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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음식단상] 술 익는 가을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3.10.01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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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가을이 저 하늘을 지나야 마음을 놓겠는가!
휘발성 짙은 파란 하늘이 곧 사라져 버릴 것 같아 해마다 가을이면 마음이 하늘을 붙잡는다.
언제나 착할 것 같은 대한민국 가을 하늘을 보고 있으면 그리움이 깊어진다.
순수한 웃음으로 순수한 믿음을 나누었던 하늘 같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술이 추억 속에서 익는다.
 

파도 부서지는 갯바위에서
그 순수한 공기를 마시며
해산물 안주에 즐기는 소주 한 잔은 파란 가을 하늘처럼 상쾌하다.
 
제주 갯바위 해변 노천 술집 | 순수해서 순수한
제주의 공기는 순수하다. 사람 마음마저 깨끗하게 해주는 것 같다. 몇 해 전 남자 셋이 떠난 제주도 여행, 성산일출봉 아래 푸른 초원 목책을 따라가면 바다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 아래에 해녀의 집이 있다. 퇴적과 융기 침식의 과정을 거친 제주도 바닷가 절벽의 신비로운 풍경 앞으로 파란 바다가 펼쳐진다. 물결마다 빛나는 은파금파 눈부신 바다와 온몸을 휘감는 순수한 공기로 숨을 쉬며 마시는 한 잔 한 잔, 그리고 신선한 해산물들. 순수한 소주와 해산물 앞에서 만난 순수한 햇빛 순수한 바다 순수한 바람 순수한 공기 순수한 웃음 순수한 믿음. 제주 해변 갯바위 곳곳에 노천 좌판이 있는 데 성산일출봉 아래 해녀의집과 용머리해안이 갯바위 좌판이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술은 동동주다.
오래 전 고등학교 동창 어머니 회갑연에서 맛본
동동주는 세계 최고의 술맛이었다.
 
경기도 용인 민속촌 동동주와 더덕구이 |동동주의 참맛
약간의 점액질이 있는 참기름처럼 맑고 노란 빛깔의 그 액체가 잔에 담기는 순간 은은한 술 향이 좁은 방에 퍼지고, 고개 돌려 마신 한 잔의 술맛에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그 술은 어머니께서 직접 담그신 동동주였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 안 계시니 그 술맛을 어디에서 볼 수 있단 말인가. 세월은 흘렀고 우연한 기회에 찾아간 용인민속촌 안 장터 주막에서 옛날 친구 어머니의 동동주 맛과 약간 비슷한 동동주를 만났다.  친구 어머니의 동동주 맛은 아니더라도 멀지 않은 곳에 세계 최고의 맛과 풍미를 추억할 수 있는 동동주가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된다. 민속촌 장터 주막 동동주와 가장 잘 어울리는 안주는 더덕구이다. 술 익는 시간만큼 그리움도 깊어지려나! 시골마을 회갑잔치에서 동동주를 나누어 마시던 그 친구들은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고운 빛깔과 은은한 향기,
진하고 깊은 풍미로
시작한 맛의 향연이
입 안 가득 퍼지며
풍부한 감칠맛을 낸다.
 
 

전통주 ‘동몽’은 깊고 진하고 은은하다.
질 좋은 와인과 샴페인 청주의 맛이 ‘동몽’ 한 잔에 모두 담겨 있다.
 
강원도 홍천 ‘동몽’ | 깊고 진하고 은은한 풍미
‘동몽’은 전남 광주 송학곡자에서 만든 누룩과 홍천에서 나는 찹쌀과 단호박으로 빚는다. 약 5개월 정도 발효·숙성해야 맛이 제대로 나는데, 그 첫 번 과정은 이른바 ‘보쌈실’에서 이뤄진다. 옛날 구들장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씌우고 발효시켰던 방식 그대로 27~28도를 유지하는 방에 술항아리를 놔두면 발효의 70%가 이뤄진다. 그 다음에는 18℃의 저온장기발효실에서 80일 가량 발효·숙성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의 기온을 유지하는 저장실에서 60일 정도 지나면 맛이 완성된다. ‘동몽’은 와인잔에 따라 마셔야 제격이다. 고운 빛깔과 은은한 향기, 진하고 깊은 풍미로 시작한 맛의 향연이 입 안 가득 퍼지며 풍부한 감칠맛을 낸다. 동몽은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지하에서 판매한다. 술 빚는 곳은 강원도 홍천에 있다. 033-435-1120
 
구들장 아랫목 따뜻한 데 골라 앉은 A의 엉덩이가 파전처럼 퍼졌다.
두 되들이 막걸리 주전자에서 마지막 한 잔을 따른 A는 주모를 부른다.
 
경북 예천 삼강주막 막걸리 한 상 | 이 시대 마지막 주막
그랬다. 주막 부엌, 시커멓게 그을린 벽이 외상장부였다. 외상 한 번에 사선 하나. 그렇게 모인 사선 가운데로 쭉 그은 줄은 외상을 갚았다는 표시였다. 주막에 들른 A의 주머니에는 외상술값이 있었다. “내 오늘은 돈 먼저 드리리다. 장부 지우고 남는 돈만큼 술 가져오드라고!” 가끔은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를 기다리는 모양으로 앉아 있을 때가 있다. 혼자인 것이 두려워, 외롭고 쓸쓸함을 견디지 못하고 길거리로 나가지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더 외로워진다. 그게 도시가 우리에게 남겨 준 것이다. 한적한 시골마을이거나 자연의 품속이라면 혼자라는 게 가끔은 여유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여유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의 시작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하루 시골 허름한 주막에 앉아 있고 싶었다.
삼강주막 054-655-3132
 

엊그제 마신 술이 왜 이리 생각나는 걸까!
아마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눈 술 때문이리라.
 
전남 목포 인동초막걸리 | 부드러움이 품고 있는 인내의 맛
목포에 가면 인동초를 넣어 만든 인동초막걸리와 인동초평화주(맑은술)가 있다. 인동초막걸리는 노란 색이다. 술이 순해서 술 잘 못 먹는 사람도 한두 잔 정도는 먹을 수 있을 거 같다. 인동초평화주(맑은술)는 맛이 풋풋하고 순수하다. 인동초막걸리와 인동초평화주는 어떤 안주와도 다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홍어삼합 또는 낙지요리와 함께 먹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인동초는 겨울에도 말라 죽지 않는 식물이다. <인동초>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시가 있다. 김대중 선생의 대통령 취임을 기념하기 위해 시인 박춘수 선생이 지은 시다.
길고도/끈질긴 인동초/차거운 얼음장 뚫고/모진 비바람/광풍에도 살았으니/기다림에 지친/이 산하에/…/뿌리내려/땅 덮고/하늘 손짓하도록/피우리라 피울 것이다./통일의 꽃으로
인동주마을 061-284-4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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