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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프랑스 기차여행 ①샹띠이·카르카손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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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프랑스 기차여행
차창을 흐르는,  그림엽서

‘현재’를 즐기는 가장 현명한 방법인 여행에 있어 기차만큼 간편한 이동수단이 또 있을까. 기차 안은 ‘목적지가 같다’는 공통점 이외에는 교집합이 전혀 없을 것만 같은 각기 사연 다르고 서로 낯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공적’인 공간이지만 기차 좌석에 몸을 파묻고 차창 밖을 바라보노라면 흐르는 풍경에 빠져드는 동시에 지난 추억 속에까지 빠져드는 ‘사적’공간이기도 하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들을 아쉬워하듯 기차 위에서는 과거를 아련히 추억하게 된다. 과거로의 상념에 빠진 나와, 현재의 나를 목적지로 이끌어 주는 기차를 타고 파리 인근의 샹띠이에서 시작해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을 돌았다.
유럽의 작은 마을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기차’, 유럽 내에서 어디든 갈 수 있는 ‘유레일패스’, 기차 여행의 진수를 한없이 보여주는 ‘남부 프랑스’가 만들어내는 환상의 앙상블(Ensemble)을 지금부터 느껴 보시라.
 
글·사진  신중숙 기자   취재협조  레일유럽 www.raileurope-korea.com

춘희, 손가락으로 프레임 만들어 여기저기 구도를 잡아 본다 
운전대 앞에 놓여있는 시든 장미꽃까지
철수 : 뭐해? 헷갈리게
춘희 : 응? (하며 철수 얼굴을 프레임으로 잡아 본다)
철수 : 그만 하라니까
춘희 : 이렇게 하면 다 의미가 있어 보여

문득 기차 안에서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속 춘희의 말처럼, 가만 보면 밋밋한 풍경일지라도 카메라의 사각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보면 좀더 특별한 의미가 덧입혀진다. 마찬가지로 기차의 네모난 창틀 역시 광활한 유럽의 전원 풍경을 더 ‘의미 있어 보이게’ 만드는것 같다. 마치 명화를 품고 있는 액자처럼. 게다가 시시각각 변하는 ‘만화경’처럼 기차의 진행 방향으로 그림 같은 유럽의 풍경들은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넘치도록 전해 준다. 그 한 장 한 장을 스냅사진으로 남겨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 목가적이며 이국적인 풍경들을. 여행은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Aeroport Paris-Charles de Gaulle)에서 샹띠이(Chantilly)로 향하는 기차에 오르며 시작됐다.




기차가 OO보다 좋은 5가지 이유 

여행을 준비하며 ‘기차’와 다른 이동 수단 사이에서 선택의 갈등을 하기 일쑤다. 다양한 ‘탈것’들이 있는 유럽여행은 더욱 그렇다. 최근에는 다양한 저가항공의 등장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짧은 시간에 유럽 국가를 넘나드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가 된 지 오래다. 이처럼 여행을 계획함에 저가항공, 시외버스, 기차 사이를 오가며 고민에 빠져 있다면 각 이동수단들의 특징들을 꼼꼼히 살펴본 뒤 결정하자. 아래 내용은 결국 고민 끝에 ‘기차’로 각 마을간, 도시간을 이동하기로 한 기자의 선택 이유다. 

■기차역은 시내 중심에 위치한다. 짧은 이동시간, 예상 외의 저렴함이라는 무기로 한때 저가항공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뻔한 위기에 놓였지만 매 도시마다 공항버스나 택시를 타고 시내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반면 기차역은 도심지마다 위치해 있어 숙소의 위치에 맞춰 승하차역을 선택할 수 있어 편리하다. 

■기차는 ‘시간 약속’을 잘 지킨다. 비행기에 비해 배차 간격도 촘촘한 편이다. 출발하는 데에 서너 시간을 미리 잡고 시작해야 하는 비행기와 비교할 때 ‘시간 손실’ 면에서 낭비가 적다.
 
