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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정원 도호쿠

  • Editor. 정현우
  • 입력 2016.09.0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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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다이 공항에 착륙하기 전, 초록으로 뒤덮인 
도호쿠 지방을 내려다보며 자연스레 떠올랐던 곳은 
대한민국의 동북지방 강원도였다. 
첫인상은 들어맞았다. 초록의 땅 도호쿠엔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순박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장난치며 히라이즈미를 거닐던 순박한 아이들
 

이루어진 극락정토의 꿈
 
이와테현에 위치한 유서 깊은 불교유적지 히라이즈미(平泉)에서 도호쿠의 첫 여정을 시작했다. 은은한 향냄새가 퍼지는 삼나무 숲 사이 좁은 길로 접어들자 주손지(中尊寺)가 제일 먼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좀처럼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기 어려울 것 같은 깊은 산중에 위치한 사원. 히라이즈미는 불교의 이상세계인 극락정토를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사원과 정원을 정교하게 설계해 세운 고고학적 유적군이다. 지난 2011년 일본에서는 12번째, 도호쿠에서는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주손지는 850년에 창립되어 도호쿠 지방의 천태종 총본산으로 여겨져 왔다. 내부가 모두 금으로 장식된 곤지키도(金色堂)로 유명한데 금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불상과 기둥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감탄사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내부 사진촬영이 허용되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래서 더 현실에 없는 공간에 잠시 다녀온 듯 꿈결같이 느껴졌다.

고즈넉한 사원 곳곳에서는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럿 볼 수 있었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어느덧 5년이 흘렀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픔이 치유되기에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어설픈 위로의 눈길이나 섣부른 동정의 말이라도 건네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그것이 이방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다시 삼나무의 가호를 받으며 걸어 내려와 근처의 또 다른 사원 모츠지(毛越寺)에 도착했다. 지금의 모츠지는 사원이라기보다는 아담한 정원에 좀 더 가까운 모습이지만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유실되기 전에는 그 규모가 주손지를 능가했다고 하니 절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모츠지 한가운데에는 산 위에서부터 졸졸 흘러내려온 물이 모여 넓은 연못을 이루고 있었다. 흘러 흘러 결국에는 한데 모이는 물처럼 그곳엔 다양한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연못 근처에 핀 꽃을 구경하는 여자, 멀리 날아가는 새를 사진에 담는 노인, 서로의 손을 잡은 채 말 없이 걷는 연인. 전혀 다른 삶의 경로를 통해 모츠지에 도착했을 그들은 이제 말 없이 같은 감성을 공유하고 있는 듯 보였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 묻혀 취하는 휴식. 적막한 가운데 오직 새소리만이 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1,200년 전 히라이즈미의 창립자들이 소망했던 극락정토가 마치 이루어진 것 같았다. 
 
 
향냄새 가득한 세계문화유산 히라이즈미 주손지
 
▶주손지
주소: Koromonoseki 202 Hiraizumi, Iwate 
운영시간: 08:30~17:00
요금: 성인 800엔, 고등학생 500엔, 초등학생 200엔
 
▶모츠지
주소: Osawa 58 Hiraizumi, Iwate
운영시간: 08:30~17:00
요금: 성인 500엔, 고등학생 300엔, 초,중학생 100엔
 
다자와 호수의 다츠코 동상에는 슬프고도 기이한 사연이 얽혀 있다
아키타현의 자랑 아키타견은 사냥에 능숙하고 충성심이 강하다  
 
도호쿠의 ‘작은 교토’라고 불리는 고즈넉한 가쿠노다테 무사저택거리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린 존재들
 
아키타현 센보쿠의 전설을 따라 찾아온 다자와 호수(田?湖). 산으로 둘러싸인, 말 그대로 거대 원형 호수였다. 호수를 도는 시내버스가 한 바퀴를 도는 데 무려 3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그 넓이는 짐작하고도 남았다. 깊이가 423m에 달하는 일본에서 가장 깊은 호수로 물이 맑아 물고기도 많이 살고 있다. 오리배를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돌며 풍류를 누리고도 싶었지만 이른 아침인 탓에 오리배들은 한자리에 정박된 채로 뒤뚱거리고 있었다. 햇볕을 쬐며 맑은 아침공기를 마시니 하루를 시작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겠구나 싶었다.

