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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책 공간을 찾아서

  • Editor. 양미석
  • 입력 2017.10.12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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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유학 시절,
내 벗이자 선생님이었던
도쿄의 책 공간.
강산이 한 번 변하는 시간 동안 
묵묵히 옆에 있어 준 그들에게 고맙다.
루트 북스
 
도쿄의 책 공간이 여행자를 부른다

11년 전 처음 도쿄를 찾았을 때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유난히 조용하던 전철 안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클 뿐인 작은 크기의 책에 빠져 든 사람들의 모습을. 도쿄의 전철 안은 1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조용하지만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은 문고판 책이 아닌 스마트폰으로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최근 몇 년 사이 도쿄에는 독특한 형태의 책 공간이 여럿 생겨났다. 지금까지는 책을 읽는 일상이 너무도 당연해서 특별한 공간이 필요 없었다면 이제는 책 이상의 것을 담은 서점이 필요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행이야말로 일상을 벗어난 시간의 연속. 매력적인 도쿄의 책 공간이 여행자를 부른다. 일본어를 못하는 사람이라도 상관없는 그곳으로 나릿나릿 발걸음을 옮겨 보자.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사진집식당 메구타마 写真集食堂めぐたま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에는 에비스 맥주 기념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리뉴얼 공사를 마치고 새로 문을 연 도쿄도 사진미술관이 에비스 맥주 기념관 맞은편에 있다. 그리고 자그마치 5,000권의 사진집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공간 역시 이곳에 있다.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와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 역에서 10분쯤 걸었을 뿐인데 역 앞의 소란함은 마치 먼 옛날 일과 같이 느껴질 정도로 조용한 동네에 들어선다. 시부야에 가까워졌지만 아직 번잡하지는 않다. 오르막길이 힘겨워질 때쯤 주변 건물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새의 건물이 오른쪽에 나타난다. ‘사진집식당 메구타마’.
 
높은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에 자리한 눈이 편한 옅은 갈색의 목조 건물이다. 계산대가 있는 입구만 보자면 그저 평범한 식당일 뿐이지만 안으로 더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의 긴 변에 해당하는 부분이 온통 책으로 빼곡하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이 사진집들은 오로지 단 한 사람의 장서였다. 30년 동안 사진평론가로 활동한 이자와 고타로(飯沢耕太郎)씨가 바로 이 사진집들의 주인. 단 한 권이든 5,000권이든 사람들이 봐 주지 않는다면 소용없다고 생각한 그가 마음 맞는 친구 두 명과 의기투합해 만든 공간이 바로 ‘사진집식당 메구타마’다. 

점심시간에 이곳을 방문하면 밥 짓는 냄새가 고소하게 올라온다. 이름에서 눈치 챘겠지만 북카페나 사설 도서관이 아닌 식당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언제 여기 다시 와서 이걸 먹어 보겠어’ 하는 마음에 평소보다 과식을 하게 마련이다. 그럴 때 사진집식당 메구타마의 음식은 상냥하게 속을 달래 준다. 점심메뉴로 전형적인 일본 가정식이 제공되는데 현미밥은 쌀알이 부드럽고 반찬은 하나하나 재료 고유의 맛이 살아있다. 굳이 사진집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일본 가정식을 먹기 위해 사진집식당 메구타마를 방문해도 좋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밥 한 공기 더 주세요!”를 외치게 될지도 모를 일.  
 
주소: 東京都渋谷区東3-2-7 1F
오픈: 평일 11:30~23:00(마지막 주문 22:00), 주말 12:00~22:00(마지막 주문 21:00), 월요일 휴무(공휴일인 경우 영업, 다음날 휴무)
 
 
▶사진집식당 메구타마와 함께 가기 좋은 공간
 
한 달에 한 출판사의 사진집만 파는 곳
포스트 POST

주소: 東京都渋谷区恵比寿南2-10-3
오픈: 12:00~20:00, 월요일 휴무
 
갤러리가 있는 사진집·화집 책방 
나디 트 NADiff a/p/a/r/t

주소: 東京都渋谷区恵比寿1-18-4
오픈: 12:00~20:00, 월요일 휴무(공휴일인 경우 영업, 다음날 휴무)
 
 
 
 
 
●회색 도시 속의 오아시스를 찾아
루트 북스 ROUTE BOOKS
 
도쿄는 좀 덜하다고 하지만 일본 전국적으로 봤을 때 인구감소로 인한 빈집이 커다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히 집뿐만이 아니다. 동네 한구석에서 작게 운영했던 공장이나 가게도 속속 문을 닫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국립서양미술관이 있고 나리타공항으로 가는 직행 열차의 시발착역이기도 해서 여행자가 많이 찾는 동네인 우에노. 23구에 속해 있지만 중심 중의 중심에서는 살짝 벗어난 위치다. 볼거리가 몰려 있는 우에노 공원의 건너편에는 여전히 오래된 건물들이 꽤 많은 편이다. 그 오래된 건물 중 하나, 몇십년 동안 목공소로 사용되었다가 한동안 을씨년스럽게 비어 있던 건물에 젊은 예술가들이 숨을 불어넣었다.

