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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발견되지 않은 땅 Northern Bali

  • Editor. 박준
  • 입력 2019.06.0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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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북서쪽, 뿌므뜨란을 떠나 웨스트발리 내셔널 파크 가는 길에서 만난 뿌라 빠브안(Pura Pabean) 사원 앞 바닷가 풍경
발리 북서쪽, 뿌므뜨란을 떠나 웨스트발리 내셔널 파크 가는 길에서 만난 뿌라 빠브안(Pura Pabean) 사원 앞 바닷가 풍경

발리를 찾는 관광객은 대개 쿠타나 우붓, 기껏해야 킨타마니산에만 머물다 간다. 
북부 발리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발견되지 않았거나 드러나지 않은 낙원 같은 숙소들, 
그리고 경외의 대상인 활화산, 아궁을 찾아 북부 발리로 간다.


●나는 아궁만 쳐다보았다 

늘 꿈꾼다. 작은 배낭 하나 들고 세상을 거닐기를. 편도 티켓만 들고 나선 이번 여정에 짐은 달랑 7kg짜리 배낭뿐이다. 공항에서 무게를 재니 9kg. 반팔티셔츠를 빼고, 카메라 충전기를 빼고, 면도기를 빼고, 손톱깎이를 뺐더니 2kg이 줄었다. Dslr 카메라는 진작 포기했다. 이렇게 발리로 도착해 스쿠터를 빌려 타고 쿠타를 떠난 지 8시간 만에 발리의 북동부 아메드(Amed)에 도착함으로써 지난 반년간 간직해 온 소원 한 가지를 이뤘다. 내 눈으로 ‘아궁’을 보기. 지난 수년간 화산 폭발로 악명 높아진 그 아궁산(Gunung Agung) 말이다. 

이른 아침, 아메드 인근에서 바라본 아궁산
이른 아침, 아메드 인근에서 바라본 아궁산

지난 해 7월, 발리에 도착했을 때 일이다. 5일째 아궁산이 분화했고, 덴파사르 공항이 폐쇄됐다.?며칠 후 아궁산에서 다시 분화가 있었고, 그 며칠 후에는 발리 남쪽 110km 지점에서 진도 5의 지진이 있었다. 정작 발리 사람들은 태연했다. 이들에게 화산 분화는 신의 뜻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어차피 피할 수도 없으니까.

아메드에 도착한 후 하늘이 어스름해지고 나서 처음으로 아궁과 마주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저 산이 아궁이라고?’, ‘드디어 만났구나!’ 하는 감격과 탄식이 교차했다. 수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 갔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내게 아궁은 살아있는 지구와 동일시되는 그 무엇이자, 숭배라도 해야 할 듯한 경외의 대상이다. 막상 마주하니 불경하게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욕망이 치밀었다. 이내 파국에 다다를지도 모를 매혹이다. 쓰나미가 무섭지만 아궁산을 봤다고 바로 아메드를 떠날 수 없었던 이유다. 아메드에 머무는 동안 나는 매일 아궁을 바라보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아궁만 쳐다보았다. 한번은 새벽 6시에 좀 더 가까이서 아궁을 보겠다며 스쿠터를 타고 아궁을 향해 달렸다. 산정에선 희미하지만 허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이다. 무섭고 신비로웠다. 비포장도로가 나오고 나서야 스쿠터를 멈췄다. 가장 가까이에서 아궁을 마주한 순간이다.

발리 북부의 테라스 논이 우붓과 다른 점은 외국인 관광객이 없다는 것
발리 북부의 테라스 논이 우붓과 다른 점은 외국인 관광객이 없다는 것

“산에 올라가면 안 돼요.” 어디선가 나타난 남자가 손짓으로 말한다. 커다란 잭푸르트(Jackfruit)가 남자의 발밑에 놓여 있다. 남자가 느닷없이 묻는다. “이거 먹을래요?” 그는 잭푸르트를 반으로 쪼개고, 속을 끄집어내고, 껍질을 깨끗이 걷어 낸 후 내민다. 염치없이,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를 연거푸 받아먹었다. 이제까지 먹어 본 잭푸르트 중 가장 달다. 


