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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ie with Movie -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마음을 찍는 겸손한 여행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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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태국 여행에서 돌아온 지인이 자신의 디카에 찍힌 사진들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거기에는 태국의 이국적 풍광보다 사람들의 표정이 더 많았다. 우리돈으로 치면 단돈 몇 백원에 가방에든 지갑 위에든 정말 멋진 그림을 그려주는 한 생활 예술가의 투박한 손과 얼굴, 버스에서 만난 교복입은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여 주며 그 친구는 즐거워했다.

사람들의 표정을 정성스럽게 담아온 그 사진들을 본 나는 한편으로는 슬쩍 착잡해졌다. 이를테면 우리가 유럽이나 미국의 관광 명소에 갔을 때 사람들의 표정을 주목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고풍스러운 건물이나 압도적인 자연환경, 낭만적인 카페테리아의 정취에 취하다 보면 사람들이야 거기서 거기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 가면 우리는 곧잘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떼로 몰려들어 구걸을 하는 아이들, 작은 수상보트에 과일과 음료수를 가득 실은 여성들, 심지어 매춘을 위해 밤거리에 늘어서 있는 여성들조차 구경거리가 된다. 내가 그 시선을 일면 자연스럽긴 해도 한편으로 차별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이면에 나만큼은 저들보다 훨씬 안락한 삶을 살고 있다는 안도가 도사린 것 같기 때문이다.

‘부자는 전생이 착한 사람들이라 부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태국 사회에서 극심한 빈부 격차가 해소될 여지는 크지않고, 최하층의 젊은 여성들은 거대한 향락 산업의 하수구로 내몰리는 냉엄한 현실을, 지인의 사진 안에 찍힌 해맑은 표정의 사람들에게서 읽을 도리는 없다.

나 역시 방콕에 갔을 때 수상 보트 위의 여성이 그 누런 강물 위에서 평생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헤아리는 것보다 그의 장사하는 방식 자체가 신기하고 이채롭게 보였을 뿐이다. 여행자의 시선은 곧잘 그렇게 방임적이거나 낭만적인 수준에 머물기 일쑤다. 그러므로 낯선 곳에 갔을 때, 그 환경에서 삶을 일구는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최대한 겸손해야 한다고, 쉽게 그들을 구경거리로 타자화하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여행자의 겸손한 시선이라는 측면에서, 남미 감독 월터 살리스가 연출한 걸작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2004)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받은<중앙역>(1998)으로 이미 로드무비의 진수를 선보인 바 있는 그는, 젊은 시절의 체 게바라와 그의 절친한 친구를 주인공으로 앞세운 이 영화를 통해 여행에서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통찰적 질문을 던진다. 두 젊은이들은 끓어 오르는 에너지와 열정 하나에 의지한 채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남아메리카 대륙 횡단 여행에 나선다. 역시 리비도 과잉의 젊은이들답게 여행지에서의 설렌 로맨스를 시도하기는 하지만, 이들이 결국 목도하게 되는 것은 신음하는 민초들의 처절한 삶이다. 그것이 나중의 전설적 혁명가 체 게바라를 형성한 아주 중요한 모티브가 됐다는 사실은 이 영화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여행자로서의 방임적 시선 혹은 권력적 태도가 아니라 그들이 바라보는 대상과, 눈과 몸의 높이를 맞추려는 겸손한 노력이다. 감독은 요즘 젊은 이들의 티셔츠를 장식한 그림처럼 체 게바라를 박제화하거나 영웅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여정을 무심한 듯 따라가며 그가 시야에 들어온 세상과 그의 의식이 어떤 상호 작용을 일으키는지를 가늠하려는, 또 다른 겸손한 시선을 얹는다.

이런 여행자라면 사진에 찍힌 내 모습 뒤의 배경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내 마음에 무엇을 찍어왔느냐’일 것이다.

글을 쓴 최광희는 시니컬하면서도 유쾌하고, 진지하면서도 명랑한 영화 저널리스트. 영화주간지 <필름 2.0>의 온라인 편집장을 거치며 쌓아 온 내공이 여행을 만나 맛깔스런 하모니를 연출할 계획인다.
팀블로그 '3M흥UP'(mmmm.tistory.com)에는 그 못지않은 4인의 필진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영화와 세상을 노래한다. 보다 내밀하고 자극적인 최광희의 영화 칼럼을 원한다면 한번쯤 들러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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