‘루트 북스’에 가까워질수록 삭막한 회색 건물 사이로 초록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집은 현관 부분만 빼고 한쪽 벽면을 전부 다 화분으로 채웠다. 그렇게 우에노의 뒷골목을 걷다가 루트 북스와 마주친 순간,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남다른 센스에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않고 카메라를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게 된다. 문의 왼쪽은 온실처럼 꾸며진 꽃집, 오른쪽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쑥쑥 자란 키 큰 화분들의 잎과 가지가 서가에 제멋대로 쑥 끼어들었다. 책꽂이나 의자, 테이블도 어딘가 모르게 투박하다. 루트 북스의 가구는 옛 목공소 자리에 다시 들어선 목공소에서 직접 만들기 때문이다. 유리가 없는 창문 너머로 대패질을 하는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끊임없는 반복 동작을 하고 있는 그에게 내 손에 들린 시원한 진저에일을 건네고 싶어진다. 

사진집에서부터 조경과 원예에 관한 책, 정원에 관한 책까지. 서가에는 식물에 대한 책이 유독 많다. 이 공간에서 식물에 대한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분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텃밭을 가꾸고 싶은 마음이 들 것만 같다. 어릴 때 집에서 키운 적이 있는, 내 키만 한 고무나무 화분이 눈에 아른거렸다. 루트 북스에서 나와 저녁식사를 어찌할지 잠깐 고민을 하다 백화점 지하 식품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벚꽃이 지고 한창 신록이 우거진 우에노 공원의 벤치가 오늘 저녁 근사한 디너 테이블이 되어 줄 테니까.
 
주소: 東京都台東区東上野4-14-3 Route Common 1F
오픈: 12:00~19:00
 
▶루트 북스와 함께 가기 좋은 공간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미술관
국립서양미술관

주소: 東京都台東区上野公園7-7
오픈: 9:30~17:30, 월요일 휴관 (공휴일인 경우 개관, 다음날 휴관)
 
 
 
 
●문학의 향기가 있는 공간으로
분단 커피 앤 비어 BUNDAN COFFEE AND BEER
 
한자가 아닌 알파벳으로 쓰여 있어 바로 눈치 채지 못했지만 알고 봤더니 우리말로 문단(文壇)이다. 사전을 펼쳐 뜻을 찾으니 ‘문인들의 사회’라고 풀이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과연 그 이름이 잘 어울리는 카페다.

 ‘무슨 카페가 오후 4시에 문을 닫는 거야!’
입을 삐죽이며 오픈 시간에 맞춰 서두른다. 시부야와 시모키타자와의 중간쯤인 이름도 생소한 고마바(駒場). 역에서 10분 정도 걸으니 고마바 공원이 나왔다. 그 공원 안에 일본근대문학관이 있고 1층에 분단 커피 앤 비어가 있다. 문학관의 운영시간을 따라야 했기 때문에 영업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었던 것. 비가 오는 평일 오전 공원엔 새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오로지 빗소리뿐이다. 분단 커피 앤 비어에서는 문학 작품에 ‘등장’한 요리를 재현해 메뉴로 내놓는다. 예를 들면 나가이 가후의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에 나오는 오리고기 소면이라든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주인공이 먹는 아침식사라든가. 

책을 아직 읽어 보지 못했기에 조금 망설이다가 그나마 제일 무난해 보이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조식 세트를 시킨다. 어두운 실내는 비가 와서인지 더욱 몽환적으로 느껴진다. 한쪽 벽에는 문고본이 한가득, 계산대 옆에는 분단에 다녀간 문인들의 사인을 모아 놓았다. 아는 이름이 있을까 눈을 반짝이다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사인을 발견했다. 이름만큼 귀여운 그의 사인. 그 사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접시가 테이블에 올려졌다. 샐러드와 토마토소스와 매시 포테이토, 소시지와 바게트가 어우러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조식세트. 통통한 소시지에 포크를 갖다 대니 ‘뽀득’ 맛있는 소리가 났다. 손님보다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은 조용한 가게 안에서 접시를 입에 갖다 대고 후루룩 마셔 버리고 말았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커피도 곁들이세요’라는 꾐에 빠져 꽤 진한 커피까지 한 잔 마시고 나니 어느덧 점심 시간이 됐고 손님이 하나둘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고마바 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흡연 구역 테라스 자리도 벌써 만석.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어 담배 연기는 빠르게 공중으로 흩어진다. 

