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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철의 다롄에서 온 편지 ② 메이드 인 차이나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7.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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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부터 ‘하얼빈에서 온 편지’로 잔잔한 감흥을 전해 준 바 있는 Travie writer 서동철 기자가 지난 9월 하얼빈에서 다롄으로 거처를 옮기고 다시 ‘다롄에서 온 편지’를 보내 옵니다. 이번 호부터 다시 격주로 연재될 그의 편지로 오래도록 떠나고 싶지만 나서지 못하는 여행 갈증을 달래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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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에서 배편을 이용한 것은 아무래도 실수였지 싶다. 기차를 이용하면 랴오둥반도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데다 베이징까지 거쳐 갈 마땅한 도시가 없기에 바다를 선택했지만 12시간의 항해는 고역에 가까웠다. 망망대해로 나선다는 기쁨도 잠시, 삼등칸의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지저분한 침대는 가히 절망적이었다. 이에 더해 배 멀미까지 엄습해 와, 속은 울렁거리고 분명 무수한 생명체들이 우글거리고 있을 침대에 누워 있으니 잠이 올 리 만무했다. 

어쨌든 시간은 흘렀고 다음날 탕구항에 도착해 선착장에 대기하고 있는 톈진행 버스에 올랐는데 앉을 자리가 없었다. 배가 항구에 머리를 들이밀기도 전에 짐을 싸들고 나서는 중국인들을 다소 한심하게 바라보며 여유를 부린 탓이었다. 꼴찌의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봉고차에서나 볼 수 있는 접이식 의자를 펼쳐 앉았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1시간 정도의 짧은 거리였지만 꼼짝없이 이대로 톈진까지 가야 한다니 암담하기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가 멈춰서더니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고장이 제대로 났는지 버스기사 아저씨가 뒤에 오는 버스로 갈아타란다. 새옹지마라 했던가. 통로에 앉아 있던 탓에 먼저 내려 좋은 자리를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의자는 딱딱하고 좌석 간격이 좁아 무릎을 모을 수조차 없었다. 변변히 먹은 것도 없이 점심때가 돼서야 톈진에 도착했는데 몸은 이미 곤죽이 돼 있었다. 



설상가상이었다. 숙소를 구하기 위해 시내를 돌아보는 도중 내내 불안했던 샌들 밑창이 결국 떨어져 나갔다. 하얼빈에서 구입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너덜거리던 것을 수리했는데 본드로 대충 붙여 놓은 것이 분명했다. 상점에 들어가 밑창 일체형(?) 싸구려 신발을 하나 골라 계산을 하는데 내가 건넨 20위안짜리 지폐를 가짜라며 되돌려주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색깔이 어딘가 조잡한 것이 위조지폐인 것이 분명했다. 어디에서 받은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억울하기만 했다. 

베이징에 도착해서는 다 해진 카메라 가방의 어깨끈을 구입할 생각으로 카메라 전문점에 들어갔다. 점원이 진열대 위에 늘어놓은 물건 가운데 그나마 쓸 만한 걸 가리키며 가격을 물었더니 140위안(한화 약 1만7,000원)이란다. 가격이 어처구니가 없어 놀라는 표정을 지었더니 깎아 주겠다며 또 얼마를 부른다. 그것도 비싸다 했더니 가격이 반값으로 떨어졌다. 다른 가게를 둘러보고 오겠다고 발길을 돌리니 ‘이런 좀스런 관광객이 있나’ 하는 말투로 40위안에 가져가란다. 중국에서 물건을 살 때면 흔히 겪는 일이었지만 태도가 너무 괘씸해 그대로 상점을 나와 버렸다. 

이쯤 되니 약이 살살 오르기 시작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중국이니까’라며 웃어 넘겼겠지만 위조지폐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대개 중국의 상점에서는 가짜 돈을 구별하는 기계를 구비해 놓거나 나름의 노하우로 위조지폐를 식별해 일단 수중에 들어온 가짜를 사용하기 어렵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내가 선택한 장소는 식당. 중국의 식당은 대부분 테이블에서 계산을 하게 되어 있어 상점보다는 가짜 돈을 써 버리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위조지폐로 밥을 먹고 나오니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는 정말 차이난다 차이나!’라는 농담처럼 중국에 대한 불신은 우리들에게 매우 뿌리 깊은 것이다. 세칭 짝퉁과 해적판의 천국 그리고 불친절과 비위생의 대명사로 중국을 떠올리게 마련인 것도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고 쌓인 결과다. 최근 이슈가 된 식품첨가제로 만든 가짜 계란을 비롯해서 자동차 부동액용 화학물질이 검출된 치약, 납 성분이 발견된 장난감까지 우리는 ‘중국은 아직 멀었다’며 혀를 끌끌 찬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중국의 빠른 성장을 두려워한다. 중국 펀드로 돈을 불린 사람들과 중국으로 몰려드는 유학생들에게 ‘차이나’는 다시금 세상의 중심이 되고자 꿈틀거리는 거대한 용이다. 베이징에서 4박5일간 머무르면서 자금성, 이화원, 천단, 만리장성 등의 유명한 볼거리와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숨 가쁘게 변모하고 있는 중국의 현재를 바라보면서 느꼈던 것은 ‘이 나라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오래지 않아 ‘메이드 인 차이나’는 정말 우리와 큰 차이가 나는 명품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엄습해 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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