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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MANY 독일의 유네스코 산업유산을 찾아서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3.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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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공업단지가 세계의 관심을 끄는 ‘문화예술 스폿’으로 바뀔 수 있단 말인가? 철을 생산하고, 석탄을 캐고 가공하는 코크스 공장의 굉음이 끊이지 않았을 철광도시, 탄광도시가 어떻게 ‘유럽의 문화 수도’가 되었단 말인가?


몽환적인 빅 에어 패키지의 내부

prologue

전세계 38개국 기자가 참가하는 독일여행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됐다. 이번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두 가지 투어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두 가지 모두 테마는 독일 유네스코 유산인데 첫 번째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면, 두 번째는 유네스코 ‘산업’유산이다. 우리 팀은 후자를 선택한 팀이다. 한 번 더 강조하자면 문화유산이 아니라 ‘산업’유산이다. 근대산업의 흔적이 문화유산으로 뒤바뀐 곳, 하고 말해 버리면 간단하다. 하지만 어떻게 탄광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뒤바뀌었단 말인가? 독일이 아닌 한국을 떠올려 본다. 창덕궁이,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것은 자랑스럽고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태백이나 사북의 탄광이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되고, 전세계에서 관광객이 찾아온다는 가정은 잘 되지 않는다. 심지어 태백이나 사북이 ‘아시아의 문화수도로 지정될 수 있을까’ 하고 가정해 보면 이건 더더욱 설득력이 없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런데 바로 이런 일이 독일 루르지방에서 일어났다.



1, 5 제철소 발전실을 개조한 레스토랑의 외관과 내부
2, 3 밤이 되면 랜드스케이프 파크는 더욱 화려해진다
4 제철소 발전실에서 먹은 저녁 만찬

제철소가 복합문화 테마파크로
랜드스케이프 파크 뒤스부르크-노드Landscape Park Duisburg-Nord

독일 북서부의 루르 지방은 인구 500백만이 넘는, 한때 유럽에서 가장 큰 메트로폴리탄이었다. 하지만 ‘루르’는 지명이나 행정구역이 아닌 산업지대 이름이다. 정리하자면 루르 지방은 에센, 오버하우젠, 뒤스부르크, 도르트문트 등의 여러 도시를 포괄하는 산업지대다. ‘라인 강의 기적’은 루르 지방으로 인해 가능했다고 말할 정도로 이 지역은 2차 세계대전 후 독일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예컨대 루르의 석탄 산업은 유럽 최대 규모를 자랑할 정도였다. 

독일 투어의 첫 번째 공식일정은 독일 북서부의 도시, 뒤스부르크의 랜드스케이프 파크에 있는 레스토랑 ‘하웁트샬트하우스Hauptschalthaus’에서의 저녁식사다. 엠셔 강변의 랜드스케이프 파크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 같은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곳은 수십년 동안 철강제철소였다. 철광석을 용광로에 넣고 철을 뽑아내던 곳이 테마파크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했다. 우리 일행이 앉아 있는 고급 레스토랑도 원래는 제철소의 발전실이었다. 레스토랑 이름도 이런 과거에서 붙여졌다.

테이블에 앉은 후에야 우리 팀 참가자의 면면을 볼 수 있었다. 우리 팀은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체코, 그리스, 러시아, 브라질, 중국, 타이완 등 12개국 기자로 구성됐다. 한국 기자들이 모여 취재를 갈 때와 달리 자기소개도 없고, 명함도 주고받지 않는다. 우리 일행 중 50~60대 기자만 세 명이다. 해 지는 창밖으로 제철소를 바라보며 저녁을 먹는다. 야채와 구운 감자, 바삭하게 튀긴 생선이다. 디저트로 무스 초콜릿을 먹을 때쯤 해가 지고 색색의 조명이 화려하게 제철소를 비춘다. 저녁식사 후 랜드스케이프 파크를 둘러보는 야간투어가 시작됐다. 우리 일행은 헤드 라이트를 머리에 하나씩 쓰고 공원을 산책하듯 어둠 속의 제철소를 산책한다. 어둠 속에서도 거대한 제철소의 위용이 대단하다.

