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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로 올라서는 법

Alpen Route

  • Editor. 김정흠
  • 입력 2018.10.05 10:59
  • 수정 2018.10.12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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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로 올라서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기차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미다가하라 습지
미다가하라 습지

 

●다테야마를 향한 여정의 시작

“등산화는 챙겨야 하지 않아? 겨울옷도 필요할 것 같은데?” 다테야마(立山)의 높이는 3,000m가 넘는다. 정상부까지 오를 거라는 이번 여행 계획을 이야기할 때마다 주변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그때마다 나는 웃으며 설명했다. 기차와 버스, 로프웨이가 나를 그리로 데려다줄 거라고. 갈아타고 또 갈아타야 하는 여정 덕에 26인치 캐리어는 과감히 포기했다. 끈이 튼튼한 토트백 하나와 카메라를 넣어 다닐 백팩이 짐의 전부였다. 가벼운 짐만큼, 옷차림도 가벼워야 했다. 그러나 다테야마를 오르내리는 동안 한껏 차디찬 공기를 마주할 것이 뻔했으니 껴입을 옷가지들을 고민할 수밖에. 고민은 공항으로 떠나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몇 번이나 가방을 풀어헤쳤다가 다시 잠그기를 반복했는지 모를 정도로.


이번 여행은 다테야마를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철도 패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나고야에서 다카야마를 거쳐 도야마로, 도야마에서 다테야마 알펜루트를 통해 마츠모토로, 다시 나고야로 돌아오는 기차까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알펜-다카야마-마츠모토 지역 관광 패스’가 주인공이다. 낭만 가득한 기차 여행을 선택한 셈이다. 아쉽게도 알펜루트하면 떠오르는, 도야마의 어마어마한 빙벽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가을의 입구에서 맞이하게 될 울긋불긋한 다테야마의 절경은 기대할 만했다. 목적지인 알펜루트를 오가며 만나게 될 중부 지방의 다채로운 풍경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터였다. 중부국제공항 센트레아(Centrair)로 향하는 비행 내내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상상했다. 나고야역까지 가는 메이테츠 특급에 올라타는 그 순간까지도 그랬다.

나고야역
나고야역

 

나고야역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패스를 발급받는 것이었다. 나고야역에서는 JR인포메이션 센터가 패스 발급 업무를 담당한다. 미리 한국에서 교환권을 구매했다면 비교적 저렴하고 손쉽게 패스를 받을 수 있다. 패스 사용 시작 일자를 지정하여 그로부터 5일간 JR도카이도 본선, JR다카야마 본선, JR오이토선, JR주오 본선 등 이 지역의 JR재래선을 이용할 수 있고, 더불어 알펜루트 내 교통수단도 자유롭게 탑승할 수 있다. 이 패스 한 장이면 다테야마를 중심으로 한 중부 지역과 히다산맥을 크게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것이다. 다테야마와 구로베 댐을 아우르는 알펜루트를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것도 당연하고. 선로를 따라 여러 여행지들이 자리하고 있어 5일이라는 시간이 부족해 보이기만 했기에, 여행 전부터 계획을 잘 세워둘 필요도 있었다. 

오후 4시 41분. 흐린 구름 뒤로 조금 일찍 해가 숨어들던 그때. 플랫폼에 ‘와이드 뷰 히다 15호’가 들어섰다.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은 채 기차에 올라탔다. 자리를 잡고 앉아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찰나, 기차가 출발한다. 덜컹덜컹, 두근두근. 

요금: 성인 17,500엔, 아동 8,750엔(일본 국내 판매가격|성인 18,500엔, 아동 9,250엔)

게로온천

 

●일본 최고의 온천

잠깐 졸았을 뿐인데 어느덧 창밖이 새카맣게 물들었다. 무슨 일인지 기차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선로 연결에 문제가 생겼다는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다시 기관사의 안내 방송. 열차가 30분 정도 지연되었다는 비보. 그렇게 예정보다 조금 더 새카맣게 물든 첫 번째 날의 목적지, 게로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예약된 료칸의 가이세키(かいせき)를 늦춰야만 했다. 다행히 식당 마감 시각까지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료칸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한 것은 한국인 직원. 오래 기다린 듯했는데 다행히 편안하게 가이세키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 받았다.


