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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②월레카 Wolleka-남겨진 이야기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08.1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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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이야기
월레카 Wolleka 
 
곤다르에서 6km 떨어진 월레카는 유대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다. 1600년 넘게 유대교 신앙을 지켜온 그들은 이곳에서 수공예품을 만들며 생계를 유지했었다. 원주민들은 그들을 천시하는 말로 이방인 또는 권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의 ‘팔라샤(Falasha)’라고 불렀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베타 이스라엘(Beta Israel), 즉 ‘이스라엘 집’이라 했다. 에티오피아 서북부를 중심으로 천년 동안 번성했던 유대교는 기독교의 국교화 이후 교세가 줄어들고 개종을 거부한 팔라샤들은 토지를 몰수당했다. 
 
과거 유대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던 팔라샤 마을에 남아 있는 유대인은 이제 없다
 

70~80년대의 가뭄과 기근, 그리고 에리트레아와의 내전으로 북부 악숨 지역의 팔라샤들은 이스라엘로 가기 위해 1984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걸어서 수단의 난민촌에 모였다. 험난한 그 과정 중에 4,000명이 죽고 이스라엘은 극비리에 유럽 항공사를 고용해 30차에 걸친 ‘모세작전’을 펼쳐 8,000명을 이스라엘로 공수했다. 이후에도 미국의 중재와 에티오피아 정부의 허가 속에 1991년 솔로몬작전을 펼쳐 36시간 만에 1만4,000명을 이스라엘로 이송했다.

월레카에 현재 남아 있는 유대인은 없다. 지금은 수공예품을 제작하는 여성들의 공동작업장이자 생활공간으로 사용된다. 솔로몬 작전 때 이스라엘로 가지 않고 이곳에 남았던 유일한 팔라샤 여성도 살기가 힘들어 얼마 전 에티오피아정교로 개종했다. 

당시의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공수작전을 펼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인구 증가에 맞서 유대인을 이주시켜 인구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내전 중이던 에티오피아 내 반군세력이 수도를 점령했을 경우 팔라샤에게 가해질 보복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유대인 이주 허가를 위해 멩기스투 전 에티오피아 대통령에게 반군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를 제공했다는 혐의가 있었다. 곤다르를 반군이 점령하려 할 때 이스라엘은 팔라샤들을 이스라엘대사관 주위에 모여 살게 하고 이주를 위한 교육을 시켰다. 현재 악숨 주변에는 약 4,000명의 유대인들이 남아 있고, 이스라엘에는 약 12만여 명의 에티오피아 출신 흑인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에티오피아인들. 거리낌 없이 다가와 반가운 미소를 건네던 그들의 얼굴은 에티오피아를 잊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에티오피아항공 www.ethiopianairlin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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