랜드스케이프 파크의 과거는 버려진 제철소다. 왕년의 번영을 일군 굴뚝 산업은 세월이 흘러 사양 산업이 되고 제철소는 아무 쓸모가 없어졌다. 하지만 80년대 말, 공장을 재활용해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10년 후인 2000년 마침내 랜드스케이프 파크가 문을 열었다. ‘재활용’이란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랜드스케이프 파크는 기존의 공장 시설을 무턱대고 부수고 철거하는 대신 그대로 이용한다. 그런데 제철소를 어떻게 이용한단 말인가? 여기서 내 상상력은 좀체 나아가지 않는다. 이름은 ‘공원’이지만 내가 떠올리는 공원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불 꺼진 용광로는 전망대로, 굴뚝이나 창고는 암벽등반 코스로 변했어요. 여기서 개발된 등반코스만 해도 400개가 넘어요. 수준도 다양하고요. 가스탱크는 다이빙을 즐기는 풀장으로 바뀌었는데 사람이 만든 풀장으로는 유럽에서 가장 커요!” 

가이드의 말대로 제철소가 놀이기구, 테마파크로 변했다. 제철소에서 등반과 다이빙을 하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 성인 남자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파이프는 미끄럼틀이 되었다. 한밤에 파이프 미끄럼틀을 직접 타 보면서 빠른 스피드에 놀라 나도 모르게 어어,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60만평이 넘는 공원이니 공연이건 무엇이건 어떤 이벤트라도 못할 게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리저리 늘어선 거대한 제철소의 외관은 그 자체만으로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니 사진을 찍으려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패션은 물론 웨딩촬영을 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누드를 찍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떤 이들은 여기 서식하는 야생동물을 보러 오기도 해요.” 

해가 지고 색색의 조명이 제철소를 비출 때면 랜드스케이프 파크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할 법한 미래 도시처럼 보인다. 밤이 되자 랜드스케이프 파크는 더욱 화려해졌다. 쇳가루가 날릴 것 같은 ‘산업시대’라는 매우 비현실적이고 장대한 광경이다.
랜드스케이프 파크 뒤스부르크-노드┃개장시간 항시  입장료 무료  홈페이지 www.landschaftspark.de



1, 4 조형미가 아름다운 촐페라인의 전경 2 박물관에서 가장 사진 찍기 좋은 곳은 매표소와 전시실 사이 계단이다 3 루르 박물관의 전시실


에센을 ‘유럽의 문화수도’로 만든 탄광
촐페라인Zollverein

우리 팀의 인솔자는 ‘비카’, 동독에서 태어난 그녀는 뉴질랜드에서 남편을 만나, 영국에 살다가 지금은 독일관광청 뉴욕 사무소에서 일한다. 그리스 기자인 디미트리스는 런던에 살면서, 거의 매달 다른 나라로 출장을 가는데 다음 달엔 한국에 온다고. 쉰이 훨씬 넘었을 그는 늘 천진난만한 얼굴로 투어 중 만나는 모든 여자들과 사진 찍느라 바쁘다. 내 모자를 보고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떠올랐다던 스코틀랜드 출신 마이클은 늘 짜증 어린 얼굴에 매사가 불만이다. 예순이 넘었을 러시아 기자 알렉산더는 말이 거의 없고, 가이드 설명을 들으며 쉬지 않고 늘 무언가를 적는데, 체코에서 온 밀란과 함께 가히 우리 팀 모범생이라 할 수 있다. 쉰여섯 살의 이탈리아 기자, 마르코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모두 에스프레소만 마시겠지’ 하고 생각했던 내 편견과 다르게 에스프레소가 아니라 언제나 디카페인 커피만을 마신다.