게로는 군마현의 구사츠온천, 효고현의 아리마온천과 더불어 일본의 3대 온천으로 알려진 곳이다. 에도 시대의 유학자로 명성이 드높았던 하야시 라잔(林 羅山)이 자신의 저서에서 ‘천하 삼명탕’을 언급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게로의 온천은 알칼리성으로, 미끌미끌한 질감의 물이 피부를 부드럽게 감싸는 것이 특징이란다. ‘미인탕’으로도 널리 알려졌듯이 피부에 좋다는데 그냥 지나칠 수야 있나. 나고야에 도착하자마자 기차를 타기 위해 부산을 떨었던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는 호사였다. 

스이메이칸(水明館)

스이메이칸(水明館)은 게로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5성급 료칸이다. 1932년에 개업해 오늘날의 규모를 갖추었으니 벌써 8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섭씨 55도의 온천수가 바로 옆에서 뿜어져 나온다고. 천장과 벽면, 기둥까지도 노송나무로 뒤덮어 나무 향이 그득한 시모다메노유(下留の湯) 탕, 거대한 바위들이 감싸 안은 암반욕탕, 주변 풍경을 조망하며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전망대욕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하나 놓칠 수 없으니 쉬지 않고 탕을 오갔다. 스이메이칸의 매력은 아직 끝이 아니다. 유명 작가의 작품 수십 점이 료칸 구석구석에 전시되어 있다. 로비의 거대한 통유리 너머로 펼쳐지는 정원의 야경 또한 하나의 작품이었다.  머무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료칸에게 보낼 수 있는 찬사는 그저 천천히 즐기며 짓는 미소뿐이었다. 

스이메이칸(水明館)
주소: Gifu-ken, Gero-shi, Koden 1268
전화: +81 576-25-2800
홈페이지: www.suimeikan.co.jp
체크인|14:00~22:00, 체크아웃|11:00

다카야마 후루이 마치나미(古い町並み)

●옛 거리를 따라 거닐며

기차에서 내리자 사뭇 달라진 온도가 우리를 맞이했다. 히다산맥의 한 걸음 더 다가서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옷깃을 여민 뒤, 다카야마 역사를 빠져나왔다. 해발고도 600m 지점에 만들어진 도시. 우리나라로 따지면 평창 정도와 비슷한 환경이지 않을까 싶었다. 다카야마는 에도 시대 당시의 마을 모습이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어 역사 기행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훌륭한 여행지를 선정해 소개하는 미쉐린 그린 가이드에서 별 3개를 받아서인지, 여행자들로 거리가 북적였다.

사루보보 만들기 체험

다카야마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거리는 후루이 마치나미(古い町並み)다. 250여 년 전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인데, 히다의 작은 교토라는 명성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옛 목조 건물이 거리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다. 에도 시대의 어딘가를 거닐며 이곳저곳을 탐닉하던 사이, 골목 한쪽에서 다카야마 마을체험 교류관을 찾았다. 다카야마의 전통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여느 관광지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기모노 체험은 뒤로하고 사루보보라는 인형에 도전하기로 했다. 아기 원숭이를 형상화한 사루보보는 엄마가 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며 만드는 전통 인형이란다. 인형의 색깔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고. 선택은 노란색 사루보보. 한창 완성 단계에 접어들고 나서야 노란색이 재물 운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래, 어쩐지 손이 가더라니. 

다카야마와 그 주변은 히다규로도 유명하다. 일본의 3대 소고기를 언급할 때 이따금 고개를 내미는 수준이다. 항상 일본의 3대 소고기로 손꼽히는 고베나 마츠자카의 와규만큼은 아니라지만, 어쨌든 일본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맛을 자랑한다는 건 사실이다. 그런 와규를 그냥 지나칠 수야 있나. 아지노요헤이라는 이름의 히다규 전문점을 찾았다. 맛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 맛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일전에 한 코미디언이 TV 프로그램에서 ‘첫 키스의 느낌’이라며 극찬했던 장면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잘 차려진 테이블을 보자마자 적당히 달궈진 그릴에 고기 한 점을 올렸다. 세상에, 생각보다도 더 훌륭했다. 겉면만 살짝 익혀서 맛보는데 입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 ‘첫 키스의 느낌’이 이런 걸까. 알면서도 모르는 듯한, 모르면서도 알 것도 같은 그 맛은 지금도 종종 생각 나곤 한다. 

