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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언제나 시작은 ‘렌토’로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9.01.0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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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소현 기자
천소현 기자

 

얼마 전에 마셔 본 일본술 중에 음악으로 숙성시킨 흑설탕 소주가 있었습니다. 저장 탱크에 특수 제작한 스피커를 부착해서 3개월 동안 클래식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이죠. 소주 특유의 냄새가 적고 부드러워 모두가 ‘엄지 척’이었습니다. ‘음악 숙성’의 원리는 모르지만, 술에 대한 특별한 예우가 맘에 쏙 들었습니다. 이름은 ‘렌토(Lento)’입니다.  


라르고, 렌토, 아다지오…. 달달 외웠던 용어들은 이제 앞부분만 남아 있네요. 마치 ‘태정태세문단세’까지만 기억나는 것처럼요. 기억을 들춰 보니 이 세 가지 느림은 모두 다른 것이었네요. 대략 ‘아주 느리고 폭넓게(라르고)’, ‘아주 느리고 무겁게(렌토)’, ‘아주 느리고 침착하게(아다지오)’랍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일본 여행은 배낭을 메고 걷다가 은하수 아래 침낭을 깔고 잤던 ‘렌토’적 여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술이 더 맛났나 봅니다. 


새해는 어떤 속도로 살아가게 될까요? 원치는 않았지만 종종 ‘프레스토(매우 빠르게)’로 살았던 지난해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도 평생 한 가지 속도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여행만큼은 일상과는 다른 속도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조금 느린 것이 좋겠지만, 빨라야 할 이유가 있을 땐 그래야죠. 약속한 빠르기를 지키면 가장 아름다운 연주를 듣게 되는 것처럼, 여행에도 최적의 속도가 있을 겁니다. 


호주 멜버른을 다녀온 강화송 기자는 12사도상 인근에서 숙박을 했다는군요. 버스로 스쳐갔던 저의 옛 여행과는 달랐습니다. 트래비스트 차승준씨는 펑후에서 마라톤을 하고 왔습니다. 두 발로 길을 감으며 달리는 기분이 끝내주었겠죠. 그런가 하면 손고은 기자는 당일치기 여행으로 방콕을 다녀왔습니다. 때론 하루를 2박 3일처럼, 그런 여행도 있는 것이죠. 


새해 첫 <트래비>는 특별히 달라지지 않았지만, 해를 넘는 사이 ‘5기 트래비스트’가 출범했고, 트래비아카데미 여행작가 전문가 과정 5기도 1, 2월 두 달 동안 진행됩니다. 홍콩에 다녀온 크리에이터들의 영상은 속속 SNS에 업로딩 중입니다. 같은 여행이었어도 어떤 이는 아주 느리고 폭넓은(라르고) 음악을, 다른 이는 빠르고 활기찬(비바체) 음악을 배경으로 선택했네요. 저는, 두어 달쯤 ‘렌토’로 살아 보겠습니다. 한국에서 렌토를 파는 이자카야를 발견한 기념으로요. 여러분은 어떤 속도를 결정하셨나요?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끔 스침을 기대하겠습니다. 


<트래비> 팀장 천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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