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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음식단상] 내 입맛의 환절기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3.11.13 1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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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준비하는 분주한 거리에 각오 없이 맞이하는 찬바람이 한겨울보다 매섭다.
입맛은 계절보다 먼저 변한다. 세상의 불빛이 따뜻해 보일 때 입맛은 겨울에 가 있다.
겨울, 너는 이미 늦었다.
 

벌교에서 가까운 순천낙안읍성
초가집에서 하룻밤 묵었다.
마침 초가집 주인 할머니 아들 가족이
놀러왔는데 가족만찬으로 준비한 게
벌교꼬막이었다.
 
 
서울 서촌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꼬막 |
“꼬막이 꼬막 맛이지!”

먹을 것은 꼬막 한 양동이뿐, 마당 드럼통에 불을 피우고 가로 세로 1m도 넘어 보이는 철망을 그 위에 턱하니 올려놓더니 와르르 꼬막을 위에 붓는다. ‘하! 저렇게 먹어야 제 맛이지!’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 둘레에 민박집 할머니와 아들 며느리 손자들이 빙 둘러 서서 꼬막을 구우며 ‘허허’ ‘하하’ ‘깔깔’ 웃으면서 먹는다. 우리는 그 옆에서 고기를 굽는데 ‘꼬막’에 ‘고기’가 밀린다. 고기 꼴이 말이 아니다. 마음을 읽었을까? 민박집 할머니 아들이 꼬막을 같이 먹자는 거다. 꼬막철이면 손님들과 꼬막을 함께 먹기도 한단다. 흔치 않은 기회를 얻은 우리는 행운아였다. 그리고 몇해 전에 서울 서촌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술집에서 벌교꼬막을 만났다. 가게 문에 붙은 ‘벌교 직송 꼬막’이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입 안에 침이 돌면서 낙안읍성 그날 꼬막 맛이 입에 가득 찼다. 꼬막 구이가 아니라 꼬막 데침이었지만 짭조름한 간에 해초 향 강한 바다의 맛, 갯벌냄새, 탱탱하고 쫄깃한 씹는 맛, 씹을수록 낙안읍성 인심 좋은 그 초가집 마당 향기가 우러나는 것 같다. 서촌계단집 02-737-8412
 
 

 
만두는 겨울 음식이고 그 겨울의
한복판에 설날이 있다.
만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추석 때도
만둣국을 찾는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인천 신포시장 화덕만두 | 뜨거운 육즙 
역시 만두 중 최고는 설날 먹던 만둣국이다(떡만 넣은 떡국을 차례상에 올리는 지방도 있다). 하지만 설날까지 어떻게 기다리겠는가! 찬바람만 불면 엄마를 졸라서 만두를 해 먹었다. 열두살 때였나? 야구공 크기의 만두 예닐곱개는 기본이었다. 지금도 그 입맛은 그대로여서 만둣국 군만두 찐만두 물만두… 만두라는 이름이 들어간 음식을 사랑한다. 심지어 만두 소와 비슷한 맛이 나는 크로켓도 좋아한다. 그런데 몇해 전 인천 신포시장에서 만난 화덕만두라는 게 만두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 만두와 크로켓을 조합한 맛이랄까? 화덕에서 건식으로 구워내기 때문에 소를 감싼 빵이 바삭하고 고소하다. 빵 속에 들어있는 소는 만두와 크로켓 맛이 섞였다. 하지만 화덕만두의 독특한 맛은 한 입 베물면 새어나는 만두즙이다. 기름기 섞인 뜨거운 만두즙이 여러 재료가 어우러진 만두소의 풍미를 품고 입에서 확 퍼진다. 화덕만두는 식기 전에 다 먹어야 한다.
향아리 032-777-1443
 
 

어려서부터 갈치를 좋아한 이력은
아직도 이어진다.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나이부터 갈치를
먹었다고 하니 갈치를 잘 발라먹는 방법쯤은
어린 나이에 혼자 터득할 수 있었다.
 
목포 갈치조림┃또 있었네, 밥도둑
갈치를 잘 먹으려면 우선 갈치 토막의 등과 배 부분을 젓가락으로 콕콕 찌른다. 그쪽에 가시가 있기 때문이다. 살점을 최대한 많이 남기도록 등과 배 라인에 가장 가까운 곳에 이른바 ‘젓가락 콕콕 점선’을 찍는 거다. 그런 뒤 점선을 따라 젓가락으로 가시 부분을 제거 한다. 제거한 가시 부분에도 살이 남아 있으니 가시부분을 입에 대고 살점을 발라 먹는다. 가시가 분리된 갈치는 가운데 굵은 뼈만 남게 되는데 그 뼈 앞뒤로 하얀 살점이 고스란히 붙어 있다. 젓가락을 최대한 갈치 뼈와 수평이 되도록 눕혀서 갈치 살과 뼈 사이로 넣어 오므린다. 그러면 젓가락 위에 맛있는 갈치 살이 통째로 올라온다. 그렇게 한 입 먹으면 입 안이 풍요롭다. 중요한 것은 살이 많이 없는 꼬리 부분인데 바짝 튀겨진 경우에는 뼈째 씹어 먹는 맛이 기가 막히다. 갈치의 고장 목포에서 물 오른 생물 갈치로 만든 갈치조림을 먹었다. 갈치, 배춧잎, 고구마줄거리, 무, 갖은 양념이 들어간다. 이때 배춧잎은 한 번 살짝 삶아서 넣는다. 양념과 갈치의 맛이 조화롭다. 무와 배춧잎, 고구마줄거리에 양념 맛이 진하게 스며들었다. 밥 한 술 입에 넣고 갈치 살과 양념 잘 밴 갖은 야채를 함께 집어먹어야 제 맛이다. 밥도둑이 따로 없다. 초원음식점 061-243-2234
 
 
탄광일, 석탄일, 고된 노동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했다.
단순하게 말해서 돈 많으면 쇠고기
먹는 거고 돈 없으면 돼지고기 먹는 거였다.
 
태백돼지갈비┃돼지갈비의 탄생
태백은 석탄 때문에 생긴 도시다.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정책에 따라 많은 탄광이 문을 닫게 되면서 이 지역 석탄산업 및 지역경제 자체가 뿌리째 흔들린다. 폐광에 따른 문제 해결을 위해 정책 발표 2년 전인 1987년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을 만들어 다양한 방안을 제시 실행했는데 석탄산업종사자 및 그 가족들, 나아가서 지역 주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거다. 석탄산업 호황기에 태백에는 쇠고기와 돼지고기 등을 파는 식당이 즐비했다. 이렇게 산업전사 탄광 노동자들의 입맛에 태백 돼지갈비가 생겼다. 태백에 가면 돼지갈비를 먹어야 한다. 돼지갈비는 양념 맛이 그다지 달지 않다. 물론 단맛이 돌긴 도는데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거기에 전체적으로 양념이 잘 스며들었다. 고기 한 입 먹는데 양념 맛 뒤에 퍼지는 육즙 맛이 고소하다. 연하지도 않고 질기지도 않은 육질도 맛에 한몫한다. 태백 특산품 고랭지배추가 나오는 날이면 돼지갈비를 더 먹게 된다. 고랭지배추가 아삭 상큼 고소 달큼 시원하다. 조선옥 033-552-5631
 
장태동의 음식단상 <맛골목 기행>, <서울문학기행>의 저자 장태동 작가의 맛깔스러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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