■기차는 여행자의 눈을 호강시켜 준다. 커다란 창을 통해 유럽의 집들, 나무들, 들판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동도 여행이다’는 말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비행기가 갈 수 없는 작은 마을을 갈 수 있다. 기사에 나온 작은 마을은 실제 국제공항이 없는 경우도 많다. 기차로만 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 
 
■어쩐지 일상의 연장인 ‘버스’와는 달리 ‘여행’ 기분, 일탈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어 좋다.



Station #1 Chantilly 샹띠이

‘고성’보다 더 부러운 그의 ‘서재’

프랑스를 파리 같은 대도시나 니스와 칸느 같은 유명 휴양지 위주로 여행한 사람들에게 ‘샹띠이’는 낯선 이름이다. 그럼에도 ‘기차로 떠나는 작은 마을’ 리스트에 샹띠이를 올린 이유는 비록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지만 베르사유(Chateau de Versailles)의 거대한 인파와 오랜 기다림을 견뎌낼 심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프랑스 고성(古城)의 향기를 가슴 깊숙이 들이마셔 보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1 샹띠이성 콘데박물관 내부의 서재는 부러움을 넘어 시기심까지 느껴진다 2 성 내부 성당의 독특한 스테인드 글라스 3 라파엘로의 <성모자> 4 작은 베르사유 궁전이라고 불리는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샹띠이성

샹띠이는 마치 ‘숲’으로 이뤄진 마을 같다. 기차역에서 내려 샹띠이성(Chateau de Chantilly)을 찾아가는 길도 온통 숲 천지다. 숲 길 사이를 말을 타고 한가로이 노니는 사람들의 풍경과 초록 숲과 단정한 정원 사이에 들어서 있는 고성이 만들어내는 ‘초현실적일 정도로 여유로운 광경’은 날 때부터 ‘도시인’이었던 여행자를 설레게 만든다.

샹띠이성은 16세기 파리 주변 지역에서 가장 큰 세 개의 숲과 인접한 지역에 세워졌다. 그러니 마을 전체가 ‘숲’에 둘러싸인 느낌을 받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멀리서 바라보면 물에 떠 있는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의 ‘성’ 그 자체는 물론 베르사유의 정원을 디자인한 앙드레 드 노트르(Andre de Notre)가 17세기에 조성한 아름다운 정원도 하루 온종일을 투자해도 모자랄 정도로 호사스러운 눈요기지만, 샹띠이 성의 진면목은 어마어마한 수집품을 소장한 박물관에 있다.

샹띠이성에는 수세기에 걸쳐 훌륭한 회화와 사본이 수집됐는데 프랑스혁명으로 많은 부분이 소실됐다. 그후 1814년 콘데 공작(Duc de Conde)이 다시 수집을 시작했고 1830년에는 콘데 가문의 마지막 계승자 오말 공작(Duc d’Aumale)이 그 뒤를 이어 콜렉션 재건과 함께 미술품을 적극적으로 수집했다. 직계 후계자가 없었던 오말공작은 1894년 성을 프랑스 한림원(Academie Francaise)에 기증한다는 유서를 쓴다. 이 유서에는 그의 가문의 이름을 따서 이 박물관을 콘데 박물관(Musee de Conde)으로 지어야 하며 콘데 박물관의 콜렉션을 외부에 유출, 대여할 수 없으며 그가 배치한 콜렉션을 원상태 그대로 일반인에게 소개해야 한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다.

