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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순결했던 아쌈 ①Guwahati 구와하티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5.06.18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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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를 어느 정도 종류별로 갖추었다 하는 카페라면 빠지지 않는 메뉴 중에 ‘아쌈’이 있다. 인도 아쌈 지방의 재래종 차나무에서 채취한 찻잎이다. 그것 말고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던 아쌈에 다녀왔다. 여기저기 염소 똥 밟히는 사원을 맨발로 걷고 호랑이와 코뿔소가 노니는 야생 초원에서 코끼리 무등을 탔다. 처음 해보는 것투성이었던 내 순결했던 아쌈이여, 안녕.
 
눈이 깊은 어르신이 나바그라하 사원의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Guwahati 구와하티
차도 아닌 인도, 인도 없는 인도

인도는 참 부담스러운 여행지다. ‘영적靈的’인 곳이라는 이미지가 큰 탓에 눈곱만큼이라도 뭔가를 깨달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가 하면, 워낙에 ‘선수’를 자처하는 여행자들이 많은 곳인지라 일주일 남짓 다녀와 여행기를 끄적거리는 것이 그리 내키지 않았다. 달갑지 않았던 기분은 인천발 델리행 비행기에서 조금 누그러졌다. 인도 청년이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 나는 델리 출신인데 넌 여행가니? 델리 참 좋은 곳이야. 근데 인도는 처음이지?”, “응, 처음이야. 근데 난 델리는 그저 지나칠 뿐 구와하티로 가.” 그 청년, 거기가 어디냐고 되묻는다. 아쌈주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데 모르나? 모른단다. 그런데 거기엔 왜 가냐고 한 번 더 갸웃한다. 어쩌고저쩌고 말을 더 주고받은 끝에 청년의 한마디. “너 용감하구나.”

아쌈은 홍차 생산지라는 타이틀 외에는 인도인들 역시나 그다지 아는 바가 없는 지역이라고 했다. 인도 지도를 보면 북동쪽으로 위로는 부탄과 네팔, 아래로는 방글라데시 사이 끼어 아주 좁다란 땅이 인도 대륙과 연결되어 있다. 아쌈주를 비롯해 9개의 주가 모여 있는 또 하나의 인도. 본토와 연결되어 있지만 외딴 섬처럼 인식되는 지역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까다로운 절차가 뒤따르는 통행 허가증을 발급받아야 왕래할 수 있었다고 한다. 
뜻하지 않게 ‘용감녀’가 되어 구와하티에 들어섰다. 그러나 구와하티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난감해진다. 시내로 나가면 괜찮겠지. 웬걸, 시내에서도 안 된다. 휴대전화 말이다. 나는 통신사 불문 우리나라 회선은 전혀 잡히지 않는 구와하티에 떨어졌다. 브라마푸트라강Brahmaputra River과 실롱 언덕Foothills of Shillong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구와하티는 아쌈주를 대표하는 도시로 섬 같은 인도 북동부에서 델리, 캘커타 등 인도의 주요 도시로 이어지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와이파이는 둘째 치고 전화가 먹통이라니. 당장에 가이드와는 어떻게 연락하고, 혹시 모를 응급상황 발생시에는 어쩌란 말이냐.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걱정이 태산이다.

적응하는 수밖에. 다행히 호텔에서 와이파이가 된다. 때마침 어디냐 묻는 친구의 메시지에 ‘인도’라 했더니 “차도 말고 인도?”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런데 그거 아니? 적어도 내가 떨어진 인도에는 인도가 없더라. 무슨 말이냐고? 사람들이 차도를 버젓이 누비고 다녀. 또 차도든 인도든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라면 사람뿐이간디, 염소도 걷고 송아지도 걸어.” 길 한가운데 자리 깔고 드러눕는 것도 다반사. 한적한 시골 마을 이야기가 아니다. 메트로폴리탄 구와하티의 일상적 풍경이다.
 
구와하티를 감싸고 도는 브라마푸트라강. 저녁이면 일몰을 감상하는 리버크루즈가 인기다
사람과 가축이 한무리가 되어 움직였던 카마챠 사원
치트라살 언덕 꼭대기 나바그라하 사원으로 이르는 길
 
민낯보다 낯설었던 맨발의 기억

사람과 가축이 나란히 걷는 풍경은 사원이라고 다르진 않았다. 수줍게 인사하던 현지 가이드는 사원 입구에서부터 신발을 벗어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 힌두 사원으로 안내했다. 여행자에게도 예외란 없다. 나는 여기저기 염소 똥 굴러다니는 사원을 맨발로 마주했다. 민낯보다 더 낯설었던 맨발의 기억. 

