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업계에서 알게 된 지인과 10여 년 만에 재회했습니다. 근황을 나누다 그녀가 문득 물었습니다. 오래되었으니 회사에 누적된 콘텐츠도 많겠네요! 그 스치는 질문 하나가 제 안으로 들어와 많은 생각의 꾸러미를 엮어 냈습니다. “지금 남은 게 도대체 뭘까?” 제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하, 글쎄요. 처음 여행기자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었고, 플로피디스크에 기사를 담아서 데스크에 제출하곤 했어요. 데이터가 있다 해도 지금은 사용할 수 없죠. 데이터의 수명은 고작 몇 년인 것 같아요. 결국 남는 것은
신기했다. 제주의 사람들이 자꾸만 똑같은 질문을 던져 왔다. ‘나는 누구인가?’ 아직도 그런 질문을 하고 살아야 하는 건가? 부쩍 마음이 주름진 나의 푸념에 제주가 대답했다. 이렇게. ●나는 ‘오조리의 마음’ 입니다 취다선 리조트‘쉼’이 간절한 사람들 사이에서 취다선은 이미 제주 숙소 1순위다. 추천을 받았고, 극찬을 들었고, 2박을 한 후 나도 동의했다. 취다선 리조트는 묘하게도 누군가 손으로 빚은 조소 작품 같은 느낌을 준다. 컬러풀한 벽화와 차분한 차실이 언밸런스함을 이겨 내고 사이좋게 공존한다. 그 분위기에 한 번 빨려들면
10월입니다. 어느덧, 이라는 단어에 다들 공감하시나요? 지난여름 내내 무엇을 했길래 가을이 이렇게 갑작스럽나 생각해 봤더니, 소나기처럼 생각이 쏟아집니다. 무엇보다, 여행 강좌를 진행하느라 바빴네요. 석 달 동안 500명이 넘는 독자들을 직접 만났으니까요. 7~8월에는 10주짜리 트래비아카데미 여행작가 정규과정이 있었고, 9월에는 가을여행주간 이벤트로 명사들을 모신 특강이 4회 있었습니다. 틈틈이 CGV에서 청춘여락, 허니블링 등 인플루언서들의 팬미팅 겸 특강도 진행했습니다. 강의 소개와 인사말을 할 뿐이었는데, 영화관에서 마이크
떴습니다. 80%, 금액으로는 대략 20만원의 할인이었습니다. 얼른 ‘장바구니에 담기’ 버튼을 눌렀죠. 하지만 결제 버튼까지 진행하지는 못했습니다. 꼭꼭 숨어 있던 양심 혹은 애국심이 이 일본 브랜드의 구매를 막아선 것이죠.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말하기는 좀 민망한 것이, 사고 싶었던 품목이 하필 침구류라, 며칠 동안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눈앞에 아른거렸던 것이 사실입니다. 불매 운동은 여행에서 가장 큰 파급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구석구석을 가장 많이 여행하던 이들이, 바로 이웃 나라의 우리들이었으니까요. ‘맛 좀 봐라’ 싶으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케른텐주로 넘어오면 사뭇 공기가 달라진다. 일조시간이 가장 긴 따뜻한 남녘이자 식수의 수질을 갖춘 호수만 해도 200여 개나 된다. 풍부한 물만큼이나 사람들의 인정이 넘치기로 유명한 곳이다. 라틴어 이름인 카린티아(Carinthia)라고 불리기도 한다. ●맑고 빛나는 것들의 향연호에타우에른 국립공원을 남하하면 케른텐주에 도착한 것이다. 밀슈타트 호수(Millstatter See)를 바라보며 달팽이처럼 느린 트레킹을 해 보기로 했다. 미르노크산 들판을 천천히 걷는 슬로우 트레일 미르노크 (Slow T
●명예의 전당에 오른 길 일명 ‘고산 도로계의 전설’, 이 도로를 한 번 주행했다는 것이 바이커들 사이에서는 큰 자랑거리가 되는 ‘길 중의 길’, 바로 그로스글로크너 하이 알파인 로드(Grossglockner High Alpine Road)다. 1935년에 개통된 이 도로는 구름을 뚫고 해발 2,500m의 알프스를 구불구불 넘어 국립공원 호에타우에른의 한가운데를 관통해 알프스에서 가장 긴 빙하인 파스테르체에서 끝난다. 통행이 가능한 시기는 5월부터 10월까지, 일 년의 절반뿐이다. 겨울에는 8m가 넘는 눈으로 길이 막혀 버리기 때문
