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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RDAN-모세가 진노하고 스필버그가 감탄한 요르단 페트라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2.08.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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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진노하고 스필버그가 감탄한
요르단 페트라

페트라를 실제로 보기 전, 일부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장엄에 대한 기대는 실재와 마주하는 순간 언제나 허망해져 버리곤 했으니까. 하지만 페트라는 그렇지 않았다. 붉은 사암의 협곡 사이를 지나 느닷없이 출현하는 신전 앞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눈을 비벼야 했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최갑수    취재협조  로얄 요르단항공 02-753-8271

요르단 암만으로 가는 여정은 만만치 않았다. 홍콩과 방콕을 거쳐야 했다. 게다가 홍콩공항에서 무려 9시간 대기. 딱딱한 공항 의자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원고를 썼고 웹서핑을 했고 음악을 들었고 ‘카톡’을 했지만 시간은 남아돌기만 했다. 어떤 일이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고 또한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고 믿고 있지만, 정말이지 남아도는 시간은 도무지 난공불락이었다. 게다가 시간을 보낸다는 일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도대체 시간은 왜 이렇게 가지 않는 거지? 슬슬 약이 오르기 시작하자, 부르튼 심사는 괜히 요르단으로 옮아가기 시작했다. 아니, 도대체, 요르단이라는 나라가, 페트라라는 곳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 닭장 속의 닭처럼 이코노미석에 쪼그리고 앉아 두 나라를 거쳐, 게다가 한 나라에서는 9시간이나 대기를 한 후 내 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얼마나 대단한지 두고 보자. 뭐 이런 심술이 마음 한 켠에서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스필버그의 영감을 깨운 고대도시

암만 국제공항 출입구를 빠져나오자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덮쳐 왔다. 드디어 도착했군. 힘껏 심호흡을 했다. 공항을 나올 때마다 얼굴을 덮쳐 오는 낯선 이국의 공기만큼 여행자를 설레게 하는 것이 있을까. 카레와 치즈, 요구르트, 아랍인들의 땀냄새와 모래냄새 그리고 온갖 낯선 식물들과 곤충, 동물들이 만들어내는 형용할 수 없는 냄새는 비로소 여행을 떠나왔다는 사실을 실감케 해준다.  

사람들은 대개 마흔 정도가 되면 젊은 시절 자신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것들과 안녕을 고하고 속수무책으로 진부해지기 마련이다. 아마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 있을 것인데, 가령 멋진 차를 산다든가, 새로운 취미나 공부거리를 가진다든가, 새로운 여자를 만난다든가 하는 방법들, 이들 가운데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여행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현지 시간으로 새벽 5시30분 요르단 암만 공항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요르단은 지중해 동남쪽 아라비아 반도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지역, 서쪽으로는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와 접하고 있다. 국토의 80%가 사막과 불모의 산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수많은 유적들과 교황청에서 지정한 5개의 성지 덕분에 요르단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호텔로 가는 버스에서 요르단에 대한 가이드의 대략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다른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는 전형적인 이슬람 문화를 가진 곳이지만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기독교 유적지도 많다는 것이 요지였다. 가이드는 요르단이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가난한 나라지만 아랍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으며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또한 요르단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며 요르단이 발전하는 길은 한국의 IT산업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24시간의 지루한 시간을 건너 요르단에 도착했고, 어서 호텔로 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후 몇 시간의 달디단 잠을 자는 일, 그리고 페트라로 가는 일. 그것만이 오매불망이었다. 창밖으로 황량한 사막의 풍경이 언뜻언뜻 스쳤고 귓전에는 가이드의 어지러운 아랍어가 맴돌았다.

다시 세 시간 후, 호텔에서 나와 페트라로 향했다. 페트라는 암만에서 약 150km 가량 떨어져 있다. 차로 3시간여를 가야 한다. 몸은 물 먹은 솜처럼 축 쳐졌지만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를 본다는 설렘으로 가슴은 두근거렸다.

버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여전히 황량했다. 사막에는 드문드문 커다란 전신주가 서 있었고 길은 무심한 듯 사막을 가로지르며 나 있었다. 가끔 지평선 가까이에서 모래바람이 일기도 했다. 문득 2년 전 이집트로 갈 때가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카이로로 향하는 기내에서 본 영화가 <트랜스포머>였다. 그 영화에서 피라미드는 거대한 로봇들에게 박살나고 있었다.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육중한 돌덩이들이 공중을 날아다녔다. 카이로에 도착해 피라미드 앞에 서자 왜 감독이 그 장면을 피라미드에서 찍었는지 단박에 이해가 됐다. 

