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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 마라톤, 해변에서 파티까지 “RUN!”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7.06.0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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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기록을 보니 생각보다 더 좋았다. 
기쁜 마음으로 파티장으로 갔다. 
태양이 뜨거워 파티장 앞 시원한 바다에 그대로 몸을 던졌다. 
끈적거리는 땀과 식지 않은 열기가 한순간에 녹는 듯한 행복감. 
이곳은 서태평양 마리아나 제도의 대표 휴양지, 괌이다.
 
괌 해변을 달리고 있는 유나이티드 괌 마라톤 대회 참가자들
괌의 해변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현지 소녀  
 

축제에 참가해야 마라톤 패킷을 드려요

괌 국제공항은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출국 전 옷깃을 여미게 했던 한국의 쌀쌀한 바람은 온데간데없었다. 숙소인 괌 PIC까지 가는 동안 한들거리는 야자수와 활짝 핀 플루메리아 꽃이 반갑게 인사했다. 맑은 하늘과 기분 좋은 열기, 넘실대는 푸른 바다를 지나고 있자니 빨리 달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길 곳곳에는 ‘유나이티드 괌 마라톤(UGM) 2017’ 대회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휘날렸다. 올해로 5회를 맞은 괌 마라톤 대회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공인 인증을 받은 대회다. 이번 대회는 19개국 총 4,335명이 참석한 역대 최대 규모다. 레이스 종류는 5km, 10km, 하프코스, 풀코스 등 총 4개로 나뉜다. 내가 선택한 코스는 10km. 무리하지 않고 즐겁게 뛸 수 있는, 나에게 제격인 코스다.

대회 전날인 4월7~8일에는 괌 PIC에서 하파데이 엑스포 행사가 열리는데 마라톤 대회 참가자는 이곳에서 패킷을 수령해야 한다. 부스는 국적별로 나뉘어 있다. 한국 부스에서 번호표, 대회 기념 티셔츠, 코스 안내문 등이 들어 있는 패킷을 받은 뒤 행사장을 한 바퀴 돌아봤다. 마라톤 대회를 앞둔 긴장감보다는 흥겨운 축제 분위기가 행사장 안에 가득 차 있었다. 행사장 한쪽에는 현지 가수가 연신 흥겨운 무대를 펼쳤고 괌 관광청 부스에는 미스 유니버스 괌이 방문해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행사장 내부에는 마사지 숍, 각종 스포츠용품, 러닝 장비, 기념품 판매점 등의 부스가 마련돼 있었다. 엑스포장을 나와 괌 PIC의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마라톤에 참가한 힙합듀오 지누션의 션
하파데이 엑스포에 참가한 미스 유니버스 괌과 괌 PIC의 마스코트
 
새벽에 흥겹게 몸 풀기

엑스포 다음날, 드디어 괌 마라톤 대회의 아침이 밝았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밝지는 않았다. 괌의 낮 시간은 매우 더우므로 선선한 새벽에 경기를 시작해 아침에 마친다. 풀코스의 출발 시각은 새벽 3시, 하프코스는 새벽 4시, 10km는 새벽 5시, 5km는 새벽 6시로 1시간 간격을 두고 이어지고 모든 마라톤 코스는 10시에 폐쇄된다. 10km 코스에 참가하는 나는 새벽 4시에 호텔 로비에 집합해 출발점인 이파오 비치 파크(Ypao Beach Park)로 향했다. 스타트 라인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로 대회장은 북적였고 조명으로 만든 작은 터널이 검은 하늘 아래 밝게 빛났다. 참가자들은 주최 측 초청을 받은 DJ의 신나는 디제잉을 들으며 흥겹게 몸을 풀었다. 음악을 들으며 몸을 푸니 아직 잠에 빠져있던 피가 빠르게 돌며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이번 대회 전체 참가자의 절반은 외국인이다. 한국은 519명이 출전해 일본(1,181명)에 이어 외국인 참가국 2위를 기록했다. 2013년 첫 대회의 한국인 참가자가 139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 때문인지 주최 측은 한국의 유명인들도 초청했다. 이날은 힙합듀오 지누션의 션, 배우 엄현경,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경리, 배우 김새론과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에 빛나는 이봉주 선수가 참가해 대회를 빛내 줬다. 한국 유명인들의 기념촬영이 끝난 후에는 사전 행사가 이어졌다. 유나이티드 항공이 마련한 경품행사를 비롯해 괌 전통복장을 한 공연자들이 펼치는 불 쇼가 열렸다. 어두운 밤을 수놓은 불의 향연과 현지 음악은 현지 문화를 접하는 기회인 동시에 전의를 불태우는 계기가 됐다.
 
