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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의 ‘끼’를 노래하다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4.02.06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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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가 도착했다. 유일한 산촌형 슬로시티에다가 청송 사과, 송소고택, 주왕산도 유명하고, 주산지도 유명한데, 어쩐지 제 이름 홀로는 맹맹했던 청송이 이제 막 ‘끼’를 발산하기 시작했다는.

청송장난끼공화국에 전시되어 있는 청송백자

청송 심씨가의 아흔 아홉 칸 송소고택

작은집 송정고택의 삽살개 복돌이

심증옥 여사가 소담하게 담아 놓은 송정고택 툇마루의 호박들

 

조상님, 덕 말고 끼를 주소!


고속버스를 타고 안동까지, 거기서 다시 한 시간을 더 달렸다. 졸음에 시달린 마지막 한 시간이 꽤나 좌충우돌이었던 것을 보면 어떤 길을 달렸는지 안 봐도 뻔했다. 경상북도 청송이다.


오지라는 인식이 강한 청송을 널리 알리고 싶었던 한동수 군수. 몇해 전 그를 만난 자리에서 남이섬 강우현 대표는 “조상 팔아서 먹고 살지 말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자”고 말했다.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그러하듯 과거의 유산, 전통의 복원에만 연연하는 관행을 답습하지 말자는 뜻이었다고. 그 충언이 받아들여진 결과물이 지난해 12월27일 청송 월외리의 폐교를 개조해 출범한 청송장난끼공화국이었다. 일화를 듣고 보니 청송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모두가 궁금해지고 말았다. 예술과 과학이 융합하고, 문화와 관광이 결합하는 창조관광지라니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지만 강우현 대표가 일군 남이섬의 혁신이 있지 않은가. 선조들의 풍류도 결국은 일종의 잉여와 장난끼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끼’는 이미 우리 핏속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목재를 재활용해 멋들어지게 변신한 장난끼공화국의 중앙청사, 그 안에 전시되어 있는 제1회 대한민국장난끼발명작품공모전 입상작들도 작은 힌트가 되어 주었다. 지난해 대상은 축수선수 박지성의 자서전을 축구화 모양으로 변형한 ‘꿈은 이루어진다(박준혁)’는 작품이었다. 스포츠와 문학 그리고 디자인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구석구석 장난끼가 가득한 청송장난끼공화국 중앙청

지난해 장난끼발명작품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 박지성 자서전을 축구화 모양으로 제작했다

지난해 열린 대한민국 상상엑스포에 사용됐던 목재를 재활용해 폐교를 멋스럽게 꾸몄다

 

송정고택 심증옥 여사


"남편이 은퇴하고 귀농을 계획하면서도
고향집은 서울과 너무 멀어서 생각도 안 했었어요.
내려와 보니 여기선 저희가 아직도 청년이네요.
20년 남이 살다가, 20년은 빈집이었는데 싹 고쳐서
오시는 손님마다 참 좋아하세요.
손님들 환갑, 칠순, 팔순 다 해드렸는데
국악전공한 우리 아이들이 와서 공연도 해주고 그래요.
시골이라 적적할 때도 있지만 겨울에는
매일 솔기온천에 가서 몸 담그는 재미도 좋습니다."

 
1 송소고택은 한국관광의 별로 지정되기도 했다 2 청송백자를 만들던 사기움을 재현한 곳에서 도석을 디딜방아로 찧는 모습 3, 4 청송에서 나는 도석으로 만든 백자는 얇고 가벼워 생활자기로 인기가 높았다
 
5 송정고택 사랑방의 툇마루 6 역사소설 <객주>의 이야기가 담길 객주문학관은 마무리 공사 단계다 7 잘 말렸다가 장터에 들고 나온 시골곶감 8 진부장터의 생선전 9 송정고택 안방 툇마루에 놓인 모과
 
 

청송백자 사기장 고만경 옹
"열다섯 살부터 사기공방에 들어가 15년 동안
여러 어르신들께 백자를 배우고 사기대장 노릇도 했었지만,
공장제품에 밀려서 1958년에 공방이 문을 닫고 말았어.
방앗간, 화전민, 행상, 농막일 등으로 먹고 살아야 했었지.
내 대에서 맥이 끊길 뻔했던 청송백자가
다시 전승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기운 센 청송 심씨 고택마을