다카야마 마을체험교류관
주소: Gifu-ken, Takayama-shi, Kamiichinomachi, 35-1
전화: +81 577-70-8290
오픈: 09:00~19:00
요금: 사루보보 만들기 1,6000엔, 앞치마 선택 및 부착 1,300엔

아지노요헤이
주소: Gifu-ken, Takayama-shi, Kamisannomachi 105
전화: +81 577-32-0016
오픈: 08:30~20:00
가격: 히다규정식 2,980엔(70g), 3,980엔(105g), 4,980엔(140g)

도야마 환수공원

 

●알펜루트로 가는 길

도야마는 다테야마를 오르는 이들에게 베이스캠프와도 같은 곳이다. 다테야마역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는 기차가 있어서다. 도시 곳곳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다. 무엇보다도 도야마에서는 다른 숙소로 짐을 옮겨주는 수하물 회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 인기다. 도야마 시내 주요 호텔에서 다테야마 고원 지대인 미다가하라, 텐구다이라, 무로도 구역에 있는 호텔이나 산장으로, 혹은 알펜루트 건너편인 시나노오오마치까지도 보낼 수 있다.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것도 가능한데, 이때는 알펜루트의 수하물 회송 서비스가 아니라 일반 택배를 이용해야 한다. 호텔에서 나가기 전, 꼭 필요한 짐만 따로 챙겨야 했다. 불필요한 짐은 마츠모토로 보내기로 했다. 다테야마를 넘어 이틀 후에 우리 일행이 머물게 될 호텔이 이 녀석들의 행선지였다. 모든 짐을 다 들고 다테야마에 오르는 건 쉽지 않으니 말이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호텔을 나섰다.


도야마의 아침은 뭐랄까, 평온했다. 도야마 성을 중심으로 조성된 공원을 따라 누군가는 산책을, 누군가는 출근에 나섰지만 그중 걸음을 재촉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따금 오가는 트램과 그 옆을 나란히 달리는 자동차들도 굳이 속도를 높이려고 하지 않는 듯했다. 도야마역 주변만큼은 조금 번잡했지만, 그마저도 다른 대도시의 중앙역에 비하면 조용한 아침이었다.

도야마 환수공원

도야마역을 통과해 반대편에 자리한 후간운하 환수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과거 홍수 방지, 산업용으로 만든 인공 운하를 공원으로 조성한 곳이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도시를 가로질러 뻗어 나가는 운하의 잔잔한 수면을 다독인다. 한가로이 조깅을 즐기는 이들이나, 나무 그늘에 앉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이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스타벅스를 뒤로 한 채 텐몬교를 건넜다. 아, 텐몬교 위 전망대에서는 다테야마 연봉의 실루엣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이제, 드디어 저곳으로 향한다.

 

●하늘 위로 올라서는 법

다테야마-구로베 알펜루트의 시작점은 도야마역이다. 가방을 뒤적거려 패스를 꺼냈다. 도야마역 개찰구에 서 있는 역무원에게 패스를 보여준 뒤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마침 기다리고 있는 노란색 기차가 다테야마역으로 향한단다. 도야마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도심을 빠져나가 평야 위를 달렸다. 마을이 등장하는 간격이 조금씩 길어졌다. 평야는 점점 언덕으로, 다시 산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탄 기차는 히다산맥에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케이블카와 무로도 고원을 오가는 버스

다테야마역에 도착하니, 케이블카가 우리를 맞이했다. 급경사를 따라 협궤가 설치되어 있고, 그 가운데에 매달린 케이블이 우리가 탄 수송차량을 잡아끄는 방식이었다. 계단 형으로 된 객차를 신기하게 감상하고 있던 것도 잠시, 해발 977m 지점에 위치한 비조다이라역의 모터는 단 7분 만에 우리를 빨아 올렸다. 비조다이라역부터 1,930m 지점인 미다가하라를 지나 다테야마 정상에서 제일 가까운 2,450m 지점의 무로도 고원까지는 버스가 나설 차례. 이 높은 곳까지 버스가 다닌다니. 육중한 몸으로 구불구불한 산악 지대를 달린다니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탁 트인 도로를 따라 달렸다. 덕분에 비교적 여유롭게 다테야마의 풍경을 살필 수 있었다.

