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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나라 봄맞이여행 ② 영동 봄나물 장터 그대, 겨울잠을 깨고 장터로 나서요"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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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방방곡곡에 봄을 위한 헌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칙칙한 잔디 위로 새순이 돋고, 신록의 푸른 기운은 양껏 몸을 움츠린 채 날씨 눈치를 본다. 바야흐로 계절도 정권교체, 봄맞이가 한창이다. 점점 수더분해지는 간절기의 기류를 느끼고 싶다면 장터로 향해보자. 입맛 돌게 하는 산나물들이 영양가를 듬뿍 안고 비싼 몸을 뽐내는 곳, 영동 5일장에는 이미 봄이 오고도 남았다. 장돌뱅이의 마음과 모처럼 길을 나선 가족의 너털웃음, 그리고 등산객들의 이야기 고개가 한껏 더딘 봄을 채근질한다.

임산 5일장

장돌뱅이 가슴에 먼저 찾아온 봄


ⓒ트래비

입춘(立春)을 맞이하고도 보름 가까이 지났건만, 내륙 지방인 영동의 2월은 여전히 춥다. 계절이 한 발 앞서 찾아온다는 시골 장터를 찾아 영동으로 향하는 발걸음 속에는 지긋한 추위와 음울한 겨울 공기 탓에 그만 벗어나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황간 인터체인지 표지판만 외로이 떠 있는 고속도로 한복판에 내려 길옆으로 난 계단을 내딛으면 작은 구멍가게가 전부인 황간 시외버스 터미널이 나온다. 시골 장은 일찍 파한다는 정보를 들은 터라 이른 시간임에도 걸음이 분주해진다. 

황간에서 임산리까지는 30분~1시간 간격으로 오는 시내버스를 타고 15km 정도를 더 들어간다. 10분 남짓 달렸을까. 그제야 멀리 임산 5일장이라고 쓰인 초록색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부푼 마음을 안고 서둘러 내렸다. 상인과 손님들이 한데 엉켜 뒤범벅된 시끌시끌한 장터를 기대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무표정한 얼굴로 보따리를 푸는 노인들이 객지에서 내려온 처자를 무심히 반긴다. 몇몇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만이 어색한 기운을 달래는 위안이 된다.  

장터를 다 둘러보는 데는 십 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탓에 장터로 사용되는 작은 공터와 도로 가장자리 곳곳에는 듬성듬성 빈 자리가 눈에 든다. 나물이며 메주, 콩 등을 짊어지고 나와 보따리 풀어야 할 할머니들이 자리를 비운 까닭이다. 올 겨울은 입춘이 지나고도 매서운 추위가 가시지 않아 땅이 꽁꽁 얼고 봄을 알리는 산나물들을 볼 수가 없다며 두부 파는 할머니가 귀뜸해 준다. 

천태산과 비봉산 등지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산나물들은 영동 지역 5일장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품. 예년에는 지금쯤이면 나물 몇 가지 캐어 나온 노인들을 볼 수 있었지만, 올해는 3~4월이나 되어야 나올 것 같다는 게 현지인들의 예상이다. 그래도 목이 축 늘어진 닭 몇 마리와 파 대여섯 단, 우엉 몇 뿌리를 다소곳이 차려두고 점심밥으로 보이는 두부 한 모를 썰고 있는 할머니, 명절에 팔다 남은 제수용품과 건어물, 잡곡 따위를 늘어놓은 장돌뱅이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꽃 분홍 잠바 입고 한껏 멋 낸 생선가게 아줌마와 갖가지 체크 남방이 총 집합한 트럭 아저씨, 영동이 원래 춥다며 봄을 면전에 두고 아직도 내복과 솜버선만 디스플레이 해놓은 옷 가게 아주머니 등이 제법 장터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영동에는 총 8~9개의 재래장이 서는데 1일과 6일에 서는 임산 5일장을 비롯, 2일과 7일 황간장, 3일과 8일 심천, 학산, 추풍령장, 4일과 9일 영동장, 5일과 10일에 서는 매곡, 용산장 등이 비교적 잘 알려진 장터다. 지금 장터를 지키고 있는 상인들은 바로 그곳들이 삶의 주 무대요 놀이터인 셈이다. 

뭐니 해도 시골 장터의 백미는 사람 만나는 재미에 있다고, 장돌뱅이들 틈에 껴 그네들의 삶을 듣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임산 장터의 터줏대감인 건어물 포 할아버지도 그랬다. 봄내 맡으러 내려왔다가 추위에 뺨 맞은 기자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과 양철 난로 위에서 서너 시간은 달궜을 법한 군밤 두 알을 선뜻 건네주는 넉넉한 인심이라니. 그제야 비로소 따뜻한 봄을 만난 듯 마음이 녹아들기 시작한다. 유치원 선생인 막내딸이 시집을 못 가 걱정이라면서도 저 혼자 알뜰하게 몇천만원 모아놨다고 자랑 삼아 이야기하는 노인의 눈이 볕 아래 반짝인다. 