풍부한 소금 광산에서 캐어 낸 부를 등에 업은 로마 가톨릭 대주교들의 지배를 받았던 잘츠부르커란트는 천년 가까이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모차르트의 고향이자 영화 의 배경지인 주도 잘츠부르크시 외에도 알프스 산악지형과 호수 등 아름다운 자연이 널리 알려지면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촉촉하고 달콤한 시작 비행기가 잘츠부르크 공황 활주로에 내리는 동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호엔잘츠부르크성(Hohensalzburg Castle)이었다. 성은 잘츠부르커란트의 주도인 잘츠부르크시에 있으므로
이 산이 좋을까, 저 산이 좋을까, 아니면 호수가 어떨까? 그렇게 일주일을 다녀도 추려 낼 수 없을 만큼 좋은 곳이 많았다. 한 달도 부족할 것 같은 오스트리아 알프스 여행. 그 여운은 평생 갈지도. 오스트리아 알프스(Austria Alps)오스트리아는 국토의 3분의 2가 알프스 산악지형이다. 동부 지역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비엔나를 중심으로 예술의 꽃을 피웠다면, 서부 오스트리아는 알프스의 아름다움과 라이프스타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번 여행은 오스트리아 9개 연방주 중에서 알프스의 보석으로 꼽히는 3개의 주(티롤, 케른텐,
어느 여행자가 물었습니다. “요즘 제가 꽂힌 발리 여행 사진이 하나 있는데, 이걸 찍으려면 5시간을 가서 딱 사진 한 장 찍고 오는 거래요. 가는 게 좋을까요?” 검색해 봤습니다. ‘발리, 사원, 인생샷’이라는 세 단어로 바로 알아낼 수 있는, 과연 욕심이 날 만한 사진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남의 여행을 탐내지 말라’는 것이 평소의 소신이라 타인의 인생샷을 따라 한다는 계획에 선뜻 찬성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토포필리아(Topophilia), 즉 장소애(場所愛), 라는 것이 있습니다. ‘풍경이나 장소에 대한 사랑’을 뜻하죠. 타인의
시애틀이 예술이다올해로 5년째, 시애틀에 현대미술의 장이 열린다. 2015년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이자 세계적인 예술 작품의 아트 컬렉터로 알려진 고(故) 폴 앨런(Paul G. Allen)이 처음 주최한 ‘시애틀 아트 페어’가 8월1~4일 시애틀 센추리링크 필드에서 열린다. 16~17세기 유럽 남성들의 다양한 예술품 수집 문화를 이르는 ‘분더카머(Wunderkammer, 호기심의 방이라는 뜻)’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된 이번 전시는 ‘호기심과 경이로움(Curiosity and Wonder)’을 주제로 다양한 토크쇼와 아트 프로
교통편도 없었고, 식수도, 먹을 것도 넉넉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짜잔! 누군가 나타나 차를 태워 주고 물을 주고, 먹을 것을 나눠 주었다. 운수 대통할 기운이 넘친다는 달리도니까! ●아흔아홉배미논 위에서다시 목포. 이 항구를 떠나는 일에 자꾸 익숙해진다. 곧 유달산 정상이 보이고, 그 아래 지붕이 예쁜 마을을 지나면 큰 배가 두 척이나 있어서 아주 부자로 느껴지는 목포해양대학교를 지나, 곧 목포대교가 하늘을 가르게 될 거라는 예측이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그다음이 문제다. 섬인지 육지인지 구분이 모호하게 이어지는 섬들의 징검다리
언젠가 혼자 섬 백패킹 여행을 가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서 추천 받은 리스트의 첫 자리엔 굴업도가 있었다. 혼자서도 좋은 곳이라고. 추천은 반만 맞았다. 굴업도는 혼자서도, 여럿이어도, 오롯이 좋았다. ●굴업도 안의 무인도지난봄 에서 진행했던 후쿠오카 캠핑여행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목적지는 섬이고, 방법은 캠핑에, 조금 힘들더라도 멋진 곳이어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에 딱 들어맞는 후보지는 굴업도였다. 누군가 관련 글을 링크로 보내 왔다. ‘한국의 갈라파고스…’로 시작하는 기사였다. 너무 거창해서 농담 같은 수식어가 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