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테마별로 둘러본 캐나다 동부 여행기 ②오타와 킹스턴, 나이아가라, Innuit 이누이트"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9.12.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테마별로 둘러본 캐나다 동부 여행기
Explore Taste - full Canada




취재협조  주한 캐나다관광청 www.canada.travel 



오타와 킹스턴 
Rideau Canal


Rideau Canal In Ontario
반짝반짝 빛나는 물 그리고 리도의 시작과 끝
 

온타리오주의 오타와와 킹스턴은 리도(Rideau)운하로 맺어진 특별한 관계다. 리도의 처음과 끝은 오타와와 킹스턴의 중심부에서 각 도시가 지닌 가장 유별난 사연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생태보존지역으로 지정된 리도에는 이제 온갖 물자를 나르던 수송선 대신 반짝반짝 빛나는 온타리오의 물길만이 오가고 있다.  

글·사진 도선미 기자

바이타운, 오타와가 오타와가 되기까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명성은 세계 최강의 함선에 기댄 바가 크다. 빠르고 단단한 영국 함선의 태생은 다름아닌 캐나다. 유럽에서 자란 나무들보다 키가 한참은 큰 캐나다 나무로는 이음새 없이 튼튼한 돛이나 널판을 만들 수 있었고, 그렇게 완성된 함선은 19노트까지 속력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나무들을 오랜 세월 실어 나른 물길이 바로 리도(Rideau)다. 리도운하는 원래 영미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미국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건설한 것인데, 1826년부터 6년에 걸쳐 202km가 완성됐다. 오타와의 리도운하는 강과 운하의 지반 높이가 달라 계단식으로 만들어졌는데, 수문을 닫아서 수위를 높인 후 배를 들이미는 방식으로 높은 곳까지 올려 보낸다. 총 24개 수문 중 첫 번째 수문이 있는 바이타운 (ByTown)박물관 앞에서는 종종 배가 급경사를 거슬러 오르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바이타운은 오타와의 옛 이름이었다. 고작 20년 남짓 사용됐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이 지명은 해군대령이자 엔지니어였던 한 남자의 실명에서 따왔다. 존 바이(John By). 그는 4,000여 명의 인부를 동원해 운하를 만들었고, 처음으로 마을(By Town)을 세웠는데, 그게 오타와의 효시가 됐다. 파머스 마켓(Famer’s Market)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현재의 바이워드마켓 지역이 바이타운에서 처음으로 생긴 마을이라고 한다.   

오타와가 바이타운이 아닌 오타와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855년부터다. 운하 건설 후 갈 곳이 없어진 노동자들은 벌목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기존에 벌목을 하던 프렌치 캐내디안들과 충돌해 폭동이 벌어졌고, 그후로 바이타운은 밤에 돌아다니기 무서울 정도로 살벌한 도시의 대명사가 됐다. 결국 바이타운은 위험한 이미지를 벗고 새롭게 설계되는 도시에 맞춰 ‘무역’을 뜻하는 오타와로 대체됐다. 그로부터 몇 년 뒤인 1958년에는 영국령 캐나다 수도로 낙점돼 ‘모범생’으로 탈바꿈했다.  

바이타운 박물관은 운하 건설 당시의 총사령부로 자재와 예산 등을 보관했던 곳이다. 현재는 1층에 시청각실, 2층은 바이타운 시대관, 3층을 오타와관으로 구성해 박물관으로 쓴다. 2층 창으로는 운하 건너 주춧돌만 남은 존 바이의 집터도 보인다. 



1 리도운하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킹스턴 헨리 요새. 할로윈 때 가면 더욱 재미있다 2 오타와에서는 리도운하를 통해 물길을 거슬러 배를 수송한다 3, 4 바이타운 박물관에서는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의 탄생 과정을 엿볼 수 있다 5 캐나다 각 도시마다 있는 파머스 마켓. 오타와에는 바이워드마켓이 가장 유명하다. 바이워드는 오타와의 효시가 된 마을 이름이다

킹스턴 포트 헨리, ‘나는 싸우고 싶다’  

리도의 저편, 킹스턴에는 역시 영미전쟁이 한창이던 때 세워진 건물인 ‘헨리 요새(Fort Henry)’가  있다. 카타라키강을 바라보며 대포를 겨누고 있는 요새는 사실 여지껏 한번도 그 대포를 쏘아올리지 못했다. 미군을 무찌르기 위해 만들었던 6개의 포탑과, 함포 사격에도 끄덕없도록 두 배로 두껍게 만든 성벽도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하다. 영국의 우려와는 달리 미국이 끝내 공격해 오지 않은 탓이다.   

