으로 혼쭐을 내줄 기세였는데, 기다리는 동안 보복
평소 신조 중에 ‘남의 여행을 탐하지 말라’가 있습니다. 타인의 여행은 부러워할 대상도, 평가할 대상도 아니라는 것이죠. 이번 호에 이우석 작가의 유쾌한 독설이 자기 방식의 여행을 고집하는 ‘여스플레이너(旅+explainer)’에게 꽂힌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그래서 딱히 남의 여행 이야기에 솔깃해하지 않는 제가, 최근 흥미롭게 들은 여행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장애인들의 여행, 비건들의 여행입니다. 이걸 어디서 들었냐 하면, (요즘 이거 하면 아재라던데) 한동안 ‘시간 플렉스’ 한다며 종일 틀어 놓았던 클럽하우스에서였습니다
백신은 맞으셨나요? 요즈음의 흔한 인사말입니다. 국민 4명 중 1명꼴로 접종을 마쳤다는 뉴스를 본 이후엔 좀 조바심이 나기도 하네요. 주사 한 방이 쏘아 올린 것은 ‘다시 여행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한동안 안부 묻기도 난감했던 여행업의 지인에게 다시 연락이 옵니다. 곧, 무어라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요즘입니다. 태도는 전염된다고 하죠. 백신이 주는 안도감은 한결 긍정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 낙관은 아직 미접종자인 저에게도 금세 전염되어, 새살이 차오르듯 안도감이 차오릅니다. 그러고 보면, ‘코시국’의 불안, 실
지난봄 한국관광공사 대학생 기자단을 대상으로 한 여행 글쓰기 강의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문장을 쓸 수 있나요?”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에 얼버무린 말을 한 것 같은데, 대답은 사라지고 질문만 맴돕니다. ‘아름다운 문장이 뭐지?’, ‘문장은 아름다워야 하는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누구인가?’ 등으로 확장되어 가면서요. 새삼 묻는 사람, 묻는 행위의 중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지난달부터 편집부는 ‘에디터를 위한 암묵지(暗默知)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소소한 대화의 시간입
훌쩍 떠났었습니다. 10년간 정주했던 서울 무교동 5층 사무실을요. 120여 권의 잡지를 만드는 동안 한 달 단위로 묶였던 일상의 매듭이 사라지자 한동안은 끝도 시작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렇게 시간의 무중력 상태에서 부유한 끝에 잃어버린 시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계절입니다. 잡지라는 것이 한두 달씩 앞서 사는 일이라, 겨울이면 봄의 꽃대궐, 봄이면 여름의 짙은 녹음, 여름이면 가을의 울긋불긋한 산하, 가을이면 순백의 설경을 그리며 일 년 내내 욕구불만에 시달렸던가 봅니다. 폭설이 잦았던 지난겨울은 광주 양림동
저는 호불호가 뚜렷하지 않은 편입니다. 리액션도 신통치 않습니다. ‘뭐 먹을까?’ 물으면 ‘아무거나’가 태반이고, ‘맛있지?’ 하면 ‘응, 괜찮아’가 고작입니다. 상대방 김 빼기 딱 좋은 습관이라 고치고, 나름의 선호 리스트도 가졌으면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그래서인지 취향이 뚜렷한 사람을 만나면 부럽기도 하고 호기심도 발동합니다.원고에도 취향이 묻어납니다. 연재 기사가 대표적입니다. 매체가 됐든 개인 블로그가 됐든 어딘가에 무언가를 정기적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입니다. 대상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고 성실함이 뒤따르지 않으면
페이스북은 종종 과거의 오늘을 보여 줍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불쑥 튀어나온 1년 전 게시 글은 여러 감정을 불러옵니다. ‘여기 맛있었지’, ‘이 친구들은 잘 사나’, ‘이따위 사진은 왜 올렸을까’ 하며 입맛을 다시기도 웃기도 합니다. 물론, 리액션이 신통치 않은 탓에 이런저런 댓글을 달아 공유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무감한 제게도 여행은 예외입니다. 몇몇 여행에는 댓글도 달고 격렬하게 그때를 기억하고 싶어집니다. 3월 호 마감의 막바지로 이놈의 레터는 언제 넘어오냐는 채근을 받고 있는 오늘은 2월17일입니다. 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