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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러시아 정교회가 공존하는 도시, 우파

러시아 바시코르토스탄 Bashkortostan

  • Editor. 정은주
  • 입력 2018.08.06 15:59
  • 수정 2018.08.06 17: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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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시코르토스탄 공화국은 유목민의 후예인 바시키르인의 나라다. 푸른 숲과 너른 초원은 오랜 세월 이들의 삶터가 되어 왔다
바시코르토스탄 공화국은 유목민의 후예인 바시키르인의 나라다. 푸른 숲과 너른 초원은 오랜 세월 이들의 삶터가 되어 왔다

 

바시키르인의 땅을 가다


백야가 시작되던 6월의 첫날. 난생 처음으로 러시아 땅을 밟았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광활한 영토만큼이나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다. 
월드컵의 함성도 사그라진 지금, 그곳에서 보낸 5일이 꿈처럼 아련히 떠오른다.  

우파
UFA

 

“짝짝짝!” 
요란스런 박수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행기가 이제 막 우파국제공항에 닿은 참이었다. 무슨 일이지?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지만 당혹스러워 하는 이는 나밖에 없었다. 기내는 내릴 채비를 하는 승객들로 분주했다. 혹시 꿈을 꾼 건가 싶어 볼을 꼬집어 보려던 찰나, ‘비행 동안 수고한 기장과 승무원에게 박수를 쳐 준 것’이라고 누군가 귀띔했다. 러시아에서는 종종 있는 의례적인 일이라고. 세상에, 이토록 열렬하고 따뜻한 위로라니! 놀라움과 부러움이 동시에 일었다. 

바시키르 민족의 영웅인 살라바트 율라예프 장군 기마상. 벨라야강 언덕에 세워져 우파 시내를 굽어보고 있다
바시키르 민족의 영웅인 살라바트 율라예프 장군 기마상. 벨라야강 언덕에 세워져 우파 시내를 굽어보고 있다

 

●백야의 시작, 바시키르의 역사를 만나다


인천에서 모스크바(Moscow)까지 약 9시간, 이곳에서 다시 국내선을 갈아타고 2시간 남짓 날아온 길을 되돌아가 바시코르토스탄 공화국이하 바시키르에 닿았다. 현지 시각 밤 11시. 숙소에 도착해 때늦은 저녁을 먹었다. 시차 탓인지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사이 두꺼운 커튼 사이로 희뿌연 빛이 비쳐 들었다. 커튼을 걷자마자 눈부신 햇살이 쏟아졌다. 창밖이 환한 대낮처럼 밝았다. 흘깃 시계를 쳐다보니 시침이 5시에 머물러 있다. 고장 난 건 아닐 텐데, 순간 북유럽에서 처음 백야를 경험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긴 낮과 짧은 밤이 교차하는 신비로운 계절. 그 시간에 다시 와 있다니! 설렌 마음에 잠기운이 모두 달아나 버렸다.  


러시아 서남부에 위치한 바시키르는 완전히 낯선 곳이었다. 러시아 하면 모스크바나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시베리아(Siberia) 정도만 떠올리던 내게 그 낯설음은 더욱 컸다. 그 무지(?)를 눈치 챈 건지 현지 가이드인 베라가 인사를 나누자마자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덕분에 바시키르가 석유와 천연 가스가 풍부하게 매장된 러시아의 주요 산업 지대이며 우랄 산맥(Ural Mountains) 남쪽에 위치해 목재와 광천수 등 산림자원이 풍부하다는 것, 이곳이 오래전부터 유목생활을 하던 바시키르인의 거주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녀는 러시아가 수많은 민족과 공화국으로 구성된 다민족 연방 국가라는 까마득한 시절에 배웠던 기억까지 다시금 일깨워 줬다. 오랜 시간 몽골과 러시아가 지배하던 바시키르는 제정 러시아가 붕괴된 후 소비에트 연방이 구성되면서 1919년 자치공화국으로 거듭났다. 현재 이곳은 바시키르인뿐 아니라 러시아인과 타타르족을 비롯해 100여 개가 넘는 민족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수도인 우파(Ufa)는 벨라야강(Belaya River)과 우파강 사이에 자리한다. 도시는 남북이 약 70km 정도로 길게 뻗어 있는 반면 동서간 폭이 좁아 반도나 툭 튀어나온 만처럼 보인다. 두 강이 합쳐지는 남쪽 끝과 북부 지역이 뭉툭하고 가운데 부분은 홀쭉한 독특한 형태다. “여기 사람들은 우파가 아령처럼 생겼다고 이야기해요. 베라가 지도를 펼쳐들며 이야기했다. 반도의 나라에서 와서 그런 걸까. 지도 안의 낯선 도시가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우파 건립 400주년을 기념하는 우정의 비. 바시키르와 러시아 두 민족의 화합과 번영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우파 건립 400주년을 기념하는 우정의 비. 바시키르와 러시아 두 민족의 화합과 번영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우파를 둘러싸고 흐르는 강은 수백년간 이어진 이 땅의 역사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파는 1574년 볼가강 유역까지 영토를 확장한 러시아 최초의 차르(황제)인 이반4세(Ivan IV)에 의해 건립됐다.

