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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정재형-글을 통해 이루는 또 하나의 소통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8.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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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정재형-글을 통해 이루는 또 하나의 소통

정재형은 유명하지만 낯설고, 어려우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내면에 많은 것을 품고 있으나 쉽게 드러내지 않는, 가수라기보다는 ‘뮤지션’이라는 타이틀이 더 근사한 아티스트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는 달콤한 노래로 널리 각인된 뒤 홀연히 파리 유학길에 오른 지 7년. 영화 음악작업과 몇 가지 공연 외에는 참으로 오랜 침묵을 깬 그가 두 가지 선물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파리에서의 흔적과 고민을 담은 3집 앨범과 에세이집은 정재형을 이해하는 각기 다른 키워드. 음악에 글을 더해 또 하나의 소통을 시도하는 그의 열정은 그래서 또 한번 마니아들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이방인이 아닌, 현지인으로 살며 느끼고 기록한 정재형의 파리, 그리고 여행.

글  박나리 기자   사진 photographer  김현성 
장소협찬 밀레니엄 서울힐튼 02-753-7788 www.hilton.co.kr 
취재협조 한국관광공사

 

정재형은 어렵지 않다

정재형을 만난다고 하니 다들 ‘어려운 사람일 것이다’라는 얘기를 하더라. 아, 요번에 더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어떤 분들은 나보고 까다롭다 어떻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아이돌처럼 할 순 없잖나.(웃음) 사실 지난 몇 개월간 인터뷰가 일상적인 게 되다 보니 매번 좋은 사람들만 만날 수는 있던 건 아니고. 서로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하다 보면 그때그때 충돌하는 서로의 에너지들이 있는 것 같긴 하다. 

<Paris Talk>는 어떤 책인가. 7년간의 파리 유학생활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사실 배경이 파리일 뿐 여행기로 불리길 바라진 않는다. 대부분의 서점에서도 여행 카테고리보다 에세이쪽에서 판매되고 있고.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동안 음악 이외의 매체를 통해 대중과 소통한 적이 없었으니까. 질문은 주로 ‘20대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책을 쓰게 된 계기’와 같은 것들? 그래도 “진짜 쓴 거냐?”며 의심하는 분들은 없더라.

아마 책 속의 ‘오타’ 때문이지 싶다. 한두 개 발견될 때마다 ‘정말 정재형이 쓴 게 맞구나!’ 하는 신뢰(?)가 들더라. (웃으며) 교정을 좀더 봤어야 했는데 워낙 시간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이번 달에 4쇄를 찍었는데, 그 판부터는 수정본인 걸로 안다.

지난 달 열린 콘서트에는 정말 가고 싶었다. 어때? 정말 좋았지?(그는 질문이 끝나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며 호응을 물었다) ‘백암아트홀’이라는 무대가 괜찮았다. 내 취향이 워낙 프라이빗한 공간을 좋아해 여행을 가도 부티크 호텔이나 레지던스 호텔에서 묵을 정도라 공연장도 ‘아방한’ 느낌의 장소가 필요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그 중간 극장이 없지 않나. 아주 우아하거나 영세한 곳이 대부분이고. 객석 어디에서나 무대가 잘 보이고 음향도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었던 공연에 가장 근접했던 장소였던 것 같다.

운전은 아직도 못 하나. ‘오타’ 이외에 정재형에 대한 두 번째 의외성이다. 대학 1학년 때와 재작년 면허증을 딸 기회가 있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단지 LA 같은 데를 못 가는 거지. 전혀 불편하진 않은데.(웃음) 나랑 같이 여행가는 친구들은 싫어하겠지만.

책에 ‘꽃과 나무’에 대한 언급이 많다. 실제로도 잘 키우나. 사실 많이 죽이긴 했다. 근데 7~8년 키우던 사과나무 분재는, 그건 정말 어느 순간 너무 아까워서 여행을 길게 갈 땐 친구 집에 맡기곤 했다. 근데 그 경우는 잘 자라는 경우고, 많은 부분에선 주인의 손을 안 타면 나무가 죽더라. 혼자 살다 보니 몇 가지 패턴이 생기게 되는데, 식물을 키우는 게 새로운 소일거리가 됐다. 거의 모든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데, 박완서씨의 <호미>라는 단편에서처럼 이름 모를 들꽃이라도 자기의 마음을 담다 보면 정말 그 마음처럼 되는 것 같다.

 

여행, 나를 흐르게 하는 힘

많은 이들이 파리는 ‘과거를 잘 유지하는 도시’라고 말한다. 7년간 바라본 파리. (잠시 생각하다가) 많은 파리지앙들은 “도시는 역사성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근데 사실 중요한 건 외관보다도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아닐까. 사실 외관으로만 보자면 성냥갑 같은 서울의 아파트들 참 멋 없지만, 그렇다고 역사를 고수하는 파리의 집들이 꼭 좋은 건 아니다. 난방조차 되지 않는 오래된 아파트는 하수도 한번 고장 나면 수리 자체가 불가한 상황이 되고. 결국 비교라는 것은 상대성을 이해하는 과정에서만 가능한 것 같다. 머무는 동안 파리의 장단점을 모두 보았다고나 할까.

그런 파리가 싫었던 적은. 유학한 지 3년쯤 됐을 땐가. 너무 지저분하고 불친절해서 짜증이 났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난 유학을 하러 간 거고. 내가 느끼는 백만 가지를 다 느껴야 되는데 그런 것들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사는 동안 즐겁게 느껴야만 한다는 자기 최면을 걸면서 그 과도기를 음악에 반영하기도 했고.

