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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지지 않아, 남아프리카의 설렘 공화국

  • Editor. 정영은
  • 입력 2019.07.02 09:20
  • 수정 2019.11.06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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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봉 가는 길에 서 있는 외로운 등대는 빛이 났고, 크루거 국립공원 공항 활주로에는 멧돼지 품바가 마중을 나와 주었다. 테이블마운틴에 걸터앉아 바라보는 하늘에서는 오묘함이 묻어났다. 과다 설렘으로 한동안 모든 것에 무뎌지는 게 아닐까 슬쩍 걱정이 차올랐지만, 틀렸다. 첫사랑, 첫 키스, 첫 여행의 설렘은 결코 무뎌지지 않으니까. 

아프리카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소품
아프리카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소품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프리카 대륙 남부에 위치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대서양과 인도양에 둘러싸여 있으며, 우리나라의 다섯 배가 넘는 크기의 면적을 자랑한다. 인구의 80%가 흑인이며 그 외 백인, 컬러드(혼혈), 인도인 등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어우러져 ‘무지개의 나라’라고 불린다. 사파리 외에도 액티비티 레저와 문화적, 자연적으로 발생한 다양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줄루족 아이들의 순수한 미소
줄루족 아이들의 순수한 미소

●더반 Durban

맛깔스럽게 버무려지다


시작은 열정 충만한 줄루족(Zulu) 태생 가이드의 이야기였다. 천 개의 언덕(Valley of a Thousand Hills)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줄루족의 전통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이동하는 동안, 그는 쉬지 않고 더반에 대한 설명을 쏟아냈다.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영국과 계약을 맺었던 인도인은 결국 시민권을 받지 못했다거나 더반줄라이(Durbanjuly) 페스티벌은 경마축제지만 진짜 볼 거리는 참가자들의 돋보이는 패션이라는 등 뒤죽박죽 이야기에 집중력이 흐려질 때쯤 더반의 지나온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탄성을 자아내는 천 개의 언덕
탄성을 자아내는 천 개의 언덕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서 일어났던 제국주의 전쟁의 결과로 영국은 1835년 더반을 차지했고, 줄루족, 아프리카너들(네덜란드 이민자)과의 크고 작은 전쟁을 통해 더반에서의 입지를 온전히 굳혔다. 이후 1860년대에 사탕수수 사업의 확장을 위해 인도인들을 계약 노동자로 고용하면서 더반에는 줄루족, 인도인, 영국인들의 문화가 정착하게 됐다는 것이다. 

전통의상을 입고 여행객을 맞이하는 줄루족
전통의상을 입고 여행객을 맞이하는 줄루족

핍박받는 계층의 문화를 사라지기 쉬운 법이지만 더반에서 이 모든 문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남아 있는 이유는 다양성이 존중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양한 문화의 공존! 더반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입니다.” 그제야 두서없던 가이드의 말이 조금 이해되면서, 뜬금없이 어제 저녁 호텔에서 먹었던 커리 요리가 생각났다. 인도 커리보다 양념 맛은 강하면서 식감은 더 부드럽고, 모든 재료의 맛이 살아 있는, 독특한 향신료가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맛! 더반은 그런 도시다. 다양한 문화가 커리처럼 맛있게 버무려져 있는, 세상 맛깔스러운 도시다. 

노스비치에 흐르는 토요일의 여유
노스비치에 흐르는 토요일의 여유

날씨는 잠시 쉬어 가는 걸로


‘어느 시기에 와도 가장 따뜻한 곳’이라 자부하는 더반의 날씨는 무용지물이었다. 그 토요일엔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함께 약간의 추위가 도시에 내려앉았다. 매주 토요일 노스비치(North Beach)를 따라 파크런(Park Run) 이벤트가 열린다는 이야기에 숙소를 나섰다. 슬쩍 슬쩍 내리는 비와 함께 도착한 노스비치 해변은 날씨와 무관하게 활기가 넘쳤다. 열정이 가득한 서퍼는 인도양 파도와 한 몸이 되어 서핑을 즐겼고, 가랑비 따위는 살포시 무시하며 달리는 러너들이 지나갔다. 자전거 트랙에는 아이의 어설픈 페달 밟기에 까르르 웃는 가족들이 있었다. 구름을 품은 무심한 날씨가 사람들의 여유에 완패 당한 것이다. 어느 휴양지에서나 볼 수 있는 평안한 토요일 아침이 노스비치에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아이 하트 마켓의 인기 메뉴는 한국인이 만든 닭강정이라는 사실!
아이 하트 마켓의 인기 메뉴는 한국인이 만든 닭강정이라는 사실!
문화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는 아이 하트 마켓
문화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는 아이 하트 마켓

한바탕 해변 구경을 끝내고 아이 하트 마켓(I Heart Market)으로 향했다. 매달 첫 번째 토요일에 열리는 아이 하트 마켓은 인도의 한 입 주전부리 사모사(Samosa)부터, 어제 수확한 싱싱한 마카다미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통 음식인 수제 빌통(Biltong)까지. 더반의 매력인 문화의 다양성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플리마켓이다. 지갑을 열어야 하는 순간을 자주 마주 한다는 것이 이 플리마켓의 유일한 단점이랄까.

흐린 날씨에도 노스비치로 향하는 열정 가득 서퍼들
흐린 날씨에도 노스비치로 향하는 열정 가득 서퍼들
비눗방울 속 아이들 미소에 치안 걱정이 슬며시 사라진다
비눗방울 속 아이들 미소에 치안 걱정이 슬며시 사라진다

아기자기한 구경거리에 즐거움이 한껏 차올랐을 때 어디선가 비눗방울이 날아왔다. 시선이 멈춘 곳에는 커다란 비눗방울을 넘나들며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의 환한 미소에 마음 한편의 짐으로 여기까지 가져왔던 걱정 하나가 오버랩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간다고 하자 지인들이 치안에 대한 걱정을 쌓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내가 마주한 더반뿐 아니라 방문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도시와 거리는 어느 나라의 일상과도 다르지 않은 삶이 흐르고 있었다.

길거리의 카페에서는 브런치가 한창이고, 이 나라의 택시 아저씨도 말 걸기를 좋아했다. 줄루족 아이들은 여행객에게 순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물론, 고작 며칠 지나가는 여행객의 눈에는 골목길 뒤에 숨겨진 또 다른 모습들이 쉬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 걱정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글·사진 정영은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남아프리카공화국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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