“이반4세는 벨라야강과 우파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요새를 세울 것을 명령했지만 실제 도시가 시작된 곳은 한참 위쪽이에요. 모스크바에서 내려온 러시아인들이 작은 개천을 우파강으로 착각해 엉뚱한 곳에 요새를 세운 거죠.” 도시 건립에 얽힌 뒷이야기가 흥미로워 귀를 쫑긋 세워 들었다. 뇌제라 불릴 만큼 무서운 군주였던 이반4세는 이런 사실을 알았을까. 안타깝게도 그 당시 세워졌던 크렘린(кре́мль, 러시아식 요새)과 부속 건축물들은 1759년 번개로 인한 화재로 모두 타 버렸다고 한다. 


과거의 흔적이 모두 사라져버린 자리에 도시 건립 400주년을 기념하는 우정의 비(Friendship Monument)가 들어섰다. 베라는 기념비에 새겨진 부조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왼쪽에 사각 모자를 쓴 사람들이 러시아인이고 오른쪽에 선 이들이 바시키르인이예요. 서로 화합해 나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죠.” 두 민족이 화해와 협력을 약속하기까지 이 땅엔 지배와 억압의 역사가 반복되었다. 벨라야강 언덕 높은 곳에 바시키르 민족의 영웅인 살라바트 율라예프(Salawat Yulayuv) 장군 기마동상이 서 있다. 러시아의 탄압에 맞선 저항의 상징이다. 높이 10m에 이르는 거대한 동상이 멀리서도 푸르게 빛났다. 유유히 흐르는 벨라야강과 더불어 억압과 투쟁, 평화와 공존, 자치와 독립이 뒤엉킨 부침 많은 바시키르의 역사가 하늘 높이 뻗은 우정의 비와 거대한 동상 안에 녹아 있었다. 

금빛 성화들이 벽면을 가득 메운 러시아 정교회 교회 내부
금빛 성화들이 벽면을 가득 메운 러시아 정교회 교회 내부

 

●이슬람과 러시아 정교회가 공존하는 도시 


다민족 국가인 바시키르는 러시아 정교회와 이슬람이 공존하는 독특한 나라다. 인구의 절반인 러시아인이 러시아 정교회인 반면 나머지 절반인 바시키르와 타타르인은 이슬람교도다. 예배당 수도 비슷해 우파에만 러시아 정교회 13곳, 모스크 14곳이 세워져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은 러시아 이슬람교 총본산이 바시키르에 있다는 것이다. 

우파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건물. 하늘빛 바탕에 하얀 기둥이 부드럽고 우아한 느낌이다
우파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건물. 하늘빛 바탕에 하얀 기둥이 부드럽고 우아한 느낌이다

 

시내를 달리던 차가 우아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건물 앞에 섰다. 우파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중 본당 격인 곳이다. 안에 들어서기 전 베라가 목에 두른 스카프를 건넸다. “여성은 머리에 두건이나 스카프를 둘러야 해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했다. 스카프로 얌전히 머리를 감싼 후 예배당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간결한 외관과 다르게 내부는 무척이나 화려했다.

천장에서 쏟아져 내린 빛에 거대한 샹들리에와 벽면을 가득 채운 성화들이 금빛으로 빛났다. 교회가 박해를 받던 시절 이곳을 감옥이나 창고로 썼다지만 지금은 어디서도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눈길 닿는 곳마다 끊임없이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누구 하나 소리 내는 이 없이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발소리마저 숨죽이며 걸었다. 비록 예배당에 머문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여운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전쟁의 흔적이 묻어나는 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공원. 전쟁 영웅을 기리는 조각상 아래로 한 아이가 지나가고 있다.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 앞에 놓인 꽃 한송이가 처연해 보인다
전쟁의 흔적이 묻어나는 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공원. 전쟁 영웅을 기리는 조각상 아래로 한 아이가 지나가고 있다.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 앞에 놓인 꽃 한송이가 처연해 보인다

 

모스크로 향하는 길목에 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공원에 들렀다. 푸른 나무들 사이로 실물 탱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원 안쪽에는 전쟁 당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승리를 위해 애썼던 바시키르인을 기리는 조각상과 전사자의 이름이 새겨진 각명비가 세워져 있다. 전쟁이 불러온 죽음은 언제나 덧없다. 잠시 묵념을 올린다.

