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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왕디, 없어진 것들에 대하여

  • Editor. 차민경
  • 입력 2017.07.1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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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디 Wangdue
 
언덕에서는 촛불 화재로 전소돼, 현재 재건 중이라는 왕디종(Wangdue Dzong)이 내려다 보였다. 시골마을의 비포장도로를 달려본 것이 언제더라.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게 됐을 땐, 없어진 것들에 대하여, 혹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녜젤강라캉의 안마당. 수백년의 시간 동안 변하지 않은 풍경이다
왕디의 가파른 언덕을 누비는 아이들. 차창 밖으로 던진 인사에 환한 얼굴로 화답하곤 했다
 
●다시 태어나고야 말았다는 소식

군데군데 깊은 웅덩이가 파인 흙길을 자동차가 뒤뚱뒤뚱 올라간다. 여럿 애를 먹였으리라 충분히 짐작 가는 길이다. 왕디 르위사(Rubesh) 마을에 위치한 녜젤강라캉(Nyezergang Lhakhang)을 찾아가는 길이다. 작은 중소 도시의 외곽, 도로도 깔리지 않은 길 끝에 자리한 이 사원은 비밀스럽다. 녜젤강라캉이 보여 주는 부탄의 대표적인 불교 종파, 금강승은 극적이다. 

불교 종파 중 하나인 금강승은 티벳에서 전해 온 티벳밀교다. ‘비밀의 가르침’이란 말 뜻 그대로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말로 전해지며, 수행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비밀리에 진행된다. 문자로 쓰인 경전 없이 구전된다는 것인데, 곧 유실의 위험도 높다. 부탄에 밀교를 들여온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는 이를 우려해 경전을 만들어 히말라야 곳곳에 숨겨 놓았단다. 녜젤강은 파드마삼바바가 숨겨놓은 경전이 발견된 곳으로, 경전을 찾은 울링빠 스님이 13세기에 설립했다. 샵뚱 나왕 남갤에 의해 부탄이 설립된 것이 16세기이니, 부탄이 있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신성한 사원임이 분명하다. 부탄의 67대 제켄포(Je Khenpo), 국사스님인 나왕 스님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무릇 부탄의 국사스님은 수행력이 가장 높은 스님에게 주어지는 것이니 녜젤강의 덕과 공도 높다고 평가할 수밖에. 실제로 제켄포의 배출 이후 녜젤강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그러나 첫 말미에서 극적이라 표현했던 것은 이런 이야기 때문이 아니다. ‘꾸둥’과 ‘환생’ 때문이다. 꾸둥은 입적한 스님의 작아진 몸을 표현하는 단어다. 수행을 많이 한 스님은 입적과 함께 신체의 기운이 빠져나가면서 ‘쟁반에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몸이 작아진단다. 67대 제켄포인 나왕 스님은 19년의 임기를 마치고 녜젤강으로 돌아와 바로 입적했고, 스님의 몸은 꾸둥이 되었단다. 가장 의심스러운 건 쟁반의 크기다. 큰 쟁반일 수도 있잖는가. 물론 작은 쟁반이 맞다. 나왕 스님의 꾸둥은 허리 높이의 작은 탑 안에 모셔져 있고, 탑은 한눈에 척 보아도 한 아름으로 품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눈앞에 두고도 믿기 어려웠다. 스님의 입적과 관련한 몇 가지 이적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지만 사실 확인이 어려우니 ‘믿거나 말거나’로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꾸둥은 눈앞에 있었다. 

여기에 환생까지 더해졌다. 나왕 스님은 7년 전에 환생했고, 부탄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단 것이다. 샵뚱 나왕 남갤의 환생에 이어 두 번째로 듣는 환생 이야기다. 미신과 비과학의 망령을 쫓아내기 위해 노력해 왔던 지난날이 또다시 소환됐다. 환생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진지함이 얼마나 놀라웠을지 상상해 보라. 그렇다고 귀가 두꺼운 것은 아니어서 자연스레 설득되는 것을 피할 수도 없었다. 부탄 사람들이 환생을 확인하는 방법은 나름의 과학적인 검증 방식을 통해 이뤄졌다. 지인들을 알아보는지, 물건을 기억하는지 등 테스트를 거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맞는 것이겠지. 가타부타 평가해서도 안 될 일이었다. 

녜젤강라캉이 있는 르위사 마을도 남다르다. 총 3,000여명의 주민들은 거의 대부분 집에서 수행하는 재가수행자다. 결혼도 하고 직업도 갖는 등 일반인처럼 생활하지만 스님처럼 수행하고 경전을 공부한다. 금강승의 교리에 맞춰 은밀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한 수행을 통과한 일부 주민들은 스님과 똑같은 지위를 얻게 되기도 한다고. 덕분에 르위사 마을에서는 자주 이적이 나타난다. 매년 3월 종교 축제인 돔첸 축제를 할 때는 쌍무지개가 뜨거나 하늘에서 쌀가루가 떨어지기도 한단다. 

돌아와 녜젤강을 떠올릴 땐 음소거를 누른 것 같다. 동자승들이 배시시 웃거나 소곤소곤 떠드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소리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모든 장면이 꿈이었던양 고요하다. 실은 녜젤강에 압도당해서였는지 모를 일이다. 동그랗게 작아졌다는 스님의 몸, 다시 태어나고야 말았다는 윤회의 굴레에 말이다. 
 
꾸둥이 된 스님의 몸이 모셔진 작은 탑. 스님이 생활하던 공간에 놓여 있다  
수행자의 길을 선택한 어린 스님들. 칭칭 몸에 둘러 맨 법복의 무게를 알고 싶었다
대부분의 마을 주민이 수행자라는 르위사 마을의 아이들
 
 
글 차민경 기자  사진 정태겸  취재협조 부탄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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