스태프의 안내를 따라 요새 안으로 들어가면 당시 병사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일반 군인들은 16명이서 방 하나를 썼는데 침실 내에서 밥을 먹고 씻고 잠을 자는 모든 생활이 이뤄졌다. 식사는 빵과 감자, 질 낮은 고기로 매끼마다 같았다. 이렇게 비위생적이고 비영양적인 환경 속에서 죽어 가는 포트 헨리 병사들이 같은 기간 전쟁으로 죽은 병사들보다 10배는 더 많았다고 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혜택은 병사 내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다는 점이었다. 

포트 헨리의 병사들은 아마도 미군을 애타게 기다렸을 것이다. 탈영을 방지하기 위해 취침시에는 밖에서 문이 잠겼고, 설사 탈영에 성공하더라도 제3국은 없었다. 유일한 국경이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창살 없는 감옥과 고된 훈련으로부터 나가는 방법은 전쟁이 유일했다.

오랜 세월 요새에 갇혀 지내다 결국은 무전(無戰)노장이 되어 버린 헨리의 병사들. 마침 할로윈 기간에 방문해 단장(?)된 포트헨리의 내부를 보니 그런 음산함이 훨씬 배가됐다. 각 전시실마다 갖가지 포즈와 표정으로 놀래켜 주는 해골과 시체들, 정육점의 형광 피빛 조명과 기괴한 효과음까지, 최고로 실감나는 할로윈을 헨리 요새에서 보냈다.          



오타와에서 걷는다면 출세가도를!

석세스로드(Success Road)는 앰버시로드(Embassy Road)라고도 부른다.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에는 120개의 대사관이 있는데 이중 미국대사관을 비롯해 호화로운 대사관 20여 채가 바로 이 거리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모자이크 문화의 나라답게 각 나라의 건축 양식을 뽐내는 이 거리를 걷다 보면 알 수 없는 상승감으로 입신양명의 기운을 얻어가는 듯하다. 석세스로드를 사이에 두고는 거미 조형물로 유명한 캐나다국립박물관과 국회의사당, 도서관, 1912년 건축된 샤또 로리에 호텔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총독관저도 나오는데 운이 좋으면 근위병 행진을 볼 수 있다고.  

드레싱의 명가, 사우전드 아일랜드

1,782개의 섬이 군집해 있다는 사우전드 아일랜드(Thousand Island)는 킹스턴에 가면 꼭 둘러봐야 할 명소다. ‘천섬’ 드레싱은 미국 호텔계의 거부인 조지 발트라는 사람이 부인과 함께 이 지역에서 요트를 타며 먹었던 드레싱이라고 하는데, 유래는 이렇다. 천섬 부근에 살던 한 어부의 부인 소피아는 음식 솜씨로 입소문이 자자했다. 하루는 그 소문을 타고 메이 아일린이라는 배우 겸 음식칼럼니스트가 그녀를 찾아왔다. 아일린은 소피아의 드레싱이 특별함을 눈치채고 그 비법을 알아내 이를 뉴욕의 월도르프 아스토리아(The Waldorf Astoria)호텔 셰프에게 전수해 줬다. 이 드레싱이 바로 ‘사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의 전신이고 조지 발트는 이 호텔의 지배인이었다. 하지만 알려진 바와 달리 사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과 ‘발트성’은 별개의 이야기다. 조지 발트는 11살 연하의 부인 루이스와 천섬 여행을 왔다가 경치에 반해, 섬을 하나 사서 아내를 위한 별장을 짓기 시작했는데 바로 하트섬에 있는 현재의 발트성이다. 하지만 4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루이스는 완공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고 한다.
킹스턴에서 출발하는 천섬 크루즈는 90분 코스, 3시간 코스가 있는데 3시간짜리 크루즈를 타야 하우섬, 월프섬 등 본격적인 천섬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 발트성과 자잘한 섬들까지 보고싶다면 킹스턴에서 약 20분 떨어진 가나노케에서 3시간 크루즈를 타야 한다.   

