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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녀의 크루즈 입문기

  • Editor. 김진
  • 입력 2018.05.02 14:21
  • 수정 2018.05.2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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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은 난생처음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홍콩에서 출발하는 2박 3일 월드드림호 크루즈 이야기다. 
럭셔리하지만 캐주얼하고, 즐길게 넘치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겐팅클럽 프라이빗 풀
그녀는 1년에 두세 번은 해외여행을 가는 열혈 여행자다. 20대에는 혼자서 배낭여행도 다녔고 여름 휴가철이면 동남아나 남태평양의 좋은 리조트를 찾아다녔다. 일 때문에 긴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 짧든 길든 해외로 떠난다. 여행이 도피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그녀다. 그런 그녀도 아직 크루즈에는 입문하지 못했다. 웬만큼 여행을 다녀 본 그녀도 크루즈 여행은 낯설었다. 그러던 중 홍콩 2박 3일 일정으로 크루즈가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월드드림크루즈의 외관
 
“오빠, 우리 크루즈 여행 갈까?”
“크루즈? 나 시간 빼기 어려울 것 같은데…”
 
야근과 술자리에 지친 그에게 여행이란 오롯이 휴식일 뿐이다. 낯선 세계에 큰 거부감은 없지만, 여기저기 이동하거나 맛집, 관광명소를 찾아 헤매는 여행은 피곤하다. 틈만 나면 쉬고 싶은 게으른 여행자다. 금요일 하루만 휴가를 내면 크루즈가 가능하다는 얘기에 없던 호기심이 생겨났다. 크루즈, 그런데 비싸지 않을까? 머릿속 계산기부터 두드려 본다. 
 
월드드림크루즈의 선체
 
“그거 비싼 거 아냐?” 
“먹고, 자고, 놀고, 이동하는 것까지 다 포함인걸.”
 
크루즈 딜럭스 룸 기준으로 객실 이용과 룸서비스, 뷔페, 각종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시설 모두를 포함한 가격이 대략 150~250USD. 웬만한 홍콩 도심의 호텔 1박 수준이니 생각해 보면 저렴한 편이다. 크루즈는 올 인클루시브인 걸 감안하니 의외로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그는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내고 금, 토, 일 일정으로 크루즈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티셔츠 위에 가디건 하나 딱 걸친 채로. 
 
“일단, 옷부터 챙겨 보자! 수영복, 노란 드레스….” 
“난, 수트에 운동복도 챙겨야겠다.”
 
그녀는 노란색 드레스와 수영복을 챙겼다. 선상파티가 있다고 들었다. 그는 단정한 캐주얼 수트와 조깅복을 챙겼다. 러닝 트랙이 있다고 들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아침 조깅을 즐기면 상쾌할 것 같다. 

홍콩 카이탁 크루즈 터미널(Kai Tak Cruise Terminal)에 월드드림호가 정박해 있었다. 팝아트로 외관을 화려하게 장식한 월드드림호는 초대형 빌딩이 하나 누워 있는 것처럼 거대하다. 선박의 길이는 335m, 너비는 40m, 객실이 1,686개다. 여의도 63빌딩(249m)보다 길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385m)보다 짧은 길이란다. 여권 심사를 마치고 승선카드를 받아 크루즈에 올랐다.
 
주크비치클럽에서 즐길 수 있는 체스
 
“바다 위에 세계적인 클럽이 있대.” 
“63빌딩이 누워 있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데크 99층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쭉 걸어가니 크루즈의 꼬리 부분 즉, 선미 방향이다. 맨 끝 방 9298호. 크루즈 선체가 워낙 커서 방까지 걸어가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선상 카드로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니 둘이 쓰기에 충분한 크기의 공간이 펼쳐졌다. 소파는 침대로 쓸 수 있어 세 명까지 투숙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크루즈에서 가장 평범한 사이즈의 방인데도 무척 넓고 깨끗했다. 화이트 쉬폰의 커튼 뒤로 홍콩의 마천루가 흐르듯 비껴간다. 크루즈가 출발한 것이다. 조금의 미동도 없이 망망대해 위를 가로지르는데 흔들림은 느껴지지 않고 심장소리만 쿵쾅거렸다.   

