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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의 숨겨진 왕국 조지아Georgia④스테판츠민다, 프로메테우스의 독수리가 찜한 땅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6.06.09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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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antsminda 스테판츠민다
프로메테우스의 독수리가 찜한 땅

종교 활동이 탄압받았던 소비에트 시절에도 스테판츠민다의 
교회만큼은 피해가 없었다. 그 누구도 감히 손댈 수 없을 만큼 
성스럽고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었다. 
 
코카서스 남쪽, 카즈베기에 자리잡은 산골 마을 스테판츠민다. 룸스 호텔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희망의 등대에 오르다

캅카스, 카프카스, 카우카스, 코카시아는 다 같은 장소를 일컫는 말들이다. 가장 익숙한 이름은 코카서스Caucasus라는 영어식 표현일 것이다. 전설과 신화의 산이라 불리는 코카서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고도가 높아지는 만큼 창밖의 풍경도 다시 겨울로 변해 가고 있었다. 

조지아와 러시아를 잇는 군사도로를 따라 달리는 것이니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해발 2,000m가 넘는 고개를 넘는 일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헬리스키로 유명한 구다우리Gudauri를 지나서 러시아와의 국경이 멀지 않음을 알려 준 것은 조지아-소비에트의 우정을 기념해 만들었다는 모자이크 전망대였다. 모자이크 그림의 절반은 러시아, 나머지 절반은 조지아의 상징들을 담고 있다는데 실제 두 나라의 관계는 좋지 않다. 두 나라뿐 아니라 코카서스 3국과 터키의 관계는 모두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정교회를 믿는 조지아와 아르메니안사도교회Armenian Apostolic Church를 믿는 아르메니아가 서로 국경을 포갠 채 영토 분쟁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조지아 정부의 주 수입원은 첫 번째가 운송, 두 번째는 관광, 세 번째가 보르조미 탄산수나 와인일 정도로 운송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많다. 주변국들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얻고 있는 어부지리다. 서로 우호적인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러시아와 아르메니아 사이의 물자 수송이 오로지 조지아를 우회해야만 가능하기 때문. 정치적, 종교적 섬이 되어 버린 코카서스 남쪽 소국들의 슬픈 현재다. 실제로 도로 위에는 승용차보다 트럭이 더 많았다. 휴게소는 쾌적하고 휴게소 편의점이 도심의 마트만큼 크다. 

해발 2,400m의 즈바리 패스Jvari Pass*를 절정으로 길은 다시 머리를 숙이더니 드디어 목적지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에 도착하자 어스름이 가장 먼저 마중을 나왔다. 마을의 동쪽 언덕에 자리잡은 룸스 호텔은 최고의 전망을 선사했다. 해발 5,000m 설산을 배경으로 2,200m의 봉우리 위에 세워진 교회를 1,700m의 마을에서 바라보는 감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스테판츠민다는 고립된 산골 마을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치규율이 필요했기에 각 지역마다 지도자를 선발해서 죄벌을 다스렸다고 한다. 폭설이 내리면 고립되기 일쑤라 집과 집 사이에 굴을 파서 이동했는데, 죄인들은 벌로 눈 터널 만들기에 동원됐다고 한다. 지금 스테판츠민다는 코카서스에 오르고자 하는 트레커들의 베이스캠프다. 몇 시간부터 며칠까지 코스는 다양하다. 산을 싫어해도 꼭 올라가야 하는 곳이 하나 있다면 게르게티 마을에 세워진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Gergeti Trinity Church다. 

누가 2,170m 고지에 교회를 세울 생각을 했을까. 범인은 독수리였다. 고립된 지형 탓에 14세기에 이르러서야 기독교가 이 산골짜기에 전해졌다. 교회 부지는 독수리에게 쇠고기를 물려 주고 날아가 도착하는 장소로 결정했다. 그만큼 고립되고, 그만큼 안전한 장소였다. 침략시에 중요한 종교 유물을 이곳에 숨겨 놓기도 했었다. 

새에게는 가뿐한 거리였겠지만 사람들에게는 2시간 가까이 걸리는 트레킹 코스, 혹은 30분간의 오프로드 주행이 필요하다. 마을의 모습은 안개에 가려 사라진 지 오래. 이미 천상에 오른 느낌이다. 사방에 둘러쳐진 코카서스의 산들은 하나하나가 신이다. 그중 가장 높은 봉우리가 바로 5,047m 높이의 카즈베기*다. 인간에게 불을 전해 준 벌로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이게 된 프로메테우스의 전설이 이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밤이면 재생되는 심장 때문에 형벌은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지만 독수리는 결국 헤라클라스에 의해 사살당했다고 한다. 

밤이 되자 조명을 켠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는 마치 크리스마스 교회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빛은 마치 등대처럼 보였다. 모든 길 잃은 사람들을 향한 희망의 방향등처럼 보였다. 그날 밤 나는 규칙적인 심장의 박동 소리를 들으며 오랜만에 잘 잤던 것 같다. 

다시 트빌리시로 돌아가는 길은 아쉬움이 길게 꼬리를 물었다. 코카서스의 설경이 아른아른,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잠시 만나 정든 여행지가 그럴진대, 피난민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스페판츠민다에서 코카서스 산맥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 2개의 조지아-러시아 분쟁지가 있다. 조지아는 2008년 러시아와의 전투 이후 압하지야Abkhazia 자치공화국과 남오세티아South Ossetia 자치공화국의 독립을 두고 러시아와 갈등을 겪고 있다. 그로 인해 살 곳을 잃은 사람들이 이주한 대규모 피난민촌이 카즈베기를 오가는 길에 있다. 똑같은 모양의 집 수천 채가 바둑판처럼 늘어서 있었다. 최고 시설의 난민촌이라고 자랑할 만큼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지만 실향민의 가슴은 늘 허전할 수밖에. 이곳에도 여전히 희망의 등대가 필요하다. 
 
1783년 체결된 게오르기예프스크 조약Treaty of Georgievsk 200주년을 기념하여 1983년에 만든 러시아-조지아 우정의 탑. 양국의 상징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는데, 실제 관계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해발 2,170m의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에서 바라본 코카서스의 풍경
 
*즈바리 패스 | 예카테리나 대제가 러시아-그루지야 군사도로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가장 높은 2,400m 지점에 십자가를 세웠기에 즈바리(십자가) 패스라고 불린다. 

*스테판츠민다 | 오랫동안 카즈베기Kazbegi라고 불렸던 마을은 ‘성 스테판’을 뜻하는 스테판츠민다로 이름을 바꿨다. 이곳에 은둔처를 두었던 조지아 정교회 신부의 이름을 딴 것인데, 지금은 그 위로 군사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카즈베기 | 므킨바르츠베리Mkinvartsveri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빙하’를 뜻한다. 조지아에서 3번째로 높은 산이자 코카서스 산맥에서도 7번째로 높은 산이다. 
 
글 천소현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이승무
취재협조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 조지아관광청 www.georgia.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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