 


나이아가라 
Legend

 Legend of Niagara
모르고 지나쳤던 나이아가라 이야기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폭포수의 단순 폭격? 남성적인 웅장함? 그건 나이아가라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생각보다 훨씬 섬세한 이야기와 여유있게 두고 볼 만한 요소들이 솔찬히 눈에 띄는 나이아가라. 이제는 좀 ‘아이 맥스’하게 접근하는 것이 어떨까.   

글·사진 도선미 기자




1 나이아가라는 3개의 폭포로 이뤄졌다 2 나이아가라에 서린 전설을 알고 싶다면 스카이론타워와 나란히 선 아이맥스 영화관으로 가자. 한국어 해설을 들을 수 있다 3 나이아가라 온더 레이크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 간신히 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지만 그만큼 로맨틱하다. 조용한 온더 레이크 산책 중 쉬어가기 좋다 4 나이아가라는 달콤한 아이스와인으로 유명하다


무지개 여신의 유혹 

원주민들의 언어로 ‘천둥소리를 내는 물기둥’이라는 뜻인 나이아가라는 그 수량이 ‘1분에 욕조 100만 개를 채울 수 있을 정도’라고 묘사된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나이아가라는 말굽 모양을 한 캐나다 폭포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작은 아메리카 폭포와 앙증맞은 면사포 모양의 신부폭포가 맞붙어 있다. 나이아가라를 복수형인 폴스(Falls)로 부르는 이유다.

사람마다 나이아가라에 매혹되는 방식은 다양하다. 관광객들은 주로 ‘안개의 처녀호(Maid of the Mist)’를 타고 캐나다 폭포의 바로 밑에까지 가서 장대비처럼 굵게 튀는 폭포수를 맞거나, 와르르 쏟아지는 폭포수를 코앞에서 볼 수 있는 ‘폭포 뒷면 여행(Journey behind the Falls)’을 즐긴다. 어떤 이들은 단지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폭포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 폭포 상공을 외줄타기로 건넌 프랑스인, 오크통에 몸을 싣고 폭포에서 뛰어내린 할머니 등 200여 년간 15명이 ‘무모한 도전자(Dare Devil)’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 중 5명은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몇몇은 과속 티켓의 최고 벌금에 해당하는 1만달러를 떠안기도 했다.  

전설에 의하면 이런 홀림은 바로 ‘무지개 여신’의 마수(?) 때문이다. 물안개가 그칠 날 없는 폭포 근처에서는 일곱 빛깔이 선명한 무지개(심지어는 쌍무지개)를 자주 볼 수 있다. 원주민들에 의하면 무지개는 여신 ‘릴레와라(Lelewala)’의 현현이라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먼 옛날, 폭포 근처에는 릴레와라라는 아름다운 처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추장의 명에 따라 못생기고 나이든 현자에게 시집을 가게 됐다. 하지만 그를 사랑할 수 없었던 릴레와라는 어느날 이상한 환영에 이끌려 카누를 타고 탈출했고, 결국 폭포수에 휩쓸려 사라졌다. 사람들은 폭포 밑에 살고 있던 천둥신이 그녀를 데려갔고, 그녀 역시 폭포의 신령이 됐다고 믿고 있다. 아마도 릴레와라는 나이아가라의 천둥같은 물소리에 이끌린 최초의 인간이 아니었을까.  
 
나이아가라와 관련된 자세한 전설과 탐험의 역사는 스카이론 타워 옆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30분 가량의 영화로 만날 수 있다. 매시 정각마다 상영되며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도 제공된다. 