다자와 호수는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지이기도 한데 호수 위에 세워진 다츠코 동상에 얽힌 슬프고도 기이한 사연은 드라마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다츠코 히메라는 여인은 자신의 미모가 영원히 유지되기를 원해 백일간 기도를 드린 뒤 샘물을 마시라는 계시를 받았다. 하지만 맙소사, 샘물을 마시자 어쩐 일인지 마법에 걸려 용이 되고 말았고 모습을 감추기 위해 다자와 호수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전설처럼 그녀는 용의 모습으로 여전히 호수 아래에서 살고 있을까. 괜스레 호수 속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용은커녕 이무기도 찾을 수 없었지만 호수 앞 기념품 가게 마당에서 강아지는 볼 수 있었다. 일본이 고양이만 유명한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다. 이 고장의 자랑 아키타견은 일본 토종견으로 일본 전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그 이름을 날리고 있다. 한국의 진돗개와 닮은꼴로 소개되곤 하는데 반듯하게 잘생긴 외모뿐만 아니라 사냥에 능숙하고 주인에게 충성심이 강한 성격까지 꼭 닮았다.

다자와 호수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가쿠노다테(角館) 무사저택거리가 있다. 사무라이들이 모여 살던 마을로 1620년에 조성된 오래된 마을이다. 도호쿠 지방의 ‘작은 교토’라고도 불리는데 이곳을 걸어 보면 바로 그 별칭을 이해하게 된다.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무사 가문들과 일반 거주민들의 전통가옥이 지금까지 잘 유지되고 있다. 낮은 건물들 위로 높게 솟은 나무들과 400년의 역사가 깃든 거리. 평화로운 무사저택거리 위로 손님들을 태운 인력거가 이따금 옆을 스쳐 지나갔다. 오래된 전통가옥들로 둘러싸인 길 위의 산책은 흡사 17세기 일본의 어느 날로 시간여행한 듯한 낭만적인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드라마 <오싱>의 촬영지로도 이름을 알렸던 긴잔온천은 아늑한 료칸들이 여행자들을 반겨 주는 조용한 온천마을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신선놀음
 
도호쿠 지방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야마가타현. ‘산의 모양’이라는 뜻을 가진 야마가타(山形)의 수려한 산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후루쿠치역 근처 모가미강(最上川 )승선소로 가면 된다. 모가미강을 따라 뱃놀이를 할 수 있게 작은 유람선들이 운영 중이다. 배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유람선과 달리 좁고 길다. 스무명 정도 수용이 가능한데 사고에 대비해 배 안에 구명조끼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으니 안심하고 경치를 즐길 수 있다.
 
모터로 움직이는 배는 굽이굽이 강물의 흐름을 따라 유유히 1시간을 내려가는데 일본 수묵화에 나올 법한 유려한 경치와 물길을 따라 간지러운 바람을 즐기다 보니 한 시간이 어찌나 짧은지. 중간중간 사공이 불러주는 일본 민요를 들으며 유유자적 뱃놀이를 하고 있다 보면 마치 신선이 된 느낌도 든다.
 
삼림이 울창한 커다란 산이 강과 바로 붙어 있는데 아름다운 가을철 단풍으로도 유명하다. 야마가타 남부에서 발원된 모가미강은 야마가타 전역을 걸쳐 총 229km를 달려 동해의 품에 안긴다. 일본에서 7번째로 긴 강이라는 이곳에서 허클베리 핀처럼 뗏목을 타고 모험을 떠나 볼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잠시 해보았다.

유명한 온천 마을이 있다고 해서 찾아온 야마가타현 오바나자와의 산골 마을. ‘도로 끝에 뭐가 있긴 한가’ 의심이 드는 것도 잠시, 걸어서 10분 정도 들어가니 냇가 양옆으로 료칸들이 즐비한 고즈넉한 온천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약 500년 전 은광이 발견됐다고 해서 ‘긴잔은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긴잔온천(銀山溫泉)은 광부들이 피로를 풀었던 소중한 휴식처였다. 80년대 NHK 인기 드라마 <오싱>의 촬영지로 지금도 드라마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찾고 있다.
 
온천 마을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과 아기자기한 카페가 많으며 빙수 가게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마을 안쪽에서는 맹렬히 쏟아지는 22m 높이의 폭포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데 가슴 속까지 뻥뚫리는 듯 시원했다. 긴잔온천 곳곳에서는 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소녀들이 수줍게 웃으며 길을 걷고 있었다. 폭포 근처라서인지 언뜻 선녀들이 눈앞에 아른거린 듯했다.
 
모가미강에서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야마가타의 산세를 감상하고 있으면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누릴 수 있다
 
▶모가미강 승선소
주소:  Furukuchi 86-1 Tozawa-mura, Yamagata
요금: 성인 2,200엔 초등학생 이하 1,100엔
홈페이지:  www.blf.co.jp
 
 
백록담과 꼭 닮은 자오산의 오카마 호수. 자오에코라인을 통해 차를 타고 정상 문턱까지 닿을 수 있다 

챠오(Ciao), 도호쿠. 자오!
 