이렇게 다양한 이들이 모인 우리 팀의 두 번째 일정은 에센의 촐페라인Zollverein 방문이다. 촐페라인은 박물관과 미술관, 미술대학과 극장, 수영장과 아이스링크,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은 본래 철골조의 탄광이었다. 촐페라인은 탄광으로 번성하던 시절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와 모던한 건축미를 자랑했다. 촐페라인을 설계한 건축가는 프리츠 슈읍Fritz Schupp과 마르틴 크레머Martin Kremmer. 유명한 건축가들이 탄광을 설계했다는 점도 인상적이지만 그들이 탄생시킨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조형미는 더욱 인상적이다. 촐페라인은 너무 식상한 표현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탄광’이었다.

이제 탄광의 갱도빌딩은 루르 박물관Ruhr Museum으로, 보일러실은 레드 닷 디자인 박물관Red Dot Design Museum으로 바뀌었다. 석탄을 가공했던 코크스 공장의 냉각수 저장고는 아이스링크로 변했고, 채굴한 석탄을 날랐던 코스는 산책로가 됐다. 촐페라인은 문화예술과 근대산업, 건축과 자연이 어우러진 신세계다. 이제 촐페라인은 탄광을 넘어 독일의, 나아가 유럽의 새로운 문화, 포스트모던 건축문화를 이끌고 있다. 2001년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촐페라인과 코우크스 공장은 이제 루르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다. 촐페라인은 단순한 산업유적이 아닌 창조성에 기반을 둔 21세기 경제 산업의 새로운 중심지다. 2010년 EU가 에센을 유럽의 문화수도로 선정하게 된 데는 촐페라인 공이 크다. 촐페라인은 이제 독일을 넘어 유럽의 문화수도가 된 루르 지방의 상징이다.

루르 박물관은 수직갱도 7번의 석탄 세척장에 위치한다. 이곳은 루르 지방의 기억이자 진열창이다. 상설전시관에는 6,000점 이상의 유물이 루르 지방의 매혹적인 자연과 문화, 역사를 보여준다. 현재와 과거, 산업지대가 되기 이전의 기억, 그리고 루르 지역의 드라마틱한 역사가 세 개 층에 걸쳐 펼쳐진다. 특별전을 둘러보았다. 금년 특별전의 테마는 <석탄. 글로벌Coal. Global>이다. 전세계에서 수집한 석탄을 모아놓은 전시실 한편에 북한 석탄도 있다. 정작 사북이나 태백의 석탄은 보이지 않아 왠지 아쉬웠다. 광부들의 얼굴 사진을 전시한 코너도 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다. 백인도, 흑인도, 황인종도 있다. 하지만 눈빛만은 비슷하다. 삶을 견뎌내겠다고 다짐하는 눈빛이다. 탄을 캐는 일은 세상 어떤 일보다도 치열했다. 오죽 했으면 ‘막장’이라 했을까. 광부는 바로 그 막장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거친 인생과 온몸으로 맞서는 사람이다. 그러나 돈을 벌 수 있는 막장은 광부에게 ‘희망’이었다. 그러니 ‘인생막장’이란 말은 틀렸다. 막장의 삽 한 자루로 온 가족이 먹고 살지 않았던가. 이건 독일이건 한국이건 우크라이나건 똑같다.

한편 우리를 안내해준 박물관 관계자의 말대로 루르 박물관에서 가장 포토제닉한 곳은 매표소와 전시실이 있는 아래층 사이 ‘계단’이었다. 어두운 계단 위로 은은한 붉은 빛이 강렬하다.
루르 박물관┃개장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12월24일, 1월1일 휴관)  입장료 6유로  홈페이지 www.ruhrmuseum.de


1 빅 에어 패키지의 꼭대기


2 오버하우젠 가소메터는 높이 117m, 둘레 67m의 대형 가스탱크다


가스저장탱크가 거대한 갤러리로
오버하우젠 가소메터Oberhausen Gasometer

25살의 브라질 기자 파멜라는 16살 때부터 자기와 결혼하자며 쫓아다녔다는 남자친구와 살고 있다. 단, 결혼은 하지 않은 채 한 살짜리 아기와 함께. 우문이란 걸 모르진 않았으나 왜 결혼식을 안 했느냐고 물으니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서류에 ‘사인’이라도 했지만 부모님은, 결혼식은커녕 사인조차 안하고 수십년째 살고 있어!” 

