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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정원에서 만나, 허브빌리지

  • Editor. 차민경
  • 입력 2019.03.04 11: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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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오솔길을 걷는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허브향이 함빡
지중해의 오솔길을 걷는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허브향이 함빡

찬 공기 서늘하던 어느 늦겨울의 저녁, 우리는 비밀의 정원에 숨어들었다. 
물 머금은 초록 잎사귀 사이로 보이던 것은 다정한 너, 그리고 봄.

 

●당신에게 선물할, 봄


봄 소식이 하염없이 늦어지는 것 같아 서운했다. 차창 밖으로 건조한 겨울의 색이 부서지듯 지나갔고, 임진강 위로 겨울 철새가 하늘을 배회했다. 겨울의 연천은 스산했다. 위도로 따지면 북한의 개성보다 북쪽, 아마도 봄은 아주 느지막이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허브온실의 푸른 기운이 쏟아져 내리는 파머스테이블. 늦은 겨울의 추위는 이곳에 닿지 않는다
허브온실의 푸른 기운이 쏟아져 내리는 파머스테이블. 늦은 겨울의 추위는 이곳에 닿지 않는다

겨울 허브빌리지에서 우리의 할 일은 봄의 열쇠를 찾아내는 것. 이곳에 숨어 있다는 계절의 정령을 만나는 것이었다. 허브빌리지는 임진강 상류, 고즈넉한 시골마을의 언덕배기에 자리한 정원이다. 축구장 8배 크기, 넓은 대지에 온갖 종류의 꽃과 허브가 피었다 진다. 라벤더 축제, 백합 축제, 안젤로니아 축제가 봄부터 가을까지, 계절을 물들인다. 서울에서 겨우 한시간 반, 꽃 같은 세계를 만나기 위해 기꺼이 달려올 만하다. 

한적한 허브빌리지는 고요한 풍경을 내어준다
한적한 허브빌리지는 고요한 풍경을 내어준다

그래도 겨울은 조금 다를지 모른다. 초록은 연약하니까. 허브빌리지의 중심을 이루는 무지개가든으로 나섰다. 지난 가을 내내 언덕 위로 연보라빛 먹먹하게 피워 냈을 안젤로니아가 색을 감춘 지 오래, 마른 덤불이 되어 동산을 이뤘다. 가늘고 여린 가지 끝, 작은 방울들은 꽃의 흔적이다. 바람이 불면 활짝 핀 꽃이 흔들리는 것 같다. 그럴 리 없겠지만. 


하지만 이 계절을 무사히 보내고 나면 무지개가든 가득 라벤더가 피어날 것이다. 열을 이룬 라벤더 정원을 아주 천천히 거닐어야지. 포근한 향기가 우리 사이를 맴돌 수 있도록. 그리고 진한 보라색 물감을 톡톡 찍은 수채화를 그려 당신에게 선물해야지. 


고요한 임진강은 허브빌리지 안쪽으로 흘러왔다. 거북을 닮은 소원석에 기대거나, 천사가 노래하고 있는 사랑의 연못에서도, 작은 산책로를 따라가서 만난 화이트가든에서도 임진강의 물결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갈대숲 사이 올망졸망 모인 토끼석도, 휘휘 돌아가는 철제 바람개비마저도 생동하는 것인지 모른다.


●이곳에 초록의 정령이


유리창을 건너 내려온 햇살은 은은한 귤색. 또로롱 떨어지는 분수의 물소리는 맑은 바다색. 봄의 열쇠는 허브온실에 숨겨져 있었다. 어깨 위 겨울 공기를 툭툭 털어 내자 청명하고 훈훈한 기운이 목덜미로 스며들었다. 작은 새의 지저귐이 요정의 노래처럼, 코끝에는 방금 기지개를 편 듯 생기로운 허브 향기가. 우리는 이곳에서 겨울을 잊기로 했다. 

