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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도의 운수 좋은 날

  • Editor. 천소현 기자
  • 입력 2019.07.01 11:40
  • 수정 2019.08.05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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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도 곳곳에 연리지가 자라고 있다. 사람을 닮았다
달리도 곳곳에 연리지가 자라고 있다. 사람을 닮았다

교통편도 없었고, 식수도, 먹을 것도 넉넉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짜잔! 누군가 나타나 차를 태워 주고 물을 주고, 먹을 것을 나눠 주었다. 
운수 대통할 기운이 넘친다는 달리도니까! 

 

●아흔아홉배미논 위에서

다시 목포. 이 항구를 떠나는 일에 자꾸 익숙해진다. 곧 유달산 정상이 보이고, 그 아래 지붕이 예쁜 마을을 지나면 큰 배가 두 척이나 있어서 아주 부자로 느껴지는 목포해양대학교를 지나, 곧 목포대교가 하늘을 가르게 될 거라는 예측이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그다음이 문제다. 섬인지 육지인지 구분이 모호하게 이어지는 섬들의 징검다리. 몇 번을 들어도 아직 어느 섬이 어느 섬인지, 어리둥절하고 있으니 벌써 하선이다. 불과 20분 만에 도착한 섬은 목포에서 5.6km 떨어진 달리도다. 

청보리밭 너머 바다로 쉴 새 없이 여객선이 통과한다. 목포항으로 진입하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청보리밭 너머 바다로 쉴 새 없이 여객선이 통과한다. 목포항으로 진입하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섬에 가면 본의 아니게 히치하이커가 된다. 분명 걸어가겠다! 큰소리를 쳤지만, 막상 도착하면 눈이 어느새 선한 인상의 주민분을 물색 중이다. 문제는 별로 실패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노부부는 마침 근처에 갈 일이 있다며 캠핑장까지 태워 주시는 것은 물론 식수가 부족하지 않겠냐며, 집에 들러 생수 몇 통까지 가져다주셨다. 물이 넉넉해지니 마음이 한결 풍요로워졌다. 


아흔아홉배미논이라고 불리는 계단식 논의 한 자락을 베어 조성한 캠핑장은 아직도 공사 중이었다. 사이트를 다져 나무 데크를 설치하는 일까지는 마무리했지만 개수대와 화장실은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알음알음 소문이 나서 주말에는 심심찮게 캠퍼들이 찾아온다고. 바다와 가장 가까운 데크에 자리를 잡자, 앞바다의 해상 양식장과 목포항을 관문으로 오가는 모든 여객선들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바다가 가까웠다. 달리도는 목포항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섬이다. 목포항을 출발한 대부분의 여객선이 달리도의 북쪽 혹은 남쪽의 좋은 수로를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배는 흑산도행 쾌속선이고, 다음 배는 우이도로 가는 배야. 아 저건 제주도에 가는 배네! 텐트 안에 앉아서 여객선 맞추기를 하자니 지루할 틈이 없다. 

넉넉하게 맞아 주는 달리도 표지석
넉넉하게 맞아 주는 달리도 표지석

일주 트레킹을 예정하고 있었다. 둘레 길이가 12km인 작은 섬이니까. 마을은 1구(38가구), 2구(46가구)로, 2개뿐이고 100여 명이 산다. 하지만 막상 누울 자리를 마련하니 마냥 게을러졌다. 저녁은 쇠고기에 공부가주를 한잔 곁들이며 지나가 버렸고, 오전 시간은 솔솔 부는 바람에 책장을 넘기며 커피를 음미하느라 흘러가 버렸다. 그렇게 일주 트레킹 계획이 희미해지나 했을 때, 그분이 오셨다! 달리도 주민이자, 달리도 지킴이자, 달리도 해설사인 김대욱씨였다. 그는 어떻게 자신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고 여기에 왔냐고 물었지만, 그야 그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고, 결국은 포착된 셈이다. 