직접 만든 모자를 쓰고 달리는 한 선수
결승점에 도착한 선수들
대회 구간에서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사람들
 
 
늦게 출발해도 괜찮아

출발 신호와 함께 참가자들이 일제히 출발했다. 하늘에 뿌려지는 색종이를 맞으며 달려가는 이들의 발걸음은 가벼웠고, 길옆에 늘어선 응원 인파는 큰 소리로 힘을 보탰다. 대형이 워낙 복잡해 참가자 대부분이 사라진 뒤에야 출발선을 볼 수 있었다. 늦게 출발해도 별문제는 없다. 가슴에 있는 전자 타이밍 칩이 내 완주시간을 기록하고 그 기록에 따라 순위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 목표는 1시간 이내에 도착하는 것. 지금까지 내 10km 최고 기록은 1시간 15초였다. 풀코스처럼 힘들진 않겠지만 새로운 목표를 정한 심정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드디어 출발. 컨디션이 좋았다. 남들보다 앞서겠다는 생각보단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속도를 조절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먼저 출발한 이들의 모습이 나타났고 하나둘 제칠 수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현지인들이 밖으로 나와 마라토너들과 하이파이브 하며 힘을 북돋아 줬다. 누가 대신 뛰어 주지 않는 외로운 레이스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다.
 
페이스를 유지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생긴 욕심에 속도를 낸 탓일까 평소보다 자주 갈증이 났다. 다행이 그때마다 보급소가 보였다. 보급소에는 물, 이온음료뿐만 아니라 코스에 따라 코코넛 캔디, 괌 특산품 아피기기(Apigigi) 등 현지음식도 있었다.
 
눈앞에 반환점이 나타났다. 시계를 보니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다. 희뿌옇게 동이 틀 무렵,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올 때는 내리막길이니 돌아갈 때는 오르막길로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찌 보면 우리 인생과 닮았다. 1km 정도 남았을 때 마지막 힘을 쥐어짜 속도를 올렸다.
 
몇 명을 더 제친 후 드디어 결승점에 도착했다. 쉬는 건 잠시,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기록 확인을 위해 주최 측이 마련한 부스로 향했다. 전자 타이밍 칩을 통해 측정된 시간은 58분 21초. 기록지에는 등수도 표시되는데 전체 10km 참가자 947명 중 122등이었다. 10km 코스 1위 기록은 33분 26초. 가히 괴물 같은 성적이다. 혀를 내두르는 것도 잠시. 등수를 떠나 개인 목표를 달성했다는 뿌듯함이 가슴을 채워 왔다.
 
한 참가자가 마라톤 완주 후 해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마라톤 참가자를 위한 BBQ 파티장 입구
 
 
완주 후 즐기는 달콤한 파티

레이스가 끝난 후 기념 메달과 수건, 비치 매트를 받았다. 지금까지 받은 마라톤 기념 메달 중 가장 예뻐 마음에 들었다. 결승점인 이파오 비치파크에는 BBQ 비치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어느새 환하게 날이 밝았다. 이제 본격적인 축제를 즐길 차례. 대형 무대에선 밴드의 공연이 펼쳐졌고, 바다 앞에 마련된 기념 무대에서는 요정처럼 차려입은 도우미들이 참가자들과 함께 인증샷을 찍었다.
 
