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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구슬을 꿰는 마음으로

  • Editor. 차민경
  • 입력 2018.11.0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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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태양을 피하려 숨어든 곳엔 십자고상이 매달렸고 목을 축이러 고개를 숙인 자리엔 타스비흐*가 놓여 있었다. 모래 언덕 아래 잠들어 있는 것은 이 땅에서 수세기 동안 교차했던 영욕들.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없으므로, 산 자들은 침묵하는 무덤 위를 헤매면서 조서를 꾸미는 수밖에 없다.      

*타스비흐 | 이슬람 묵주

성피에르성당에서 내려다본 하타이. 이슬람 사원 첨탑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
성피에르성당에서 내려다본 하타이. 이슬람 사원 첨탑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

 

●Hatay 하타이 

구명보트에 올라탄 이들에게


불볕이란 게 이런 건가. 40도를 육박하는 온도와 타는 듯한 건조함이 하타이(Hatay)를 휘감고 있었다. 빙 둘러보아도 언덕이나 산의 능선은 보이지 않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열기만 텅 빈 지평선 위로 일렁였다. 회갈색 메마른 대지에 가까스로 초록의 균형을 맞춰 주고 있는 것은 피스타치오 나무. 터키에서 생산되는 피스타치오 대부분은 하타이와 하타이와 인접한 가지안테프(Gaziantep)에서 난다. 피스타치오는 사막과 같이 메마르고 일교차가 큰 기후에서 잘 자라는 작물, 고로 이곳은 피스타치오 나무에게는 천국이겠으나 사람에게는 다소 혹독하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처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곳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처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곳이다

 

땀이 흐른 것은 더위 때문만은 아니다. 긴장 때문일 수도 있다. 하타이주가 동쪽으로 시리아를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도 안타키아(Antakya)에서 시리아까지 직선거리로 겨우 20km 내외니 서울 광화문에서 경기도 일산 거리와 비슷하다. 심지어 하타이는 터키 영토에서 홀로 돌기처럼 아래로 툭 튀어나와 있어 노골적으로 변방이 많다. 안타키아 시내에서 ‘쿵’ 하는 굉음을 들었을 때는 게릴라전이라도 벌어지는 건 아닌지 아찔했을 정도다. 다행히 터키 명절 쿠르반 바이람(Kurban Bayram)을 즐기는 와중의 소란에 불과했지만. 

그러잖아도 이미 부침이 많았던 지역이다. 하타이를 비롯한 터키 동남부 일대는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유프라테스강-티그리스강 일대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속해 있다. 안타키아는 이 일대에서도 소위 날리는 도시였다. 기원전 4세기 셀레우코스 제국에 의해 형성됐을 때 이미 지중해 인근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였다고. 명성이 드높았던 만큼 탐내는 곳들도 많았다. 1939년 터키에 편입되기까지 시리아, 로마, 이슬람, 이집트 등 이 지역을 둘러싼 사방군데의 왕조, 제국, 국가가 거쳐 갔다. 지금은 소박한 중소도시에 불과하다만 곳곳에 남겨진 역사의 훈장이 예사롭지 않은 이곳의 역사를 읊어 주고 있다. 

기독교 성인의 이름을 딴 이슬람 사원인 하비비 네자르 모스크. 절묘하게 종교 대통합이 이뤄진 셈이다
기독교 성인의 이름을 딴 이슬람 사원인 하비비 네자르 모스크. 절묘하게 종교 대통합이 이뤄진 셈이다

 

실은 안타키아(Antakya)란 이름부터가 그렇다. 라틴어로 안티오키아(Antiochia), 영어로 안티오크(안디옥)Antioch.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도 기독교의 ‘안디옥’은 익숙한 명사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사로 파견된 곳이자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최초로 ‘그리스도인(Christian)’이란 칭호를 쓰기 시작한 곳. 로마시대에는 기독교의 5개 주요 교구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안타키아 시내 북쪽,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성피에르대성당(St. Pierre Kilisesi)은 안타키아의 기독교 전파 시작점. 그리스도인으로 명명받은 이들은 깊이 13m, 높이 7m, 층고가 높은 작은 사무실 크기의 이 동굴에 숨어 믿음을 키워 나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성피에르대성당이 있는 언덕에서 안타키아 시내를 내려다보면 낮은 건물들 사이로 이슬람 모스크의 첨탑이 드문드문 뾰족하게 솟아 있다. 수세기를 거치는 동안 종교의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아랍 무슬림이 전파되고 638년에 만들어진 하비비 네자르 모스크(Habib-i Neccar Mosque)는 안타키아의 대표적인 이슬람 사원 중 하나다. 시가지 교차로, 번잡한 풍경에 홀로 묵직하게 들어서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모스크에서도 기독교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원의 이름을 따온 ‘하비비 네자르’는 기독교 순교자다. 심지어 모스크 북동쪽 모서리 지하에 하비비 네자르의 무덤이 있다고. 그야말로 무엇을 위해서든 기도할 수밖에 없는 곳이 아닌가.