페트라 역시 <트랜스포머>에 등장한다. 외계 로봇 종족의 운명을 가를 열쇠가 신전 암벽 뒤에 감춰져 있는데, 이 신전이 바로 고대 도시 페트라를 대표하는 건축물 ‘알 카즈네Al Khazneh’다. 알 카즈네는 영화 <인디애나 존스-최후의 성전>에도 등장했다. 고고학자 인디애나 존스(해리슨 포드)가 예수의 성배를 찾아다니는 시퀀스에 나온다. 인디애나 존스가 말을 타고 협곡 사이를 달리다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면서 만나는 장밋빛 신전이 바로 알 카즈네다. 붉은 사암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그 건축물을, 그곳이 페트라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정교한 세트 정도로 여겼다.

페트라 앞에 서자 왜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곳을 성배를 숨겨놓은 장소로 설정했는지, 외계인이 그들의 운명을 건 열쇠를 이곳에 숨겨 놓을 수밖에 없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역시 세상에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많고 직접 눈으로 봐도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일들 투성이다. 

페트라는 번성한 고대도시였다. 황량한 사막과 협곡으로 둘러싸여져 있어 사람이 살기에 좋은 환경을 가진 곳은 아니었지만 예멘, 메카, 팔레스타인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의 요충지 역할을 하며 발전했다. 지리적으로 이집트와 아라비아 반도, 페니키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실크로드를 따라 무역을 하던 대상들의 왕래가 잦았기 때문이다. 나바테아인은 ‘왕의 대로King’s Highway’를 장악하면서 아라비아의 거상으로 부상했고 페트라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교역의 중심지가 됐다. 왕의 대로는 요르단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고대의 길. 해발 1,200m에 위치한 이 길은 지금도 자동차가 툴툴거리며 달린다. 

도시가 발전하자 로마제국이 페트라를 넘보기 시작했고 결국 106년 로마군에게 점령당하고 만다. 이후 세월이 흘러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된 후 페트라는 동로마가 통치하게 되는데 이때 동로마가 페트라보다 수도에 더 가까운 시리아의 팔미라로 무역을 중심지를 옮기면서 자연스레 대상들의 활동 무대도 시리아로 옮겨지게 되고 페트라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쇠락해 가던 페트라에 결정타를 날린 건 지진이었다. 6~7세기 발생한 대지진은 삽시간에 도시를 집어삼켰고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페트라는 역사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천년이 지났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전설 속 도시는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발견되면서 다시금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당시 요한은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카이로로 가는 길에 요르단 남서부 지방을 지나던 중이었다. 황무지와 가파른 협곡이 어우러진 도시 와디 무사에 도달한 그는 사막의 유목민 베두인족에게서 와디 무사 인근에 보물이 감춰진 고대 도시의 폐허가 있다는 전설을 듣게 된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페트라였다. 페트라에 정착해 살고 있던 베두인족은 자신의 생활 터전을 침범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요한은 베두인족 가이드를 앞세워 협곡 틈새로 숨어들었고, 마침내 폐허 속에 잔존해 있던 나바테아인의 도시를 발견했다.

페트라 입구에 위치한 마을은 와디 무사. ‘모세의 건천’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14세기, 60만명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는 ‘왕의 대로’를 따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이동하던 중 페트라를 통과한다. 모세는 이곳에서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화를 내며 지팡이를 바위로 두 번 치자 물이 솟아났다고 한다. 

페트라 입구에 자리한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알 카즈네까지는 ‘시크Siq’라고 불리는 협곡을 따라 약 3km를 가야 한다. 여행자들은 100m가 넘는 높이의 바위들이 2~3m의 좁은 폭으로 형성되어 있는 시크를 걸으며 저마다 웅장한 페트라의 모습을 상상한다. 시크를 따라 가다 보면 절벽에 물결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침식작용과 대홍수로 생겨난 지형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샌드위치를 자른 듯 층층이 겹친 지층은 지질학 교과서이기도 하다. 벽에는 굵은 홈이 길게 이어져 있다. 나바테아인들이 사막 위에 거대한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모세의 샘’에서 물을 공급받았기 때문. 바위를 깎아 만든  이 홈이 다름 아닌 수로다.

