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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ANMAR-미얀마에서 마주친 어떤 표정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1.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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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고에서 마주친 승려들. 거처로 쓰이는 건물 2층에서 신기한 듯 이방인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미얀마에서 마주친 어떤 표정들

3박4일. 까무룩 들었다 움찔하고 깨어난 낮잠처럼 미얀마 여행은 짧기만 했다. 무엇을 길게 들여다보고 무엇을 마음에 담아 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 정작 내 마음을 툭 치고 지나간 것은 순간순간 다가오고, 언뜻언뜻 보인 미얀마의 어떤 표정들이었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취재협조  베트남항공 www.vietnamairlines.com

미얀마 여행에 관한 신문이나 잡지 기사의 9할 9푼은 불교와 불교 사원과 사원의 탑을 이야기한다. 전혀 놀랄 만한 ‘통계’가 아니다. 미얀마에서 불교는 종교이자 생활이며, 미얀마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풍경은 불교 사원과 사원의 탑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에서 내게 주어진 ‘사흘 밤, 나흘 낮’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도의 지위를 네피도Naypyidaw에 넘겨주었지만 여전히 미얀마 최대의 도시로 꼽히는 양곤Yangon과 양곤에서 약 80km 떨어진 바고Bago, 이 두 도시에서 줄기차게 내 앞을 막아선 것도 불교 사원과 사원의 탑들이었다.


1 바고에서 우연히 들르게 된 어느 집에서 차 대접을 받았다. 차의 온도만큼이나 할아버지의 마음이 따뜻했다 2 바고에 위치한 사면불인 짜익푼 파고다. 불상을 조성할 당시 불심이 깊었던 네 명의 자매가 평생 독신으로 살며 수행에 전념하겠다고 맹세한 전설이 내려온다 


성과 속이 혼재된 풍경

미얀마를 먼저 찾은 사람들과 매체들의 전언대로 이 나라의 불교 사원들과 사원의 탑들은 화려하고 웅장했다. 화려하고 웅장한 미얀마의 사원과 사원의 탑 앞에서 미얀마 사람들은 향을 사르고 합장을 하거나 이마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얼굴은 경건했고, 몸가짐은 공손했다. 그것은 신앙의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미얀마의 사원을 지배하는 것이 신성불가침의 적막은 아니었다. 기도를 올리지 않는 사람들은 사원의 바닥에 앉아 수런수런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준비해 온 음식을 먹었다. 그것은 종교에 멱살 잡히지 않은 생활의 표정이었다.

15세기까지 가장 앞선 불교문화를 간직했던 바고라는 도시에서 가이드의 제안으로 현지인의 살림살이를 엿볼 기회를 갖게 됐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오후, 양해를 구하고 어느 여염집에 들어간 것이다. 부모는 출타 중이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 손자와 손녀를 돌보고 있었다. 집의 내부는 우리의 기준으로 가르마를 타자면 남루했다. 할아버지와 내가 나눌 수 있는 것은 눈웃음뿐이었지만 희한하게도 분위기는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다. 외국인의 난데없는 방문에도 어르신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손수 따라주신 따뜻한 차를 마시며 깊게 팬 그의 주름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국적과 성별과 사는 곳을 막론하고 오랜 산 사람에게서 자연스레 풍겨 나오는 인자한 표정이자 지혜의 나이테였다.

할아버지의 집 부근에는 스님들을 위한 학교와 기숙사가 있어 그곳에도 잠시 들렀다. 눈을 맞추고 고개를 살짝 숙여 사진 촬영에 대한 동의를 구한 뒤 스님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는 가사는 당연히 왼쪽 어깨는 가려주고 오른쪽 어깨는 드러나게 해주었다. 가사 위로 솟은 승려들의 오른쪽 어깨는 그들의 깊은 신심을 대변하는 듯 확고해 보였고, 어깨 위의 얼굴은 부처의 자비를 닮으려는 듯 자애로워 보였다. 동자삭발을 한 승려들이 창가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디지털카메라가 신기한 듯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했다. 어릴 때 머리를 깎은 그들의 표정은 출가하지 않은 동네 공터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의 무구한 표정과 조금도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양곤에서 여장을 푼 곳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세도나 호텔이었다. 호텔 길 건너편에는 인야Inya 호수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고, 한쪽에는 회전 관람차가 서 있었다.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상승과 하강을 느긋하게 반복하는 관람차 안의 사람들 표정은 확실히 달떠 보였다. 호숫가에는 또 철제 의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일요일 오후 그 벤치들의 주인은 양곤의 선남선녀들이었다. 데이트 중인 그들은 저마다 우산 혹은 양산 하나씩을 받치고 있었는데, 우산 혹은 양산의 용도는 햇볕을 가리는 데 있다기보다 타인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우산 혹은 양산 아래 허락된 그 한 뼘의 공간은 만국공통어인 사랑의 몸짓과 표정으로 구름처럼 부풀어 있었다.


3 양곤의 마하시 명상 센터에서 매일 오전 10시경 이뤄지는 스님들의 탁발 행렬 4 미얀마의 상징과도 같은 쉐다곤 파고다

열차, 시장 그리고 밤의 풍경

양곤 순환 열차를 탔다. 순환 열차가 39개의 역을 거쳐 양곤의 도심과 외곽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시간. 열차의 운임은 1달러였다. 중앙역을 제외한 여타의 기차역들은 윤흥길의 소설 <묵시의 바다>에 나오는 한 구절인 ‘별볼일 없는 한적한 시골 철로 변에 목조의 낡은 간이역 하나가 서 있다’를 떠올리게 해주었다. 사람들의 내왕이 드문드문했고, 열차의 도착 또한 드문드문했다. 타나카Thanakha를 얼굴에 바른 행상 몇이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서 적막한 시간의 조각들을 기워내고 있었다. 타나카는 미얀마의 여성과 어린아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애용하는 천연 선크림이다. 말린 타나카나무(백단향)를 물과 함께 돌에 갈아 얻은 진액인데, 자외선 차단과 피부 보습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양곤 순환 열차의 내부는 어지러웠다. 사람들을 따라온 온갖 채소와 과일들이 차량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흡사 화물칸을 방불케 했다. 어떤 아낙은 의자 위에 퍼더버리고 앉아 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객차의 주인은 승객이 아니라 그들이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나가 시장에 내다팔 청과물인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생생한 삶의 표정이었다. 1달러짜리 기차표에 실린 삶의 무게가 덜컹거리며 흘러갔다.