오버하우젠에 있는 ‘가소메터’는 간단히 말하면 가스탱크 또는 가스저장소다. 파멜라와 내가 이번 투어에 참가하면서 가장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가스탱크라곤 했지만 굉장히 큰 원통형 빌딩이다. 높이가 117m, 둘레는 67m다. 한때 철거를 시도한 적도 있지만 그도 쉽지 않을 만큼 덩치가 컸다. 1929년 지어진 가소메터는 1988년 제 역할을 다하고 가동을 멈춘 후 더 이상 아무 쓸모가 없을 것처럼 버려졌다. 하지만 1993년 가스탱크는 거대한 갤러리로 바뀌었다. 가스탱크가 갤러리로 재발견된 것이다.

빅 에어 패키지Big Air Package는 현재 가소메터에서 전시 중인 작품 타이틀이다. 우리말로 바꾸면 ‘큰 풍선 주머니’쯤 될까? 보통 큰 게 아니다. 풍선 안으로 수백 명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크다. 명실상부하게 세계 최대의 풍선이다. 간단히 말하면 거대한 가스탱크 안에 그만큼 큰 하얀 풍선을 만들었다.

이 기막힌 작품을 만든 이는 크리스토와 쟝 끌로드 부부다. 두 사람은 포장예술가, 또는 설치미술가로 불린다. 빅 에어 패키지를 ‘풍선’이라고 하건 ‘조각’이라고 하건 전세계의 실내 조형물 중 가장 크다. 크리스토 부부는 세상에서 제일 큰 풍선을 만들기 위해 2만350m2의 반투명 폴리에스테르 섬유와 4,500m 길이의 밧줄을 사용했다. 대략 33평 아파트 186채의 넓이를 합친 크기의 섬유를 이용했다. 풍선이 부풀려진 다음에는 높이만 90m, 무게만 5.3t에 이른다고. 

풍선 안의 산란광은 실내 분위기를 매우 고요하고 평온하게 만든다. 아예 쿠션에 기대 누워 이 세상에서 제일 큰 풍선을 바라보았다. 환상과 몽환이 어우러진 또 다른 신세계다.
풍선 아래층에선 크리스토 부부의 작업에 관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두 사람이 지난 50년 동안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보여주는 전시다. 세계 최대의 풍선을 만들기 전, 두 사람은 뭐든 포장해 버리는 예술가로 명성을 얻었다. 1985년에는 퐁네프의 다리를 하얀 천으로 싸 버렸다. 두 사람의 이름은 낯설어도 하얀 천으로 꼭꼭 감싸인 베를린 국회의사당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간혹 있다. 1995년 크리스토 부부는 베를린 국회의사당을 하얀 천으로 모조리 싸 버렸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하얀 천으로 포장되듯 싸였다’고 상상해 볼 수 있을까?

‘포장은 감추는 것이고 이는 독일 정치를 부정하는 것’이란 식으로 독일 국회에선 10년간 다양한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독일 국회는 국회의사당을 크리스토 부부에게 내주었다. 독일 국회가 존경스러운 대목이다. 두 사람으로선 1971년 이래 20년 넘게 추진해 온 프로젝트였다. 하얀 천으로 감긴 독일 국회의사당을 보기 위해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크리스토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작업을 보려면 빨리 오세요.” 두 사람의 작업은 영구히 보전될 수 없다. 전시가 끝나면 기껏해야 사진밖에 남지 않는다. 두 사람은 애당초 팔 수 없는 작품을 만들었고, 그들은 가난하게 젊은 날을 보냈다. 두 사람이 가소메터에서 전시를 하는 건 두 번째다. 1999년에는 1만3,000개의 기름통을 폭 68m, 높이 26m, 두께 7m로 쌓아올린 <The Wall>을 선보였다. 가소메터는 이처럼 매우 스펙터클한 이벤트 센터다. 