저 멀리 일본에서 가장 길다는 쇼묘폭포(称名滝)가 보였고, 다테야마 삼나무와 너도밤나무 등이 만들어낸 거대한 숲 터널을 지났다. 절경에 대한 대가는 험난한 길이었던 것일까. 곧 구불구불, 아찔한 길이 이어졌다. 반대편에서 오는 버스와 마주칠 때마다 잠시 멈추곤 했는데, 다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경사를 올라가려고 애쓰는 그 상황이 어찌나 힘겹던지. 창밖 옆으로 천 길 낭떠러지. 나도 모르게 가슴이 콩닥거렸다. 두근두근.

미다가하라 습지

그렇게 미다가하라에 도착하니 확연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미다가하라의 탐방로를 따라 대자연을 잠시나마 만나보기로 했다. 나무로 만든 탐방로 아래엔 원시 상태 그대로의 습지가 드넓게 이어졌고, 그 끝은 어김없이 히다산맥의 거친 능선으로 솟구쳤다. 

텐구다이라(天狗平) 

미다가하라에서 다시 버스에 올라 10여 분을 더 올랐다. 하룻밤 묵어가게 될 텐구다이라(天狗平)가 오늘의 최종 목적지. 서쪽으로는 미다가하라와 함께 도야마시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연봉의 거대한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 절경이 펼쳐졌다. 마침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저 밑, 우리가 지나왔던 길부터 지금 딛고 서 있는 이 땅까지.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 차가워진 바람이 뺨을 할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저 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부여잡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려가는 길 또한 수월할 터이니

밤사이 하늘은 별을 쏟아냈다. 객실 창문을 열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별을 곁에 두고 잠드는 게 얼마 만이었던가. 스르륵 눈이 감겼다. 눈을 뜨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어젯밤 맑은 하늘과는 다르게 구름이 다테야마 전체를 뒤덮어버렸다. 안개가 끼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호텔 로비에 걸린 날씨 알림판은 오후에 비가 내릴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조금 서두르기로 했다. 텐구다이라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조금 더 올라가면 무로도. 그곳에 조성된 트레일을 따라 다테야마의 기운을 한껏 받아들인 뒤, 구로베 댐 방향으로 내려갈 계획이었다.

무로도고원

무로도는 다테야마의 정상 중 하나인 오야마를 비롯해 여러 산봉우리가 둘러싼 고원이다. 다테야마-구로베 알펜루트 전 구간 중에서 가장 높은 2,500m 지점. 알펜루트 이용객에게는 반환점이고, 다테야마 정상부까지 등반하려는 등산객들에게는 마지막으로 정비하는 곳이기도 하다. 무로도 고원을 둘러보는 산책로도 잘 조성되어 있다. 화구호인 미쿠리가이케가 영롱한 빛깔로 거울 같은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그 뒤로 샘솟는 유황 온천수를 이용한 온천도 자리한다. 산화철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붉은빛을 띠는 ‘피의 연못’이나, 연기를 뿜어내는 지옥계곡(地獄谷) 등의 지명은 이곳을 찾은 이들이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고스란히 나타냈던 것인 듯했다. 참고로 매년 봄마다 장관을 연출한다는 다테야마의 ‘눈의 대계곡’도 바로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구로베댐

도야마를 등지고 나가노 방향으로 내려갈 차례. 무로도에서 다이칸보까지는 트롤리버스가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궤도 없이 가공 선을 설치해 좁은 터널을 오가는 이동 수단이다. 버스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전철처럼 머리 위에 전깃줄을 연결해 달리는 방식이다. 무로도 밑으로 연결된 터널 너머로는 다테야마의 속살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다이칸보의 절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달아 로프웨이와 케이블카에 올랐다. 중간에 기둥 하나 없이 다이칸보와 구로베댐까지 약 1.7km를 로프로 연결한 로프웨이는 7분 만에 500m 고도를 주파했다. 자연경관을 보호하고 눈사태로 인한 연결도로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했다는 케이블카를 한 번 더 타고 난 후에야 구로베댐에 두 발을 얹을 수 있었다. 


구로베댐은 일본에서 가장 큰 댐이자, 가장 높은 곳에 건설된 댐이다. 간사이 전력이 발전을 위해 건설할 당시 자재 운반용 터널과 기반 시설을 만들었던 것이 오늘날 알펜루트의 일부가 된 셈이다. 남쪽으로는 한없이 잔잔한 호수가, 북쪽으로는 두 개의 거대한 산 사이로 거칠게 형성된 협곡이 뻗어 있다. 호수에서는 유람선이 노닐고 있었다. 저 또한 일본 최고의 높이에서 운항하는 유람선일 테다. 