도호쿠 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오른 곳은 자오(藏玉)산이다. 자오라는 이름이 꼭 ‘안녕’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챠오Ciao’와 비슷하다. 자오산은 야마가타현과 미야기현의 경계에 위치한 높이 1,840m의 높은 산이다. 아득한 높이지만 오르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정상 문턱까지 잘 포장된 자오에코라인 도로를 따라 굽이굽이 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도호쿠 지방은 겨울 스포츠로 유명하지만 자오산은 특히 일본 내에서도 스키 천국으로 유명하다. 겨울철 눈이 많이 오는 탓에 에코라인 도로는 4월부터 11월까지만 개방된다. 심지어 4월 초까지도 눈이 오는 경우가 꽤 있다. 스키 마니아들에게는 천국인 셈. 버스 차창 밖으로 트레킹하며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간간히 보였다.

한 시간 정도 걸려서 정상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기서 5분 정도만 경사길을 오르면 정상 언덕에서 드넓은 오카마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다. 오카마 호수는 화산 분출로 만들어진 칼데라호로 크기나 모양, 산의 높이까지 한라산 백록담과 꼭 닮았다. 놀랍게도 호수의 색깔이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한다고 하는데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장엄했다. 트레킹 길을 따라 홀로 말없이 땅을 보며 걷는 할아버지의 모습과 풍경이 겹쳐져 마치 수도원에 와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정상 주차장에 옥수수 푸드트럭이 있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에코라인을 타고 내려와 센다이 공항으로 향했다. 이륙한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센다이의 장대한 해변은 문자 그대로 평화로워 보였다.
 
넘실대는 파도 앞에 선 몇몇의 사람들은 5년 전 이웃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앗아간 바로 그 바다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콩만 한 크기의 인간에 비해 새삼스럽게 바다는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크고 넓었다.
 
천재지변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인간의 태생적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힘은 늘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데서 빛을 발한다. 대지진 그 후 5년이 지난 지금, 멋지게 다시 일어난 도호쿠 지방은 일본의 숨은 보석을 찾으러 온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은 결국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넌지시 가르쳐준 초록의 땅 도호쿠. 다시 만나길 기대하며 안녕, 챠오(Ciao)!  
 

 

▶travel info  東北
 
AIRLINE
아시아나항공이 지난 6월28일부터 인천-센다이 노선을 매일 운항하고 있다. 기존 주 4회 운항에서 증편된 것으로 9시50분에 출발하는 목요일 편을 제외하고 매일 9시30분에 출발한다. 소요시간 2시간 10분. 돌아오는 항공편은 센다이 12시40분 출발로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이다.
 

HOTEL
산로쿠소 플라자 호텔

산장 같은 아늑한 호텔로 산 속에 있어서인지 밤하늘에 별이 가득하다. 노천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다다미방 침구에 몸을 맡기면 구름 위에서 잠드는 것만 같다. 노천탕만으로 아쉽다면 효소목욕을 이용해 보자. 효소의 발효열을 통한 건식욕법으로 체내 노폐물 제거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 피부 미용과 피로 회복에 좋다.
주소:  Komagatake 2-32 Tazawako Obonai, Senboku, Akita
홈페이지:  www.sanrokusou.com
 
 
미야기자오 로얄 호텔
자오산 동편 인근에 위치한 12층 규모의 호텔로 총 객실 377개를 가지고 있는 미야기자오 로얄 호텔. 매우 넓은 연회장을 갖추고 있으며 1층에 이자카야도 운영 중이다. 프랑스 레스토랑 ‘시키’, 중국 레스토랑 ‘도리’ 등 다양한 다이닝 옵션도 갖추고 있다. 
주소:  Oniishihara 1-1 Togattaonsen, Zao-machi, Miyagi
홈페이지:  www.daiwaresort.jp/kr/zaou
 

PLACE
야마데라 입석사(山寺 立石寺)

지카쿠 다이시로 승려가 860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산 위의 절. 가파른 산등성이에 위치해 내려다보는 전경이 일품이다. 시인 바쇼가 1600년대에 이곳을 방문해서 하이쿠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절의 입구는 야마데라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야마데라역은 기차로 야마가타역에서 20분, 센다이역에서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주소:  Yamadera 4456-4, Yamagata  
운영시간: 08:00~17:00    
요금: 300엔
 
글·사진 정현우 기자
취재협조 한국여행업협회 www.kata.or.kr, 일본정부관광국 www.welcometojap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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