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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100년의 이야기] 사랑의 벨에포크, 빌라누프

Wilanow 빌라누프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8.11.02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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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와강의 지류로 형성된 빌라누프 궁전 앞 호수 

 

분할통치로 쪼개지기 전 폴란드의 화려한 전성기는 아마도 16~17세기의 폴란드-리투아리나 연방 시대였을 것이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보존된 빌라누프성이 담고 있는 것은 사랑과 자부심이다. 오스만제국에 맞섰던 빈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이슬람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수호했다는 평가를 받는 얀 소비에스키(Jan III Sobieski, 1629~1696년)왕은 뛰어난 전략가였을 뿐 아니라 타고난 사랑꾼이었다.

아내 마리아 카지미에라(Maria Kazimiera)를 위해 지었다는 궁전 내부에는 둘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상징들이 가득한데, 벽화나 천장에 슬쩍 그려 넣은 오렌지와 꽃 등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왕의 사후 여러 주인을 거친 왕궁은 1805년부터 폴란드 최초의 미술관으로 일반에게 공개된 장소였다. 2차 세계대전의 포화는 피해 갔지만 약탈로 입은 내상이 적지 않았던 빌라누프는 공산당 정권에 몰수되었다가 1962년에 다시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바르샤바 구도심에서 시작된 로열 루트의 끝에 빌라누프 궁전이 있다
바르샤바 구도심에서 시작된 로열 루트의 끝에 빌라누프 궁전이 있다
17세기 풍요로운 시절 얀 왕과 여왕의 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궁전과 정원
17세기 풍요로운 시절 얀 왕과 여왕의 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궁전과 정원

왕궁 가든 투어를 전문으로 한다는 가이드는 어려운 폴란드어 식물의 이름을 한글로 번역해 프린트를 해 왔다. 고마운 일이었다. 기하학적 배치를 위해 큰 수종을 일부러 미니어처처럼 작게 만들어 키웠다는 바로크 정원의 기괴함은 이어지는 영국식 정원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궁전에서 호수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버드나무 흐드러진 폴란드의 시골 정취가 진한 전원 풍경이었다.

왕궁에서 소비될 가축과 유제품, 야채들을 키우고 보관했다는 창고와 일꾼들이 살던 옛 농가도 남아 있었다. 사냥을 좋아했던 얀 왕은 이국적인 동물에 대한 관심도 많아서 고아가 된 수달을 키우기도 했고, 북극곰을 구입하기도 했다고. 그가 준비한 궁전 이야기는 동화처럼 재미있었지만, 세월만큼 길기도 해서 브레이크가 필요했다. 가야 할 시간이라고 하자 가이드가 마지막이라며 안내한 곳은 지하 동굴이었다. 여름의 더위를 피해 연회가 열리기도 했다는 지하 공간은 이제야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공사를 마치고 나면 빌라누프 궁전의 이야기는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빌라누프 궁전 
www.wilanow-palac.pl 

거위가슴살을 바다 소금으로 간을 한 육회는 기름기를 잘 살려서 식감이 부드러우면서도 허브와 마늘 등으로 느끼함을 잡았다

 

●Traditional Cuisine  
중세의 얀 왕은 무엇을 먹었을까?

얀 왕 당시의 사람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그에 대한 답을 들려준 것은 마치에이 노비츠키(Maciej Nowicki) 궁중 박물관 연구가 겸 요리사였다. 궁전 입구에 위치한 빌라 인트라타(Villa Intrata)에서 그를 만났다. 말하자면 이곳은 그의 연구소 겸 레스토랑인데,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포함해 국가정상들이나 세계적인 명사들이 방문할 때마다 식사를 대접하는 대통령의 공식 맛집이다. 그가 말하는 폴란드 궁중 요리의 특징은 바로크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예측불허의 사치와 허영이 심했지만, 한 접시 위에서도 최소한 3가지 이상의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 후추처럼 이국적인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부의 과시가 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특히 17세기 얀 왕 시절은 폴란드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절이라 생강, 계피, 오렌지, 레몬 등 이국적인 재료가 다량 유입되었고, 화려한 음식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20여 년 동안 전쟁과 공산정권을 거치는 동안 가난에 시달렸던 폴란드에서는 풍요로운 음식 문화가 단절되어 버렸다. 요리를 통해 역사를 재건 중인 그는 1682년에 기록된 폴란드 최초의 요리책을 영어로 번역해 곧 출간할 예정이다.

요리를 기다리는 동안 그가 안내해 준 빌라의 정원에는 직접 재배하는 허브와 야채가 싱그럽게 자라고 있었다. 요리뿐 아니라 식재료 자체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종 다양성이나 생물학 분야에 대한 지식도 폭넓게 갖추고 있다. 런던과 프랑스에서 경력을 쌓아 폴란드로 돌아온 그는 지난해 한국 방문 경험을 통해 한국의 음식과 문화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김치와 장어구이에 대한 칭찬을 잊지 않았다. 그 모든 설명 이후에 그가 준비해 준 요리는 17세기 폴란드 부자들이 실제로 먹었던 사치스런 요리들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만, 일단은 여기에 보여 드리는 걸로.

레몬마멀레이드, 콜리플라워, 꿀에 잰 호박채, 삶지 않고 식초로 부드럽게 한 토마토와 호박을 곁들인 대구 요리
레몬마멀레이드, 콜리플라워, 꿀에 잰 호박채, 삶지 않고 식초로 부드럽게 한 토마토와 호박을 곁들인 대구 요리
빌라에서 200m쯤 떨어진 꿀집에서 채집한 꿀은 그 자체로 귀한 디저트다

글 천소현 기자  사진 이승무
취재협조 폴란드대사관 www.seul.msz.gov.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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