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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음식단상] 낙엽 같은 천원 두 닢으로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4.11.05 1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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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저녁 도심의 낙엽이 먼지와 엉겨 나뒹군다. 
바람에 쓸려 가다가 종종걸음 바짓단에 묻어 
뒷골목 식당에 든다. 
춥고 배고픈 날, 낙엽 같은 천원 두 닢으로 
따뜻한 식탁 한 자리 얻는다. 
허기가 가난이라면 차라리 낫겠다.  
 

황태국도 2,000원
이른바 ‘2,000원 거리’는 메뉴나 가격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우거지얼큰탕, 선지해장국, 황태국 등 식당마다 대표 메뉴가 다르다. 그런데 가격은 다 2,000원이다. 그러니 식당을 선택하는 것은 손님의 몫이다. 그날 입맛과 상황에 따라 메뉴를 고르면 식당은 자연스럽게 선택되는 것이다. 황태식당은 황태국을 찾는 사람이 많다. 황태포에 두부를 넣은 맑은국인데 멸치로 육수를 냈다. 반찬은 김치 하나다. ‘2,000원 거리’에는 아욱국을 파는 식당도 있는데 아쉽게도 아욱국은 500원 더 비싼 2,500원이다.   
낙원상가 부근 ‘황태식당’  
황태국 2,000원 
 

2,000원 거리 고향집 
선지해장국
지하철 종로3가역 5번 출구로 나와 낙원상가 쪽으로 가다 보면 ‘종로17길’을 만날 수 있다. ‘종로17길’은 이른바 ‘2,000원 거리’다. 2,000원에 따뜻한 국물과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몇 곳 있기 때문에 이름을 그렇게 붙여 봤다. 소문난집의 우거지얼큰탕은 60년 세월만큼이나 널리 알려졌다. ‘고향집’은 선지해장국 등 몇몇 음식이 2,000원이다. 소뼈 우린 국물에 선지국을 끓였다. 김치가 곁들여진다. ‘왜 이렇게 싸게 파느냐’는 질문에 주인아저씨는 “여기 계신 분들 보세요. 연세 많으신 분들이 편하게 앉아서 따뜻한 국물에 밥 한 끼 먹는 게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하신다.  
낙원상가 부근 ‘고향집’  
선지해장국 2,000원 
 

가마솥에서 탕이 끓는다
상대적 빈곤감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때는 한겨울이 아니라 겨울 초입, 11월이다. 겨울 준비에 마음이 분주한 사람들 틈에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등이 먼저 시리다. 칼날 같은 새벽 공기, 을씨년스러운 저녁 어스름 그리고 어둠도 감추지 못하는 흔들리는 형광등 불빛까지 다 녹아 끓고 있는 가마솥이 있다. 종로3가 낙원상가 부근에 가면 우거지탕이 가마솥에서 끓는다. 2,000원이면 추위를 녹이고 허기를 달랠 따뜻한 국물 한 그릇에 고슬고슬한 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 반찬은 깍두기 하나지만 사골국물에 우거지를 넣고 얼큰하게 끓인 ‘우거지얼큰탕’이 그 이름처럼 화끈하다.
낙원상가 부근 ‘소문난집’  
우거지얼큰탕 2,000원 
 

1,000원의 행복 
1,000원으로 찾을 수 있는 행복 중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배고픈 날이라면 당연히 허기를 채우는 일이겠다. 1,000원으로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 그 흔한 김밥도 요즘 유행하는 ‘컵밥’도 다 소용 없는 일이다. 광명시장에 가면 1,000원으로 허기를 달래 주는 잔치국수를 먹을 수 있다. 잔치국수, 그 이름 참 좋다. 그야말로 1,000원으로 ‘잔치’ 같은 국수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양이 좀 적지만 따뜻한 국물로 속을 녹이고 시장기도 달랠 수 있다는 게 어디냐. 주머니 좀 넉넉하면 1,000원 더 보태서 2,000원짜리 비빔국수를 드셔 보시라! 양도 좀 더 많고 찬 국수에 속 차가워질까 따뜻한 국물도 곁들여 낸다. 
광명시장 ‘진도식당’ 
잔치국수 1,000원, 비빔국수 2,000원   
 

짜장면이 1,500원
짜장면은 추억으로 먹는 음식이다. 그런데 가격은 추억 속 그 가격이 아니다. 요즘 짜장면은 보통 5,000원 정도 하고, 유명하다 싶은 곳은 그보다 더 한다. 이래서야 어디 짜장면을 짜장면으로 부를 수 있으랴. 같은 동네에서도 짜장면 가격은 두 배 정도 차이가 난다. 이런 가운데 가격도 추억 같은 짜장면집을 발견했다. 동묘앞역 부근에 가면 1,500원짜리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집이 있다. 내 추억을 지배하는 짜장면 가격은 500원이지만 요즘 같은 짜장면 가격을 생각하면 1,500원도 추억일 터, 밥때 되면 사람들이 번호표를 받아 들고 기다렸다가 먹는다. 우동도 1,500원이다. 짬뽕은 너무 비싸서 2,500원이다.   
동묘앞역 부근 ‘짱짜장’  
짜장면, 우동 1,500원   
 

콩나물 먹어야 키가 큰다
“콩나물을 많이 먹어야 키가 쑥쑥 큰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붓던 어머니 모습이 생각난다. 콩나물은 키가 쑥쑥 자랐다. 그러니 나도 콩나물을 먹으면 키가 쑥쑥 자란다고 믿을 수밖에…. 어렸을 때 콩나물밥을 자주 먹었다. 콩나물밥을 먹는 날이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었다. 고추장과 양념간장만 있으면 끝이었다. 대접 바닥을 긁는 소리는 행복감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소리였다. 동묘앞역 부근 여러 콩나물밥집 중 2,000원짜리 콩나물밥집을 찾았다. 대접에 콩나물밥을 퍼 준다. 고추장과 양념간장이 나온다. 콩나물밥은 양념간장과 고추장을 다 넣어야 제맛인데, 그 비율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양념간장만 넣기도 한다. 따뜻한 국과 김치도 준다. 키가 그다지 크지 않은데 나는 아직도 콩나물밥을 좋아한다. 
동묘앞역 부근 ‘미소식당’  
콩나물밥 2,000원 
 
<맛골목 기행>, <서울문학기행>의 저자 장태동의 맛깔스러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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