“우리 집에 갈래요?” 바로 아래가 남자 집이다. 그러니까 아궁산 자락의 집이다. 그렇구나! 뉴스에 나오는 아궁산은 공포스럽지만 여기서도 사람들은 살아가는구나! 남자의 이름은 이 끄뜻. ‘끄뜻’은 넷째 아들이란 의미다. 발리에서 넷째 아들 이름이 전부 끄뜻이란 걸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다. 서른아홉의 그는 아내와 딸, 두 아들과 산다. 딸 이름은 니 뿌뜨 니파셉띠마니, 열일곱 살 여고생이다. ‘뿌뜨’는 역시 첫째 딸이란 의미다. 발리에서 첫째 딸 이름은 전부 뿌뜨다. 잠시 후 남자는 나를 내버려둔 채 일을 하러 가 버리고 나는 딸 니파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아궁산 화산 분화로 수많은 이가 희생됐어도 이들은 아궁과 함께 살아간다. 아궁에 기도하고 꽃과 과자를 올리며. 

아메드 인근의 작은 학교. 이방인을 구경하러 모여든 아이들이다
아메드 인근의 작은 학교. 이방인을 구경하러 모여든 아이들이다

아메드에 머무는 동안 한 번은 아침 골목길에서 어린 아이들을 만났다. 나를 발견한 아이들이 일제히 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빠~기(Pagi), 빠~기, 빠~기” 목소리를 맞추어 노래를 부르듯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지만 문 밖으로 나오진 못한다. 이내 다른 아이들이 끼어들면서 나를 구경하겠다고 서로 밀치며 자리싸움이 났지만 “빠~기”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나도 “빠~기, 빠~기, 빠~기”, 인사를 한다. 아이들을 오후에 만났다면 그때는 빠~기(Pagi)가 아닌 “씨아앙(Siang), 씨아앙, 씨아앙”을 합창했을 것이다.

발리 북부에서 만난 송아지는 맑은 눈, 곱고 아름다운 몸을 가진 순정의 존재였다
발리 북부에서 만난 송아지는 맑은 눈, 곱고 아름다운 몸을 가진 순정의 존재였다

깊은 산 속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그때 나는 스쿠터를 타고 인적이 뜸해졌지만 길이 끊길 때까지 산 속을 무턱대고 달렸다. 오토바이 두 대가 간신히 오갈 수 있는 길이다. 흙길 한편에서 아이들과 덩치 큰 남자가 축구를 하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아이들은 다짜고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 보면 북부 발리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는 이들은 모두 웃는다. 나를 보면 모두 웃어 주자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빙그레 웃는다. 처음에는 가벼운 놀라움, 그 다음은 호기심 또는 의아함, 그 다음은 반가움을 담은 우아한 인사다. 이들이 꽃처럼 웃을 때마다 나도 이들을 따라 웃는다.


●북서부 발리의 글램핑
멘장안 다이너스티 리조트
Menjangan Dynasty Resort 

금방이라도 살을 태워 버릴 기세로 태양이 작열한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른다. 따가운 땡볕을 맞으며 발리 북동부 끝 아메드에서 발리 북서부 끝 그록각(Gerokgak)의 쁘자라칸(Pejarakan)까지 150km를 달려왔다. 쁘자라칸 너머는 자바섬, 하지만 목적지는 자바섬 아닌 쁘자라칸의 한 숙소다. 단지 하룻밤을 묵기 위해 발리 북서부까지 왔다. 롬복에서 멀어졌으니 쓰나미에 대한 근심도 사라졌다. 쓰나미를 의식하며 여행을 이어 가긴 처음이다. 

멘장안 다이너스티의 객실은 열대 우림 속에 자리한 빌라 같은 텐트다
멘장안 다이너스티의 객실은 열대 우림 속에 자리한 빌라 같은 텐트다

멘장안 다이너스티(Menjangan Dynasty Resort, Beach Glamping & Dive Centre). 이곳은 글램핑(Glamping), 말 그대로 ‘글래머러스(glamorous)’하고 럭셔리한 캠핑 스타일의 리조트다. 내 방은 407호 비치 텐트, 말 그대로 ‘텐트’다. 그런데 막상 텐트 안으로 들어가면 ‘텐트’라는 게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텐트가 아닌 ‘럭셔리 텐트 리조트’이기 때문이다. 리조트의 객실이지만 콘크리트 아닌 텐트로 지었기에 사방을 다 개방할 수 있다. 텐트 외부를 걷어 올리고 나서야 변기도, 샤워도, 책상도 열대 우림에 둘러싸여 있다는 걸 새삼 알아챘다. 처음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샤워 부스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샤워 부스가 욕실 아닌 침대 바로 옆에 있다. 텐트 꼭대기에선 커다란 팬이 돌아간다. 침대에 기대면 숲 너머 바다가 보인다. 열대 우림 속 빌라 같은 텐트다. 나는 한눈에 멘장안 다이너스티에 반했다.

