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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IEST ROUND TABLE ] 여행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 순간들

  • Editor. 강화송
  • 입력 2018.11.01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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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결정의 연속이라 했던가.
이것도, 저것도. 모든 것이 새로우니
매순간이 갈림길이다. 
여행 좀 다녀본 트래비스트들에게 물었다.
‘여행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 결심의 순간들’.   


참가자 | 트래비스트 OB & YB 모임 ‘치즈볼’ 
‘치’열하게 글 쓰고 ‘즈’을겁게 여행하는 ‘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들

●덜어 내세요. 풍요로워집니다


[정흠] 미국 여행을 계획한 적이 있다. 일정은 6박 7일! 내 기준에서는 미국을 다 품기에 너무 짧은 일정이더라. 그래서 처음에는 이곳저곳 여행지들을 구겨 넣었다. 꽉꽉 채워진 일정표를 보고 있자니 시작부터 진이 다 빠졌다. 그래서 다 포기해 버렸다. ‘차라리 여기만 가자!’ 하고 말이다. 그렇게 결심 후 떠났던 곳이 바로 인생 여행지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다.
[윤희] 진짜 동감. 계획 덜어 내는 결심이 쉬워 보여도 정말 힘들다. 괜히 계속 못 간 여행지가 생각나게 되고 그러더라. 진짜 장기 여행에서는 꼭 한 번씩 다가오는 결심의 순간인 것 같다.
[정흠] 근데 오히려 나는 마음이 편했다. 굳이 뭘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말이다. 모뉴먼트 밸리까지 1,000km가 넘는 길을 드라이브했다. 호텔도 20만원이나 투자해 ‘고오오오급’으로 끊었다. 무려 남자 둘이서!
[호상] 잠깐만, 남자 둘이서 한 방? 그것도 고급호텔. 이게 결심이네. 뭐 여러 의미로. ㅋㅋㅋ 
[정흠] 아니, 무슨 소리냐(입술을 파르르 떨며). 여하튼 딱 도착했는데 호텔이 너무 좋더라.  그냥 누워도 좋고 앉아도 좋고. 여행 막바지쯤, 이 행복을 두고 돌아가려니 너무 아쉽더라. 내 결심의 증거라도 챙기고 싶어서 호텔 이름이 적힌 펜과 노트를 가지고 나왔다.
[한나] 아, 그럼 도둑질을 결심한 것? 그렇게 안 봤는데. 가방 조심 하세요 다들.  
[정흠] (화들짝 놀라며) 아니, 그게 아니라 펜이랑 노트는 가져가도 되는 호텔측 기념품이었다. 체크아웃을 하려고 로비에 나갔더니 한가득 더 챙겨 주더라. 진짜 너무 행복한 마음에 그 조각이라도 추억한 건데, 그렇게 매도하다니.
[태곤] 정흠 이야기 듣고 있으니까 나도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좀 연식이 오래된 일이긴 한데, 내가 대학교 2학년 때인가? 첫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다. 
[고은] 와 진짜 오래된 일이다. ㅋㅋㅋ
[태곤] 크흠, 그때는 여행을 책 한 권 들고 가던 시절이다. 한 1년을 준비해서 2달 정도 돌아볼 수 있는 코스를 계획했다. 여행을 시작하고 열흘쯤 되던 날, 야간열차를 타야 하는데 기차 역에서 한 여자 분이 급히 가방을 맡아 달라고 하더라.
[윤희] 아 진짜? 처음 보는 사람한테? 좀 위험한 상황 같은데. 막 영화 보면 이상한 물건 맡기고 도망가잖아. 폭탄 같은….
[고은] 정흠이라면 가방 그냥 가져 버리자 결심했을 텐데….
[정흠] 도둑 프레임 씌우지 말라! 그냥 기념품 챙겼던 거라고.ㅋㅋㅋ
[태곤] 누구(이하 정흠)처럼 그러진 않았다. 근데 열차 시간이 다 되도록 가방을 맡긴 여자가 안 나타났다. 어린 마음에 기다리면서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기차가 떠나기 직전까지 고민했다. 결국 기다려 주기로 결심했다. 기차가 떠나고 나서야 저 멀리서 여자 한 명이 뛰어오더라. 뭐 이후 짜 놨던 일정은 전부 틀어졌다. 근데 마음이 정말 너무 편하더라. 고등학교 시절부터 짜여진 계획에 의해서만 살았는데,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호상] 잠깐만, 이거 완전히 로맨스인데.
[태곤] 아 전혀 아니다.ㅋㅋㅋ 열차를 놓쳤으니 어쩌겠는가. 아무 열차나 잡아탔다. 중요한 건 이거다. 딱 아무 열차를 타고 아무 도착지에 내렸는데 거기가 바로 체코 프라하였다. 그 새벽, 기차역에 안개가 쫙 깔려 있었는데, 진짜 너무 멋지더라. 난 지금까지도 그날의 풍경을 꿈으로 꾸곤 한다. 그날 이후로, 계획은 열심히 세우지만 틀어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고은] 흠, 아무리 봐도 로맨스가 있는 거 같은데 이거…. 너무 훈훈한 마무리인데.
[정흠] 그건 잠시…. 오프더레코드로. 그래서, 그 여자 분이랑…. 
[태곤] 아니 진짜. 둘 다 열차를 놓쳤는데 목적지가 달라서 서로 다른 곳에 내렸다.
[호상] 진짜 필요한 결심이 빠졌네. 고백을 결심한다든가…. 뭐 그런.ㅋㅋㅋ
[all] ㅋㅋㅋㅋㅋㅋㅋㅋ
[한나] 나도 에라이, 그냥 놓아 버렸던 적이 있다. 유럽여행을 처음 갔을 때 파리 민박집에서 만난 친구들이랑 하루 종일 와인을 마셨다. 루브르고, 몽마르트르 언덕이고, 아무 여행지도 안 가고 말이다. 일정을 덜어 내는 결심은 여행의 묘미를 알게 해 주는 것 같다. ‘자유’ 말이다.