나이아가라의 두 가지 매력 ‘다이내믹’ 혹은 ‘릴랙스’  

캐나다, 미국 폭포 주변만 어슬렁거리다 오는 나이아가라 투어는 이제 구식이다. 행동 반경을 조금 더 넓히면 다이내믹하거나 혹은 여유로운 나이아가라를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나이아가라의 세찬 폭포수와 어울릴 만한 액티비티를 찾는 사람에겐 헬리콥터와 제트보트를 추천한다. 나이아가라 헬리콥터는 나이아가라 월풀 쪽 헬기장에서 출발해 온타리오 호수와 미국폭포, 캐나다폭포에 이르기까지 나이아가라강에서 가장 스릴 넘치는 급류 구간을 약 10분간 돌아본다. 온갖 파랑색을 총망라한 듯 형형한 물색은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고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다. 매일 오전 9시부터 해지기 전까지 운항하는데 5인승 좌석이 모두 윈도우 시트이고, 조종사가 현란한 실력으로 다양한 차창 앵글을 선보인다. 또 한국어로 된 헤드셋 방송을 들을 수 있어 나이아가라의 형성과 지형에 대해서도 더욱 잘 알 수 있다. www.niagarahelicopters. com 

제트보트에는 두 가지 선택, 강물을 흠뻑 뒤집어 쓸 각오를 해야 하는  웨트제트(Wet Jet)과 개폐형 지붕으로 물세례를 막아 주는 제트돔(Jet Dome)이 있다. 여름에는  웨트제트가, 겨울에는 제트돔이 제격. 포트 나이아가라 부근에서 출발해 급류를 거슬러, 폭포수에 의해 동그랗게 침식된 월풀(whirlpool)까지 왕복하는데, 압권은 죽음의 소용돌이(Devils Hole)에서의 360도 회전이다. 마치 말이 놀라 날뛰는 듯한데 아니나 다를까. 죽음의 소용돌이는 탱크나 헬리콥터의 엔진 출력에 맞먹는 1,500마력의 물살을 지녔다고 한다. www.whirlpooljet.com  

나이아가라 폴스에서 파크웨이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나이아가라 온더 레이크(Niagara on the Lake)’ 지역이다. 영국풍 건물과 햇살 아래 드넓게 펼쳐진 포도밭이 폭포소리와 안개,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폴스 지역과는 대조적으로 한갓지다. 그래서 온더 레이크에서는 자전거나 관광마차를 타며 흐르는 시간을 즐기는 여행이 어울린다. 와인에 관심이 많다면 더욱 즐겁다. 널린 포도밭에서 짐작했을 테지만 이 지역에는 40여 곳이 넘는 와이너리가 있고, 특히 아이스와인으로 유명하다. 이니스킬린은 그중 가장 유명한 와이너리인데 여기서 만든 아이스와인이 세계와인박람회 대상을 타기도 했고,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공식 와이너리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이스와인은 독일의 한 게으른 농부가 창안해냈다고 한다. 수확 시기를 놓쳐 겨울까지 포도를 방치했는데 그걸로 와인을 만들고 보니 예상 외로 달콤하고 독특한 맛이 나더라는 것. 아이스와인은 기온이 영하 8도까지 내려갔을 때 손으로 따야 하고, 포도 종류도 정해져 있는데다, 겨울 전에 새들이 다 따 먹어 없어지기도 다반사라 생산이 쉽지 않다. 포도나무 한 그루에 보통 와인 12병이 생산되는 데 반해 아이스와인은 1병도 얻어내기 어려운 이유다.아이스와인은 식사에 곁들이기보다 식사 후에 입 안에 남은 맛을 정리하는 디저트 음료로 마시는 것이 보통이다. 그 달콤하고 향긋한 맛을 어떤 사람들은 ‘치명적’이라고 표현한다. 카사노바 역시 아이스와인을 즐겼다고 하는데, 영화 <카사노바>의 포스터에도 장미 한 송이와 함께 놓인 아이스와인 한 병이 그치명적인 유혹을 말하고 있다.


