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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니안Tinian -거인의 어깨 위에서 노닐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2.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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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ND  TINIAN

거인의 어깨 위에서 노닐다
티니안Tinian



티니안에서는 많은 말이 필요없다. 주먹 쥔 손에서 엄지와 새끼 손가락을 펴고 흔드는 아이들. 감사함도 미안함도 사랑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손인사다


낯선 이방인의 심장 소리는 해변의 파도와 함께 공명하며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간다. 남태평양 한가운데 동동 떠 있는 이 섬의 투명한 바다색, 하얀 산호모래가 너무도 이국적인데도 섬은 친숙하다. 쓸데없는 긴장감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는 곳. 수수한 멋으로 눈이 부신 티니안을 방문하는 여행자는 이 섬의 주인이었던 거인의 품에 안긴 것마냥 안도감이 들 것이다.  

  양보라 기자   사진  양보라 기자·마리아나관광청   취재협조  마리아나관광청 www.mymarianas.co.kr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고도 남음 직한 인터넷의 잡학스러움도 ‘티니안’은 살짝 비켜 갔나 보다. 티니안으로 떠나기 전 생경한 그 이름을 검색해 보니 한국어판 위키피디아는 단 한마디를 전하는 게 전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 ‘리틀보이’를 폭격기에 탑재했던 장소란다. 그렇게 시작된 역사상 최초의 핵 공격으로 2차 세계대전은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고. 역사가 유의미하게 기억하고 있는 티니안은 일본과 미군의 전초기지로 사용됐던 그때에 정지해 있는 듯하다. 나 역시 방문을 하기도 전에 이미 티니안을 전부 아는 것마냥 자만했다. 같은 북마리아나제도Mariana Islands에 속해 있는 사이판이 육안으로 보이는 위치에 있으니 끼리끼리 닮았겠거니 했다. 전쟁의 상흔을 씻고, 몸단장을 마치고 이제는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는 관광지로 탈바꿈한 섬일 거라고 쉽게 치부했다.

지구의 지름에 다가서다

언제부턴가 여행지와 경쟁을 벌이는 못된 버릇을 들였나 보다. ‘날 감동시키지 못하면 아류 관광지일 뿐이야’라고 먼저 벽을 쳤다. 하지만 티니안은 첫 대면에서부터 기쁜 마음으로 ‘항복’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여행에 앞서 예단과 속단을 밥 먹듯 하는 사람도 이곳에서는 ‘지는 싸움’을 할 게 뻔하다. 티니안은 첫인상부터가 장관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티니안을 하늘에서 먼저 만나게 된다. 입도하기 위해서는 사이판 국내선 공항에서 뜨는 7인승 경비행기를 이용한다. 앙증맞은 비행기를 보곤 과연 제대로 뜰 수 있을까 싶은 의심까지 싹튼다. 여기서 추락하면 알아서들 바다에서 헤엄치라는 기장의 엄포가 스릴을 더한다. 하지만 장난감 같은 비행기의 문이 닫힌 뒤, 가볍게 하늘로 솟아오르고 나면 걱정과 근심은 남아 있을 자리가 없다. 작은 섬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바다의 빛깔, 섬의 가장자리를 빙 두른 모래 해변에 부딪히는 파도의 흰 포말…. 긴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섬의 경관에 매료된 여행자는 10분간의 파노라마를 즐기곤 착륙하게 된다. 

드디어 티니안 섬에 안착한다. 이국적 향취에 목마른 이방인은 들뜬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이곳에서는 조급할 필요가 없다. 섬은 제주도 면적의 1/10에 불과하고 북마리아나제도 유인도 가운데 인구가 가장 적은 곳이라 마치 무인도에 온 것처럼 느긋하다. 대중적인 휴양지인 사이판에 뒤처지지 않는 자연환경을 갖췄으나 유명한 관광지 특유의 혼잡스러움과 번잡함이 없다. 때로는 세공되지 않은 원석이 보석보다 더 빛나는 법. 섬은 대중교통도 없고 숙소도 많지 않지만 그래서 더 좋다. 자극적이지 않은, 섬의 순박함이 더욱 특별하다.

비행장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섬의 중심가인 산 호세 마을San Jose Village이 조성돼 있다. 시청, 학교, 병원, 호텔 등 주요 시설이 여기에 모여 있고 섬의 주민 대부분이 이곳에 살고 있다. 1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마을은 우리로 치자면 읍내와 같다. 다만 티니안식 읍내는 시간이 훨씬 느리게 흐른다. 옷을 훌렁훌렁 벗고 축복 같은 날씨를 즐기는 사람들이 어슬렁거리며 운치를 더할 뿐이다. 섬에서 태어난 원주민들은 일할 필요가 없다. 국가가 주는 보조금으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어서 목축이나 낚시로 하루를 즐긴다. 여행객을 생업의 표적으로 삼지 않지 않는다는 것이 티니안이 가진 고요함의 비밀일 수도 있겠다. 