조상님은 그만 팔자고 했지만 잘난 조상님을 어찌 숨기랴. 청송 덕천리에는 경주 최씨와 함께 ‘영남 부자의 양대 산맥’을 이뤘던, 청송 심씨 가문의 집성촌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 <1박2일> 촬영팀도 묵어 갔던 송소고택松韶古宅, 중요민속문화재 250호의 주인이라고 설명하면 더 쉽게 와 닿을 것이다. 아흔아홉칸 고택이 증명하는 것은 심씨 가문의 위세다. 조선 영조 때의 만석꾼 심처대가 일구어낸 부는 7대손인 송소 심호택 대까지 전해져 1880년에 이 고택을 세우게 했다. 2003년부터 고택체험 시설로 개방하고 있는데 2011년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체험형 숙박 부문에서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되기도 했다. 덕천리에는 송소고택 말고도 6채의 숙박 가능한 한옥들이 있는데 마을 뒷동산에 올라가 바라보면 나지막한 집성촌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막상 숙소로 잡은 곳은 큰집 송소고택이 아니라 심호택의 둘째 아들 송정공 심상광이 살던 작은 집 송정고택이었다. 40년 서울살이를 접고 두어해 전 남편과 함께 귀향한 심증옥 여사의 꼼꼼하고 다정한 안목이 별보다 빛나서 요즘 인기가 높아진 집이다. 3살짜리 삽살개 복도리가 순하고 예뻐서 낯선 집에 들어선 아이들도 금방 웃는 낯이 되고, 심 여사의 다정한 환대에 감동한 어른들은 단골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 1959년 송정고택의 사랑방에서 한 달여를 묵고 가셨다는 철기 이범석鐵驥 李範奭, 1900~1972 장군이 부친 심명섭 어른께 선물한 글씨와 함께 찍은 사진이 아직도 사랑방에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기가 좋은 방’으로 소문이 나 임산부가 일부러 찾아와 묵어가기도 했단다.

 

외씨버선 넘나들던 보부상들


부유한 구매자들이 있는 곳에 상인들도 많았을 것이다. 19세기 등짐과 머릿짐을 지고 고개 넘어 장터를 떠돌던 보부상들의 애환을 재현한 역사소설 <객주>의 작가 김주영 선생은 청송 출신이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놀이터 겸 인생학교가 바로 진부오일장이었다. 그래서 <객주> 문학여행 코스에 빠지지 않는 곳이 진부장터지만 대부분의 재래시장이 그러하듯 이곳도 멋 없이 정비되어 버렸다. 그 아쉬움을 ‘뻥’하고 날려버린 것은 어디선가 날아 온 대포 소리. 콩, 옥수수, 먹다 남은 떡국 떡까지 한 봉지씩 들고 와 튀겨 달라고 줄 서 있는 주민들 때문에 뻥튀기 가게는 장날도 아닌 한적한 시골장터에서 가장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10분만 기다리면 다시 뻥하고 대포가 터지나 했더니 지금 돌리는 것은 증기를 배출해 버리는 ‘물차’란다. 잘 튀겨진 옥수수차 한 통이 와르르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국밥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시골 장터에서 먹는 국밥 한 그릇은 허기만 채우는 것이 아니다. 먹성 좋게 뚝배기를 싹 비우고 사라진 청년의 뒤 꼭지만 보고도 “쟈가 아무개 집 아들이네…”를 알아맞히는 ‘마을’이라는 가족. 시골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인정 넘치던 시대의 이야기는 진보장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객주문학관에 담길 예정이다. 마무리로 정원공사가 한창이던 문학관은 폐교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됐다. 객주문학관, 객주문학마을, 객주문학길로 구성될 객주문학관광테마타운의 실체가 보인다. ‘청송 꿀 사과’라고 적힌 상자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김주영 선생이 사진 속에서 이미 활짝 웃고 있었다.