언제 다시 저곳에 돌아가 숲 너머 바다를 바라보며 저 팬의 바람을 맞게 될까
언제 다시 저곳에 돌아가 숲 너머 바다를 바라보며 저 팬의 바람을 맞게 될까
침대 바로 옆에 서서 샤워를 하긴 처음이다. 샤워 커튼을 돌려 치지 않아도 물이 그다지 튀지 않아 신기했다
침대 바로 옆에 서서 샤워를 하긴 처음이다. 샤워 커튼을 돌려 치지 않아도 물이 그다지 튀지 않아 신기했다

‘럭셔리 리조트’라지만 럭셔리하게 보이려고 애쓰지도 않고, 럭셔리하다고 으스대지도 않는다. 일상과는 전혀 다른 특별한 하룻밤을 보내고 싶게 만드는 화려하고 매혹적인 럭셔리다. 유치하게도 이런 감상에 빠져들었다. 여기는 고요한 천국 같구나. 멘장안 다이너스티는 천혜의 자연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텐트 밖으로 나오면 테라스가 있고, 그 옆에는 큰 나무가 있다. 호텔방을 나설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 든다. 고요하다. 어디선가 새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흐릿하다. 고요가 소음을 압도한다. 늦은 밤 텐트 밖 테라스에 앉아 밤하늘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초승달과 별이 빛난다. 완전한 평화다. 

멘장안 다이너스티 선착장에서 책을 읽는 투숙객. 누구나 꿈꾸는 인생 노년의 모습이다
멘장안 다이너스티 선착장에서 책을 읽는 투숙객. 누구나 꿈꾸는 인생 노년의 모습이다

Menjangan Dynasty Resort 
홈페이지: mdr.pphotels.com 
왓쓰리워즈: /// 글꼴.대문.근원


●하늘에 떠 있는 수영장
문둑 모딩 플랜테이션 네이처 리조트
Munduk Moding Plantation Nature Resort & Spa  

깊은 산 속에 자리 잡은 문둑 모딩 플랜테이션 리조트에 가는 날, 하필 비가 내렸다. 어쩌다 보니 해발 1,000m의 산을 스쿠터 타고 오르게 됐다. 산 위로 좀 올라왔다고 공기가 선선하다. 처음에는 시원하다고 좋아했는데 오르면 오를수록 공기가 점점 차가워진다. 이러다간 오늘밤에는 에어컨 아닌 히터를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 발리에서 “춥다”는 말을 하게 될 줄이야….

 

문둑 모딩 플랜테이션 수영장에 서면 누구나 영화 속 주인공이 된다
문둑 모딩 플랜테이션 수영장에 서면 누구나 영화 속 주인공이 된다

깊은 산 속에 자리한 문둑 모딩 플랜테이션 네이처 리조트는(Munduk Moding Plantation Nature Resort & Spa)에는 아홉 동의 빌라와 세 개의 스위트룸이 전부다. 자연히 투숙객도 단출하다. 레스토랑에서 밥을 한 끼 먹고 애프터눈 티를 마시며 주변을 살폈더니 누가 누군지 금방 낯이 익다. 여기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간 머문다는 젊은 독일 커플이 인상적이다. 리조트에 머물면서 투숙객을 한 사람 한 사람 다 알아보긴 처음이다. 