Innuit

 Innuit In Canada
이누이트에 대한 짤막한 이해

#적막하고 광활한 북미 대륙에 첫발을 디딘 것은 사람이 아닌 짐승, 엘크 사슴이었다. 우묵한 눈을 가진 이 사슴들은 시베리아에서 베링 해협을 건너 3만년 전 캐나다에 다다랐다. 혼자만 온 것이 아니었다. 사슴 고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 뒤따랐다.  사슴과 그 포식자인 이누이트의 선조들은 사슴의 이름을 따 명명된 엘크 반도에서 캐나다의 처음을 열었다. 

이누이트를 에스키모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지만 그들은 ‘날고기를 먹는 사람’을 뜻하는, 은일한 비하가 담긴 이 말을 아주 싫어한다. 스스로 칭하는 ‘이누이트’는 처음으로 이 땅에 자리잡은 사람(First Nation People), 원주민을 의미한다. 인도에서 온 사람을 뜻하는 인디언(Indian)으로 부르기도 합당치 않으니, 캐나다 원주민 혹은 이누이트라고 부르는 게 맞다. 



메인 홀이 카누 모양으로 된 캐나다문명박물관. 
이누이트로부터 시작한 캐나다 문명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캐나다에서 이누이트 문화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작명 실력 때문이다. 영어라고 생각했던 캐나다의 지명들 중 다수는 이누이트 말로, 하나하나 주석을 요한다. 나이아가라는 천둥소리를 내는 물기둥, 온타리오는 반짝반짝 빛나는 물, 토론토는 사람이 모이는 곳, 퀘벡은 강물이 좁아지는 곳이란 뜻이다. 이누이트어는 글보다 말이 발전해 명료하기보다 비유적, 묘사적인 것이 특징이다.
그 솔직하고 즉흥적인 작명법과 낯설지만 그럴싸한 어감은 여행자의 마음을 흔들 만하다.

#이제는 한강에서도 한 척 두 척 눈에 띌 정도로 익숙해진 카누는 사실 고대 원주민들의 산물이다. 특히 이누이트들에 의해 개척된 캐나다에서 카누잉은 매우 각광받고 있다. 오타와에 있는 캐나다문명박물관에 가면 1층의 그랜드홀 천장이 길쭉한 카누 형상으로, 기둥은 카누의 노처럼 생긴 것을 볼 수 있다.
이 박물관은 유럽인들이 정착하기 전 긴 세월 동안 캐나다를 지배했던 이누이트의 역사를 꼼꼼히 보여주고 있어 놀랍다. 과거에는 이누이트를 비롯한 원주민 학살과 차별이 공공연히 자행됐지만 현재의 캐나다는 달라지고 있다. 문명박물관의 메인 홀에는 온갖 토템폴(Totem Poll)이 전시돼 마치 ‘캐나다의 뿌리는 이누이트’라는 것을 고분고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카누 말고도 우리 일상에 슬며시 들어온 원주민 문화로는 ‘드림캐처(Dream Catcher)’를 들 수 있다. 에스닉 아이템이라고 해서 젊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귀걸이들 중에는 이를 응용한 것이 많다. 드림캐처는 북미, 남미를 막론하고 원주민들의 공통 문화인데, 여기서 꿈이란 나이트메어(Nightmare), 즉 악몽이다. 

드림캐처는 이누이트들의 지극한 모성애를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이누이트 여성들은 자신이 유일하게 아이를 지키지 못하는 순간은 바로 아이가 꿈을 꿀 때라고 여긴다. 그녀들은 어머니인 여성이 죽으면 거미가 되고, 아이들이 꿈을 꿀 때 머리 위에 거미줄을 쳐 나쁜 꿈을 걸러 준다고 믿는다. 잠자는 아이의 머리맡에 걸어두는 드림캐처는 이런 믿음을 형상화한 것이다. 

기자가 도전해 본 바로는 실을 별모양으로 수차례 겹쳐 촘촘한 거미줄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나름의 손재주를 자부해 왔지만 원주민 솜씨 따라잡기는 잠자는 아이의 나쁜 꿈을 때려 잡기만큼 어려운 모양이다.