트롤리버스와 구로베댐 모양의 카레

구로베댐에서 다시 한 번 트롤리버스를 타고 오오기사와까지, 일반 노선버스로 갈아탄 뒤 시나노오오마치까지 이동했다. 시나노오오마치역 앞 식당에서 구로베댐 모양으로 밥을 쌓은 ‘구로베댐 카레’를 먹는 것으로 알펜루트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이제 나고야로 돌아갈 시간이다. 

 

●해자에 달이 차오르면

나고야까지 한 번에 가는 건 쉬워 보이지 않았다. 거리가 상당한 탓에 말이다. 중간 지점인 마츠모토라면 하루쯤 쉬어가도 좋을 법했다. 국보급 천수각이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고, 서쪽으로는 북알프스의 능선이 병풍처럼 자리하고 있는 도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마츠모토성으로 들어섰다. 해자를 따라 소소하게 꾸며놓은 공원을 따라 걸었다. 촉촉한 소나무 사이로, 혹은 벚나무 아래에 서서 바라본 마츠모토성은 각도에 따라, 배경에 따라 각기 다른 표정으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5중 6층 규모의 마츠모토성 천수각을 둘러보는데 눈에 띄는 시설이 하나 있었다. 츠키미야구라(月見櫓)라는 이름의 망루. 대칭을 포기하면서까지 바깥쪽으로 튀어나온 이 망루는 천수각 앞마당과 해자, 저 멀리 북알프스까지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처럼 보였다. 관심을 보이자, 옆에 있던 해설사가 설명했다. “밤마다 이곳에서는 세 개의 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에 뜬 달, 해자에 비치는 달, 그리고 술잔에 내려앉은 달이에요.” 한껏 우중충했던 하늘이 가장 야속한 순간이었다.

마츠모토성

그날 밤 맥주 한 캔으로 조촐하게나마 여행을 끝을 기념했다. 마츠모토역으로 나간 것은 이튿날 새벽이었다. 비는 여전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식당 사이에서 편의점을 찾았다. 도시락과 여러 간식들을 구매했다. 열차 내에서 먹을 요량이었다. 마츠모토역 개찰구에서 마지막으로 패스를 사용했다. 오전 7시4분에 출발하는 ‘와이드 뷰 시나노 2호’가 우리를 나고야로 데려다줄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회사로 출근하는 이들, 학교에 가는 학생들로 플랫폼은 북적였다. ‘특급 시나노’라고 쓰인 차량 이름 옆으로는 ‘나고야’라는 행선지가 짙게 쓰여 있었다. 

에키벤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꺼내들었다. 일본 차내에서 도시락은 익숙한 존재다. 역을 뜻하는 에키(駅)와 도시락을 뜻하는 벤또(弁当)의 합성어 ‘에키벤(駅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마치 우리가 기차하면 사이다와 삶은 달걀을 떠올리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말 간단한 도시락이지만, 이른 아침부터 끼니를 해결하지 못한 채 기차역에 온 우리에게는 작은 희망이었다. 


덜컹덜컹. 기차가 속삭이는가 싶더니 이내 우렁찬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발아래에서 느껴지는 기차의 진동은 속으로 박자도 탈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다. 등받이를 뒤로 살짝 젖히고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응시했다. 촉촉하게 젖은 세상이 느리게 지나간다. 두근두근. 

 

▶Info 

나고야 주부 국제공항

일본 최초로 민간운영 국제공항으로 개항한 나고야 주부 국제공항은 일본 중부 지방의 관문이다. 4층 높이의 여객터미널에는 약 300m에 달하는 전망대 스카이 덱과 테마파크로 꾸며진 센터피어가든, 스카이타운 등 즐길 거리가 다양해 관광지로도 손색없다.

더 많은 정보는 여기서 찾아보세요!
1. JR 알펜·다카야마·마쓰모토 지역 관광 티켓
touristpass.jp/ko/alpine
 
2. 기후현 ‘기후 관광 가이드’
travel.kankou-gifu.jp/ko
 
3. Tateyama Kurobe Alpine Route
www.alpen-route.com/kr
 
4. 나고야 중부국제공항
www.centrair.jp/ko
 
5. 도야마현 ‘도야마 관광 길잡이’
foreign.info-toyama.com/kr
 
6. Go! NAGANO
www.go-nagano.net/ko

 

글·사진 김정흠 에디팅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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