그렇게 좁고 긴 시크를 통과하다 보면 협곡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양이 조금씩 많아진다. 그리고 붉은색 암벽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 드러난다. 바로 알 카즈네다. 기원전 100년경 건축된 알 카즈네는 6개의 원형 기둥이 받치고 있는 2층 형태의 신전 건물로 너비는 30m, 높이는 43m에 달한다. 1, 2층 정면에는 제우스신의 쌍둥이 아들인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기마상과 풍요의 여신인 알우자 등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알 카즈네는 이집트 파라오의 보물이 감춰져 있다는 전설 탓에 ‘보물창고’라고 불린다. 하지만 내부에 들어가 보면 텅 비어 있는 작은 사각형의 방 만이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어두운 방 한쪽에서는 실망한 여행자들의 작은 탄성이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알 카즈네는 페트라의 대부분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왕가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아레타스 3세Aretas Ⅲ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페트라에 암벽 조각 건축이 발달한 이유는 페트라를 둘러싼 협곡들의 암석들이 조각하거나 파내기가 쉬운 사암이기 때문. 그리스어로 페트라는 ‘바위’를 뜻하는데 실제 페트라의 대부분 건축물들은 쌓아 올리면서 만든 건축물들이 아닌 암벽을 깎아 내려가면서 조각해 만든 건축물들이다.

알 카즈네를 지나 협곡을 따라가면 바위산을 깎아 만든 도시가 나타난다. 절벽을 파내서 만든 33층의 계단 형태의 원형극장은 무려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데, 당시 종교 의식과 다양한 회의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원형극장을 지나 절벽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내부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어 수도원으로 추측되는 건물이 나온다. 데이르 수도원인데 입구의 높이만 8m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 외에도 신전, 수도원, 목욕탕 등이 남아있는데 모두 탄성을 자아낼 만큼 뛰어난 유적들이다. 페트라에는 지금도 발굴작업이 한창이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적지는 700여 곳.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유적이 99%가 넘는다고 한다. 


페트라에서 만날 수 있는 낙타몰이꾼. 페트라는 워낙 넓어 낙타를 타고 돌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요르단 베두인의 전통공연. 요르단의 전통음악 ‘미타 하비비 미타’에 맞춰 절도 있고 박력 넘치는 군무를 선보인다


 
암만은 요르단의 수도다. 해발 850m에 위치한다. 암만의 옛 이름은 ‘필라델피아’다.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정복자 필라델푸스(BC 285~246년 재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옛 성터 ‘자벨 알 깔라’에 오르면 황토색으로 칠한 직사각형의 집들이 레고 블록처럼 들어선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페트라는 ‘바위’라는 뜻을 지닌 고대 도시다. 2,000여 년 전 세워졌다. 기원전 6세기경 아라비아 반도에 정착한 유목민족인 나바테아인Nabataeans이 도시를 세운 주인공이다.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해발 950m의 바위투성이 고지대에 이 도시를 건설한 이유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1%만으로 충분한 불가사의

암만 국제공항 출입구를 빠져나오자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덮쳐 왔다. 드디어 도착했군. 힘껏 심호흡을 했다. 공항을 나올 때마다 얼굴을 덮쳐 오는 낯선 이국의 공기만큼 여행자를 설레게 하는 것이 있을까. 카레와 치즈, 요구르트, 아랍인들의 땀냄새와 모래냄새 그리고 온갖 낯선 식물들과 곤충, 동물들이 만들어내는 형용할 수 없는 냄새는 비로소 여행을 떠나왔다는 사실을 실감케 해준다.  

사람들은 대개 마흔 정도가 되면 젊은 시절 자신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것들과 안녕을 고하고 속수무책으로 진부해지기 마련이다. 아마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 있을 것인데, 가령 멋진 차를 산다든가, 새로운 취미나 공부거리를 가진다든가, 새로운 여자를 만난다든가 하는 방법들, 이들 가운데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여행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현지 시간으로 새벽 5시30분 요르단 암만 공항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요르단은 지중해 동남쪽 아라비아 반도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지역, 서쪽으로는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와 접하고 있다. 국토의 80%가 사막과 불모의 산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수많은 유적들과 교황청에서 지정한 5개의 성지 덕분에 요르단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호텔로 가는 버스에서 요르단에 대한 가이드의 대략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다른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는 전형적인 이슬람 문화를 가진 곳이지만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기독교 유적지도 많다는 것이 요지였다. 가이드는 요르단이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가난한 나라지만 아랍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으며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또한 요르단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며 요르단이 발전하는 길은 한국의 IT산업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24시간의 지루한 시간을 건너 요르단에 도착했고, 어서 호텔로 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후 몇 시간의 달디단 잠을 자는 일, 그리고 페트라로 가는 일. 그것만이 오매불망이었다. 창밖으로 황량한 사막의 풍경이 언뜻언뜻 스쳤고 귓전에는 가이드의 어지러운 아랍어가 맴돌았다.