파리에 머물며 여행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게 되게 혼란스러웠다. 친구들이랑 세네갈에 갔을 때, 나만 입·출국 할 때 잡히고 해프닝이 많았다. 거기가 프랑스령이었는데, 내가 불어를 하니까 도리어 색안경을 끼고 보더라. 인종적인 차별들, 사회적으로 불법이민자가 문제가 되는 그곳에서 만일 내가 영어를 구사했다면 완벽한 여행자로 바라봤을 텐데 불어를 잘 하니까 경계하더라. 그때 같지만 다르다는 것, 그리고 다르지만 같다는 것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겨울날의 파리를 좋아하는지. 유럽에서는 겨울을 지내는 법이라는 게 있다. 운동도 더 많이 해야 하고, 커피도 자주 마셔야 되고, 비와도 집에만 있진 않아야 하고. 겨울이 무척 길다 보니 일찍 눈을 떠야 한다. 자칫하다 눈 뜨고 감으려면 온통 어둠뿐이니까. 비가 자주 오다 보니 옷도 좀 달라야 하고.

정재형식 여행법이 있다면. 늘 서울에 있듯, 자연스러워지려고 노력한다. 뉴욕에 갔을 땐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기보다는 동네를 누비며 여유를 가졌던 것 같고. 아! 꼭 라디오를 튼다. 현지 음악들을 통해 교감하는 경우가 많다. 뉴욕에서 택시를 탔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듣고 있었는데, 너무나 잘 어울리더라. 뉴욕이라는 도시가 훨씬 운치 있어지고 여유로워지고.

국내 여행은. 한국에 오면 지방에 자주 가려고 한다. 책에도 소개됐지만, 가수 이적씨와 강진에 함께 내려간 적도 있고. 강진도, 부산도… 국내 여행은 참 좋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금만 더 조용했으면. 관광지는 어딜 가나 소란스러워서. 배나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 고요해지고 싶은 순간이 있지 않나.

파리를 여행하는 데 있어 조언이 있다면. 너무 폐쇄적이지 않았으면 한다. 다른 나라에 있다 보면 가끔 정서와 문화가 달라 에티켓이 충돌하는 모습들을 봤는데. 비판적인 게 멋있는 건 아니니까. 여행자에게는 비교하려고 하기보다는 흡수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러려면 책을 많이 읽는 게 중요한 것 같고. 내가 중요한 만큼 타인이 중요하다는 것도 아는 게 선행되었으면.

여행이란 정재형에서 무엇인가. (그는 이 질문에 꽤나 한참을 생각했다) 가는 것. 흘러가는 것. 흘러가되, 잘 흘러가게 하는 것. 결국 내가 일상으로 돌아와도 일상조차 잘 흘러가게 하는 것. 여행은 일상에 대한 다른 시각이 필요할 때쯤 그것을 얻게 하는 자극제니까. 그것이 좋든 나쁘든.

 

다시 거울 앞에 서게 될

16개월이라는 긴 집필기간 동안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나. 그게 참, 1집을 낼 때의 감정과 비슷했다. 처음 앨범을 낼 때 왠지 잘 몰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왠지 모를 자신감과 어슴프레한 감정들이 자꾸만 결과물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다음 책을 낼 때 기분이 어떨지 너무 궁금하다.

하얀 모니터 앞의 두려움. 그냥 막 쓴다, 초벌원고를. 가사도 모니터로 잘 쓰는데, 노트북이 여러 가지로 중요한 것 같다. 50세가 되기 전에 소설을 쓰고 싶다. 그러면 어떨까 하는 바람. 자신은 없지만, 자꾸 글을 쓰다 보니 소설에도 욕심이 나더라. 앨범 사이 사이 시간이 날 때마다 열심히 해보려고.

책을 읽는 내내 프랑스 작가의 번역소설을 대한 느낌이었다. 그건 만연체에 대한 완곡한 표현인가? (웃음) 처음엔 더 심했다. A4용지 전체가 한 문장이었으니까. 그때는 불어를 배우고 있을 때고, 어떻게 보면 말하는 거, 읽는 거 자체가 영향을 받았을 때였다. 원고를 받은 출판사에서 문장을 많이 끊고 다듬어 주면서 뒤로 갈수록 글쓰기에 틀을 잡게 된 듯. 근데 간결체든 만연체든 그런 건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음 작품 구상은. 아직 결정된 건 없지만 조금 더 기획적인 책을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 뭐 ‘가든(Garden)’에 대한 책이 될 수도 있고.

파리는 언제 다시 들어가나. 7월 말쯤. 진행 중인 영화 음악 작업이 있어서. 가제가 <우리 집에 왜 왔니>라고 강혜정씨가 주연인 영화다. 10월 초까지 가평 자라재즈페스티벌을 포함한 국내 공연 3~4개가 예정되어 있다. 그러고 다시 연말에는 단독 콘서트. 올해 말까지 계속 타이트하게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20대와 30대를 비교한다면. 인생에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없다. 여태까지 해왔던 것들, 참 열심히 했다고 생각을 하고 내가 가려고 했던 길이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달랐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 불행함을 백 번 느끼면 한 번 정도 행복한 것 같은데… (웃음) 그럼 지금의 30대도 충분히 행복한 거 아닌지.

음악인으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하나. 자문하기엔 내 나이가 아직…. 정말 장르에 상관  없이 어떤 사람에 대한 힘보다 내가 풀어내는 음악의 힘이 더 컸으면 하는 꿈이 있다. 그래서 아직도 갈 길이 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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