보부상들이 죽치고 묵어 갔던 객주는 청송백자전수장에도 있다. 가마에 불을 넣는 날이면 전날부터 모여든 등짐상들로 북적였던 곳이다. 흙이 아니라 ‘도석을 빻아 만드는 청송 백자는 얇고 가벼울 뿐 아니라 심플하면서도 기품 어린 매력 때문에 홀딱 반하기 십상이다. 막사발 등 생활도자기였으나 생산량이 적은 만큼 물량 확보를 위해 보부상들도 미리 접수를 하고 줄을 서야 했던 것. 사기장 고만경 옹과 2명의 전수자 윤한성, 안세진씨가 지키고 있는 전수장에는 500년 전 모습으로 복원한 사기움(공방)과 새로 지은 공방,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사기굴(가마)과 전시장 등이 있다. 전수관 옆 벼랑이 도석을 캐던 채석장이고 옛 광산도구들도 볼 수 있다.


보부상들이 걸었던 길과는 다르지만 배낭 메고 가볍게 걸을 만한 외씨버선길의 출발점도 청송에 있다. 그 버선의 ‘코’쯤에 자리한 주왕산해발 720m을 시작으로 영양, 봉화, 영월로 이어지는 240km의 대장정이 외씨버선을 닮았다는 말은 개그맨 전유성씨에게서 나온 것이었다고. 총 13개의 코스 중 3개의 코스(주왕산·달기약수탕길18.5km, 슬로시티길11.5km, 김주영객주길15.6km)가 청송에 속해 있다.

 

야송 이원좌 화백
"사람이 산다는 것이 여러 사람의 도움이라.
<청량대운도>도 그런 크기의 창고가 구해지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것이었지. 작품이 크니까 아예 손발,
얼굴에 붉은 물감을 바르고 오체투지로 낙인을 찍었지.
허허. 외국 사람들도 와서 보면 입이 쫙 벌어져.
너무 좋다고 막 껴안고 그러면, 참 어쩔 줄을 모르겠어."

 

찌릿찌릿, 보들보들 물이야기


걷다 보면 가장 당기는 것이 시원한 물이다. 물 좋은 대한민국이 옛말이라 느껴질 정도로 집집마다 정수기물을 마시니 미네랄, 철분이 풍부한 약수는 생소해진 지 오래. 이름 때문에 달달한 맛을 기대했다면 찌릿하고 찝찌름한 맛에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마시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것이 청송의 달기약수탕이다. 조선 철종 때 부곡리를 흐르던 괘천 주변에서 발견된 천연탄산 암반수는 지금도 솟아오르고 있다. 상탕, 신탕, 중탕, 원탕 등의 이름으로 300m 일대에 퍼져 있는 약수탕 주변에는 서울, 대구 등의 이름을 붙인 여관식당과 수통을 쌓아놓고 파는 점포들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위에 좋다는 약수의 효험이 탁월하여 며칠씩 묵으며 보양하는 사람들의 발길도 조선시대부터의 일이다.


약수 외에도 청송의 물을 즐기는 방법은 3가지가 더 있다. 첫 번째는 약수로 만들어 야들야들하기로 정평이 난 백숙. ‘다양하게 맛보시라’는 권유로 가장 유명하다는 서울여관식당을 제치고 백숙과 닭갈비, 토종닭튀김이 세트로 나오는 동대구식당을 골랐다. 정갈하게 나오는 밑반찬들도 하나같이 입에 착착 붙어서 젓가락 놓기가 아쉬울 정도. 두 번째 방법은 특등급으로 분류되는 알칼리성 중탄산 나트륨천인 솔기온천에 몸 담그기다. 백숙에 물이 왜 중요한지를 솔기온천에서 깨달았다고 하면 매끈매끈한 온천수의 느낌이 잘 전달될까 모르겠다. 좋은 물, 좋은 재료가 있는 곳에 어찌 좋은 술이 없으랴. 세 번째는 배상면주가의 야심작 ‘아락’으로 물을 만나는 것이다. 아락은 나주배, 하동녹차, 단양마늘, 완주감 등 지역특산물로 만든 증류주 시리즈로 청송에서는 당연히 청송 사과를 주재료로 했다.