●여행은 먹어 보는 거야


[한나] 여행을 가장 풍요롭게 만드는 결심의 순간은 역시 음식 아닐까? 나는 여행을 가면 항상 새로운 걸 먹는다. 항상 실패하지만…. 마닐라에서는 정말 여행 내내 맛있는 음식을 단 한 번도 먹지 못했던 적이 있다. 항상 행복한 결말은 아니더라도 추억은 풍요로워진다.
[정흠] 완전 공감. 중국 충칭에 있는 훠궈 음식점이었다, 백탕, 홍탕이 있지 않냐. 거기에 돼지 뇌를 담가 먹은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기억이다.
[고은] 그 동그란 뇌 모양을 그대로?
[정흠] 자르지도 않았더라. 종업원이 푸딩 맛이라고 했지만 소 간 맛이 나면서 굉장히 물컹하다. 입에서 살살 녹지만 맛이 없다. 앞으로는 줘도 안 먹을 것 같다.
[윤희] 돼지 뇌까지는 아니어도 귀를 먹어 본 적은 있다. 멕시코 현지 음식점에서였는데 타코 안쪽에 돼지 귀를 넣어 먹더라. 
[고은] 맛은 어떤가?
[윤희] 귀라고 말 안하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냥 고기 맛.
[태곤] 여행을 일로 다니면 그런 경우가 많은 듯하다. 아부다비에서 일할 때 이야기다. 아부다비에는 정말 여러 인종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음식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그중 에티오피아 음식이 단연 기억에 남는다. 동그란 밀떡이었는데 좀 시큼한 맛이었다. 아마 발효가 된 듯했다. 혼자 들어가서 손으로 집어 먹고 있었는데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와서 먹는 방법을 알려 주더라. 내가 정해 놨던 청결의 기준을 벗어나니 그들과 수월하게 친해질 수 있었다. 음식과 청결에 대한 기준, 여행에서 피할 수 없는 결심의 순간이다. 
[한나] 내 의도와 상관없이 위생 수위가 결정된 적이 있다. 당시에 직장 상사와 인도 출장을 간 적이 있다. 모험심이 정말 강한 분이었는데 길거리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사 먹더라. 결국 그분은 배앓이로 끙끙댔다. 국내 들어와서는 메르스 감염자로 엄청나게 의심 받았다.
[태곤] 아 메르스! 갑자기 기억난다. 내가 아부다비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한창 메르스가 유행이었다. 중동에서 한국에 딱 돌아왔더니 기침이 엄청나네? 아내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를 신고했다. 그렇게 국립 의료원에서 격리수용을 당한 적이 있다. 한 5시간 정도. 다행이 메르스는 아니었다. 
[호상] 아내의 결심.ㅋㅋㅋ 정말 꼭 필요한 결심이었네. 
[고은]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테마로 도쿄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드라마 속에 나왔던  선술집을 방문했는데 휴무더라. 계획이 어긋나니 어딜 가야 할지 몰라서 그냥 옆 선술집으로 들어갔다.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인장이 물어왔다. “혹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세상에나, <고독한 미식가>의 감독이더라. 드라마 속 테마대로 도쿄를 여행 중이라고 이야기하니 명함에 사인을 해줬다. 기념사진도 5장이나 같이 찍었다. 나에겐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다. 
[정흠] 아 진짜 좋았겠다. 
[윤희] 도쿄! 갑자기 떠올랐다. 추운 겨울, 도쿄를 여행한 적이 있다. 바에서 맥주 한 잔하고 알딸딸한 기분으로 돌아가는데 어떤 남자가 뒤에서 헐레벌떡 따라왔다. 내가 목도리를 두고 갔던 것이다. 그 계기로 그 일본인 남자와 친해지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고스케’였는데, 한국의 휴학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꼭 봉사활동을 가고 싶다고 했다. 후에 MSN으로 소식을 들어 보니 부탄으로 해외봉사를 갔다고 하더라. 친구가 꿈을 이뤘다는 소식에 곧장 큰 박스에 초코파이와 캔디를 엄청 담아서 그에게 보냈다. 잘 받았다는 편지와 부탄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을 나에게 보내 왔다.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나중에는 청첩장까지 보내 왔다. 지금은 잘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고스케.
[호상] 와! 일본에서 청첩장은 아무나 안 주는데.
[윤희] 잠깐이지만 그만큼 친밀하게 교감한 것이 아닐까. 개인적인 사정으로 결혼식은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의 마음이 너무 좋았다. 분명 여행을 하다 보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상황들을 직면하게 된다. 그 모든 시간이 여행을 풍요롭게 만드는 순간들이 아닐까. 
 

정리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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