닐라샬 언덕Nilachal Hill에 위치한 카마챠 사원Kamakhya Temple은 지혜와 욕망을 상징하는 힌두교 여신 ‘카마챠’를 모시고 있는 사원이자 인도에서 손꼽히는 ‘샤크티 순례지Shakti Peetha’다. 샤크티는 힌두교의 주요 세 신 가운데 하나인 시바신의 아내. 힌두교 신화에 따르면 샤크티의 몸이 51조각으로 나뉘어 인도 전역에 흩어졌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인도 전역에 51개의 샤크티 순례지가 있는데 인도인들은 샤크티 순례지를 특히나 영적으로 풍부하고 활기찬 곳으로 여긴다고. 카마챠 사원은 샤크티의 자궁이 떨어진 자리로 51개 샤크티 순례지 중에 가장 오래된 곳이기도 하단다. 어스름이 밀려드는데도 사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순례자 행렬이 어디가 끝인지 모를 만큼 길다. 

사원 내부로 들어서는 행렬만큼은 아니지만 코끼리 머리에 사람 몸을 하고 있는 지혜와 행운의 신 ‘가네샤Ganesha’ 조각 앞에서도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가네샤는 시바와 샤크티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순례자들이 가네샤 발치에 꽃을 공양하고 고개 숙여 인사한 다음 동전을 붙여 넣는 모양새는 영험하다는 명당에서 행하는 우리네 모습과 다르지 않다. 무리에 슬쩍 끼어들어 소원 좀 빌어 볼라 치는데 염소, 개, 송아지가 순서 없이 같이 놀자 치근댄다. 그렇잖아도 눈에 띄는 이방인이 쉴 새 없이 놀라 나자빠지니 본의 아니게 좋은 구경거리를 제공하고 만다. 
 
공물과 기념품을 파는 상점가 끝에 카마챠 사원이 자리 잡고 있다
꼭 이루어지길 바래서가 아니다. 그저 마땅한 일을 하는 것일 뿐. 가네샤 조각상 앞에 선 순례자들
 
믿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사는 것

치트라살 언덕Chitrasal Hill 꼭대기에 위치한 나바그라하 사원Nabagraha Temple은 힌두교의 천문학을 기반으로 조성된 곳이다. 나바그라하는 태양,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 그리고 라후Rahu, 케뚜Ketu까지 힌두교에서 말하는 9개의 행성을 뜻한다. 힌두교인들은 이 9개의 행성이 인간의 운명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어 왔단다. 돔 형태의 사원 안에는 8개의 남근상이 가운데 태양을 두르고 있는데 남근상은 각각의 행성을 상징하는 색깔의 천으로 덮여 있다. 행성을 쭉 돌아가며 기도를 올리나 싶었는데 엄마와 딸로 보이는 순례자 한 쌍이 맨 앞쪽에서 절을 하고는 망설임 없이 뒤돌아선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리지은 원숭이들이 공양물들을 죄다 먹잇감, 장난감으로 서로 가져가겠다고 꽤 살벌하게 옥신각신한다.

한편 바시스타 사원Basistha Temple은 현자 바시스타Vashistha가 은둔하면서 수행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계곡물이 강으로 흘러드는 도심 외곽에 자리 잡고 있어 겸사겸사 소풍 나온 가족 순례자들이 많다. 그 가운데 여인들에 둘러싸여 계곡물에 들어가 힌두교 의식을 치르는 사내 혼자 오들오들 떨고 있다. 무슨 의식인가 궁금한데 가이드도 뭐 때문에 저러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단다. 

구와하티에서만 너댓 곳의 힌두 사원을 들렀는데 사실 부지런히 설명하는 가이드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3 수험생 자세로 집중해야만 했다. 그게 아니라면 한 귀로 흘려들을 수밖에 없겠더라. 가이드도 모르는 것이 많았다. 힌두교는 인도에서 고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브라만교가 인도 각지의 민간 신앙을 받아들여 오늘날까지 이어온 종교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신화, 전설, 의례, 관습을 품어 왔기에 특별한 교리에 의존하지는 않지만 신전과 신상을 만들어 예배 드리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때문에 가는 곳마다 새로운 신, 새로운 의례, 새로운 성전이 두 팔 벌려 환영하더라니 이름 기억하는 것만도 쉽지가 않다.  

“어렵지? 괜찮아. 우리도 다 알지는 못하는데 뭐. 자신이 속한 종파에 대한 것이 아니면 잘 몰라. 힌두교는 종교라기보다 그냥 우리 삶이야. 이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하고 편하게 봐.” 가이드는 그렇게 이야기해 주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마냥 편해지진 않았다. 그럼에도 그렇게 얘기해 줘서 고마워. 
 
계곡과 숲이 어우러져 나들이 하기에 좋았던 바시스타 사원
나란히 엎드려 기도하는 엄마와 딸. 나바그라하 사원에서 마주한 순례자들
힌두교 의식이 치뤄지던 바시스타 사원 옆 계곡가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취재협조   인도정부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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