내친 김에 양곤에서 가장 유명한 재래시장인 보조케 아웅산 마켓Bogyoke Aung San Market을 찾았다. 시장 안에는 보석, 귀금속, 의류, 잡화 등을 취급하는 점포들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었다. 시장 입구에는 미얀마의 어느 이름 모를 화가들이 그렸을 그림들이 즐비했다. 미얀마의 풍경과 문화와 사람을 보여주는 그림들은 제가끔 인상적이었다. 색감이 강렬했고, 붓놀림이 예사롭지 않았으며, 화폭에 담긴 제재들이 시선을 붙잡았다. 그중에는 ‘불탑의 도시’ 바간Bagan과 ‘산 위의 바다’ 인레Inle 호수를 재현한 그림들도 있었다. 그것은 가보지 못한 신천지의 표정이었다. 미얀마를 다시 찾을 이유가 이 그림 한 점으로도 차고 넘쳤다. 강력한 흡인력이었다.

미얀마의 야경을 오롯이 책임지는 것도 사원과 사원의 불탑들이었다. 특히 미얀마의 ‘국가대표 사원’인 쉐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는 양곤의 거의 모든 풍경이 어둠에 굴복하는 상황 속에서도 독야청청했다. 99,1m의 쉐다곤 대탑이 조명의 도움을 받아 홀로 어둠을 떠받치고 있었다. 그것은 인위가 자연에 맞서는 표정이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쉐다곤 파고다의 시초 역시 약소했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 타부사와 발리카라는 두 상인이 부처의 머리카락 8올을 가져와 오칼라파 왕에게 전했고, 이를 모시기 위해 14m의 탑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증축과 보시라는 미얀마 왕조의 끊임없는 정성을 디딤돌 삼아 현재의 거대한 몸집을 이루게 됐다. 그것은 상전벽해의 표정이었다. 

양곤 시민들이 가녀린 전등불 아래서 밤을 맞이하는 풍경은 ‘세꼬랑’이라 불리는 19번지 꼬치 골목에서 만날 수 있었다. 골목을 따라 꼬치구이를 판매하는 집들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길 위의 테이블에서 목을 축이거나 허기를 달랬다. 그것은 하루가 저물어 가는 표정이었다.


1 양곤 순환 열차의 내부 풍경. 재래시장을 옮겼다 놓은 듯 각종 채소와 봇짐들이 가득하다 2 양곤 순환 열차를 기다리는 시민들과 그들 앞에서 간단한 먹을거리와 과일을 판매하는 행상들의 모습 3 바고의 쉐모도 파고다에서 만난 어느 소녀. 얼굴에 미얀마산 천연 선크림인 타나카를 바르고 있다 4 보조케 아웅산 마켓 입구의 그림 판매 상점. 강렬한 색채의 그림들이 많이 걸려 있다



Travel  to  Myanmar

▶미얀마 찾아가는 길 

미얀마까지 바로 연결되는 직항 편은 아직 없다. 베트남항공을 타고 베트남의 주요 도시인 하노이나 호찌민을 경유해야 한다. 비행시간은 인천~호찌민이 약 4시간 50분, 호찌민~양곤이 약 1시간 50분이다. 시차는 한국보다 2시간 30분 느리다.

▶미얀마의 사원 

미얀마 최대의 관광 자원은 두말 할 나위 없는 불교 사원이다. 일정의 대부분도 불교 사원 방문에 맞춰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쉐다곤 파고다. 진짜 금이 입혀진 웅장한 대탑은 밤이 찾아들면 그 진가를 발휘한다. 중앙에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76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장식돼 있다. 쉐도맛Swe Taw Myat 파고다는 바간의 아난다 파고다와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를 모델로 조성된 아름다운 황금 탑이다. 부처의 송곳니 한 개가 이곳에 모셔져 있다. 차욱탓지Kyauk Htat Gyi 파고다는 67m에 이르는 와불상이 있는 곳이다. 로카찬다Lokachanda 파고다는 2001년에 지어진 ‘신생 사원’이다. 양곤 시민들은 집에 걱정거리가 있으면 으레 이곳에 와서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바고에 있는 쉐모도Shwemawdaw 파고다는 높이가 113m에 달하는, 미얀마에서 가장 높은 불탑이다. 짜익푼Kyaik Pun 파고다는 15세기에 조성된 사면불이다.

▶추천호텔 

세도나(www.sedonasmyanmar.com)는 싱가포르 자본에 의해 설립된 호텔. 우리에게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묵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양곤이 보유한 최고 수준의 숙박 시설로, 호텔보다는 리조트에 가까운 분위기를 풍긴다. 트레이더스(www.tradershotels.com)는 양곤 중심가에 위치한다. 유일하게 한국인 매니저가 상주하고 있다. 객실은 물론이고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역시 양곤 시내에 위치한 호텔 양곤(www.hotel-yangon.net)은 원래 국방부 건물로 사용되던 것을 지난 2007년에 리노베이션한 경우다. 시설은 중급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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