 

퇴적된 것을 쓸어 담는 법


지중해와 맞닿은 항구도시 사만닥(Samandağ)으로 간다. 하타이의 서쪽 해안 마을이자, 실크로드의 서쪽 끝이다.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에서 건너온 물건들은 사만닥 항구에서 배로 옮겨져 로마 등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안타키아를 떠나 첫 선교 여행을 나선 항구도 이곳이라고.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티투스 터널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티투스 터널

 

좋은 입지 조건에도 항구로서는 약간 애로사항이 있긴 했는데, 인근 산에서 물이 범람하면 항구에까지 영향을 미쳐 모든 운영이 중단된다는 것이었다. 물자가 오가는 요지를 안전하게 보호할 필요가 있었고,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로마시대 만들어진 티투스터널Vespasianus Titus Tunnel(69~81년 시기)이다. 단단한 암석 사이로 총 1.4km의 길을 내 홍수가 나면 항구를 피해 가는 방향으로 물이 흐르게끔 한 것. 터널 안에 들어서면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들었다고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어마어마한 규모가 눈을 압도한다. 암석을 7~10m 정도 전봇대 높이만큼 깎고, 성인 대여섯이 넉넉히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의 너비로 파냈다. 차라리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하면 기이한 자연현상쯤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태양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터널은 깊이 파인 골짜기와 닮아 있다.  

하타이 고고학박물관은 이 지역의 모든 역사를 총망라하고 있다. 신석기 시대부터 지금까지, 축적된 시간을 눈으로 가늠하려면 한참 시간이 필요하다
하타이 고고학박물관은 이 지역의 모든 역사를 총망라하고 있다. 신석기 시대부터 지금까지, 축적된 시간을 눈으로 가늠하려면 한참 시간이 필요하다

 

하타이에 켜켜이 쌓인 경외로운 역사의 흔적은 고고학박물관(Hatay Archaeology Museum)에 집대성돼 있다. 구석기 시대부터 오토만 시대까지 이 지역의 전 역사를 아우른다. 조각상, 도자기, 무기와 무덤 등 사람이 일군 모든 이야기가 모여 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것은 대리석 모자이크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리석 모자이크 박물관이라는데 명성만큼이나 컬렉션이 화려하다. 한눈에 담기 쉽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모자이크 작품들은 결국 돌로 만든 것임에도 그 섬세함이 독보적이다. 얼굴의 윤곽, 옷의 질감, 동물의 털, 식물의 윤기가 생생하다. 오랜 기간 숙련된 솜씨다. 메소포타미아 주변부에서 기원전 4,000년 전부터 시작된 대리석 모자이크는 시대를 넘어오면서 점차 고도화됐다고. 반복되는 단순한 패턴을 표현하던 것이 기원전 2세기 로마시대에 와서는 아티스트가 제작에 참여하는 전문영역으로 발전하고, 기원후에 들어서는 대중화되기에 이른다. 색이 점차 화려해짐은 물론이요, 신화나 일상적인 이야기까지 표현하는 등 주제도 다양해졌다. 헬레니즘 영향권에 있었던 만큼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도 쉽게 찾을 수 있다. 


●Gaziantep 가지안테프 

매혹당한 사람들


세계에서 제일 큰 대리석 모자이크박물관은 하타이주와 북쪽으로 닿아 있는 가지안테프주에 있다. 로마시대 고대도시인 제우그마(Zeugma)에서 발견된 모자이크와 유물이 전시된 제우그마모자이크뮤지엄(Zeugma Mosaic Museum)이다. 모자이크는 제우그마의 중상류층을 중심으로 유행해 건물 바닥, 벽, 목욕탕 등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디자인으로 표현됐다고. 실제 과거의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도록 전시 공간을 꾸며 놓은 덕에 상상하는 재미도 있다. 

