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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홍손에서 만난 찰나의 순간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10.0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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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홍손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선뜻 가늠이 가질 않았다. 
태국 어디쯤 있는 곳일까. 그러나 낯가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생소한 지명이 익숙한 단어가 되고, 
낯선 풍경이 정겨운 기억으로 남는 건 아주 찰나에 불과했다.
 
기도가 아침을 연다. 수통빼 마을의 탁발행렬

●모두의 기도

탁발 행렬을 따랐다. 마을 길 곳곳에는 공양을 준비하며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가 한데 모여 기도하는 순간, 마을의 기운은 더없이 신성하다. 맨발로 마을길을 걷는 승려들과 무릎을 꿇고 앉아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연결된 듯했다. 그것을 인연이라고 한다면, 인연이 닿는 신성한 순간을 내가 깨뜨릴까 싶어 발걸음은 물론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워졌다.
 
탁발 행렬을 따르는 내내 이른 아침 온 가족이 나와 올리는 기도의 제목을 생각했다. 이 새벽에 나와 저리도 평온한 표정으로 간구하는 것들 중 세속적인 것이란 없을 것 같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를 올리는 정성어린 마음들. 모두의 염원이 이루어지길. 
 
왓총캄 사원에 모인 불자들의 손이 바쁘다. 나뭇잎을 자르고 엮어 음식을 봉헌할 그릇을 만들고 있다
첩첩산중에 포근히 안긴 매홍손의 전경
 
●작은 마을의 이야기

태국 치앙마이에서 북서쪽으로 380km 정도 떨어진 곳. 미얀마,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매홍손(Maehongson)은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는 구름 속을 날아 산 능선을 곡예하듯 넘어서 2km 남짓의 작은 활주로에 착지했다. 산간지대라 덜 덥고 덜 습할 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뜨거운 태양과 우기를 맞아 눅눅한 공기. 열대우림이 쑥쑥 자라기에도, 사람들이 쉬이 지치기에도 이만한 기후는 없을 듯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지대를 찾았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해발 1,500m 높이에 위치한 사원으로 향했다. 사원의 이름은 ‘왓 프라탓 도이 콩무(Wat Phrathat Doi Kongmu)’. ‘콩무 언덕의 프라탓 사원’이라는 뜻으로 샨족의 건축양식을 따랐으며, 매홍손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숭배의 장소라고 한다.
 
사원에 올라서자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왼편에는 비행장의 활주로가 길게 뻗어 있고, 연못을 중심으로 자리 잡은 관공서, 학교, 왓총캄(Watchokham) 사원도 보인다. 마을은 작다. 연못 근처에서 갑돌이와 갑순이가 손잡고 걸으면 채 한 시간도 안 돼 둘이 사귄다는 소문이 골짜기 집 안방까지 퍼질 기세다. 사방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허리에는 어김없이 구름이 걸려 있다. 산과 구름이 제 자식 품듯 아담한 마을을 포근하게 품었다. 
 
왓총캄 사원 경내에 고양이가 들어왔다. 제 집인 듯 편안히 머문다
어린 승려들이 모여 경전을 공부한다
그녀는 종이 연꽃을 거는 동안 혼잣말을 했다. 소원을 빌고 있었을까?
 
●사원의 이야기

연못 옆 왓총캄(Watchokham) 사원은 며칠 남지 않은 부처님 오신 날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태국인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여기서는 대승불교를 믿는 지역과는 다르게 8월 중에 부처의 날이 있다고 한다.
 
불경을 온몸에 문신한 스님이 경전을 나직하게 읽는 동안 사람들은 음식을 공양하고, 종이로 연꽃을 오려 만들고, 댓잎으로 그릇을 만들고 꽃을 장식한다. 이 모든 수고를 통해 각자의 염원을 마음에 새긴다.
 
길 고양이 한 마리가 제 집 누비듯 사원 안을 누벼도 누구도 개의치 않는 풍경이 인상적이던 찰나, 할머니 한 분이 일행 중 한 사람을 호되게 꾸짖는 소리가 들렸다. 태국어를 몰라도 호통의 이유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반바지를 입고 사원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온몸으로 이야기하는 그녀는 매서운 눈초리로 일행을 쏘아보고 있었다. 경내에는 길 고양이는 들어가도 팔 다리 내놓은 옷차림의 여자는 들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다 알겠지만, 스님의 몸에 손을 데는 것도 큰 실례다. 
 
동이 트자 승려들이 대나무 다리를 건너 마을로 향했다. 사진에 보이진 않지만 누렁이 한 마리가 선두에 섰고 검둥개가 행렬의 뒤를 지켰다
 
●다리 위의 승려들

새벽 4시 반, 매홍손 마을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30분을 차로 달렸다. 도착한 곳은 쿵 마이 삭(Kung Mai Saak)이라는 마을의 수통빼 대나무 다리(Su Tong Pae Bamboo Bridge). 다리의 유래는 이렇다. 드넓은 논이 마을과 사원을 갈라놨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논의 주인은 땅을 마을에 기증하고 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 도움으로 대나무를 엮어 논을 가로지르는 500m 길이의 다리를 놓았고, 덕분에 매일 새벽 탁발을 나서는 승려들의 발걸음은 한결 수월해졌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울리는 어둠이 가시고 사위가 밝아졌다. 사원 아래 갈색 가사를 입은 승려와 수도승들의 행렬은 이내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누렁이 한 마리와 검둥개 한 마리가 매일 아침 승려들과 동행한다. 마치 길을 안내하고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는 듯 위풍당당하게. 
 
