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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홍도의 완벽한 하루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8.05.04 10:59
  • 수정 2018.05.24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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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홍도는 질문을 던졌다. 
섬은 예술을 품을 수 있는가? 
나는 왜 섬에 가는가? 
예술은 무엇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대한 답을, 
연홍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알 것 같았다. 
 
연홍도의 정크아트와 조형물들
 
 
●예술섬 연홍도에서 보낸 24시간 

입도는 매끄러웠다. 서울에서 고흥까지, 밤새 미끄러져 내려온 버스는 소록대교, 거금대교를 폴짝 건너 신양선착장에 안착했다. 그곳에서 연홍도까지는 배로 단 5분. 탔는가 했더니 내렸다. 거금도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섬 속의 섬’이지만 실상은 거의 육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흥 주변에 흩어져 있는 230여 개 섬들에 묻혀 그 존재조차 몰랐던 송구함에 동백꽃처럼 고개 숙여 도착한 연홍도는 상상보다 작았다. 선착장에서부터 배낭을 메고 터덜터덜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을을 관통해 반대편 해변에 도착했다. 일주를 위해 북서쪽의 ‘좀바끝’에서 남쪽의 ‘아르끝’까지 4km의 둘레길을 다 걸어도 두어 시간이면 족할 면적이다. 
 
지붕을 곱게 칠한 연홍도 마을
 
연홍미술관에 짐을 풀었다. 오늘의 숙소다. 폐교를 개조한 작은 미술관이지만 131명의 서양화가들이 기증한 작품을 순환 전시하고, 숙소와 식당으로도 운영 중이다. 13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는 선호남 관장에게 주민 80여 명의 작은 섬에 미술관을 세운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연홍도에 처음 와서 폐교를 봤는데, 그냥 두기가 아깝더라고요. 육지에서 그리 멀지 않고, 사람들의 심성도 착하고, 뭔가 하면 될 것 같았어요.” 

그렇게 시작한 미술관 오픈과 섬 가꾸기에는 관장 내외의 땀방울이 서려 있다. 나오시마*, 남이섬 등을 벤치마킹했다. 2012년 볼라벤 태풍에 미술관이 파손되면서 크게 휘청거렸지만 다시 일어났고, 2015년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되는 첫 열매를 맺었다. 그 호명(呼名)에 응답하기 위해 마을에는 아트, 건축, 토목 사업이 동시에 진행됐다. 지난해 ‘가고 싶은 섬 연홍도’로 공식 개장 행사를 가졌고 한 해 3,000~4,000명에 불과했던 연홍도의 입도객이 월 3,000~4,000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연홍도와 나오시마는 아직 섬과 육지처럼 멀다. 연홍도에는 안도 다다오의 지중미술관도, 야요이 쿠사마의 호박도 없다. 모호한 조형물과 해변 부유물을 활용한 정크 아트, 실사적인 벽화들은 귀여운 듯도 하고 조악한 듯도 하다. 여러 사업들을 통해 진행된 일이라 작품마다의 완성도는 썰물과 밀물처럼 수위차가 크다. 아쉬움이 있지만 단조로운 벽화마을을 피한 것은 다행이다. 
 
은빛 물고기는 수면으로 떠오는 중
 
벽화로 꾸민 연홍미술관 관사 
 
그러나 연홍도는 여전히 자라고 있다. 예술섬을 향하고 있는 한 연홍도에는 예술가들과 예술적 사건들이 자꾸만 밀려올 것이다. 물론 여행자들도 함께. 언덕 위에 마을 게스트하우스를 개장했고, 맛 깊은 젓갈류와 해조류 반찬을 곁들여 내는 ‘쫌벵이탕쏨뱅이탕’, 백반 메뉴의 마을 식당도 있다. 국물을 한 숟갈 뜰 때마다 감탄사를 터트리던 낮의 여행자들은 모두 만족한 얼굴로 섬을 떠났다. 

그때부터였다. 연홍도의 진가가 발휘되는 시간. 하늘에서 붉은 장막이 내려와 모든 인위적인 것들을 덮었다. 해상의 은빛 물고기 조형물도 물속으로 몸을 숨겼다. 바다는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 색을 바꾸었다. 미술관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짧아 자꾸 멈춰 설 만큼 섬의 구석구석이 영롱했다. 암전만을 기다려 온 별빛이 밤새 열과 오를 맞추어 춤을 추었다. 꿈속에서는 잠시 봄비가 스치고 갔다. 

아직 일행이 깨지 않은 아침. 새벽안개를 가르며 좀바끝 방향으로 곰솔 숲 산책에 나섰다. 바람에 맞서느라 키가 크지 못했다는 300살 팽나무가 허리 숙여 말을 건네고 마을 어귀에서 어미 옆에 바짝 붙어선 송아지가 꿈벅 눈인사를 했다. 멀리 김이 무럭무럭 자라는 양식장 옆으로 어선이 동동동 발을 굴려 지나갔다. 그 순간이 내겐 예술이었다. 여행자가 만지고 호흡하고, 부대낄 수 있는 아름다움의 총체가 거기에 있었다. 이슬에 젖은 운동화를 털며 미술관으로 돌아와 매생이 떡국을 들었다. 혀가 데이지 않도록 적당히 식힌 온도였다. 전날 타고 들어왔던 그 배로 섬을 떠나며 생각했다. 예술 같은 하루였다고. 
 
*나오시마(Naoshima) | 일본 중남부 가가와현에 있는 작은 섬 나오시마는 금속 공장으로 인한 자연 훼손과 인구 감소로 쇠락하다 30여년 재생사업을 통해 세계적인 아트투어 관광지로 부활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미술관을 주무대로 매년 세계적인 아트축제가 열리고, 수십만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가고 싶은 섬 | 전남도 브랜드시책인 ‘가고 싶은 섬’ 가꾸기는 첫해인 2015년 6개 섬을 선정한 데 이어 해마다 2개 섬을 추가해 2024년까지 모두 24개 섬을 가꾸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홍도 가는 길 
. 고흥 녹동신항여객선터미널 | 연홍도 경유 완도 금당행 1일 4회 운항, 30분 소요
. 고흥 신양선착장 | 1일 7회 운항, 5분 소요
. 연홍식당 
전화: 061 843 0661 
가격: 쫌벵이탕(2인 기준) 3만원, 백반 8,000원(2인 이상),
. 여행정보 | tour.goheung.go.kr:8000 
 
글·사진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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