다시 세 시간 후, 호텔에서 나와 페트라로 향했다. 페트라는 암만에서 약 150km 가량 떨어져 있다. 차로 3시간여를 가야 한다. 몸은 물 먹은 솜처럼 축 쳐졌지만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를 본다는 설렘으로 가슴은 두근거렸다.
버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여전히 황량했다. 사막에는 드문드문 커다란 전신주가 서 있었고 길은 무심한 듯 사막을 가로지르며 나 있었다. 가끔 지평선 가까이에서 모래바람이 일기도 했다. 문득 2년 전 이집트로 갈 때가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카이로로 향하는 기내에서 본 영화가 <트랜스포머>였다. 그 영화에서 피라미드는 거대한 로봇들에게 박살나고 있었다.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육중한 돌덩이들이 공중을 날아다녔다. 카이로에 도착해 피라미드 앞에 서자 왜 감독이 그 장면을 피라미드에서 찍었는지 단박에 이해가 됐다. 

페트라 역시 <트랜스포머>에 등장한다. 외계 로봇 종족의 운명을 가를 열쇠가 신전 암벽 뒤에 감춰져 있는데, 이 신전이 바로 고대 도시 페트라를 대표하는 건축물 ‘알 카즈네Al Khazneh’다. 알 카즈네는 영화 <인디애나 존스-최후의 성전>에도 등장했다. 고고학자 인디애나 존스(해리슨 포드)가 예수의 성배를 찾아다니는 시퀀스에 나온다. 인디애나 존스가 말을 타고 협곡 사이를 달리다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면서 만나는 장밋빛 신전이 바로 알 카즈네다. 붉은 사암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그 건축물을, 그곳이 페트라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정교한 세트 정도로 여겼다.

페트라 앞에 서자 왜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곳을 성배를 숨겨놓은 장소로 설정했는지, 외계인이 그들의 운명을 건 열쇠를 이곳에 숨겨 놓을 수밖에 없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역시 세상에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많고 직접 눈으로 봐도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일들 투성이다. 

페트라는 번성한 고대도시였다. 황량한 사막과 협곡으로 둘러싸여져 있어 사람이 살기에 좋은 환경을 가진 곳은 아니었지만 예멘, 메카, 팔레스타인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의 요충지 역할을 하며 발전했다. 지리적으로 이집트와 아라비아 반도, 페니키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실크로드를 따라 무역을 하던 대상들의 왕래가 잦았기 때문이다. 나바테아인은 ‘왕의 대로King’s Highway’를 장악하면서 아라비아의 거상으로 부상했고 페트라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교역의 중심지가 됐다. 왕의 대로는 요르단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고대의 길. 해발 1,200m에 위치한 이 길은 지금도 자동차가 툴툴거리며 달린다. 

도시가 발전하자 로마제국이 페트라를 넘보기 시작했고 결국 106년 로마군에게 점령당하고 만다. 이후 세월이 흘러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된 후 페트라는 동로마가 통치하게 되는데 이때 동로마가 페트라보다 수도에 더 가까운 시리아의 팔미라로 무역을 중심지를 옮기면서 자연스레 대상들의 활동 무대도 시리아로 옮겨지게 되고 페트라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쇠락해 가던 페트라에 결정타를 날린 건 지진이었다. 6~7세기 발생한 대지진은 삽시간에 도시를 집어삼켰고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페트라는 역사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천년이 지났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전설 속 도시는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발견되면서 다시금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당시 요한은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카이로로 가는 길에 요르단 남서부 지방을 지나던 중이었다. 황무지와 가파른 협곡이 어우러진 도시 와디 무사에 도달한 그는 사막의 유목민 베두인족에게서 와디 무사 인근에 보물이 감춰진 고대 도시의 폐허가 있다는 전설을 듣게 된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페트라였다. 페트라에 정착해 살고 있던 베두인족은 자신의 생활 터전을 침범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요한은 베두인족 가이드를 앞세워 협곡 틈새로 숨어들었고, 마침내 폐허 속에 잔존해 있던 나바테아인의 도시를 발견했다.