 
자보마을, 누군가의 방. 볕이 아름답게 든다
그녀의 눈빛은 강렬하다. 호피무늬 티셔츠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에 한몫한다
자보 마을에서 본 사람들의 살림들은 문득문득 떠올라 긴 여운을 남긴다. 새장과 나무 벽도 마찬가지
 
●자보 빌리지, 적재적소의 아름다움

산간지역인 만큼 길은 끊임없이 심하게 굽이쳤다. 멀미 때문에 차를 세우고 속을 게워 내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매홍손 공항 인근에서 출발해 굽은 길을 달리길 3시간, 산 속의 작은 마을, 자보(Jabo)에 도착했다.
 
자보 마을은 그 크기도 작을 뿐더러 마을 안의 건물들도 동화 속 세계처럼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다. 이곳에는 중국 윈난에서 라오스나 미얀마를 거쳐 이주해 온 사람들이 사는데, 마을 사람들은 한꺼번에 몰려든 이방인들이 낯설고 신기한 눈치다.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양해를 구하면 말간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집으로 들어와 구경하라며 손짓한다. 신발을 벗고 합장하며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 그들의 살림은 넘치지도 모자람도 없는 듯, 필요한 것들이 제자리에서 빛을 발했다.
 
제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 또 있었으니, 바로 산꼭대기에 위치한 국숫집이다.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따로 정해진 이름 없이 ‘자보 국숫집’이라 불린다. 산세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 면이 온전히 뚫려 있고 난간 위에는 일렬로 식탁이 놓여 있다. 난간에 발을 걸치고 천 길 낭떠러지를 바라보며 국수를 먹을 수 있어 더 유명한 집이다. 산허리로 구름이 가로지르는 무릉도원 같은 풍광을 바라보며 국수 한 입을 먹는 순간만큼은, 내가 신선이다. 
 
팸복마을의 논은 매 순간 색이 변한다. 그늘지고 쨍쨍해지길 쉼 없이 반복한다
 
마을 아이들과 할머니의 얼굴엔 행복이 그득하다
 
●내 어린 시절의 시골

자보 마을에서 다시 네 시간가량 구불 길을 달려 팸복(Phaem Bok) 마을에 도착했다. 팸복 마을은 수십년 전, 내 어린 시절 시골의 모습과 고스란히 닮았다. 모내기를 하는 어른들 곁에서 개구리를 잡는 아이들, 닭과 개가 한데 어우러져 노는 안마당, 마른 풀로 빗자루를 만드는 사내와 수확한 쌀을 도리깨와 키로 훑는 아낙의 풍경. 옛 추억이 가득한 나의 시골을 거쳐 아버지의 유년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 기분이다.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그녀는 이방인의 끼니를 걱정했고, 부엌으로 들어오라 손짓하고는 갓 지은 밥을 내주었다. 뭉클해졌다. 돌아가신 내 할머니가 생각나서다. 일행 중 몇몇은 각자의 할머니를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마을을 떠나는 순간, 우리 모두는 고향을 떠나듯 아쉬워했다. 여행길의 감동은 ‘사람’이 좌우한다는 말은 진리다. 따뜻한 밥을 건넨 할머니의 정에, 아담한 시골마을의 아리따움이 더욱 배가됐으니 말이다.
 
 
빠이의 떠돌이 개에겐 전 세계의 모든 여행자들이 주인이다
 
빠이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유를 만끽한다. 아주 나른하고 달콤하게
 
●자유하라, 빠이

팸복 빌리지에서 차로 40분이면 매홍손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빠이(Pai)에 닿는다. ‘방콕에 카오산로드가 있다면 매홍손에는 빠이가 있다’라고 설명하는 편이 더 빠르겠다. 가이드는 인근의 치앙마이마저 번화해졌다고 느낀 여행자들이 더 깊숙하고 때 묻지 않은 곳을 찾아 숨어드는 곳이 바로 이 도시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빠이에 저렴한 거처를 마련하고 스쿠터를 빌려 매홍손 산간마을과 사원을 여행한다. 빠이는 밤낮으로 흥겹다. 낮에는 거리에 도열한 먹거리 노점과 지역 특색이 살아있는 기념품 숍, 저렴한 마사지 숍을 찾던 여행객들이 밤이면 삼삼오오 펍이나 클럽에 모여 여행담을 공유한다.
 
빠이에서는 사람뿐 아니라 개들도 행복하다. 사람들의 손에 쥔 음식을 향해 열렬히 구애하는 개들에게 여행자들은 기꺼이 음식을 건넨다. 자유와 열정, 젊음이 뒤엉켜 아우라를 뽐내는 거리. 두어 달 정도 머물 수만 있다면, 몇 년은 젊어질 만한 마법 같은 곳이다.
   
Thailand through Her Eyes
태국관광청은 2016년 8월 ‘Thailand through Her Eyes’ 캠페인을 열어 세계 각국의 유명 인스타그래머, 셰프, 골퍼, 사진가들을 초청했다. 물론 ‘여자만’이다. 홍콩, 일본, 미국, 멕시코,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 호주 등 다양한 국가에서 33명이 모였으며 한국 대표로 문유선 작가가 참가했다. 5개의 루트로 나뉘어 5박 6일간의 여정 동안 태국 곳곳의 매력을 카메라에 담았다.

글·사진 Travie writer 문유선 에디터 김예지 기자  
취재협조 태국관광청 www.visitthailan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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