 

청송이 산을 대하는 자세


사과향 그윽한 술을 청송백자 잔에 부어 홀짝홀짝 넘기다 보니 문득 야송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화가들은 술에 약해. 한잔 걸치면 속없이 그림을 척 내놓고 하니 말이야.” 청송 출신 산수화의 대가인 야송野松 이원좌 선생이 건네시는 농담은 자신을 향한 것인지, 야송미술관에 그림을 기증한 다른 화가들을 놓고 하는 말인지 헛갈린다. 청송의 주왕산은 물론이요, 지리산과 금강산, 중국의 계림을 오가며 한평생 붓과 함께 살아 온 그를 위해 청송군은 2005년 폐교를 개조해 군립야송미술관을 설립해 주었다. 서울 정도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린 <주왕운수도周王雲水圖>와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하여 그린 <무릉하운도武陵夏雲圖> 같은 대작(12m×2.4m)들이 여기에 걸렸다. 그리고 지난해 9월에 추가로 청량대운도 전시관을 개관했다. 지난 1992년에 서울천도 600주년을 기념해 거의 반년 만에 완성한 <청량대운도淸凉大雲圖> 한 작품을 걸기 위해 건물을 새로 하나 지은 셈이다. 청량산을 바탕으로 완성한 세계 최대 크기의 20폭(48m×6.7m) 산수화가 20년 수장고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발 뻗을 집을 찾았다. 야송 선생의 기개도, 청송군의 존경심도 대단하다.


압도적인 크기의 그림을 보고 있으니 산에 갈 필요 없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기암괴석 사이마다 패인 골짜기에는 청수가 흐르고, 숲 이 우거진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여름에도 서늘하여 최고의 피서지로 꼽히는 청송 부동면 얼음골은 겨울에 아예 빙벽장으로 바뀌어 버린다. 수년째 청송군이 유치하고 있는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및 아시아선수권 대회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겨울 스포츠. 지난 1월11~12일에 2014년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으니 5년간의 유치기간은 내년이 마지막이지만 청송군은 이미 재유치 의사를 밝힌 상태다.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는 러시아 선수들 사이에서 박희용과 신윤선 등 한국의 간판선수들도 매년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개발이 더딘 만큼 자연이 수려한 청송은 자전거, 패러글라이딩, 모터사이클, 클라이밍 등 산악스포츠 유치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현대의 실경산수화를 그린다면 괴암괴석 골골마다 자일에 매달린 클라이머와 MTB를 타고 내려오는 바이커들, 도하를 시작하는 패러글라이더들이 등장해야 하지 않을까. 장난끼 가득한 상상력이 스무폭 화폭보다 멀리 펼쳐진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청송군 www.cs.go.kr

 

조선 철종 때 발견된 달기약수탕은 여전히 괘천 일대에서 넉넉하게 용출되고 있다

 무려 20폭이나 되는 대작 <청량대운도> 한 작품을 걸기 위해 청송군은 전시관을 새로 만들었다

높이 20여 미터의 고송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청송 목계솔밭

 부동면 얼음골에서는 4년째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이 열리고 있다

높은 기량을 자랑하는 러시아 선수들

자연 빙벽은 선수들의 기량을 비교하기 어려워 인공빙벽을 사용한다

 

▶travie info  


송정고택┃주소 경북 청송군 파천면 송소고택길 15-1  방 6개(수용인원 25명)  요금 7만~15만원  조식 소슬밥상(마을식당) 1인 8,000원  문의 054-873-6695
청송백자전수장┃주소 경북 청송군 부동면 법수길 190  문의 054-873-7744 www.csbaekja.kr
동대구식당┃주소 경북 청송군 청송읍 부곡리 299-18  문의 054-873-2563  메뉴 토종닭+떡갈비+백숙 한상차림(2~3인용) 4만원
청송솔기온천┃주소 경북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69-2  문의 054-874-7000  요금 대인 6,000원, 소인 3,000~4,000원
군립청송야송野松미술관┃주소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신촌리 46-3 옛 신촌초등학교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동절기 오후 5시까지)  관람료 무료  문의 054-870-6535~6
외씨버선길 청송객주 | 주소 경북 청송읍 월막2리 381-4  문의 054-872-0116 www.be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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