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2016 예루살렘 국제 마라톤 체험기- 달려라! 예루살렘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6.05.04 10: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6 예루살렘 국제 마라톤 체험기
달려라! 예루살렘
 
배번은 20951번. 타이밍칩도 삽입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신발끈을 고쳐 매니 각오가 더욱 비장해졌다. 
예루살렘 거리에 쏟아져 나온 7,360여 명 10km 주자 중 
한 명일 뿐이지만, 내게는 생애 첫 마라톤이자 도전이다. 
 
3월에 열린 예루살렘 국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러너들. 뒤로 3,000년 역사를 지닌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다윗탑이 보인다

예루살렘 국제 마라톤International Jerusalem Winner Marathon
지난 3월18일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2만6,000여 명이 참가한 국제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은 예루살렘 국제마라톤 대회는 높아진 테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참가자가 늘면서 최대 인원을 기록했다. 풀코스(42.195km), 하프코스(21.1km), 10km, 5km, 패밀리 런(1.7km), 커뮤니티 런(800m),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한 핸드바이크 등 7가지 다양한 종목으로 진행됐다.  2017년 예루살렘 마라톤 대회는 3월17일에 열릴 예정이다. 
 www.jerusalem-marathon.com  
이스라엘관광청 02 738 0882
 
이스라엘 국기를 입고 응원 중이다
 
 
날씨가 쌀쌀했지만 마라톤 주자들의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출발! 엘리트처럼 달려 보자 

마라톤의 출발선은 예루살렘 의회인 크네세트Knesset 앞이었다. 아침 9시30분. 빼곡한 인파 속에 서 있으니 니르 바르캇Nir Barkat 예루살렘 시장이 울리는 출발 신호도 들리지 않았다. 서서히 나아가는 무리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을 속도로 뒤를 쫓기 시작했을 뿐. 목표가 있긴 했다. 1시간 10분대에 10km를 돌파하는 것. 생애 첫 마라톤을 신청하고 한국에서 틈틈이 연습을 했지만 사실 한 번도 그 시간대에 들어온 적은 없었다. 그래도 목표는 높게! 

컨디션이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취재 일정 때문에 새벽 4시에 호텔을 나선 후 5시간 반 기다리며 거리에서 추위에 떨었었다. 케냐 국적이 대부분이었던 폴코스 출전 엘리트 선수들은  출발선에 아예 체온 유지용 은박 담요를 망토처럼 두르고 나왔었다. 3월 중순, 예루살렘의 기온이 예상보다 낮았던 탓이다. 

공기는 쌀쌀했지만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6시45분에 출발했던 하프 코스 주자들은 이미 들어왔고, 7시에 출발한 풀코스 주자들 중 선두 그룹도 골인한 시간대였지만 가장 많은 주자들이 신청한 10km 경주가 시작되자 예루살렘 마라톤은 완전히 축제장으로 변했다. 슈퍼맨, 배트맨도 등장했고, 갈래머리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검정 치마를 입고 출전한 여학생들. 키파동그란 모자를 쓰고 구레나룻을 휘날리며 뛰는 랍비들, 셀카봉을 지참한 중국인들까지, 너무 다양해서 낯설기까지 했다. 놀라운 점은 올해 예루살렘 마라톤 대회에 중국인이 200명이나 참가했다는 것. 요즘 중국에는 마라톤 열풍이 불었단다. 그 많던 한국인 성지순례자들이 사라진 자리에 중국인들의 발도장이 찍히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날아온 마라톤 참가자는 단 2명뿐이라니 국가대표처럼 엘리트처럼, 각오가 다져졌다.
 
마라톤은 남녀노소 모두가 참가하는 축제의 장이다
 
3,000년 고도의 희비를 관통하다

코믹한 분장, 요란한 치장을 한 여유로운 러너들 사이에서 혼자 긴장한 초짜 러너의 표정은,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진지해서 웃겼을 것 같다. 겁을 먹은 이유가 있었다. 사전 정보에 의하면 예루살렘 마라톤 코스는 다른 대회보다 업다운up-down이 많다고 했다. 예루살렘이 원래 그런 도시가 아닌가. 800m 고도의 언덕에 자리잡은 천혜의 요새도시는 깊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시온산, 올리브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전날 풀코스 주자들의 북쪽 반환점인 헤브루 대학 스포퍼스산Hebrew University Mt. Scopus Campus 전망대에 섰을 때 이미 그 굴곡을 목격해 둔 상태였다. 