숙소에 여정을 풀고 티니안 여행의 백미인 해변을 거닐어 본다. 티니안의 해변은 작지만 야무지다. 현지인도 외부인도 가장 아름다운 경치로 꼽는 곳은 티니안 다이너스티 호텔 바로 앞에 위치한 타가비치Taga Beach다. 해안선은 북위 15도에 위치한 이곳이 적도와 근접한 땅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만든다. 눈앞의 해안선은 컴퍼스로 그려놓은 듯 둥그스름하다. 지구의 지름에 가까워진 여행자는 자신을 에워싼 해안선이 신기할 수밖에 없다. 지구 끝에 다가서듯 여행자들은 자유롭게 수영이나 스노클링을 즐긴다. 



섬을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 티니안의 절경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스치듯 지나간다면 어디에서나 볼 법한 바닷가겠지만 이곳은 몇천년간 이 섬의 주인이었던 추장의 시선이 닿았던 곳이다. 선사시대부터 티니안을 다스려 온 종족은 차모로족Chamorro이다. 차모로족의 추장은 바로 이곳 타가비치 주변에 오늘날 타가하우스Taga House라고 불리는 거대한 신전을 지어놓고 자신의 영토를 오래도록 굽어봤다. 지금의 신전은 거대한 돌기둥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 길이가 6m에 달해 당시의 위용을 상상할 수 있다. 주변에는 건물을 지을 만한 돌이 없기 때문에 거대한 돌덩이를 ‘거인’이 어디선가 옮겨 왔다고 전해진다. 

‘거인들의 섬’이라는 전설 때문인지 티니안 섬에는 거인의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티니안 해변가, 유명한 관광 포인트인 블로 홀Blow Hole은 해안 절벽에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서 파도가 치면 그 구멍으로 분수처럼 물이 솟아오르는 곳이다. 공룡 발자국이 난 것처럼 푹푹 패인 돌구멍을 보면서 그 옛날 거인이 걸었던 길이라 내리 짐작해 버렸다. 파도는 용맹하게 돌진하다가 돌에 부딪히고 공중에 물방울을 흩뿌려놓는다. 덕분에 블로 홀 주변에는 연이어 멋진 무지개가 만개한다. 옅게 감도는 플루메리아 꽃향기를 맡으며 거인이 선사한 장관에 잠시 취해 본다.

아마 섬을 반나절만 돌아다녀도 예민한 여행자들은 눈치 챌 것이다. 이 섬에는 위압감이 없다는 사실을. 자고로 유적에는 선인의 힘을 과시하려는 후대의 기고만장함이 얽혀 있게 마련인데도 말이다. 더군다나 낮잠이 쏟아질 법한 한가로운 해변을 걷고 있노라면 이 섬이 2차 대전 때는 미군의 전초기지로서 군용기가 38초마다 이륙하는 활주로였다는 과거는 더더욱 상기하기 어렵다. 거인의 친숙한 심장 소리가 들리는 섬, 티니안은 어떻게 이처럼 평화로울 수 있을까? 이 땅의 주인들이 ‘여왕’을 섬기며 모계사회를 이뤘다는 것을 듣고 나서야 모든 궁금증이 해소됐다. 섬은 철썩철썩 밀물과 썰물을 교차하며 어머니의 마음으로 이방인도 상처도 품어 온 것이다. 섬을 다스린 추장도 여성이었고 그들이 섬긴 신도 대모신이었다. 세상 어느 곳도 어머니의 품보다 아늑할 수 없다. 여왕이 여신이 되어 보살피는 티니안을 찾아오는 누구든 몸과 마음을 편히 뉠 수 있다.



1 타가비치 주변은 산호가 잘 발달한 대신 수심이 얕고 유속이 적당해 스노클링을 즐기기 좋다 2 야자수로 기분 좋게 목을 축인다. 야자수 음료를 파는 원주민들이 즉석에서 열매를 따주기도 한다 3 티니안에는 2차 세계대전의 일본인 희생자를 추모하는 크고 작은 사원이 있다 4 연안에 머무는 고래가 숨을 헐떡이는 것 같은 블로 홀의 장관. 공기 중 흩뿌려진 물방울은 무지개를 빚어내기도 한다

T clip. 티니안을 제대로 짚는 포인트

‘별 볼 일’ 있는 출루비치
  
이 해변에서 사람들은 바다보다 모래에 더 관심이 많다. 아직 풍화작용이 덜 끝난 산호모래가 별 모양을 띠기 때문이다. 손바닥으로 모래를 찍어서 들여다보면 내 손 안에 별 하늘이 열린다. 

최고의 다이빙 포인트, 타촉냐 비치
  
비치 여기저기에 나무그늘이 만들어져 있어서 잠시 동안 태양을 피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수심 또한 얕은 편이라  바닷가의 수많은 열대어를 감상하기 딱이다. 해양 액티비티 신청 부스가 있다.

‘소원을 말해봐’ 바다거북 스노클링  
티니안에는 우리 식으로 치면 천연기념물인 바다거북의 서식지가 있다. 이 일대를 둘러보는 스노클링 코스는 인기 만점. 운이 좋으면 자고 있는 거북이를 만져 보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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