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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특집 ② 나주, 함평, 화순 - 南道的 정서, 그 신비 속으로"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1.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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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비

어제부터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비는 그칠 듯 말 듯, 끊임없이 이어지며 나주땅을 촉촉히 적셨다. 자욱히 깔린 안개, 습기를 머금어 더욱 짙은 빛깔을 뿜어내는 돌은 ‘남도’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서정적인 운치를 더한다. 여행하기엔 다소 궂은 날씨가, 오히려 반갑게 느껴진다.

글·사진 오경연 기자




ⓒ트래비 /
1. 칠층 석탑 옆에 자리한 칠성바위는 불교와 자연스레 융화되었던 칠성신앙의 산물이다.
2. 운주사 야외의 불상들
3. 보물 제769호로 지정된 운주사 구층 석탑


천불산 협곡에서 관군과 맞서 싸우던 노비들은 굶주리면서도 꿋꿋이 야산에서의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노비들은 미륵님의 계시를 들었다. 골짜기 안에 천불천탑을 하룻밤 사이에 세우면 수도가 이곳으로 옮겨 온다는 것이다. 도읍지가 바뀌는 새로운 세상을 위해, 노비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북을 두드리며 노비, 천민의 일손을 끌어모으고 미륵상과 탑을 쪼기 시작했다. 소문을 들은 남도 각지의 바위들도 스스로 미륵상이 되기 위해 몰려들었다. 민중들을 닮은 모습의 미륵상이 속속 만들어지고 새 세상을 이루는 부처님을 좌정케 하기 위해 계곡 골짜기에 새 절도 세웠다. 이윽고 999개의 미륵상과 탑이 완성되고 마지막으로 산정에 누운 집채만한 돌에 미륵을 새겨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너무도 힘이 들었던 나머지 미륵은 새겨진 당시 모습 그대로인 ‘와불(臥佛)’로서 산등성이에 머무르고 있다…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에서 그려진 화순 운주사의 유래이다. 이 밖에 통일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운주사를 창건하고 하룻밤 새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등 운주사에 얽힌 이야기는 갈래갈래 많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천불천탑’ 도량에 대한 합당한 설명을 풀어놓기 위해서일까.

천불천탑(千佛千塔). 이름 그대로 천 개의 불상과 천 개의 탑이라는 뜻이다. 자그마한 사찰 안에 이다지 많은 불상과 탑이 모여 있는 ‘희소성’에 비해 운주사가 대중에 널리 알려진 것은 비교적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원래부터가 길가에 나뒹구는 흔한 돌로 만들었을 불상과 탑들은 절 인근에서 살아가던 민가의 주춧돌로, 혹은 돌담의 재료로 사용되며 알게 모르게 파손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운주사의 불상, 탑은 통틀어서 100여 기가 채 되지 않는다.

한편으로 사람의 손때를 덜 탄 운주사에서는 얼핏 촌스럽기까지 한 예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스님들이 직접 농사지어 담근 장을 보관하는 장독대, 장지문 처마 밑으로 차곡차곡 쌓인 나무땔감 등 구석구석마다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마치 여염집과도 같은, 푸근하면서도 친근한 정서는 운주사를 관통하는 ‘화두’라고도 할 수 있다. 여느 사찰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운주사만의 특징으로 서민친화적인 형태의 불상과 탑을 꼽는다. 산등성이의 돌 위에 시치미를 뚝 떼고 ‘자연스레’ 세워진 탑, 단순한 선으로 이루어진 소박한 외모의 불상은 자연과 함께 살아온 민중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운주사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와불을 만나기 위해서는 힘들지 않은 등산을 ‘감행’해야 한다. 천불산 등성이를 쉬엄쉬엄한 발걸음으로 10분 남짓 오르다 보면 비탈길에 비스듬히 누운,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거대한 와불과 조우하게 된다. 크고 작은 2구의 석불이 누운 탓에 ‘부부 와불’로도 불리우며, 언제 올지 모를 미래에 와불이 일어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향후 1,000여 년간 세상이 평화로울 것이라는 예언이 전해지고 있다.