특히 중세에서 19세기 초에 이르는 프랑스 및 이탈리아의 회화 ·사본 ·삽화 ·소묘 등은 그 콜렉션의 규모가 루브르 박물관에 필적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다. 무엇보다 3만여 권의 고서가 소장되어 있는 서재에서는 입을 다물 수가 없다. 15세기경, 인쇄술이 발명되자마자 만들어진 희귀한 책을 비롯해 각종 필사본과 고서들이 세월에 몸을 맡겨 향기로운 ‘책 내음’을 폴폴 풍기고 있다. 책 읽기 딱 좋을 정도로 은은한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에서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에 앉아 고서에 몰두하고 있는 ‘그 누군가’의 모습을 상상하려니 중세 영화로는 <소공녀>가, 환타지 무비로는 <해리포터>의 주인공이 차례대로 머릿속에 그려진다. 특정 ‘가문’과 ‘개인’이 평생을 투자해 이룬 어마어마한 수집 박물관은 ‘공공 기관’이 설립한 다른 박물관과는 사뭇 다른 깨달음과 감동으로 다가온다. 

샹띠이 가는 법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서 RER선을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샹띠이-고비엑스(Chantilly-Gauvieux)역에서 하차하면 되고 소요시간은 25분 정도. 프랑스 북역에서 가는 방법도 있다. 일반 RE 기차를 이용할 수도 있고 RER선을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기차를 이용할 경우 25분 정도, RER선을 이용할 경우 40분 정도 소요된다. 유레일패스 소지시 두 기차는 모두 무료고 예약 없이 탈 수 있다.  

 


Station #2Carcassonne카르카손

‘실제’라서 참 고마운 ‘그 성’


진정한 프랑스 기차 여행의 묘미는 남프랑스의 해안선을 따라 카르카손으로 가는 행로에서부터 빛을 발한다. 지중해의 따사로운 볕에 어여쁜 포도송이가 알알이 맺힌 나무로 가득 덮인 초록의 대지, 농부의 ‘예술성’이 담뿍 느껴지는 정리정돈 잘 된 색색의 밭 모양, 산들바람마저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정갈한 숲, 예쁜 마을의 오밀조밀함까지. 각각의 풍경들은 채도가 선명한 여러 폭의 유화를 이어붙인 것 같다. 어쩌면, 루브르나 오르쉐 박물관에서 만난 위대한 예술가를 칭송하기 이전에 그 풍경을 소중히 보듬고 가꿔 온 정원사, 포도밭의 파수꾼, 마을의 집들을 예쁘게 지어 올린 무명(無名)의 건축가에게 먼저 찬사를 보내는 것이 마땅한 것이 아닐까.

‘요정’, ‘난장이’, ‘마녀’의 성을 찾아

아무래도 <콩쥐, 팥쥐>, <장화, 홍련>, <홍길동> 등의 서민 동화가 친숙하고 ‘성(城)’보다는 ‘궁(宮)’의 이미지가 익숙한 여행자에게 카르카손의 ‘성’은 차라리 ‘현실’과는 요원한 ‘판타지’라고 설명하는 편이 낫다. 돌담을 높게 두르고 적색과 군청색의 고깔모자를 쓴 듯한 모양새의 카르카손 성곽을 첫 대면하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철옹성(鐵甕城)’이라는 실제의 쓰임새 이상의 낭만적 상상력이 무조건 반사처럼 몰려들 것이 분명했다. 그 상상의 도화지에 펼쳐질 신비로움의 아이콘은 무한대. ‘요정’, ‘마녀’, ‘기사’, ‘공주’, ‘왕과 왕비’, ‘마법사’, ‘유니콘’, ‘살아 움직이는 정령의 숲’, ‘난장이’…. 이 곳 카르카손에서는 누구나가 현실을 벗어 버린 ‘낭만주의자’요, ‘동화’ 속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기차를 타고 마치 시공간의 역류로 판타지의 세계로 회귀한 듯한 착각마저 들게 만드는 카르카손은 ‘중세의 유럽’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요새 도시’다. 과거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경에 근접해 피레네 산맥을 관통하는 지리적 요지였던 카르카손은 외세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적으로부터 나라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로마 시대 무렵부터 고지대에 튼튼한 성곽을 짓기 시작했다.