‘다음번 방문할 때도 비가 온다면 테라스 자리도 나쁘지 않겠어!’ 
 
주소: 東京都目黒区駒場4-3-55
오픈: 9:30~16:20, 월요일·일요일·매월 넷째 주 목요일 휴무
 
▶분단 커피 앤 비어와 함께 가기 좋은 공간
 
요시모토 바나나가 단골인 책방
책방 비앤비(本屋B&B)

주소:東京都世田谷区北沢2-12-4第2マツヤビル2F
오픈: 12:00~23:00
 
시부야의 셀렉트 서점
시부야 퍼블리싱 앤 북셀러즈(
SHIBUYA PUBLISHING & BOOKSELLERS)
주소: 東京都渋谷区神山町17-3テラス神山1F  
오픈: 12:00~23:00
 
 
 
 
●아이와 함께하는 도쿄 여행
빵집 책방 パン屋の本屋
 
낯선 도시에서 내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든데 여기저기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꼬마요정과 함께라면? 그 꼬마요정은 가끔은 부모를 화나게도 하지만 결국엔 세상에서 제일 큰 함박웃음을 짓게 만드는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이다.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여행이 힘들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게다가 도쿄의 식당이나 가게는 왜 이렇게 비좁기만 한지. 어쩌면 여행이 아닌 고행이 될지도 모른다 생각된다면 너무 빡빡하게 돌아다니지 말고 한 번쯤 쉬어 가도 괜찮다.

빵집은 오전부터 북적북적하다. 앞뒤에 유아 좌석이 달린 자전거가 일렬로 죽 늘어섰고 아이들은 마치 제 방인 것처럼 마당을 뛰어다닌다. 책방 입구에는 묘한 안내문이 쓰여 있다.

 ‘유모차 환영, 아이 손님의 우는 소리나 떠드는 소리 환영’

빵집이든 카페든 책방이든 그 어디에서도 아이들에게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다. 조심해야 할 사항은 단 한 가지뿐. 

 ‘음료나 빵은 다 먹고 들어오세요.’

갓 나온 크루아상과 커피는 카페에서 먹고 작은 정원을 지나 책방으로 들어간다. 역시 동화책과 그림책이 많고 빵에 관한 책도 많다. 책방 곳곳에 놓여 있는 빵 장식품은 실제 빵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 너무 사고 싶어져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니 글쎄, 제빵사가 만든 거란다. 밀가루로 만든 실제 빵에 유약을 바른 후 한 번 더 구웠다고. 그야말로 빵집과 함께 있는 책방만을 위한 물건인 셈이다. 아장아장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가 엄마와 함께 책방으로 들어와서 사이좋게 그림책을 본다. 책을 떨어뜨리고 책방 안을 기어 다녀도 누구나 흐뭇하게 아기를 지켜볼 뿐이다. 아이가 마음 편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은 결국 어른에게도 편안한 건지 작은 책방에 꽤 오랜 시간 머물렀다. 어른 손을 붙잡고 책방에 온 이 아이들이 나중에 책과 책방을 사랑하는 어른이 되기를 바라며.  
 
주소: 東京都荒川区西日暮里2-6-7
오픈: 10:00~20:00, 매월 둘째·넷째 주 월요일 휴무
 
 
▶빵집 책방과 함께 가기 좋은 공간
 
여성의 삶과 아이에게 상냥한 책방
히루네코 북스(ひるねこBOOKS)

주소: 東京都台東区谷中2-1-14
오픈: 11:00~20:00, 월요일 휴무
 
아이들을 위한 파라다이스
크레용 하우스Crayon House)

주소: 東京都港区北青山3-8-15
오픈: 11:00~19:00
 
글·사진 양미석  에디터 고서령 기자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여행작가 양미석은 책을 좋아하는 할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책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자랐다.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게 됐고 책이 있는 공간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11년 전 도쿄에서 어학연수를 할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서툰 일본어가 부끄러워 꿀 먹은 벙어리였지만 책방에서만큼은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그 공간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워 <도쿄를 만나는 가장 멋진 방법 책방 탐사>를 썼다. 여전히, 앞으로도 계속 책방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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