집시여인은 제우그마모자이크뮤지엄의 역작으로 꼽힌다. 방문객의 시선을 꼭 붙들어 매고 놓아 주지 않는다
집시여인은 제우그마모자이크뮤지엄의 역작으로 꼽힌다. 방문객의 시선을 꼭 붙들어 매고 놓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제우그마모자이크뮤지엄의 필살기는 따로 있다. 전시 공간 한쪽, 암전된 별도의 공간에 홀로 전시된 ‘집시여인(The Gypsy Girl)’이다. 절묘하게 인중 아래로 흔적이 없는 불완전한 형태인 데다 뮤지엄 안에 영화관 스크린보다 큰 작품들이 수두룩 빽빽인 와중에 겨우 두 손바닥을 펼친 크기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집시여인을 이곳의 최고 모자이크로 꼽는다. 

일반 박물관과 달리 제우그마 박물관의 작품은 규모와 상상력 등 그 어느 부분에서도 호화롭다
일반 박물관과 달리 제우그마 박물관의 작품은 규모와 상상력 등 그 어느 부분에서도 호화롭다

 

그럴 수밖에. 새끼 손톱만 한 대리석 조각으로 회화적 표현을 가능하게 한 기술도 놀랍지만,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강렬하게 부딪혀 오는 시선에 매혹당하고 만다. 어느 위치에서 바라보건 집요하게 눈을 맞춰 오는데, 어쩐지 경계하는 것도 같고 반대로 꿰뚫는 것 같기도 하다. 가만히 눈을 맞추고 있으면 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것 같기도, 콧잔등에 햇빛이 번뜩이는 것 같기도. 바라본 잠깐 동안 모든 비밀을 들킨 것처럼 영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숨고 싶은 마음이 되어 터덜터덜 전시관을 나오게 되는 것이다. 

 

●Adiyaman 아디야만

죽어서도 보아야 할 것


동이 트자 잿빛 석상에 모래알처럼 햇빛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투명하던 빛이 주홍색을 띠며 밝아지면 석상의 표정이 시시각각 달라진다. 무덤의 주인은 매일 새롭게 깨어나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른 땅 위로 아침의 해가 비치고 있다. 넴루트산에서는 굽이쳐 흐르는 언덕의 능선, 계곡 사이에 고인 유프라테스강이 바라다보인다
마른 땅 위로 아침의 해가 비치고 있다. 넴루트산에서는 굽이쳐 흐르는 언덕의 능선, 계곡 사이에 고인 유프라테스강이 바라다보인다

 

한밤을 달려 넴루트(Nemrut Dağ)산 중턱에 도착했다. 일출을 보려고 매일 잠들던 시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더니 몽롱한 것인지, 반짝이는 별밭이 하늘에 펼쳐져 있어서 몽롱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넴루트산의 정상에 닿으려면 중간 거점에서 30분을 더 걸어 올라야 한다. 산의 가장자리를 따라 둥글게 난 길은 빛도 없이 어두컴컴. 그럼에도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작은 길이 북적인다. 고도가 높아질 수록 한겨울 한파처럼 바람이 날을 세우는데, 엊그제 산 아래에서 경험한 한낮의 기온은 40도였다니. 거짓말 같은 온도차다. 대여한 담요를 꽁꽁 둘러 매고도 두툼한 무스탕을 입고 온 일행이 한없이 부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넴루트산은 기원전 1세기경 이 지역에서 발현한 콤마게네 왕국(Commagene)의 왕 안티오쿠스(Antiochus) 1세의 무덤이다. 해수면에서 2,206m 높이의 산, 최정상을 이루는 작은 돌로 만들어진 높이 55m의 고분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테라스를 두고 있다. 그래서 일출은 동쪽에서, 일몰은 서쪽에서 본다. 

안티오쿠스왕은 신과 나란히 앉은 모습으로 자신을 신격화했다. 목이 떨어져 나가고 빛도 바랬건만 무덤 주인의 욕망은 짙게 남아 있다
안티오쿠스왕은 신과 나란히 앉은 모습으로 자신을 신격화했다. 목이 떨어져 나가고 빛도 바랬건만 무덤 주인의 욕망은 짙게 남아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무덤은 항상 할 말이 많았다. 무덤을 보는 일은 무덤 주인의 삶 그리고 욕망을 보는 일 아니던가.  수십년 소인배로 살아온 삶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욕망이 거기 있었다.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 꼭대기에 무려 10m 높이의 석상 7개가 나란히 앉아 있으니. 떨어져 나간 두상은 석상의 발 밑에 순서대로 정리돼 있다. 신과 수호자, 그리고 신의 경지에 오른 안티오쿠스 1세다. 안티오쿠스를 제외한 석상들은 그리스 신화와 페르시아 신화의 등장 인물들. 두 개 문화가 오묘히 섞인 콤마게네의 문화적 정체성이 드러난다. 안티오쿠스는 신화 속 등장인물과 함께 자신의 석상을 나란히 세움으로서 스스로를 신격화했다. 곧 주체성을 가진 강한 독립국으로서의 콤마게네를 꿈꾼 셈이다. 안타깝게도 콤마게네의 역사는 그리 길지 못했지만. 