ⓒ트래비
1. 염색한 천을 말리면 색이 점차 옅어진다.
2. 염색물에 담근 천을 흐르는 물에 행궈낸다
3. 붉은 소목물에 염료를 담그는 참가자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을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 지칭했던 연유는 깨끗함, 빛을 상징하는 흰색을 숭상했던 국민적 정서를 바탕으로 했으나, 한편으로는 ‘번거로운’ 염색과정을 거치지 않고 목화솜에서 갓 뽑은 흰 광목 그대로 옷을 지어 입었던 편의성 역시 한몫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무려 천여 년간 염색문화가 발달하여 왔다는 나주 인근에서는, 그 옛날에도 흰빛 일색의 일상복보다는 다채로운 빛깔의 옷들을 걸쳐 입은 사람들이 저잣거리를 활보했을 것만 같다. 바닷물과 영산강이 만나는 유역 인근은 뽕나무와 쪽을 재배하기에 최적의 환경으로, 일찍부터 천연염색 기술이 발달하여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단 두 명뿐이라는 천연염색기술을 보유한 인간문화재가 모두 나주에 거주하고 있으며, 또한 염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재료인 실과 천을 짜는 방직기술을 보유한 인간문화재도 나주에 있어 천연염색에 필요한 삼박자를 고루 갖춘 셈이다.

이처럼 ‘든든한’ 뒷배경이 있으니, 나주시에 천연염색문화관이 들어서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주시천연염색문화관에는 천연염색의 역사를 상세히 풀어내는 자료들은 물론 다양한 천연염색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상설, 기획전시관이 마련되어 있어 우리나라 천연염색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천연염색문화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천연염색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실습 프로그램이다. 



ⓒ트래비

4. 2층 전시관의 천연염색 작품
5. 숍에서는 다양한 천연염색 제품을 전시, 판매한다.


흰 비단을 물들여 스카프를 만드는 과정을 체험하기로 했다. “천연염색은 항균성이 뛰어나고 친환경적인 제작과정 등으로 최근 재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재료를 크게 식물성, 동물성, 광물성으로 분류하는데, 각각의 성질에 따라 염색과정이 달라지게 되죠.” 천연염색에 관한 기초상식에서부터 실생활에서 간편하게 응용할 수 있는 염색법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강사의 입담에, 한마디를 놓칠세라 참가자들의 눈길이 사뭇 진지하다. 이윽고 실제 염색을 하기 위해 염색장으로 들어섰다. 치자열매에서 추출한 샛노랑, 소목(蘇木)에서 뽑아낸 빨강, 황토를 풀어 갠 황토색…. 선명한 빛깔이 새하얀 비단에 순식간에 스며든다. 100% 순수 자연으로부터 탄생한 총천연색 스카프는 그 자체로 자연인 듯,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 





‘함평’이라는 지명은 몰라도 ‘함평해수찜’이라는 고유명사(?)는 “아~”하고 아는 척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함평해수찜은 나름 잘 알려진 웰빙 체험거리이다. 그 ‘소문’이 무색치 않게, 해수찜 영업소가 옹기종기 모인 바닷가에는 빨래줄 가득 가운들이 널려 있다. 

‘해수약찜’이란 바닷물에 뜨겁게 달군 유황돌과 약쑥, 솔잎 등속을 넣은 후, 뜨거워진 물을 몸에 끼얹어 찜질하는 것. 원래는 바닷물에 가마니를 적셔 몸을 덮었지만, 변하는 세태에 발맞추어 최근에는 수건에 물을 적셔 덮는 것으로 대체되고 있단다. 행여나 데일까 조심하며 해수탕을 체험해 보니, 온몸이 노곤노곤해지는 것이 웬만한 질병은 ‘앗뜨거라’ 달아나 버릴 것만 같다. 해수와 유황성분이 만나 발생하는 유익한 성분이 몸에 이롭게 작용, 류머티즘, 어혈, 체질환 등에 두루 효능을 발휘한다. 게다가 피부가 매끈해지는 미용효과까지 덤으로 주어진다니 여자라면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을 터. 몇몇 다른 지방에도 해수찜이 없진 않지만, 함평의 해수찜은 1800년대부터 이어져 오는 오랜 전통으로 예전부터 ‘지방 명물’로서 그 가치를 톡톡히 인정받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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