2003년에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작업이 전시되었다. 이렇게 가소메터는 다양한 종류의 예술적,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는 ‘독특한 프레임’을 제공한다. 가소메터가 없었다면 크리스토는 빅 에어 패키지 작업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미술, 음악, 연극 등 어떤 장르의 예술이건 이곳에서 낯선 공간이 주는 새로운 감각을 통해 재발견된다. 특별한 에너지를 가진 공간의 힘이다.

빅 에어 패키지는 올해 12월30일까지 전시된다. 크리스토의 말대로 가소메터의 풍선을 볼 날은 이제 반년밖에 안 남았다. 불가리아 출신 크리스토와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쟝 끌로드 부부, 1935년 6월13일생으로 생년월일이 같다는 두 사람은 평생을 함께했으나 2009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루르 지방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랜드 마크가 된 가소메터 타워에 오르면 오버하우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지상에서부터 타워까지 계단을 통해 걸어 올라갈 수도 있다. 총 계단 수는 592개. 계단을 오르는 여학생들의 몸짓이 싱그럽다.
오버하우젠 가소메터┃개장시간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입장료 9유로  홈페이지 www.gasometer.de/en


1 크리스토와 쟝 끌로드 부부의 사진. 오버하우젠 가소메터에선 부부의 작업에 관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2 베를린 국회의사당 프로젝트 3 빅 에어 패키지가 설치되는 모습 4 크리스토 부부의 첫번째 가소메터 작업인 <The Wall> 5 아예 드러누워 빅 에어 패키지를 찍고 있는 러시아 기자 알렉산더

‘스타일리시한 탄광’의 탄생
체혜 촐렌Zeche Zollern

1963년 1월 김포공항. 파독광부 1진 123명이 태극기를 들고 서독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들을, 남편을 이름도 낯선 이국땅으로 떠나 보내는 가족은 비행기를 향해 하염없이 손을 흔들었다. 공항은 온통 눈물바다로 변했다. 서독으로 떠나간 광부 대부분이 한국에선 고학력자들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그들은 살기 위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광부가 되었다. 대한뉴스는 “외화벌이를 하러 독일로 떠난 광부들에게 위문편지를 쓰라”고 국민들을 격려했다. 이렇게 떠나간 광부들은 이유가 무엇이건 쉽게 모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금년은 광부 파독 5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을 떠난 광부들이 도착한 곳이 내가 지금 서 있는 루르 지방이다. 우리 일행이 오늘 찾아온 체혜 촐렌 탄광도, 그제 돌아본 촐페라인도 한국 광부들이 일했던 곳이다. 이제는 탄광박물관으로 바뀐 체혜 촐렌에 들어서면 화려한 삼각형의 박공지붕과 으리으리한 붉은 벽돌 파사드의 건축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건물만 보면 탄광이 아니라 귀족의 저택처럼 보인다. 그 양 옆에는 철골조의 수직갱도가 의장대처럼 서 있다. 독일은 몇십년 전에도 노동자 광부들을 이렇게 배려했다. 이 건물은 ‘노동자들의 성’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빌딩 하나가 독일 경제의 과거를 아름답고 특별하게 증거한다.

박물관의 전시는 광부들이 얼마나 힘겨운 조건 속에서 일했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광부들이 입던 작업복에서부터 부츠, 수건, 목욕 솔, 다리미 같은 사소한 물건까지 모아 놓았다. 천장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작업복 세트가 눈길을 끈다. 박물관 관계자가 자물쇠를 풀고, 줄을 잡아당기니 작업복이 내려온다. 778번, 779번, 6145번…. 어쩌면 이 중에 한국 광부의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체혜 촐렌은 남자건 여자건, 독일인이건 한국 사람이건 이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중한 역사로 간직한다.

이제 체혜 촐렌에선 석탄 채굴과 세척 대신 박물관의 밤, 고령자 미팅의 날, 어린이날, 탱고의 밤, 특별한 장터 같은 다양한 문화 행사가 치러진다. 각종 회의도 이곳에서 열린다. 회의장소로 이곳을 빌린 사람들은 역사적인 분위기와 현대적인 장치 속에서 회의를 치른다. 수직갱도 타워 밑에서 하트 모양의 빨간색 풍선을 날리며 치르는 결혼은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다.