우파에서 가장 큰 랄라 튤판 모스크. 튤립 꽃봉오리 모양을 본떴다
우파에서 가장 큰 랄라 튤판 모스크. 튤립 꽃봉오리 모양을 본떴다

 

랄라 튤판(Lala Tolban)은 우파에서 가장 큰 모스크다. 랄라는 러시아어이고 튤판은 바시키르의 언어다. 둘 다 ‘튤립’을 뜻하니 우리말로 하자면 튤립-튤립 사원이라 불러야 할 듯싶다. 1958년 건립된 랄라 튤판은 종교와 상관없이 한 번 들러볼 만한 우파시의 랜드마크다. 튤립 꽃봉오리 모양을 본뜬 두 개의 첨탑이 눈길을 끈다. 예배가 없다면 사원 내부도 둘러볼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리는 예배 시간에 도착해 모스크 외관을 감상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바시코르토스탄 공화국
러시아연방에 속한 독립공화국이다. ‘바시키르(Bashkir)’라고도 불린다. 러시아를 구성하는 민족 중 4번째로 인구가 많은 바시키르인의 주 거주지이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해 수많은 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삼림 자원도 풍부하다. 공화국 면적은 14만 3,000km2로 남한의 약 1.5배다. 인구는 400만명이 조금 넘는다. 이슬람과 러시아 정교회가 주 종교이며 공용어로 러시아어와 바시키르어를 사용한다. 

 

▶travel  info


Airline
아에로플로트 러시아 항공(www.aeroflot.ru/kr-ko)이 인천-모스크바, 모스크바-우파 구간을 운항한다. 대한항공(kr.koreanair.com)은 모스크바까지 직항편이 있다. 2개 항공사 모두 인천에서 매일 출발한다. 아에로플로트 러시아 항공은 모스크바-우파 구간을 하루 6편 운항한다. 인천에서 우파까지 모스크바 환승을 포함해 총 13시간 정도 걸린다. 모스크바에서 환승할 때는  2~3시간 이상 여유 있게 잡는 것이 좋다. 아에로플로트 러시아 항공과 대한항공은 스카이팀 회원사다. 마일리지 적립시 인천-우파를 왕복하면 제주도(편도) 보너스 항공권이 따라온다. 


ABOUT
Immigration
비자는 따로 없다. 입국할 때 출입국 신고서도 작성하지 않는다. 대신 입국심사 때 확인증을 내준다. 확인증은 출국할 때 반드시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잃어버리지 않도록 한다. 간혹 캐리어에 보관했다 깜박하고 화물로 부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하도록.
Plug
원형 2구 플러그가 일반적이다. 별도 어댑터가 필요 없다. 한국에서 쓰는 그대로 사용하면 된다. 
Currency
러시아 공식 통화는 루블(Ruble)이다. 바시키르도 루블화를 사용한다. 현지 공항 내 환전소나 호텔, 은행 등에서 환전하면 된다. 인천공항에서도 루블화 환전이 가능하다. 달러나 다른 통화는 통용되지 않는다. 단 면세점은 달러와 유로 사용이 가능하다. 우파의 일반 상점에서 비자, 마스터 같은 신용카드도 사용 가능하다. 
Weather
바시키르의 6월은 우리의 초여름과 비슷하지만 날씨가 꽤나 변덕스럽다. 일교차가 커 아침, 저녁엔 기온이 5도에 이를 만큼 서늘한 반면 한낮엔 기온이 18도 정도로 포근하다. 지대가 높은 남우랄 지역은 더욱 변화무쌍하다. 


Hotel
힐튼 가든 인 우파 리버사이드 Hilton Garden Inn Ufa Riverside

우파 강변에 위치해 전망이 좋다. 객실 크기도 적당하며 인테리어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피트니스 센터와 컨퍼런스룸을 갖추고 있어 비즈니스 객들도 많이 찾는다. 조식은 세미 뷔페식이며 특히 벌집 채로 내놓는 바시키르 벌꿀은 꼭 맛봐야 한다. 인근에 살라바트 장군상이 세워진 광장이 자리한다. 우파국제공항에서 호텔까지는 약 10~15분 걸린다.   
주소: 4 Aksakova Street Ufa, Russia 450076
전화: +7 347 293 9000

 

글·사진 정은주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바시코르토스탄 관광청 bashkiria.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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