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사, 애들레이드 힐, 맥라렌 베일, 풀루리유 페닌슐라를 거쳐 드디어 애들레이드다. 인구 108만 규모의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주도다. 바둑판식으로 잘 정렬된 도심부와 적재적소에 들어앉은 6개의 광장, 외곽의 푸른 녹지 공원, 강과 도심의 조화 등으로 계획도시의 성공사례로 뽑힌다.
놀라운 점은 1836년 도시 조성 초기부터 현재의 큰 틀이 완성됐다는 점이다. 당시 애들레이드 시가지와 공원 등을 디자인한 윌리엄 라이트(William Light)의 선견지명 덕분이다. 영국의 예술가이자 해군 장교였던 그는 애들레이드 도시개발계획을 주도하면서 지형과 기후, 인구 팽창과 도시 확대 등의 요소까지 고려해 애들레이드를 설계했다. 시대를 앞선 안목이었다. 후세 사람들은 라이트의 비전(Light's Vision)으로 표현하며 그를 기념했고 빅토리아광장(Victoria Square)에 동상도 세웠다.
현재 이 동상은 몬테피오레 힐(Montefiore Hill)로 옮겨졌는데, 원래 지명 대신 이곳을 그냥 라이트 비전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다. 애들레이드 시티투어의 출발점으로 라이트 비전을 삼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야트막한 언덕이지만 애들레이드 시내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한 손을 들어 애들레이드 시내를 가리키고 있는 W. 라이트는 여전히 확신에 차 있는 모습이다.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걸어 들어간다. 트램과 버스가 애들레이드를 촘촘히 연결하는 것은 물론 무료 트램(시내 중심부 구간)과 무료 버스(98번 99번)도 있지만 왠지 도보투어가 더 끌린다. W. 라이트는 미래의 도보 여행객도 계산에 넣었던 것인지, 관광명소들은 대부분 서로 가까이 붙어 있다. 여행객은 자신의 시간과 체력에 맞게 동선만 짜면 그만이다. 라이트 비전에서 시작해 세인트 피터스 성당(St. Peter's Cathedral), 애들레이드 동물원(Adelaide Zoo), 보타닉 공원(Botanic Park), 보타닉 가든(Botanic Garden), 내셔널와인센터, 노스테라스(North Terrace), 런들몰(Rundle Mall), 빅토리아 광장을 거쳐 페스티벌센터(Festival Center)에서 멈추기로 한다. 애들레이드 시내를 관통하며 흐르는 토렌스강(River Torrens) 위아래를 오가며 애들레이드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애들레이드 초대 주교인 오거스터스 쇼트(Augustus Short)의 계획으로 1869년 착공해 1904년에 완공된 고딕양식의 세인트 피터스 성당은 여전히 우아하다. 남반구에서 유일하게 판다 곰을 볼 수 있다고 자랑하는 애들레이드 동물원에서는 판다보다 잠자는 코알라에 더 집중한다. 애들레이드의 녹색정원 보타닉 공원과 보타닉 가든은 넓고 푸른데다 서로 붙어 있어 어디까지가 공원이고 가든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주립대학과 도서관, 갤러리와 박물관 등으로 고풍스러운 노스테라스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애들레이드 최대의 번화가이자 상점거리인 런들몰이 번잡함으로 대조를 이룬다. 런들몰 거리의 돼지 4형제 조형물이 이곳의 상징으로 인기를 독차지한다. 다시 직각으로 내려와 직각으로 꺾으면 빅토리아 광장이고, 같은 작업을 다시 반복하면 페스티벌센터가 나온다. 이것이 W. 라이트의 비전이었구나, 몸소 실감한다.
글·사진 김선주 기자
취재협조 호주관광청 www.austral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