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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올레 칭기스산 코스-몽골에서 찾은 제주풍경들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7.08.03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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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se 2 
바람에 씻긴 성스러움 
칭기스산 코스   
 
시작점(종점 동일) 칭기스산Mt. Chinggis(Gorkhi-Terelj National Park) 
거리 11km  
소요시간 3~5시간  
난이도 하 
 
고르히-테렐지 국립공원의 검은깃발 어워에서 치성을 드리거나 휴식을 취하는 올레꾼들
녹색 초원에 들어서자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몽골에서 ‘고수목마’를 보다
 
몽골에 가서 이곳에 안 간 여행자는 없다는 곳이 고르히-테렐지 국립공원(Gorkhi-Terelj National Park)이다.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비교적 가깝기도 하고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수려한 풍광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여태껏 고르히-테렐지 국립공원에서 하루 종일 걷기만 한 여행자는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무한히 넓은 대지 위를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느린 수단으로 이동한다는 것이 지금에야 무모한 일이 됐지만, 사실 인류가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선택한 여행법은 도보였다. 실크로드와 사막을 건너 문명을 실어 날랐던 대상이라도 된 양, 두건을 두르는 마음이 아침부터 비장했다. 
 
울란바토르에서 동북쪽으로 70km 달려왔다. 딱히 시작점이라고 할 만한 이정표도 없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올레길이 시작된다. 칭기스(Chinggis)산 주변으로 원을 그리며 11km를 걸으면 다시 시작 지점으로 돌아오는 순환 코스다. 난이도가 ‘하(下)’ 였지만 어제의 난관이 바람이었다면, 오늘은 그 바람이 없는 것이 난관이었다. 날이 더웠다. 

사실상 국립공원의 주인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 양, 말들과 눈에 보이지는 않는 야생동물들이었다. 목가적인 풍경의 완성이지만 시선을 너무 팔았다가는 배설물 지뢰를 피해 가기 어렵다. 유목민들에게는 이 배설물이 소중한 땔감이니 불평할 일은 아니다. 혹시라도 애기뿔쇠똥구리가 열심히 똥경단을 굴리는 것을 본다면 사진이라도 찍어 둘 일이다. 국내에서는 멸종위기종이다. 

초반에 좀 지루하게 느껴졌던 풍경은 점점 드라마틱해졌다. 첫 번째 코스가 기찻길과 나란히 흘렀다면 2번째 코스는 몽골 동북부의 젖줄인 톨강(Tuul River)을 끼고 있었다. 한가롭게 물을 마시고 풀을 뜯는 가축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이유다. 이 장면은 나를 다시 제주로 소환했다. 제주의 명승을 노래한 창민요인 ‘영주십경(瀛州十景)’ 중 하나로 ‘고수목마(古藪牧馬)’라는 것이 있다. 풀밭에서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바로 그 장면이 지금 바로 몽골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몽골의 지배를 받는 동안 수만 마리의 말이 원에서 제주로 유입되어 군마로 키워졌던 역사가 있다. 천연기념물 347호로 지정된 제주마에는 분명 그 DNA가 섞여 있을 것이다. 

길을 걷다 보면 늪지에 놓인 징검다리가 나오는데, 올레꾼들을 위해 현지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만든 것이다. 자동차용 다리는 아직 없어서 모든 차들은 바퀴가 푹 잠기는 깊이의 웅덩이를 그대로 관통하고 있었다. 상황에 맞추어 사는 것이다. 초원에서 간혹 발견되는 게르에 다가가 보면 바람개비나 집열판, 인공위성 안테나를 볼 수 있다. 자가발전을 해서 TV도 보고 전구도 켜는 것이다. 그게 신기해서 어슬렁거리다 주인에게 발각됐다. 한국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다는 아저씨가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밀크티를 권했다. 그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이미 대열의 끄트머리라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톨강을 따라 이어지는 올레길  
목마른 동물들에게는 이곳이 오아시스다
쓰러진 고목을 만난 김에 멋지게 찰칵
스크린처럼 펼쳐진 바위산이 압도적이다
완주의 기쁨을 간세와 함께! 
 