커다란 캐리어를 방에 두고 데크 1717층 주크 비치 클럽(Zouk Beach Club)으로 향했다. 주크 클럽은 싱가포르에 위치한 전설의 클럽으로 세계 5대 클럽 중 하나. 그런 유명 클럽이 크루즈에 있다니! 싱가포르 클락키에서도 못 가 본 곳을 월드드림호에서 만났다. 긴 줄을 설 필요도, 거절당할 걱정도 없다. 리드미컬한 팝에 귀가 즐겁고 비키니 패션쇼에 눈이 즐겁고 디너파티에 입이 즐겁다. 게다가 칵테일과 와인, 맥주가 무제한! 홍콩의 야경이 점점 더 멀어져 가니 크루즈의 밤, 검은 바다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동영상으로 찍었다. 아쉽게도 쏟아지는 별빛은 스마트폰에 담기지 않았다. 마침 크루즈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별빛 대신 빨주노초파남보 불꽃의 향연을 담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남중국해_어딘가 #고립속낭만 #월드드림크루즈 
 
선실 발코니에서 보이는 남중국해
 
“너무 먹었다. 조깅을 해야겠어.”
“다녀와. 난 태닝하면서 기다릴게.”
 
그는 옷을 갈아입고 조깅 트랙으로 향했다. 선박 길이가 335m니까 배 한 바퀴를 뛰면 670m, 세 바퀴를 뛰니 2km. 남중국해 한가운데서 조깅이라니! 보스턴 찰스 강가를 매일 뛰었다던 하루키도 이런 조깅은 못해봤겠지 싶어 괜히 뿌듯하다. 부드럽고 상쾌한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들어왔다.  

그녀는 핏 스톱 펀(Pit Stop Fun)프로그램에 참가해 보기로 했다. 선상 맨 꼭대기인 데크 17에서 말하자면 생활체육 트레이너와 함께하는 아침체조 정도랄까. 선상을 울리는 신나는 음악이 흥을 돋우었다. 국적이 제각각인 사람 가운데서 수영장을 바라보며 팔과 다리를 쭉쭉 펴 본다. 반짝거리는 햇살이 비타민 D를 합성해서 한결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미세먼지와 황사, 매연으로 가득한 대도시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건강한 아침이다.  
 
홍콩의 마천루
 
“바빠서 쉴 틈이 없다는 게 실화냐?”
“내 인스타그램에 반응 좀 봐봐!”
 
아침. 객실 문 밖에는 선상신문이 달려 있었다. 선상신문엔 크루즈에서 하루 동안 펼쳐지는 행사가 빽빽하게 적혀 있다. 종이신문을 받아 보고 설레던 게 언제였더라? 오늘 하루도 지루하거나 느긋할 틈이 없어 보인다. 신문을 가지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햇살이 창문으로 스며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웨스턴 스타일의 조식을 맛보면서 그녀와 그는 오늘 선상에서 어떤 이벤트를 즐길 것인지 이야기했다.  

아직 선선한 날씨 탓에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은 못하고 그 옆 자쿠지에 몸을 담갔다. 뜨끈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니 핀란드나 일본의 온천이 부럽지 않았다. 배를 반 바퀴 감아 돌아 수영장으로 떨어지는 워터 슬라이드도 타 보고 싶었지만 날씨가 덥지 않아 아직 개장 전이었다. 

크루즈 이곳저곳을 구경하면서 그녀는 하나하나 사진을 찍어 올렸다. #수영장, #자쿠지, #면세점, #카지노, #야외퍼팅장, #레스토랑, #노래방, #바, #시가라운지, #스파, #미용실, #조디악 시어터… 별 기대 없이 크루즈에 오른 그들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뭐 이렇게 할 게 많지?’ 스타필드, 코엑스, 롯데월드를 한데 모아 놓은 느낌이다. 2박 3일이 짧을 것 같다. 
 
메인홀 데크
 
“발코니룸은 신의 한 수였어.”
“와인향에 바다 내음이 섞이네.”
 