페트라 입구에 위치한 마을은 와디 무사. ‘모세의 건천’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14세기, 60만명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는 ‘왕의 대로’를 따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이동하던 중 페트라를 통과한다. 모세는 이곳에서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화를 내며 지팡이를 바위로 두 번 치자 물이 솟아났다고 한다. 

페트라 입구에 자리한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알 카즈네까지는 ‘시크Siq’라고 불리는 협곡을 따라 약 3km를 가야 한다. 여행자들은 100m가 넘는 높이의 바위들이 2~3m의 좁은 폭으로 형성되어 있는 시크를 걸으며 저마다 웅장한 페트라의 모습을 상상한다. 시크를 따라 가다 보면 절벽에 물결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침식작용과 대홍수로 생겨난 지형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샌드위치를 자른 듯 층층이 겹친 지층은 지질학 교과서이기도 하다. 벽에는 굵은 홈이 길게 이어져 있다. 나바테아인들이 사막 위에 거대한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모세의 샘’에서 물을 공급받았기 때문. 바위를 깎아 만든  이 홈이 다름 아닌 수로다.

그렇게 좁고 긴 시크를 통과하다 보면 협곡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양이 조금씩 많아진다. 그리고 붉은색 암벽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 드러난다. 바로 알 카즈네다. 기원전 100년경 건축된 알 카즈네는 6개의 원형 기둥이 받치고 있는 2층 형태의 신전 건물로 너비는 30m, 높이는 43m에 달한다. 1, 2층 정면에는 제우스신의 쌍둥이 아들인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기마상과 풍요의 여신인 알우자 등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알 카즈네는 이집트 파라오의 보물이 감춰져 있다는 전설 탓에 ‘보물창고’라고 불린다. 하지만 내부에 들어가 보면 텅 비어 있는 작은 사각형의 방 만이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어두운 방 한쪽에서는 실망한 여행자들의 작은 탄성이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알 카즈네는 페트라의 대부분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왕가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아레타스 3세Aretas Ⅲ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페트라에 암벽 조각 건축이 발달한 이유는 페트라를 둘러싼 협곡들의 암석들이 조각하거나 파내기가 쉬운 사암이기 때문. 그리스어로 페트라는 ‘바위’를 뜻하는데 실제 페트라의 대부분 건축물들은 쌓아 올리면서 만든 건축물들이 아닌 암벽을 깎아 내려가면서 조각해 만든 건축물들이다.

알 카즈네를 지나 협곡을 따라가면 바위산을 깎아 만든 도시가 나타난다. 절벽을 파내서 만든 33층의 계단 형태의 원형극장은 무려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데, 당시 종교 의식과 다양한 회의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원형극장을 지나 절벽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내부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어 수도원으로 추측되는 건물이 나온다. 데이르 수도원인데 입구의 높이만 8m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 외에도 신전, 수도원, 목욕탕 등이 남아있는데 모두 탄성을 자아낼 만큼 뛰어난 유적들이다. 페트라에는 지금도 발굴작업이 한창이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적지는 700여 곳.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유적이 99%가 넘는다고 한다.


1 페트라에서 만난 베두인족. 페트라는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베두인들이 살고 있었다 2 전통복장을 입고 페트라를 순찰하고 있는 경찰. 화려한 옷차림으로 시선을 끈다 3 가파른 협곡 사이 황무지 지대에 자리한 고대도시 페트라. 바위산을 깎아 만든 도시는 그 자체로 불가사의다

 


사해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인 사해는 요르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보통 바다 염도의 약 5~6배인 사해는 피부병이나 류머티즘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해에서 동쪽으로 4km 지점에 위치한 마인 온천은 ‘폭포 온천’이다. 낮은 산에서 섭씨 55도의 폭포가 떨어지면서 알맞게 식어, 폭포 아래에 고인 물로 천연 스파를 즐길 수 있다. 2,000년 전 헤롯왕이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제라쉬 요르단 북부에 자리한 도시다. 암만에서 약 50km 떨어져 있다. 요르단에서 가장 큰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이 이 도시를 두고 뺏고 뺏기는 역사를 되풀이했다. 700년경에 있었던 지진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흙더미 아래 묻혔는데, 일부를 발굴해 놓았다. 제우스 신전을 비롯해 광장, 극장, 문 등 고대 로마의 유적을 만날 수 있다.