하귤이 탐스럽다. 허브온실에는 계절이 없건만 선선한 초여름의 시간에 놓여 있는 것만 같다
하귤이 탐스럽다. 허브온실에는 계절이 없건만 선선한 초여름의 시간에 놓여 있는 것만 같다

누군가 공들여 가꾸어 놓은 것이 분명했다. 온실 가득 온갖 채도로 빛나는 초록, 사랑을 주지 않는다면 이런 빛을 낼 수 없을 것이다. 빠른 걸음으로 한 바퀴 빙 둘러 5분도 걸리지 않을 크기인데 눈이 닿는 곳마다 자꾸만 발걸음이 멈췄다. 무리를 이룬 허브 관목들은 사분사분한 향으로 말을 걸어 와 허리를 숙이게 했고 300년이 됐다는 올리브 나무는 도도한 자태에 발끝을 들게 했다. 늦겨울 기대하지 않았던 연분홍 꽃을 마주했을 땐 그저 웃을 수밖에. 지중해의 어느 길 위에 있는 것처럼 느긋하게 게으름을 피웠다. 


지중해 허브, 미용향료 허브, 허브차 등 작은 단위로 8개 정원이, 총 100여 가지 허브와 20여 가지의 난대 수목이 이곳 온실에서 자란다. 잘 알지 못해도 상관없다. 다만 우리는 환상적인 공간에 있었고, 조용히 발걸음을 맞추며 모든 것이 충만한 기쁨을 느꼈을 뿐. 그것으로 충분하다. 


동그란 중앙 분수는 두어 계단을 내려간다. 겨우 무릎 높이 차이인데 온실의 깊숙한 은신처에 닿은 것마냥 비밀스럽다. 소중한 사람에게만 알려 주고 싶은 공간이다. 이곳에서라면, 부끄러워 숨겨 두었던 말을 당신에게 할 수 있을지 몰라.

 

●허브빌리지 펜션
오래 쉬어 가도 좋을


노곤하게 저무는 햇살이 방 안 가득 쏟아졌다. 펜션이라 부르지만 실내는 호텔을 닮았고, 실외는 리조트를 닮았다. 반들반들하게 다듬은 나무천장과 벽돌벽 한 쪽, 객실 안에 들어서자 공간이 사람을 품는다. 편안하게 들르는 별장이 있었다면 이 공간을 닮았을 것이다. 

복층 허브빌리지 펜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소담한 침실이 하나 더 있다 3
복층 허브빌리지 펜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소담한 침실이 하나 더 있다 

허브빌리지 펜션은 단층, 복층, 가족룸 등 여러 타입의 객실이 운영된다. 연인에게도, 가족에게도 맞춤하다. 제일 작은 객실이 43m2(13평), 가장 큰 가족룸이 105m2(32평)다. 간단한 조리기구와 냉장고를 갖춘 부엌도 딸려  있다. 객실에 들어서면 여러 번 살펴야 공간을 익힐 수 있다. 그만큼 넓다.

테라스를 향해 난 통창으로 조용한 전원 풍경이 펼쳐진다
테라스를 향해 난 통창으로 조용한 전원 풍경이 펼쳐진다

모든 객실에는 통창을 내어 널찍한 테라스를 더했다.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 그리고 허브빌리지가 내려다보인다. 테라스로 나서면 고요함을 경험하게 된다. 풀소리, 새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완전한 고요. 한밤이 되면 불빛조차 없는 적막을 만나게 된다. 


야외 바비큐를 즐길 수도 있다. 미리 예약을 해두면 예정된 시간에 딱 맞춰 숯불이 이글댄다. 추운 계절에는 바비큐장을 투명한 천막으로 감싸 추위를 덜 수 있게 해뒀다. 섬세하다. 어느 계절에나 바비큐의 낭만은 지켜져야 하니까. 

가격: 단층(13평, 2명 기준) | 일~목요일 12만~14만원, 금~일요일 14만~16만원, 복층(23평, 4명 기준) | 일~목요일 18만~20만원, 금~일요일 20만~24만원  *객실 예약시 허브빌리지 입장권 및 조식 제공 


연천 허브빌리지
주소: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북삼로 20번길 55(북삼리 222)
전화: 031 833 5100
오픈: 동절기(11월1일~4월19일) 09:00~18:00, 하절기(4월20일~10월31일) 09:00~20:00
입장료: 대인(중학생 이상) | 동절기 4,000원, 하절기 7,000원, 소인 | 동절기 3,000원, 하절기 4,000원, 36개월 미만 유아 무료
홈페이지: www.herbvillage.co.kr

 

글 차민경 기자  사진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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