발코니가 있는 2인용 방이다. 발코니 아래엔 짙푸른 바다가 펼쳐지니 그저 오션뷰가 아닌 오션룸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방 안엔 과일과 와인 한 병, 물 두 병과 각종 티백이 놓여 있었다. 와인 한 잔을 들고 룸 발코니에 나가 보았다. 햇살은 따갑고 바람은 시원하고 와인은 달콤했다. 애연가라면 담배가 맛있고 커피 애호가라면 커피가 맛있을 분위기. 경비를 아끼기 위해서 발코니가 없는 방을 고려해 보기도 했지만 발코니룸을 선택한 건 신의 한 수였다. 열혈 여행자인 그녀는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다녀온 곳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습관이 있다. 전세계를 다 돌아다녀도 지구의 3분의 1만 다녀오는 거였구나. 남은 3분의 2에 처음으로 여행 동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발코니에서 그녀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디악 시어터에서 즐긴 공연
 
“라스베이거스가 따로 없네.”
“인생이 베팅이지 뭐! 서커스 할 시간이야!”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가는 길에 카지노를 지나게 됐다. 중국인들은 모두 카지노에서 밤을 새운 것처럼 몰두한 모습이다. 카지노 대신 2,000원짜리 현금 뽑기 기계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말하자면 인형 밀어 뽑기의 현금 버전인데, 돈봉투에는 한화로 약 135만원 정도의 현금이 들어 있다. 젓가락만 한 스틱은 돈봉투에 닿을 듯 닿지 않아서 애가 탔다. 순식간에 3만원을 잃었다. 아니, 승선카드(Seapass Card)에 적립됐다. 승선카드는 만능이다. 선실(Stateroom)로 들어갈 때, 레스토랑이나 극장, 카지노, 면세점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것은 체크아웃 때 계산하면 된다. 
 
조디악 시어터는 999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대형 공연장이란다. 월드드림호 선체에 그려 있던 팝아트 주인공들이 나와 공연을 펼쳤다. <Sonio-A Tale of Two Dreams> 공연에서는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음악과 춤, 아크로바틱이 1시간 내내 펼쳐졌다. 주인공들은 객석과 무대를 오가며 공연을 펼치는데 <태양의 서커스> 수준이라면 조금 과장이고 하여튼 공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에 환호를 몇 번이나 질렀는지 모른다. 매일 밤 끊임없이 이런 공연이 펼쳐지는 이곳은 바다 위 라스베이거스다.  
 
월드드림호 내부에 위치한 카지노
 
조니 워커 하우스
 
“저 노부부 너무 멋있다!”
“생각보다 캐주얼하고 즐길 게 많네.”
 
크루즈 하면 호화, 럭셔리, 장기여행 같은 부담스러운 단어들부터 떠올라 직장생활을 하는 그들도 크루즈 여행을 망설였던 게 사실이었다. 

3일짜리 월드드림호는 상상 속의 크루즈와는 달리 캐주얼했다. 물론 시설은 15만톤 크루즈 명성에 맞게 고급스러웠다. 선박 건조 비용만 1조 원 정도가 들었다고 한다. 웬만한 중견기업 한 해 매출도 1조를 넘기기가 어렵고, 사람이 하루에 500만원씩 500년을 써도 남는 금액이 1조라고 하니 크루즈 건조 비용에 입이 떡 벌어진다. 크루즈는 말하자면 하나의 기업이자 바다 위 도시이면서 호화호텔, 멀티플렉스 테마파크인 셈이다. 뭍 여행은 어딜 가느냐가 중요하지만, 크루즈는 어떤 배를 타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걸 첫 크루즈여행에서 깨달았다. 먹고 자고 즐기는 모든 생활이 크루즈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승객 1.6명당 크루즈 직원이 1명이라는 사실도 놀랍다. 승무원의 조언이 떠올랐다. “크루즈는 크기와 등급, 서비스 등이 모두 달라서 크루즈를 한 번 경험했다고 해서 다가 아니에요.”
 