그러고 보면 할아버지의 봄은 곧 올 3월이 아니라 삶의 희망과도 같은 자식들인지도 모른다. 강정 몇 봉지를 앞에 두고 장터에서 하루 종일 추위를 견디는 아주머니는 “학교 다닐 때 인기 많으셨겠어요” 하고 슬쩍 던진 말 한마디에도 홍조를 띤다. 문학 소녀였다는 그 아주머니의 봄은 마른  입에서 툭 삐져나온 김소월의 시 <산유화>에 숨어있다. 수십 년 전에 읊었던 그 시구를 여전히 떨리는 가슴으로 나지막이 뱉어낸다.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상촌면에 봄이 오는 소리는 그처럼 수줍고 단아하다.

난계 국악 마을

아이들과 함께 벌이는 신명나는 국악 체험


ⓒ트래비

충북 영동군 심천면에 위치한 난계 국악마을은 우리 소리를 온몸으로 듣고, 만들고, 느낄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전천후 국악 체험기지이다. 영동에서 태어난 난계 박연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으로 장구, 북, 가야금 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국악기 제작촌과 한국의 3대 악성 박연 선생의 일대기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국악 박물관, 우리 악기를 마음껏 배우고 연주할 수 있는 국악 체험 전수관 등이 있다. 

이 중 전통 악기를 직접 다뤄 볼 수 있는 국악기 체험 전수관이 가장 큰 인기를 끄는데, 아이들과 함께 미리 신청서를 작성하면 원하는 모든 악기를 전문 연주가에게 무료로 배울 수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서부터 어린 아이들까지 신명나는 꽹과리 장단에 맞춰 북과 장구를 연주한 후 기분 좋은 땀을 훔치며 전수실 문을 나서곤 한단다. 영동의 와인과 국악 체험 패키지로 구성된 ‘와인 트레인(Wine Train)’을 타고 온 외국인들에게도 인기 만점. 타악기 공방과 현악기 공방이 나란히 자리잡은 국악기 제작촌에서는 악기 제조과정 관람은 물론 직접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다. 10명 이상의 단체는 사전 예약 후 1인당 만원선의 체험 비를 내면 자신이 직접 만든 장구를 가질 수 있다. 피아노나 플루트 같은 서양 악기에 익숙한 아이들에게는 한국 전통 악기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좋은 기회다. 

국악 박물관 입장료 어른 500원, 청소년 300원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6시(매주 월요일, 법정 공휴일 및 추석 기간 휴관 ) 
예약 문의 043-742-0222

천태산 영국사

천년의 숨결을 느끼다


ⓒ트래비

천태산 영국사(寧國寺)로 올라가는 길은 딱 기분 좋을 만큼의 땀이 등을 적시는 가벼운 트레킹 코스이다. 아직 2월 중순인 만큼 눈으로는 봄을 느낄 수 없지만 어느새 볕에 녹기 시작한 계곡 물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그토록 기다리던 봄의 목소리 같아 새삼 반갑다. 이삼십분 정도 돌과 흙, 나무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걷다 보면 오색찬란한 리본이 길가의 담장을 가득 메운 직선로가 나오고, 저만치 천년 은행나무가 시야에 들어온다. 

수령이 1,200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은행나무는 높이 31.4m, 둘레 11.54m의 위용을 자랑하는 영국사의 상징이다. 국난이 있을 때면 통곡을 한다는 전설이 내려올 만큼 영험한 기운이 가득하고, 사방으로 그악스럽게 뻗은 가지 중 하나는 땅에 뿌리를 내려 새로운 생명으로 독립하기까지 할 만큼 강인하고 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200m 정도 더 올라가면 드디어 영국사 대웅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통일 신라 후기에 지어졌으며 고려 공민왕 시절,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서 거주한 공민왕이 나라와 백성의 평화와 안정을 기원했다고 해 영국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산 중턱에 자리한 사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유유자적한 순간을 만끽하며 달고 시원한 약수를 한 사발 들이킨다. 가쁜 숨도 고르게 내쉬어 본다. 대웅전 앞 돌담 위에서 낮잠 중인  동자승 불상의 편안한 미소처럼 속세가 아닌 이곳에서는 잠시마나 삶의 가쁜 숨이 잦아든다. 

그러고 보니 대웅전 앞 홍백련 나무 가지에는 벌써 보송보송한 싹눈이 텄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것은 절대 믿지 않는 강박에서 한 걸음 비켜서자 조금씩 다가오는 봄이 보인다. 그래 맞다, 지금 영동에도 봄이 기지개를 켜고 있구나. 순간, 나도 모르게 하품이 쏟아졌다. 그토록 원하던 봄의 모습은 시골 마을에서 맛보는 바로 이런 나른함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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