파티장 안에서 완주자를 위한 바나나, 오렌지, 각종 주스, 이온음료, 코코넛 떡 등을 나눠 줘서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무제한인지 몇 번을 가서 받아와도 괜찮았다. 이외에도 곳곳에 마련된 부스에서 아이스커피 같은 음료나 바비큐 요리 등을 팔기도 했다.
 
파티장 한쪽엔 물소의 일종인 카라바오를 탈 수 있는 곳도 있었다. 말은 타 봤지만 소는 한 번도 못 타 봤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무섭게 생긴 외양과 달리 순한 녀석은 주인이 이끄는 대로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소에서 내려 파티장 바로 앞에 있는 해변으로 향했다.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니 왠지 온몸이 더 뜨겁게 느껴졌다. 잠시 망설이다 그대로 바다로 첨벙. 짜릿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끈적거리는 땀과 식지 않은 열기가 한순간에 녹아 내리며 행복감이 나를 덮쳤다. 물에 둥둥 떠다니며 뜨거운 햇볕과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을 즐겼다. 머릿속에는 살아 있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바닷속 SMS 코모란호를 탐사하는 잠수부
바닷속에 펼쳐진 SMS 코모란호 침몰 기념물
SMS 코모란호가 침몰한 아프라항에서 열린 기념식 
 
 
한곳에 잠든 두 개의 역사

마라토너뿐만 아니라 스쿠버다이버에게도 괌은 매력적인 곳이다. 1·2차 세계대전 당시 침몰당한 배 두 척이 거의 같은 지점에 잠든 장소가 있기 때문. 마라톤 결승점인 이파오 비치파크에서 남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있는 자연항구 아프라항(Apra Harbour), 이곳에 독일의 순양함 SMS 코모란(SMS Cormoran)Ⅱ호가 가라앉아 있다. SMS 코모란호는 1914년 12월 연료 부족으로 괌에 정박했지만 당시 중립국이던 미국이 연료 공급을 거부하면서 계속 괌에 머물러야 했다. 독일 선원들은 미국인과 우호적으로 지냈으나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독일군에 항복을 권유했다. SMS 코모란호의 선장은 배를 넘기느니 스스로 없애기로 결정, 1917년 4월7일 SMS 코모란호를 아프라항에 침몰시켰다. 배는 해저 34m 지점에 지금까지 잠들어 있다. 괌 정부는 지난 4월7일 SMS 코모란호의 침몰 100주년을 기념해 아프라항에서 추모행사를 열고 1차 세계대전과 괌의 이야기를 알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26년 후,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1943년에 미군 잠수함이 일본 화물선인 토카이 마루를 어뢰로 격침시켰다. 그런데 배가 침몰당한 지점이 공교롭게도 SMS 코모란호에서 불과 24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이후 이곳은 스쿠버다이버들의 명소로 거듭났다. 한 번의 잠수로 1·2차 세계대전 중 침몰된 배를 한번에 만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장소이기 때문. 괌을 방문했을 때 한 번쯤 도전해 보자.  
 

▶마라톤 & 숙소 정보
대한항공,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등이 인천-괌 직항을 주 7회 운항 중이며 비행시간은 약 4시간 30분 소요된다. 45일 미만은 비자가 없어도 입국할 수 있다. 괌 마라톤 대회는 일찍 신청할수록 참가비가 싸다. 올해, 풀코스의 경우 엑스포장에서 현장 접수를 하면 참가비로 150달러를 내야 했지만 지난해 9월2일까지 접수했다면 60달러, 12월2일까지는 85달러, 올해 2월3일까지는 100달러로 참가신청이 가능했다. 내년 대회를 목표로 한다면 미리 정보를 찾아보고 일찍 신청하자. 다음 괌 마라톤 대회는 2018년 4월8일로 예정돼 있다.  www.guammarathon.kr 

글·사진 김명상  정리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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