문둑 모딩 플랜테이션 객실. 침대 맞은편에는 거의 전면에 가까운 통창이 놓여 있다
문둑 모딩 플랜테이션 객실. 침대 맞은편에는 거의 전면에 가까운 통창이 놓여 있다

‘가든 스위트’ 1호실인 내 방은,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와 수풀에 둘러싸여 있었다. 생명력이 넘치기 때문일까. 방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앉아 있으면 파릇파릇한 기운이 싱싱한 정도가 아니라 힘 있고 세차게 느껴졌다. 하늘만 시린 게 아니었다. 푸르른 녹음도 시렸다. 찬란하게 빛나는 녹음이었다. 문둑의 산책로만 잠시 걸어도 북부 발리의 산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된다. 
저녁 시간에는 세 가지 발리 댄스 공연이 있다. 두 가지는 베하리한(Beharihan)이라 불리는 ‘엔터테인먼트 댄스’, 다른 한 가지는 와리(Wali)라 불리는 ‘신성한 댄스’다. 인근 마을의 어린 아이들이 리조트에서 진행하는 전통 발리 댄스 교육을 받고 선보이는 공연이다. 


문둑에서 가장 근사한 건 인피니티 풀이다. 사실 인피니티 풀 사진 때문에 나도 문둑을 알게 되었고, 문둑에 오게 됐다. 처음 사진을 보았을 때 수영장은 허공에 뻗어 있는 듯 보였고 저편은 낭떠러지라도 되는 듯 아슬아슬했다. 수영장 저편에 낭떠러지 아닌 자쿠지가 있다는 건 여기 와서 알았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도 레스토랑에 앉아 수영장을 바라보면 여전히 꿈을 꾸는 것 같다. 수영장은 하늘에, 선 베드는 물 위에, 수영장의 몽환적 기운은 여전하다. 


레스토랑 2층 창가에 앉아 수영장 너머 하늘과 바다를 바라본다. 해가 지자 하늘은 어두워지면서 더 파래졌다. 뒤에 숨은 태양이 구름 가장자리로 선명한 윤곽을 그려 낸다. 엉뚱하게도 마그리트 그림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문둑의 레스토랑 이름은 밈피(Mimpi)다. 발리어로 ‘꿈’이란 뜻이다. 한국에 돌아온 후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 내 머릿속은 종종 문둑에서 본 하얀 구름, 파란 풀, 새하얀 파라솔을 떠올린다. 

Munduk Moding Plantation Nature Resort & Spa  
홈페이지: www.mundukmodingplantation.com 
왓쓰리워즈: /// 알림.대폭.통하는


●발리에 집을 지으면 다마이처럼
더 다마이 The Damai 

문둑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지만 다마이(The Damai)는 더 어려웠다. 오는 길이 어려웠다고 하자 리셉션의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 머물다 떠나는 건 더 어려울 걸요.” 
그녀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다마이는 찾기도, 떠나기도 어려웠다. 내게 다마이는 북부 발리에서 가장 기억할 게 많은 숙소다. 가장 먼저 수풀이 둘러싼 야외 샤워와 욕조가 생각난다. 잘 정돈된 정글 속 욕조에 몸을 담그면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더 다마이를 다른 럭셔리 숙소들과 차별화시키는 한 가지는 객실 곳곳에 놓인 앤티크 소품들이다
더 다마이를 다른 럭셔리 숙소들과 차별화시키는 한 가지는 객실 곳곳에 놓인 앤티크 소품들이다

이렇게 근사한 것들 말고도 내게는 다마이로 돌아가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다마이에서 나는 아팠다. 믿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큰맘 먹고 비싼 리조트에 왔는데 리조트를 즐기기는커녕 침대에서 끙끙 앓았다. 그랬던 리조트에 다시 가고 싶은 이유는 그 시간을 돌이켜 보고 싶기 때문이다. 몸이 아팠기에 직원들의 세심한 배려를 경험했고, 그들과 가까워졌다. 나와 마주치는 모든 이들이 “미스터 준, 몸은 좀 어떤가요?” 하고 물었다. 직원들은 나를 투숙객 아닌 자기 집을 찾은 손님처럼 대했다. ‘럭셔리 리조트’ 다마이보다 여기서 만난 직원들이 더 기억나는 이유다. 다마이의 직원 대부분은 인근 마을에 살면서 다마이가 처음 문을 열었을 무렵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일한다. 이들에게 다마이는 일터이자 오랜 시간을 함께한, 자신과 떼놓을 수 없는 어떤 터전인지도 모르겠다.