 
 
올레꾼의 소원을 들어주시다 

후반으로 접어들어 산등성을 오르기 시작하자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들이 눈앞에 스크린처럼 다가왔다. 오랜 풍화작용으로 노출된 암석의 풍광이 바로 고르히-테렐지국립공원을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만든 주역들이다. 거북바위, 소원바위 등등을 포함해 다양한 이름을 가진 바위들이 국립공원 곳곳에서 이정표가 되어 준다. 

완만한 것 같으나 끝이 없어 보이는 경사가 언덕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물론 그게 마지막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가끔 뒤를 돌아보면 터벅터벅, 궁륭 같은 대지를 걷는 동안 대부분은 말수가 없어졌다. 이 코스의 가장 중요한 이정표인 어워(Ovoo)가 시야에 잡혔기 때문이다. 초원을 걸으면서 어워를 발견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 능선에는 특별히 이곳 사람들이 더 신성하게 생각하는 2개의 어워가 있다. 아래쪽 것은 검은 깃발 어워, 정상 부근의 것이 흰 깃발 어워다. 어워는 돌무더기를 쌓아 만든 성황당 같은 곳이다. 돌무지를 따라 3바퀴를 도는 발걸음 속에 비를 내려 달라는 기원도, 무탈하게 여행하고 있음에 대한 감사도 모두 담겼다. 어워의 역할은 치성에만 있지 않았다. 잠시 앉아서 땀도 닦고, 물도 마시고, 기념 촬영도 한다. 이 순간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마지막 기운을 끌어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방인들의 요란한 제의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이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무거운 발을 밀어내기를 반복한 끝에 2코스의 마지막 고개지점에 도착했다. 익숙한 간세표시가 마중 나와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입니다.’ 뒤돌아보니 지금껏 올라왔던 모든 길이 발아래 펼쳐졌다. 

마무리가 신났던 이유는 몽골 여행의 진수라는 말 타기와 게르에서의 하룻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기대한 것은 별빛 가득한 초원의 밤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우리를 찾아온 것은 별이 아니라 비였다. 자정 즈음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올해 들어 최고 강수량을 기록하며 다음날까지 이어졌고, 결국 출국 비행기마저 결항시키고 말았다. 2코스에서 어워를 돌며 간절하게 비를 빌었다는 누군가의 치성이 하늘을 열었나 보다. 몽골에서는 한국을 ‘무지개의 나라’라는 의미로 ‘솔롱거스Solongos’라고 부른다고 했다. 문득 올레길을 걷겠다고 찾아온 이방인들이 비처럼 반가운 존재였기를,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한 몽골올레의 모든 길 위로 무지개가 드리우기를 바랐다. 
 
*두 개의 전망 포인트 
고르히-테렐지 국립공원에 갔다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거북바위와 칭기스칸 동상이다. 거북바위는 전설을 품고 있다. 거대한 거북이가 마을 주민들을 위협하자 산신령이 나타나 바위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집채만 한 규모인데, 올라가면 주변 풍광을 볼 수 있다. 칭기스칸 동상은 자유의 여신상처럼 꼭대기층에 전망대가 있다. 내부는 전통 의상 등이 전시된 박물관이다. 
 
 
*에어부산 타고 몽골 가기 
에어부산은 부산과 울란바토르 노선을 주 2회 직항으로 운항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은 오전 8시35분 출발. 매주 화요일은 오전 10시35분 출발이다. 비행시간은 3시간 30분~4시간 정도 소요된다. 돌아오는 귀국편은 현지에서 금요일 오후 12시50분, 화요일 오후 2시30분에 출발한다. 6~9월 사이의 성수기에는 좌석을 구하기 어려우니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   www.airbusan.com
 
 
글 천소현 기자  사진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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