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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에 빠지다,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6.11.0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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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한 장면
Lake Bled 블레드 호수
 
연인들이 꿈꾸는 웨딩장소

‘알프스의 진주’라 불리는 블레드 호수는 보힌 호수와 더불어 알프스 만년설이 녹은 물로 이루어진 빙하호로, 크기는 보힌 호수의 3분의 1 정도 된다. 호수 자체로도 예쁘지만, 호수 중앙에 자리한 블레드섬과 블레드성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구(舊) 유고슬라비아 지도자였던 티토(Josip Broz Tito, 1892~1980년)*의 여름별장도 이 호수 주변에 지어졌다고 하니, 블레드의 풍경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블레드 호수 가운데에 있는 블레드섬(Bled Island)은 커플 여행지로 유명하다. 슬로베니아 사람들 사이에서도 연인이 생기면 한 번은 꼭 찾는 데이트 코스라고. 블레드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플레타나(Pletana)’라고 불리는 나룻배를 타야 한다. 나무로 만들어진 배를 뱃사공이 직접 노를 저어 섬으로 데려다 준다.
 
블레드섬에 내리자마자 우릴 기다리고 있던 관문은 99개의 돌계단. 결혼할 때, 신랑이 신부를 안고 이 계단을 다 올라야 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계단을 오르자 때마침 결혼식 피로연이 한창 진행 중이다. 따뜻한 햇볕과 맑은 호수, 행복한 신랑 신부의 미소를 보니 이곳이 왜 커플들이 꿈꾸는 웨딩장소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블레드섬에는 성모승천교회(The Church of the Mother of God)가 있다. 이곳은 9~10세기경 슬라브Slav 신화 속 지바 여신의 신전이 있던 곳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종교 전쟁으로 인해 신전이 파괴되고 몇 차례의 부침을 겪다가 17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바로크 스타일 교회가 완성되었다.
 
즉, 모두 다 합치면 그 역사가 천년이 넘는 교회다. 교회 안에 있는 종을 세 번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천년 동안 이어진 수많은 소원 더미에 살포시 내 소원도 얹었다. “평생 사랑하고 사랑받게 해 주세요”, 블레드에 어울리는 핑크빛 염원을 담아.
 
*요시프 티토 | 구 유고슬라비아 시절 초대 대통령이자 종신 대통령이다. 독재자였지만 나라를 안정적으로 통치해 국민들의 존경을 많이 받은 정치인이었다. 수정 공산주의 노선을 택해 경제를 발전시켰고 국민들에게 종교의 자유도 허락했다.
 
커플 여행지로 유명한 블레드섬. 문득 옛사랑이 떠오른다는 가이드가 아련한 추억을 곱씹으며 우리를 안내했다
신랑이 신부를 안고 오르는 전통이 있다는 블레드섬 입구 99개의 돌계단
블레드섬에서 열린 결혼식. 사람들의 뒷모습마저 행복해 보인다
블레드섬에 있는 성모승천교회에서는 소원을 빌며 종을 울린다
 
중세시대로 돌아간 시간

블레드섬과 함께 블레드 호수에서 들러야 할 또 하나의 명소는 블레드성(Bled Castle)이다. 호수 한 켠 130m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우뚝 솟은 블레드성은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 중 하나다. 블레드성의 역사는 독일 왕 헨리 2세(Henry II)가 아델베론 브릭슨 주교(Albuin of Brixen)에게 성이 자리한 영토를 주었던 1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지금의 성터에는 벽으로 둘러싸인 로마네스크 탑만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1011년 비로소 성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이후 중세시대에 이르러 몇몇 탑들이 추가로 지어졌고, 1511년 지진으로 소실된 이후 다시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블레드성은 박물관과 와인 셀러, 레스토랑, 채플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블레드성의 역사를 잘 모른다 하더라도 이 성에 오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시대로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성 곳곳에 중세시대 의상을 입고 있는 사람들, 박물관 안에 실제 사람 크기로 재현해 놓은 중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곳만큼은 시간이 빗겨간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든다.
 
성 아래층에 있는 인쇄소로 들어서는 순간 시간 감각은 더욱 무뎌지고 만다. 마치 역사책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이 공간은 15세기 구텐베르크 활자 인쇄 방식을 재현하는 인쇄소다. 원하는 문장을 말하면 당시 의상을 차려 입은 주인장이 옛날 방식 그대로 금속 활자기를 이용해 문구를 새겨 준다. 이미 새겨놓은 책갈피나 엽서 등도 가게 한 쪽에 비치되어 있는데, 그중 유독 내 눈길을 잡아끌던 책갈피의 문구가 있었으니, 

“Don’t wait for the perfect moment. Take the moment and make it perfect (완벽한 순간을 기다리지 마라. 지금 이 순간을 완벽하게 만들어라) .”

중세시대로 돌아가 이 성의 주인이 된 것처럼 공간 하나하나를 누비던 그 순간만큼은, 또 다른 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완벽한 시간이었다.
 
역사책에서 금방 툭 튀어나온 것 같은 블레드성 내부의 구텐베르크 인쇄소
블레드성에 위치한 와인 셀러. 슬로베니아 전통에 의하면 중요한 날, 중요한 사람이 와인 병을 칼로 가르며 축제를 시작한다고
블레드성에서 호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미로웠던 한때
 
블레드성
주소: Grajska Cesta, 4260 Bled, Slovenia
운영시간: 11~3월 8:00~18:00, 4월~6월14일 8:00~20:00, 6월15일~9월15일 8:00~21:00, 9월16일~10월 8:00~20:00 
전화: +386 4 5729 782
홈페이지: www.blejski-grad.si/en
 
 
▶RESTAURANT
파크 레스토랑 & 카페(Park Restaurant & Cafe)
블레드의 명물 크림 케이크 ‘크렘나 레지나(Kremna Rezina)’의 원조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수십년 동안 이전 그대로의 레시피를 고수해 오고 있다. 상아색 바닐라 크림과 하얀 휘핑크림 위에 얇은 페스트리 빵이 덮인 정사각형 케이크는 상상 그 이상의 맛이 난다. 그리 달지도, 느끼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맛. 그 맛을 한국까지 테이크아웃 해오지 못한 게 아쉽기만 하다. 
주소: Park Restaurant & Cafe, Cesta Svobode 15, 4260 Bled, Slovenia
가격: 오리지널 크림 케이크 한 조각 €3.7
전화: +386 4 579 18 18
이메일: kavarna@hotelibled.com
 
에디터 김예지 기자 취재 트래비 슬로베니아 원정대(글 정혜은 사진 김상준)
취재협조 슬로베니아관광청 www.slovenia.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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