나무들이 수영장 수면에 선선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무들이 수영장 수면에 선선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다마이에는 아담한 빌라도 있고, 개인 풀을 가진 제법 으리으리한 빌라도 있지만 오직 열다섯 채뿐이다. 직원은 다마이를 ‘심플 럭셔리’ 리조트라 소개했는데 가만 보니 전혀 심플하지 않다. 차라리 ‘럭셔리 뮤지엄’ 리조트라는 말이 더 맞겠다. 다마이를 빛나게 하는 한 가지는 다양한 종류의 가면, 불상, 신상들 같은 온갖 수집품이다. 무엇 하나 허투루 갖다 놓은 게 없다. 식견과 애정을 갖고 하나하나 정성스레 수집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돈 받고 손님을 받는 리조트에서 온갖 수집품 때문인지 희한하게도 왠지 영적인 기운에 빠져든다.

다마이 스파 욕조의 선연한 컬러는 잊을 수 없다
다마이 스파 욕조의 선연한 컬러는 잊을 수 없다

스파 앞의 널찍한 공터에서 나무로 지은 스파 건물을 바라보면 스파마저 신성하게 보인다. 스파가 아니라 마을의 샤먼이 사는 사당 같다. 스파 건물은 기둥만 있고 벽이 없다. 벽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하얀 천을 드리웠다. 바람이 불 때마다 천은 자연히 흔들린다. 내내 바람을 맞으며 또, 스파를 받으니 허공을 떠다니는 것 같다. 다마이는 ‘평화로운’이란 뜻이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서 다마이란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이 스파 같다.


처음 내가 묵을 빌라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여기는 호텔이나 리조트가 아니라 집 같구나. 내가 틀린 게 아니었다. 직원 얘기를 듣고 보니 다마이는 원래 집이었다. “북부 발리의 산중턱에 집을 짓고 살면 좋겠구나.” 1990년대 초반 다마이 인근 마을을 지나던 네덜란드 사업가는 이런 꿈을 꾸었고, 그의 꿈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다마이는 이렇게 시작됐고 그 후 20년이 흘렀다. 다마이에서 가까운 도시인 로비나(Lovina)에선 이곳으로 이주했다는 나이 든 외국인을 종종 보았다. 식당에서 미국 남자도 보았고, 슈퍼마켓에서 호주 남자, 호주 여자도 보았다. 나도 잠시 여기에 집을 짓고 살면 어떨까 하는 공상에 빠져 본다. 집을 어떻게 지을까 궁리하다 보니 결국 다마이 빌라 같은 집이 떠올랐다. 

웨스턴 스타일 조식 외에도 일본 스타일 조식을 선택할 수 있다
웨스턴 스타일 조식 외에도 일본 스타일 조식을 선택할 수 있다

다마이에 머문 3일 동안 아침마다 붉은 드래곤 푸르트를 먹었다. 직원이 레스토랑 테이블 옆에서 바로 깎아서 잘라 온다. 과장된 컬러만큼이나 과육이 넘쳐났다. 동남아를 처음 여행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선연한 붉은색을 가진 드래곤 푸르트는 처음 본다. 내게는 다마이의 색으로 기억되는 붉은색이다. 


작년에 발리에 갔을 때 네덜란드에서 온 피터를 만났다. 일흔이 넘은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데, 수십년간 발리에 50번쯤 왔다고 했다. 그는 북부 발리와 롬복을 가보라고 권했지만 그 후 두 달도 안 돼 롬복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비현실적인 뉴스였다. 그런데 발리에서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들은 지 6개월도 안 돼 나는 발리로 돌아갔다. 바다를 보고, 아궁산을 보고, 북부 발리의 이곳저곳을 오르내리며 한 달간의 시간을 보냈다. 북부 발리에서 묵었던 숙소들은 저마다 이곳 아닌 다른 곳에선 경험할 수 없는 추억을 선사했다. 숙소가 아무리 좋다 해도 ‘낙원’을 운운했던 건 북부 발리의 풍요로운 자연 때문이다. 나는 금년에도 한 달 정도 발리 북부에 머물 예정이다. 

The Damai  
홈페이지: www.thedamai.com
왓쓰리워즈: /// 필기한.인쇄한.잔잔한


글·사진 박준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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