로렌스가 되는 로망을 이루다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1888~1935). 영국 군인이던 그는 연고도 없는 아랍 지역의 독립을 위해 1917년 와디 럼Wadi Rum 사막을 가로질렀다. 아랍의 적인 터키군의 요새가 있는 홍해 연안의 항구도시 아카바Aquaba를 함락하기 위해서였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그의 영웅담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낙타를 타고 붉은 와디 럼을 달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소망이 이루어졌다.

와디 럼은 암만에서 남쪽으로 320km 떨어져 있다. 면적이 720km2 달하는 광활한 사막이다. 언뜻 평지처럼 보이지만 가장 낮은 곳도 해발 1,000m인 고지대다. 달리다 보면 수백 미터씩 솟은 바위산들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와디 럼에는 아직도 낙타를 몰고 살아가는 베두인들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 여행자들도 찾아든다. 지프를 개조한 트럭을 타고 사막을 여행한다. 열기구와 경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이들도 있다. 사막에는 여행자를 위한 베두인족 텐트도 마련되어 있다. 사막 한가운데 마련된 터라 전기도 없고 2인용 텐트에는 잠금쇠도 없다. 

와디 럼에서 딱히 하는 일은 없다. 그냥 달릴 뿐이다. 울퉁불퉁한 사막을 시속 80km로 달린다. 얼굴에는 모래가 날아와 박힌다. 바위산을 만나면 바위산을 감상하며 잠시 쉰다. 때로는 바위산에 오르기도 한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다. 해질 무렵이면 사막은 황금빛, 아니 붉은색으로 물들고 베두인들은 메카를 향해 절을 하고 기도를 올린다. 모래사막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는 마침내 지평선에 닿고 어느 순간 사라질 때쯤이면 텐트로 돌아간다.

밤의 사막. 하늘에는 별이 가득하다. 쌀알을 뿌려놓은 것 같다. 별빛 아래에서 베두인족이 만들어주는 ‘아라빅 커피’를 마시며 화덕에 양고기를 구워 먹는다. 그리고는 밤새 노래를 부르다가 돌아간다. 그렇게 하룻밤 있어 보았다. 해가 뜨는 아침 무렵, 사막이 점점 장미빛으로 변해 갈 때, 로렌스를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로렌스는 와디 럼이 “신의 모습과도 같다”고 했다. 그가 와디 럼을 가로질렀던 까닭은 아랍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사막에서 신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

와디 럼을 나와 아카바로 향했다. 자동차로 1시간 안팎의 거리. 홍해에 면한 휴양도시다. 해변에는 고급 리조트들이 늘어서 있고 수영장마다, 백사장마다 비키니 차림의 여성이 가득했다. 아카바 만에는 140여 종의 산호림이 울창해 1년 내내 다이버들로 붐빈다. 유리로 된 바닥을 통해 해저를 관람하는 요트도 있다. 

배를 타고 홍해로 나가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은 후 한적한 근해에 정박해 스노클링을 즐겼다. 투명한 물 아래로 새하얀 산호초가 너울댔고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코앞까지 다가와 지느러미를 흔들었다. 생각지 못한 요르단에서의 휴식. 방콕과 홍콩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내일 따위는 잊고 선탠 베드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해변은 고뇌하는 인간을 싫어하지. 홍해의 눈부신 햇살이 바늘처럼 따가웠다.


1 아카바 해안에서 만난 요르단 아이들 2 아카바의 푸른 물빛. 아카바 해변에는 고급리조트가 즐비하다 3 와디럼 사막을 가로지는 사륜구동 지프의 행렬. 사막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산으로 가득한 와디럼 사막은 아무리 달려도 지루하지 않다

Travel to Jordan 

항공편 한국-요르단은 직항 항공편이 없다. 요르단항공, 에티하드항공, 대한항공 등으로 방콕, 두바이 등을 경유해야 한다.
비자 요르단대사관(02-318-2897)에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단수비자 4만3,500원, 복수비자 11만3,100원. 하루 정도 걸린다. 입국시 암만공항에서 20JOD를 내면 바로 발권 가능하다. 유효기간 1개월.
화폐 1요르단 디나르(JOD)=약 1,600원.
이동방법 암만에서 페트라는 약 3시간 거리. 페트라-와디 럼-아카바 코스가 요르단을 여행하는 가장 일반적인 루트다. 페트라 국립공원 하루 관람료는 50JOD.
문의 요르단 관광청 www.visitjord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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