해가 떠오르면 밤에 잠겨 있었던 넴루트산 일대가 생명을 얻기 시작한다. 멀리 유프라테스강이 완만한 언덕들 사이로 고요하게 고여 있고, 언덕의 능선은 흐르는 것이 숙명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 먼 곳까지 굽이친다. 태초의 것인양 아무 흔적이 없는 고요한 땅 위에 억겁의 역사가 쌓여 있다니. 죽어서도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런 풍경일지 모른다. 

 

죽음보다 삶이 궁금해서


콤마게네 왕국은 알렉산더 대왕을 필두로 한 헬레니즘 시대가 막을 내린 뒤 유프라테스 유역과 시리아 인근에 형성된 국가다. 기원전 69년부터 로마 왕국이 세를 넓혀 콤마게네를 흡수하는 기원후 72년까지 시대를 잇는 길목에서 또렷한 존재감을 남겼다. 우선 넴루트산에서 그 존재감을 진하게 확인했으니 페르레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of Perrhe)와 아르세미아(Arsameia) 이야기가 더 재미있게 느껴질 것이다. 


페르레 네크로폴리스는 이름 그대로 페르레 도시 외곽에 위치한 콤마게네 왕국 사람들의 공동 묘지다. 야트막한 언덕을 이루는 바위를 파내 4~6명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그것을 가족단위 무덤으로 사용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원래는 문이 달려 있어서 사망자가 나올 때마다 문을 열고 시신을 안치했단다. 죽은 사람의 환생을 믿어서 시신과 함께 본인이 쓰던 금은보화, 다시 태어났을 때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던 물건들을 같이 넣었다고. 


지금 보기에는 구멍이 뻥뻥 뚫린 언덕에 불과하지만 당시에는 여러 용도를 겸했다. 제사에 동물을 올리기 위해 우물을 파서 손질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도 했고, 물이 있으니 겸사겸사 와인도 만들 수 있도록  주조 시설도 설계했다. 참고로 콤마게네 왕국은 자체 브루어리 브랜드가 있었을 정도로 와인이 유명했다고. 지금 기준에서 주조장의 위치 선정은 썩 매력적이진 않지만 말이다. 공을 들인 부분은 따로 있다. 모든 무덤의 문이 넴루트산을 향하고 있다는 것. 무덤을 등지고 정면으로 시선을 아주 멀리멀리 옮기면 뾰족하게 솟은 넴루트산의 정상을 볼 수 있다. 무덤 입구의 위치 선정은 고심한 흔적이 물씬. 


손을 맞잡고 인사하는 악수가 처음으로 형상화된 게 언제일까? 크게 흥미로운 일은 아니지만 알아 둬서 나쁠 건 없다. 예상했듯이 콤마게네 시절에서다. 아르세미아 유적에는 세계 최초의 악수상(?)이 남아 있다. 주체는 콤마게네의 미트리다테스왕(Mithridates)과 안티오쿠스왕. 각각 태양신과 악수한다. 신과 손을 맞잡는 석상을 남길 정도의 자신감이라, 아디야만 사람들이 콤마게네 시절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게 일견 납득이 된다. 


아르세미아 유적은 청춘만화 속 공주 이름 같은 명칭과 달리 약수터가 있는 마을 뒷산의 풍경에 가깝다. 한 사람이 겨우 걸어갈 수 있는 오솔길을 따라 3곳의 역사적 장소가 띄엄띄엄 자리했다. 허술한 모습이지만 상대적으로 더위가 덜한 지역이라 콤마게네 왕국의 여름 행정수도로 사용 됐던 곳. 분주했을 과거의 모습을 그려 내기 어려울 정도로 지금은 노지에 불과하다. 방치돼 있다고 보아도 좋을 석상은 약 2,000년 전부터 지금까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중. 어느 소설에 나왔던, 시신의 부검을 요청하면서 죽음의 이유 대신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려 달라고 하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모래 언덕이었을 무덤 위를 우리가 헤매는 이유도 같지 않을까 하면서.  

