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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의 트렌드 리포트] 내 친구 ‘스린 마디팔리’의 여행

  • Editor. 이상현
  • 입력 2018.03.26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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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에 처음 만난 스린 마디팔리(Srin Madipalli)의 인생 스토리는 감동의 연속이었다.  영국에서 태어난 스린은 위대한 여행가이고, 변호사이자 창업가, 그리고 엔지니어 개발자이자 공대생이요, 경영학도다. 인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스린은 영국 명문 대학 킹스 칼리지에서 유전학을 전공한다. 하지만 졸업 후에는 진로를 바꿔 기업 자문 변호사가 되고, 3년간 세계 최대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약한다. 이쯤 되면 성공한, 그리고 안정적인 이민 2세의 모습이 떠오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스린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옥스퍼드 대학교 MBA 과정에 진학하고, 재학 중에 어코머블이라는 장애인 숙소 서비스 플랫폼 스타트업을 창업한다. 웹 사이트를 통해 여행지 숙소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어떤 것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안내해주는 것이다.  

스린은 유럽 전역을 직접 찾아다니며 장애인 친화 숙소 2,000개를 확보했고 작년 11월, 에어비앤비로부터 인수 합병을 제안받는다.  더욱 큰 자원과 네트워크를 갖춘 에어비앤비를 통해 전 세계 각 지역의 장애인들에게 장애인 친화 숙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합병을 결정한다. 이후 그는 에어비앤비 소속으로 장애인 여행을 위한 접근성 향상 부서의 총괄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 3월16일에는 장애인 게스트들이 접근성 높은 관광 숙소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세부 검색 필터를 추가했다. 이처럼 그는 장애인이 편안하게 여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의 기획과 진행을 총괄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만 보면 독자는 스린을 다양한 직업과 경험을 갖춘 성공한 벤처 기업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남다른 특별함을 지니고 있었으니 바로 장애다. 그는 ‘척수성 근위축증’이라는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고, 이로 인해 손발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 채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스린은 이번 2018 동계 패럴림픽 대회의 성화 봉송 주자로 뛰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는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장애인들에게 더 나은 여행 경험을 안겨줄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참가 의의를 밝혔다. 스린은 내가 만난 그 누구보다 긍정적이었고 유머 감각이 넘쳤으며 똑똑한 친구였다. 혼자서는 식사도 힘든 장애가 있었고 평생을 휠체어에 의존해야 함에도, ‘나는 장애가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신념과, ‘굳게 믿는 것은 분명히 이루어진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신체적 장애를 가졌지만 6개월 가까이 세계 일주를 하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사파리 캠핑을 했고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스쿠버다이빙도 했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지하철과 기차를 탔고 경복궁과 명동을 돌아다녔으며 강원도 정선에서는 성화 봉송 주자로 뛰기도 했다. 필자는 스린과 함께 열흘 동안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면서, 여행을 할 때는 거창하거나 완벽한 계획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20년 전 인도에서 배낭여행을 할 때 접하게 된 우화가 생각난다. 
개구리 철학자가 있었다. 그 개구리에게는 하루하루가 철학을 하는 시간이었다. 개구리 철학자는 어느 날 숲을 지나다가 지네를 만났는데, 100개가 넘는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기어가는 지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개구리 철학자는 지네를 멈춰 세우고 물었다. “지네여, 나는 네 개의 다리를 가지고도 걱정이 태산인데 자네는 100개가 넘는 발을 가지고도 어찌 그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인단 말인가? 이 발을 움직인 다음에는 몇 번째 발을 움직일지를 어떻게 결정한단 말인가? 나에게 알려다오. 자네가 가지고 있는 해답을.” 개구리는 생각에 잠겼고 지네 또한 꿈틀거림을 멈추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을 때 지네가 죽어가는 목소리로 힘없이 말했다. “오 개구리여. 나에게는 해답이 없다네. 다만 자네에게 한 가지를 간곡히 부탁하고 싶네. 다음에 다른 지네를 만나게 되더라도 제발 똑같은 질문은 하지를 말아주게나. 자네의 질문 이후로 나는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네. 나는 정말 모른다네. 그 아무것도.”

그렇다. 여행을 떠날 때도 큰 준비나 계획이 필요한 게 아니다. 창업을 할 때나, 무언가 큰 도전을 하려고 고민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행을 통해 만난 새로운 사람과 세상은 긍정적인 사고와 도전 정신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준 스린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에어비앤비 정책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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