카르카손은 12세기에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 트랑카발 왕조는 높은 성의 언덕을 체계적으로 축성했고 ‘성 안의 또 다른 성’인 화려한 콤탈성(Chateau Comtal)을 지어 외부로부터 성을 보호했다. 하지만 이 웅대한 성벽에도 불구하고 카르카손은 물부족과 폭염, 전염병으로 1209년 알비겐저 전쟁 중, 십자군에 12일간 포위당한 끝에 무릎을 꿇었다. 승승장구하던 십자군이 이 도시를 약탈했지만 다행히 모조리 파괴하지는 않았다. 수십년 뒤 프랑스의 성왕(聖王) 루이 9세는 도시 주변에 두 번째 원형 성벽을 쌓게 함으로써 오늘날의 카르카손의 실루엣은 이 무렵 그 모양새를 갖춘 셈이다.

17세기 후반 무렵부터 카르카손이 피레네 산맥의 중심도시 역할을 잃어 가고 시테(La Cite)자체가 도시의 거대한 빈민촌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1850년부터 프랑스 정부차원에서 복원사업을 시작해 무려 60여 년에 걸친 부단한 노력 끝에 화려했던 옛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만나는 동화적 상상으로만 가능할 것 같은 이 아름다운 성곽 도시는 유명 건축가, 복원 전문가, 고고학자들이 원래 모습에 손상을 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상력을 발휘해 더욱 찬란하게 꽃 피워 낸 것이다.

세월의 향기를 느끼는 ‘감각’

성 문을 통해 시테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파른 고개를 오르면 동화, 마법, 상상 속의 온갖 아이콘을 가득 진열해 놓고 여행자를 유혹하는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에 먼저 시선을 빼앗긴다. 사이좋게 마주보고 있는 오래된 돌담의 집들, 꼬불꼬불 미로처럼 이어진 작은 골목들을 따라 걷다 성곽 안의 또 다른 성인 콤탈 성의 꼭대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카르카손에서는 ‘시간’이나 ‘세월’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비단 시각만이 아님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성의 구석구석,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코를 킁킁거리며 고성의 향기를, 시간의 향기를 들이마셔 볼 때. 나무 계단을 오르며 삐걱삐걱 오래된 소리를 낼 때에도 ‘세월’을 느낄 수 있다. 수천년 동안 마을을 지켜 왔을 돌을 하나하나 보듬어 본다. 어느새 머리 꼭대기에 오른 태양이 데워 놓은 돌이 세월의 온기를 받아 너무나도 따뜻하다. 

카르카손 가는 법

파리에서 정남쪽으로 기차를 타고 6시간 정도 달리면 카르카손에 도착할 수 있다. 파리의 리옹역(Lyon)이나 몽파르나스(Montparnasse)역에서 출발하며 직항편이 없기 때문에 몽펠리에(Montpellier), 나르본(Narbonne), 뚤루즈(Toulouse) 등에서 환승해야 한다. 예를들어 파리 리옹역에서 오전 11시20분 TGV6209편으로 카르카손으로 가려면 나르본으로 가는 열차 탑승 후, 나르본에서 카르카손으로 가는 열차인 RE76312편으로 환승해야 한다. 나르본에서 카르카손까지는 30~40분이 소요된다. 이럴 경우 환승 대기 시간까지 총 6시간22분이 걸리는 셈이다.

 



1 콤탈성에서 내려다본 전경, 성이 마을을 한가득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2 저녁 무렵의 라 시테. 밝게 불을 밝힌 성의 분위기가 환상적이다 3 그 성에 가면, 누구나가 동화 속 주인공이다 4, 5 난장이, 마녀, 요정 같은 신비로운 캐릭터가 가득한 기념품 가게 6, 8 라 시테의 골목골목, 거리거리는 고풍스럽고 아기자기한 탐험의 묘미가 가득하다 7 한 거리의 화가가 성곽을 화폭에 담고 있다 9 카르카손과 잘 어울리는 분위기의‘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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