999명을 수용하는 조디악 시어터
 
WDR 미니 골프
 
“뭐야, 아직 반의 반도 못 즐겼잖아!”
“다음엔 어떤 크루즈를 탈까?”
 
월드드림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주크 비치 클럽은 낮엔 선태닝 장소나 영화관으로, 밤엔 신나는 클럽으로 변신한다. 영화가 끝날 때쯤이 되니 주크 비치 클럽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침대만큼 편안한 풀체어에 반쯤 누워 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바다인지 하늘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파랬던 공간에 붉은 노을빛이 퍼진다. 뜨거웠던 사랑의 흔적처럼 붉은 빛을 남기며 태양은 망망대해에 몸을 숨겼다. 속삭이기 좋은 분위기다. 여행을 오기 전 그들은 심하게 싸웠고 스스로 마음의 섬에 고립됐었다. 무슨 말을 속삭였는지는 둘만의 비밀로 두기로 했다. 선상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한 중년부부가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었다. 자유를 만끽하는 그들의 모습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낭만과 자유, 그것이 크루즈 여행의 핵심이 아닐까. 사실 그들은 선상신문에 써 있던 프로그램 반의 반의 반도 즐기지 못했다. 기항지가 없어서 관광지를 구경하지 못한 아쉬움도 별로 없었다. 둘만의 소중한 시간이 관광지 구경보다 더 중요했으니까. 그래도 2박 3일은 참 짧다. 지구본의 파란 부분에 개미만큼만 동선을 그렸을 뿐이다. 여행이란 늘 그렇듯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 다음엔 어떤 크루즈를 탈까?” 
그들은 바다 위에서 필리핀을, 싱가포르를, 오키나와를 거쳐 더 긴 동선을 그리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주크 비치 클럽
 
푸른 바다를 붉게 적시는 노을

   
▶크루즈 입문자를 위한 Basic Info 
 
크루즈 vs 페리
페리는 단순히 운송이 목적임에 반해 크루즈는 호텔, 관광, 리조트 그리고 운송의 개념까지 포함한다. 크루즈는 건조 단계부터 호텔이나 리조트 형태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다. 크루즈는 순수한 관광 목적으로 숙박과 식음료, 엔터테인먼트 등 편의 시설을 갖추고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며 관광지를 정기 또는 부정기적으로 순항하는 선박을 의미한다. 
 
크루즈 객실
크루즈 객실은 캐빈(Cabin) 혹은 스테이트룸(Stateroom)이라 하며 크게 내측, 창측, 발코니, 스위트 네 가지로 분류한다. 바다를 볼 수 있는 룸을 오션뷰 스테이트룸(Ocean View Stateroom)이라고 하며, 바다를 볼 수 없는 방을 인사이드 스테이트 룸(Inside Stateroom)이라고 한다. 

룸 밖에서 이벤트를 즐기는 것에 몰두한다면 발코니가 없는 방도 상관없겠지만 기왕이면 발코니 룸을 추천한다. 물론 객실에 얼마나 비중을 두고 크루즈를 즐길 것인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 전 객실이 스위트 룸으로 구성된 크루즈도 있는 등 크루즈에 따라 객실의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기본적인 크루즈 용어
Deck 데크 | 선박의 층수를 말하며 Deck 9이라 하면 9층을 뜻한다.
Port of Call 기항지 | 운행 중 크루즈가 일정 시간 들러 탑승객들이 승하선할 수 있는 항구를 말한다.
Port Side 포트사이드 | 크루즈 진행 방향의 좌측
Starboard 스타보드 | 크루즈 진행 방향의 우측
Galley 갤리 | 크루즈 선내의 모든 요리를 담당하는 주방을 의미한다. 
Gangway 갱웨이 | 크루즈와 항구를 연결하는 출입구를 말하며 이 통로를 따라 승객들이 승하선을 하게 된다. 갱웨이의 위치는 기항지 항구의 수심에 따라 조정되며, 주로 크루즈의 2, 3층이다.
 
글 김진  사진 김진, 월드드림크루즈  에디터 트래비 
취재협조 드림크루즈 한국사무소   www.dreamcruis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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