▶travel  info

AIRLINES
터키항공 | 인천에서 터키 이스탄불로, 이스탄불에서 국내선을 갈아타고 하타이로 이동해 일정을 시작했다.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 약 12시간, 이스탄불에서 하타이까지는 약 1시간 45분이 걸린다. 아디야만에서도 이스탄불까지 국내선이 운영되며 약 2시간 거리다.  터키항공은 인천에서 터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공항까지 주 11회 운항하고 있다. 터키 내 국내선도 총 49개 운영 중으로, 높은 연결성을 자랑한다.  올해 중 완공 예정인 이스탄불 신공항이 오픈하면 터키항공이 야심차게 준비한 신규 라운지도 이용할 수 있다. 

HOTEL
군고르 오토만 팔레스(GUNGOR Ottoman Palace)

1885년 오스만제국 당시 지어진 호텔이자 당시 왕족이 소유, 운영하고 있다. 오스만 건축 양식대로 지어졌고 내부는 온갖 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돼 있다. 일대에서 유일하게 온천이 있는 호텔이기도 하다. 
주소: Gungor Uydu Kent, Antakya, Hatay
전화: +90 326 255 1616
홈페이지: www.antakyaottomanpalace.com

 

시레한 호텔(Sirehan Hotel)
가지안테프는 하타이에서 이어지는 실크로드에 속한 지역인데, 그래서 볼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 실크로드를 여행하는 대상들의 숙소인 케르반 사라이(Kervan Sarayi)다. 1885년부터 1950년까지 케르반 사라이였던 곳을 현대식 호텔로 변형시킨 시레한 호텔은 널찍한 중정을 두고 ㅁ자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건물의 1층은 낙타가 쉬던 공간, 위로는 사람이 쉬던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낙타방도 일반 객실로 개조해 쓴다.
주소: İsmet Paşa Mah. Eski Belediye Cad. No:1 
전화: +90 342 221 0011  
홈페이지: www.gaziantepsirehanhotel.com.tr

 

SPOT
아타튀르크댐

유프라테스강 상류에 만들어진 댐. 최대 저수량이 500억톤이니 팔당댐 저수량의 200배 크기다. 아타튀르크댐은 건설과 함께 국제적인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유프라테스강은 터키에서 시작돼 시리아, 이라크를 거쳐 페르시아만으로 흘러가는데 터키가 아타튀르크댐을 건설하면서 물자원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 물을 둘러싼 긴장은 진행형이다. 
주소: Ataturk Barajı02230 Akyazı Koyu/Adıyaman Merkez, Adıyaman

 

젠데레다리(Cendere Koprusu)
190년 건축을 시작해 200년에 완공된 로마 시대 다리다. 로마 건축의 대표적 양식인 아치로 다리를 만들었는데, 10년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가 통행하는 등 일상도로로 사용됐다고. 지금은 교통을 통제하고 있어 걸어서 다리를 감상할 수 있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하천은 터키 사람들이 더위를 식히는 피서지다. 다리 안쪽으로 깊은 동굴도 있다. 
주소: 02400 Burmapınar Koyu, Kahta, Kahta, Adıyaman

 

괴베클리테페(Gobekli Tepe)
기원전 1만년경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 최초의 성전. 참고로 기원전 1만년경이라 하면 유목하던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며 정착생활을 시작하던 즈음이자 도구 역사로 보면 신석기 시대다. 철기가 없던 시절의 유적이지만 네모 반듯한 돌 기둥이 여럿, 여기에 여러 동물 형상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흙에 덮여 있다가 1980년 처음 발견돼 지금도 발굴이 진행 중이다.
주소: Dağeteği Mahallesi, 63290 Haliliye, Şanlıurfa

 

발륵르 골(Balikli Gol)
선지자 아브라함과 관련된 전설이 내려오는 연못이다. 장작을 쌓고 불을 질러 아브라함을 사형시키려던 순간 이적이 일어나 쌓아 둔 장작은 물고기가 되고 화형대 자리는 연못이 됐다고. 지금도 연못 안의 물고기는 성스러운 것이라 해서 죽이거나 먹지 않는다. 순례를 위해서도 오지만 공원처럼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주소: Merkez, Balıklı Göl Cd, 63210 Eyyübiye, Şanlıurfa

 

글·사진 차민경 기자
취재협조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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