흐릿해진 반공구호가 마을의 역사를 말해 준다
흐릿해진 반공구호가 마을의 역사를 말해 준다
지난봄에 TV에 출연해서 유명해진 훈남이
지난봄에 TV에 출연해서 유명해진 훈남이

“내가 한자 해석을 좀 하는데, 지도를 가만 보니, 달리도 이름이 너무 좋은 거예요. 달자가 ‘통달할 달’, ‘출세한 달’이거든요. 여기 오면 반드시 뭐가 잘 풀릴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달리도 사랑은, 아내와 함께 틈틈이 작업했다는 달리도 가꾸기로 이어졌다. 캠핑장으로 넘어오는 도로변에 굴껍질로 수놓은 대형 글자들도 그의 정크아트 작품이었다. 섬 구석구석을 살피며 관광자원을 발굴하다 보니 그가 찾아낸 팽나무 연리목만 해도 여럿이다. 아직은 여행자들이 찾아와도 마땅한 식당 하나, 숙소 하나 없으니 실망하고 돌아가는 것이 안타까워 무료 가이드를 자청하고 있다고. 달리도 관광안내판에 새겨진 그의 이름과 연락처를 미처 보지 못했는데, 다행히 그와 연결이 되었으니, 이 섬의 기운대로 뭔가 술술 잘 풀리긴 하는 모양이다. 

알면 알수록 볼거리가 더 많아지는 달리도
알면 알수록 볼거리가 더 많아지는 달리도

●걸어가자, 달리도

반달 모양이기도 한 달리도는 고운 섬이었다. 무화과 농장 너머로 청보리가 익어 가고, 그 아래로 염전이 펼쳐진 조각보 같은 풍경이었다. 동쪽의 저지대는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이고, 서쪽에는 해발 139.6m의 사재산과 해발 139.5m의 금성산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너머에 캠핑장이 있으니 굳이 전망대에 오르지 않아도 일몰이 멋졌다. 마을 주민들도 잘 모른다는 연리목들과 힐링숲길이라 이름 붙인 산책로, 한반도 지도 모양의 도로 등은 해설사 없이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볼거리들이었다. 서쪽의 몽돌해수욕장과 남쪽의 간이해수욕장은 경치 좋은 해안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달리도에는 1구와 2구, 2개의 마을이 있다
달리도에는 1구와 2구, 2개의 마을이 있다

“아직은 여행자들이 많이 오면 안 됩니다. 물 한잔 얻어 마실 곳이 없으니까요. 6월에 슬로시티 승인이 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 아니라 차분하게 쉬어 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아흔아홉배미논의 한 자락을 베어 만든 캠핑장은 아직 미완성이다
아흔아홉배미논의 한 자락을 베어 만든 캠핑장은 아직 미완성이다

지난 4월에 국제슬로시티연맹의 평가단이 달리도와 외달도, 목포 옛거리를 다녀갔다. 현장실사 결과는 6월에 열리는 국제슬로시티 총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니, 이 글이 나올 때쯤엔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이다. 이미 해양수산부의 국책사업인 ‘어촌뉴딜 300’ 사업지로 선정되어 휴식형 해상 정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수립되어 있다. 인공 시설을 최소화하고 섬의 느린 삶은 체험할 수 있는 휴양지로 만들고 싶다지만, 아마도 길이 닦이고, 관광안내소나 식당, 숙박 시설 등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느린 삶을 전해 주기 위해 달리도가 바빠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물 한잔 마실 곳이 없지만, 물 한 통을 거저 주시는 인심이 있으니 뭐가 걱정인가. 지금 달리도의 속도로만 걸어가면 좋겠다. 

딱따구리의 솜씨. 바람이 잘 통하는 호화주택을 지었다
딱따구리의 솜씨. 바람이 잘 통하는 호화주택을 지었다

▶달리도 찾아가기 
목포 여객선터미널에서 달리도-율도-외달도를 순회하는 여객선을 타면 된다. 오전 7시부터 하루 6회 운행한다. 시간마다 기항지가 조금씩 달라지므로 확인 후 매표할 것. 달리도까지는 20~30분 정도가 걸린다. 
 

신진해운  061 244 0522 
달리도지킴이(해설사) 김대욱  010 3335 5524

 

글 천소현 기자  사진 김민수(아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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