어쨌든 오르막길에서도 절대로 걷지 말고 느리더라도 계속 뛰라는 내 트레이너(대회 좀 참가해 봤다는 친구)의 당부를 다시 새길 수밖에. 첫 오르막만 어려웠지 차츰 긴장이 풀리면서 몸도 함께 풀렸다. 차츰 거리의 풍경과 응원 나온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대인의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예루살렘은 원칙적으로 다민족, 다종교를 인정하고 있다. 다만 75%가 넘는 유대교도에 대한 일방적 우대가 존재할 뿐. 그것은 마라톤 코스가 통과한 동네들의 빈부격차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반듯한 맨션과 쇼핑센터들이 들어선 부촌은 어김없이 유대인 동네이고, 허름한 곳은 아랍인들의 주거지다. 

안전에 대한 걱정이 없진 않았다. 팔레스타인측은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항의로 마라톤 참가와 후원을 전면 보이콧하고 있는 상태다. 마라톤 대회를 위해 수도 예루살렘의 주요 도로를 통제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표출되고 있었다. 실제로 마라톤 대회는 서예루살렘 지역에서만 진행되고 있었다. 동예루살렘 지역은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영토지만 1968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거한 상태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유대인 정착촌을 늘려 가고 있기에 갈등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거의 매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크고 작은 충돌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마라톤 개최를 위해 1,000여 명 이상의 경찰이 동원됐고, 대회 며칠 전부터 강화된 수색으로 긴장감마저 느껴졌었다. 전 세계적으로 소프트테러가 확산되는 가운데 3년 전 발생했던 보스턴 마라톤 테러의 참혹함도 또렷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테러는 정당화될 수 없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대처는 일상을 살아내려는 의지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전 세계 26개국에서 온 선수들을 포함해 2만6,000여 명이 올해 대회에 참가해 최고 인원을 기록했다  

역사와 종교의 복잡한 미로

달리는 동안에는 묵은 감정도, 복잡한 정세도, 불안한 미래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 하나는, 3,000년 고도古都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이다. 마라톤코스는 이스라엘 뮤지엄, 마하네 예후다 마켓, 벤 예후다 거리 등 도시의 명소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아쉬운 점은 올드 시티 안을 관통하는 구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 

둘레 4km, 높이 12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예루살렘 올드시티는 세계 3대 종교의 성지다. 황금으로 반짝이는 바위돔Dom of Rock은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쳤던 제단이 있던 곳이자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가 승천하며 남긴 발자국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돔의 바깥쪽에 유대인들이 눈물로 기도하는 통곡의 벽이 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고 무덤에 묻히고 부활했던 장소라는 성묘교회에 가서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성과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8개의 성문 중 마라톤 주자들에게 허락된 구간은 야파 게이트Jaffa Gate로 들어가 시온 게이트Zion Gate로 나오는 불과 1km 구간이었다. 이른바 유대인 쿼터에 속한 지역만 관통하는 것이다. 현재 올드시티는 유대인 구역, 기독교도 구역, 아르메니아인 구역, 이슬람교도 구역으로 4등분 되어 있다. 그 모든 구역을 달려 보고 싶었지만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으로 혼자 들어갔다가는 완주가 아니라 탈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어쨌든 이건 기록을 남기는 일이니 오늘만큼은 이탈 금지다! 
 
 
니르 바르캇 예루살렘 시장이 풀코스 마라톤 우승자들을 축하하고 있다 
 완주의 기쁨을 나누는 참가자들
경기가 끝난 후에는 사처 공원에서 휴식을 취했다 

달고 시원한 완주의 기쁨

어쨌든 내가 멈추지 않는 한 결승점도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내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오르막길에서도 걷지 않았고, 내리막에서도 속도를 내지 않았다. 2곳의 급수대 중 첫 번째 급수대에서만 입술을 조금 축였을 뿐이다. 예루살렘 신시가지를 돌고 돌아 도착선을 통과한 기록은 1시간 12분 03초. 10km를 완주한 여성 참가자 2,870명 중 1,211번째로 들어왔다. 목표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어쨌든 완주했고, 중간 수준의 기록을 남겼으니 이 정도면 만족이다. 65개국에서 온 2,600명의 전문 마라톤 선수를 중에서 이번 대회 풀코스 우승자는 케냐 출신의 킵코게이 샤드렉Kipkogey Shadrack(25세) 선수로 2시간 16분 33초를 기록했다.

땀에 흠뻑 젖은 채 터덜터덜 사처 공원Sacher Garden으로 돌아오는 길에 메달을 나눠 주는 관문이 있었다. ‘완주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달콤함’이라는 듯, 잘 익은 오렌지도 배급했다. 지금껏 맛본 것 중 가장 달고 시원한 오렌지였다.  

글 천소현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유운상 
자료사진 이스라엘관광청 www.goisrael.kr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