#원주민들의 손맵시에 감탄한 사람들은 이누이트 박물관이나 상점을 찾기 마련이다. 퀘벡시티의 아트 이누이트(Galerie Art  Inuit/ www.sculpture.artinuit.ca/artinuit)는 1974년부터 운영돼 온 것으로 유명하고, 오타와에는 앞서 설명한 캐나다국립박물관이, 토론토에는 이누이트관이 별도로 만들어진 온타리오 아트 갤러리(Art Gallary of Ontario/ www.ago.net)가 있다. 전시보다 구매할 만한 기념품을 찾는다면 퀘벡주 몽 트램블랑의 갤러리 수타나(Galerie Soutana/ soutana@cgocabel.ca)를 추천한다. 이 작은 가게는 트램블랑 산으로 가는 오르막길 중간에 자리하는데 주인인 데니스 씨의 친동생이 북미와 과테말라, 뉴멕시코, 콜롬비아 등 미주 전역에서 공수한 순수 수공예품만 판매하고 있다. 알파카와 라마로 만든 모자와 스웨터, 판초에서부터 오카리나, 무소 뼈로 만든 칼집과 뿔 장식, 드림캐처와 스피릿스톤(Spirit Stone) 등 각종 소품과 이누이트 출신 작가인 에드워드 커티스(Edward Curtis)의 사진, 막신 노엘(Maxine Noel)의 그림도 만날 수 있다.

# 툰트라의 등대, 이뉴슉(Inukshuk, Inukok)에는 이누이트들의 삶이 애잔하게 녹아 있다. 지금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앰블럼이 되어 세계인의 환심을 사고 있지만, 수목 한계선 이북의 허허벌판에 세워진 이눅슈크은 길게 뻗은 양팔로 여행자에게 방향을 가르쳐 주는 등대 역할을, 아니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녀 왔다. 얼마 전 국내에 출간된 캐나다 작가 팔리 모왓의 저서 <잊혀진 미래(People of Deer)>에는 이눅슈크, 이누코크에 대한 더할 나위없는 고찰이 있어 소개한다.   



1 오타와 빅토리아 섬에는 작은 원주민 민속촌이 형성돼 있다. 이곳에서는 푸른 눈을 한 이누이트, 메티즈들을 만날 수 있다 2 갤러리 수타나의 친절한 데니스씨. 그처럼 훌륭하게 이누이트 예술의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백인은 흔치 않다 3 토템폴에는 인간의 몸과 동물의 형상이 익살스럽게 얽혀 있다 4 허허로운 툰드라에서 이눅슈크은 여행자의 수호자 역할을 해왔다



 “이 형태 없는 돌무더기들이 우리의 거대한 박물관에 있는 차가운 눈을 가진 조각상보다 더 현실적이고 생생하다. 그 까닭은 어떤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거나, 조각가의 손에 숨겨진 열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들을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측량할 수 없는 외로움에 대항하여 살아있는 사람을 지켜주는 수호자의 역할로 창조됐기 때문에 이누코크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낯선 땅을 불안해하며 탐험하다가 이 길로 처음 들어선 사람이, 자신 앞에 펼쳐져 있는 미지의 땅으로 모험하기 전에 언덕 위에 올라 멈춰 서서 이누코크 모양을 세웠다. 그렇게 하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공간 속으로 나아가면서도 점점 작아지는 사람 모양의 석상을 알아볼 수 있는 한, 익숙한 세상과의 희미한 연결고리나마 가질 수 있게 된다. 자기 뒤로 석상이 사라지기 전에, 여행자는 멈춰서 다른 이누코크를 세우는데, 여행이 끝나 돌아올 때까지, 혹은 자신을 현실과 삶에 묶어 줄 석상이 더는 필요 없게 될 때까지, 그렇게 하나하나 석상을 세워 나간다. 대부분의 백인들이 생각하듯이 이누코크는 단순한 경계표인 길잡이가 아니다. 그들은 사람의 유한한 마음을 미치게 만들 정도로 무한한 공간이 불러일으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협에 덤덤히 저항했고, 지금도 저항하고 있는 수호자들이다.(pp.307~308)”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