1960년대 탄광이 문을 닫자 한때 이곳의 모든 시설을 허물고 그 위로 고속도로를 깔아 버리려는 계획이 있었다. 다행히 1969년 독일에선 산업유산을 보존하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 체혜 촐렌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수십년 후 ‘스타일리시한 탄광 박물관’ 체혜 촐렌이 탄생했다.
체혜 촐렌┃개장시간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입장료 4유로 
홈페이지 www.ruhr-tourismus.


1 도르트문트의 탄광 박물관 체혜 촐렌 2 작업모를 쓰고 석탄을 들어 보이는 타이완 기자 쇼우미 3 전시실의 모습 4 자물쇠를 풀고, 줄을 잡아 당기면 천장에 매달려 있던 작업복이 내려온다


세계 최대의 광산 박물관
보훔 독일 광산 박물관Deutsches Bergbau-Museum Bochum

투어의 마지막 일정은 보훔의 독일 광산 박물관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광산 박물관이다.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광물자원에 관한 정보뿐만 아니라 탄광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매년 40만명이 이곳을 찾을 정도로 독일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적인 박물관 중 하나다. 가족 단위 관람객도 많다. 방문자 스스로 기계를 조작해 볼 수도 있다.
가이드는 갱도 속으로 들어가기 전 “실내라곤 해도 공기가 제법 차가우니 옷을 두툼히 챙기세요.” 하고 말한다. 탄광이란 말은 익숙하지만 탄광 속으로 들어가 보긴 난생 처음이다. 하긴 광부 외에 탄광에 들어가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브라질 기자 까멜라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갱도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호흡에 곤란을 느낀다며 급히 자리를 빠져나갔다.

어느 갱도 끝은 암석이 가로 막았다. 그러니까 절대 꿈쩍도 안할 것 같은 저런 암석을 뚫고 나가 석탄을, 철광석을 캤단 말인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가이드가 암석을 뚫는 기계를 작동시켜 보겠다 한다. “소리가 매우 크니 귀를 손으로 막으세요.”
엄청난 굉음이 갱도를 울린다. 갱도 안은 차갑고, 어둡고, 막막했다. 가도가도 끝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외로운 세계다. 수직갱도의 꼭대기에 있는 타워 전망대에 오르자 그제야 가슴이 탁 트인다. 광산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라는 타워에서 거세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보훔 독일 광산 박물관┃개장시간 화~금요일 오전 8시30분~오후 5시, 토·일요일·공휴일 오전 10시~오후 5시  입장료 6.5유로  홈페이지 www.ruhr-tourismus.de/4


1 천장에 매달려 있는 작업복 세트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2 보훔 독일 광산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라는 전망대 3 가이드가 암석 뚫는 기계를 작동시켜 보고 있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독일관광청 www.germany-tourism.de, 루프트한자항공 www.lufthansa.com/kr

epilogue 
루르 지방의 산업문화유산은 단순하게 보전되거나 재활용된 게 아니다. 도시를 재개발하는 데 돈이 아니라 문화에 중점을 두었다. 돈을 좇는 대신 문화를 좇자 아이러니하게도 관광객이 몰려들고 돈이 따라왔다. 우리나라 탄광 지역에서는 카지노에 몰두한다. 우리 부모들이 살아온 고된 삶의 기억은 완전히 잊고, 대놓고 돈을 좇는다. 그후 거리는 전당포로 가득 찼다. 카지노 하나 짓는 것으로 지역이 재생될 수 있을까? 독일의 산업유산은 우리가 잊고 버린 것, 부모들의 기억, 과거의 흔적을 살려내 보여준다. 루르 지방의 박물관은 광부가 쓰던 자전거 한 대, 안전모 하나를 소중히 간직한다. 오늘의 그들을 있게 한 과거의 기억을 잊지 않고 살겠다는 마음이다. 제철소와 탄광은 문을 닫았지만 지난 시간은 이렇게 기억된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유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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