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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주의 카페 순례기] 서울 상수역 시연 -‘커피 한 잔=헌책 한 권’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2.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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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주의 카페 순례기
일탈을 꿈꾸는 당신에게 구기자가 귀띔하고 싶은 거기 그 카페…


‘커피 한 잔=헌책 한 권’  

예전의 홍대가 아니라며 혀를 끌끌 차는 이들이 늘었다. 한마디로 ‘돈 냄새’가 난다는 거다. 헝그리 정신을 잃은 홍대를 떠난 이들이 상수동에 출현하기 시작했다. 홍대의 이복남매쯤 되는 상수동은 시끌벅적한 홍대에 비해 차분하다. 그러나 피는 못 속인다. 골목 사이사이를 비집고 기상천외한 문화코드가 반짝이며 숨어 있다. 상수역 1번 출구를 나와 가느다란 일직선의 도로를 걸었다. 초등학교 앞 분식집을 빼닮은 튀김 맛집 ‘삭’과 화끈한 타코가 손짓하는 멕시코 음식점 ‘벨라 토르티아Bella Tortilla’도 지나간다. 이제 다 왔다. 일본식 빵집인 ‘쿄 베이커리Kyo Bakery’ 옆으로 은은한 불빛이 새어나온다. 카페 ‘시연’이다. 

“대체 뭐하는 곳이야?” 시연은 궁금증을 마구마구 유발하는 카페다. 입구의 팻말이 단서를 하나 흘린다. 헌책을 파는 카페란다. 단돈 3,000원이면 누군가가 놓고 간 헌책을 ‘득템’할 수 있다. 훼손이 심하거나 두께가 얇은 책의 값은 더 내려가기도 한다. 시연은 여기에 한술을 더 뜬다. 이곳에선 ‘커피 한 잔=헌책 한 권’이라는 기상천외한 공식이 통용되고 있다. 엿 장수에게 고물을 넘기고 달콤한 엿을 얻어먹는 꼬마처럼, 헌책과 커피를 바꿔 마시면 된다. 

책 10권을 가져가면 원두 200g을 손에 쥘 수도 있다. 단, 자기 개발서를 필두로 한 실용서는 금지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본주의의 규칙을 시연은 보란 듯이 와르르 무너뜨린다. 거울 너머로 보이는 에곤 쉴레의 그림, 누군가 낡은 종이 위에 펜으로 꾹꾹 눌러 쓴 괴테·오규원·이문재의 시 한 편에 가슴이 찡해진다. 

주인장은 대체 어떤 분일까. 카페 곳곳에서 그의 흔적이 묻어난다. 주인장이 직접 쓴 메모를 발견했다. “상식과 원칙의 승리, 손님들과 나누고 싶다.” 헌책을 사랑하는 사람다운 말이다. 켜켜이 쌓인 헌책 중 하나를 집어 들면 오래된 책의 향이 ‘훅’. 헌책을 펼치자 이름 모를 당신의 온기와 텔레파시도 느껴진다. 책 주인이 슥슥 그어놓은 밑줄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그래요’ 하고 맞장구치게 된다. “‘커피는 밥값의 반’이라는 게 사장님의 철학” 이라는 종업원의 증언이 따라붙었다. 메뉴판으로 눈이 갔다. 아메리카노가 단돈 2,000원. 여기에 500원을 더하면 라테를 즐길 수 있다. 가격도 착한데 ‘10잔 마시면 1잔 무료’인 쿠폰까지 쏜다. 가격표 아래 한 줄로 새겨진 글귀 하나가 마음을 두드렸다. “책은 소유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다.” ‘소유’했다는 이유로 무심하게 방치했던 그 책이 스친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317-8 (상수역 1번 출구에서 직진) 
문의 02-3142-4720
가격대 아메리카노 2,000원, 더치 아메리카노 3,000원, 바닐라라테 2,500원,
아몬드초코 2,500원, 녹차라테 2,500원, 핸드드립 4,000원, 원두 100g 5,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밤 10시30분
유의사항 손님 10여 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공간이 협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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