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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나일은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① South Nile Abu Simbel & Aswan 아부심벨 아스완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1.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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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숭배하는 룩소르 신전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 희미한 달빛으로 빛난다

EGYPT
나일은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

이집트는 지금 격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에 국한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 7,000년 동안 나일강은 이집트, 페르시아, 헬레니즘, 로마, 오스만 제국에 이르는 문명들을 퍼 나르며 세차게 흘러왔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 흘러갈 수 없듯이 이집트의 웅덩이가 넘치고 있다. 그래도 강은 계속 흐른다. 이 글의 순서도 나일강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실제 여행의 순서와도 다르고, 역사의 통시성도 담고 있지 않다. 다만 나일강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아프리카 대륙의 북동부를 가르며 6,671km를 달려 지중해로 스며들었듯이 조용히 흘러 보았을 뿐이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이집트관광청 www.myegypt.or.kr

*카이로의 명물인 이집트박물관과 인근 기자지역 피라미드 등 이집트 주요 관광지는 2월20일부터 정상 운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영국 외무성을 시작으로 3월 초에는 독일, 스웨덴,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도 이집트 전역에 대한 여행 경고를 완화했습니다. 3월22일 현재, 한국 기준으로 이집트는 여행경보 2단계인 여행자제 국가에 해당합니다. 여행자제 단계는 여행 예정자에게 여행 필요성을 신중히 검토하길 당부하는 단계입니다.

South Nile Abu Simbel & Aswan

Abu Simbel  아부심벨

나일강이 위대한 이유를 알았다. 빼어난 아름다움이나 신비한 매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유일성’이었다. 나일은 이집트 사막을 흐르는 단 하나의 강이다. 그래서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다. 무수한 강과 산, 그리고 바다와 호수를 누리며 살아왔기에 ‘단 하나’의 절박함을 이집트에 가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나일은 어머니라고 불릴 자격이 충분했다.

북회귀선 아래에서

에티오피아 아비시니아 고원에서 발원한 청나일과 케냐 빅토리아호에서 시작한 백나일은 수단에서 하나의 강줄기로 만난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 이집트로 들어오자마자 넓은 호수를 이룬다. 이집트 남단의 인공호수 ‘나세르(Lake Nasser)’다. 사람들은 북회귀선까지 넘으며 이집트 최남단의 이 호수를 찾아온다.  수직으로 내리쬐는 태양을 경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부심벨(Abu Simbel)이 있기 때문이다.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이집트 경찰의 호위 속에 사막을 3시간 동안 내쳐 달려야 했다. 오전과 오후, 하루 두 차례만 관광객을 모아서 이동해야 할 정도로 치안 상태가 불안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몇 번의 신기루가 지나갔고 가끔 베두인 여인들이 까만 점처럼 스쳐갔다. 

아부심벨(Abu Simbel)이야말로 신기루처럼 보였다. 그 황량한 곳에 그토록 정교하고 거대한 신전과 석상의 존재라니. 보면서도 믿기 어려웠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아부심벨이 완전 해체, 이전된 것이라는 점이다. 1963년 아스완 하이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나세르호의 수위가 60m 정도 상승하자 아부심벨은 수몰 위기에 처했다. 거대한 바위산 사면에 세워졌던 신전은 1,000개의 조각으로 나뉘어져 지금의 자리(위로 65m, 내륙으로 180m)로 옮겨졌다. 한 조각에 30톤이 넘는 사상 최대의 퍼즐 맞추기를 위해 50여 나라가 자금을 모았고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좀더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아부심벨의 앞면을 꽉 채우고 서 있는 4개의 석상은 람세스 2세(제19왕조)의 모습으로 높이가 22m나 된다. 이 신전이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물어볼 필요조차 없다. 람세스 2세는 가장 안쪽의 지성소에 라 하라크티신(태양의 신), 아몬신(땅의 생식 본능을 지배하는 신), 프타하신(어둠의 신)과 함께 자신을 신격화한 상을 세웠다. 항상 어둠 속에 있지만 1년에 두 번(2월22일경, 10월22일경), 햇빛이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어둠의 신을 제외한 나머지 석상을 비추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내부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서 가끔 실랑이가 벌어지므로 마음을 비우고 감상에 열중하는 편이 좋다. 람세스 2세는 대신전에서 90m 정도 떨어진 곳에 사랑하는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해 하토르 여신(사랑과 음악과 춤의 여신)을 모시는 소신전도 세웠다. 소신전 역시 수몰을 피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앉아 퍼즐의 끼워 맞춘 자리들이 선명했다. 두 신전이 이렇게 외딴 곳에 지어진 이유는 누비안(이집트 남부와 수단 북부 지역에 거주하는 비아랍계 무슬림 부족)에게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신전 근처에는 군인들이 총을 들고 호수 너머의 국경선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다시 도시로 돌아갈 길이 막막했지만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신발을 벗고 뜨거운 모래 위에 잠시 주저앉았다. 사막의 모래는 뜨거웠다. 아부심벨이 체온으로 느껴졌다. 다행히 신기루는 아니었다. 


1 아부심벨 대신전과 소신전은 수백개의 조각으로 나눠졌다가 다시 합쳐지는 과정을 견딘 끝에 수몰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2 람세스 2세는 누비안에게 힘을 과시하기 위해 아부심벨을 세웠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누비안들이 아부심벨의 출입문을 지키며 사진 촬영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3, 4 전쟁과 종교 의식 등을 기록한 내부의 벽화들은 3,200년 전에 그려진 것이다

Aswan 아스완  

나세르 호수를 떠나 다시 나일을 따라잡은 지점은 아스완 하이댐이었다. 1902년 영국인들이 세웠던 구 아스완댐에서 6km 떨어진 곳에 이집트 근대화의 상징인 아스완 하이댐이 완공된 것은 1970년이었다. 높이가 111m나 되는 하이댐의 완공 이후 이집트는 당시 이집트 전기의 50%를 생산하고 나일강의 홍수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득’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나일강의 범람은 비옥한 흙을 쌓아주어 손쉬운 농사를 가능하게 했었다. 범람이 끝나는 10월경에 그저 씨를 뿌려두는 것으로 곡식이 잘 자랐기 때문이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의 범람이 없으면 가뭄, 범람이 심하면 홍수였다. 이집트의 사막은 물만 공급하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흙이라는 말을 가이드는 여러 번 반복했었다. 실제로 나일강 주변에는 푸른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댐의 건설로 그 범람을 통제하게 되었으나 이제 그 옥토를 기대할 수 없게 되어 비료를 사용한다고 했다.

절정의 아름다움

하이댐과 아스완댐을 지나 다시 흐르는 나일은 아스완에 이르러 자신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멋진 다도해의 풍경은 놀라운 수려함이다. 부유하는 듯한 크고 작은 화강암 섬과 바위, 흰 돛을 달고 그 사이를 항해하는 펠루카의 풍경은 가히 매혹적이다. 하류로 이동할 때는 강물을 따라 흐르기만 하면 되고 상류로 올라갈 때는 항상 남쪽으로 부는 바람을 타기만 하면 된다. 

강을 타고 온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아프리카 내륙에서 모아진 금, 상아, 공예용 경석, 가축과 가죽 등이 집결했던 장소가 바로 아스완(고대 이집트어로 시장이란 뜻)이었다. 아스완의 작은 섬들은 중요한 관광지기도 하다. 가장 큰(길이 2km, 폭 500m) 엘레판티네섬은 상아 거래가 활발했던 곳으로 여러 신전 유적과 나일강의 수위를 측정하던 ‘나일로미터’가 남아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아길라가섬은 필레 신전(이시스 신전)이 있는 곳이다. BC 3~4세기경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 필레섬에 세워졌던 이시스 신전 역시 수몰을 피해 이 섬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른 신전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훼손된 벽화들과 파괴된 빈 공간의 연속이지만 필레 신전은 주변의 경치와 어우러져 한층 아름다운 신전이다. 아스완 시내에서 7km 남쪽에 위치한 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누비안들이 운행하는 배를 타야 한다. 벽화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한 누비안들은 신전과 마찬가지로 댐 건설로 집을 잃고 인근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렇게 조성된 누비안 마을도 아스완에서는 중요한 관광코스 중 하나다.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편히 누워서 인생 역전을 즐기고 있다. 작은 균열도 없이 완전무결해야 했던 오벨리스크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41.7m의 돌덩이는 결국 핫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가 되지 못한 채, 태어난 채석장의 그 자리에 미이라처럼 누워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집트 고대 건축 기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어느 오벨리스크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돌을 쪼아낸 흔적과 도구로 사용했던 작은 돌덩이마저 모두 소중한 연구 자료가 됐다.


1, 2 자리를 옮기기 전 필레섬에 위치했던 이시스 신전은 필레 신전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신전의 벽에는 최고의 여신 이시스(右)와 왕권의 수호신인 호루스(左)의 대형 부조가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3 아스완에 이르러 나일강은 다도해의 풍경을 이룬다. 섬과 섬 사이에 사람이 물결치며 흐른다 4 관광객이 모두 빠져 나간 미완성오벨리스크 채석장에서 사진모델이 되어주며 푼돈을 벌던 남자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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