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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똥을 찾습니다, 크루거 국립공원

Kruger National Park

  • Editor. 정영은
  • 입력 2019.07.01 09:32
  • 수정 2019.11.06 11: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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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리에서 유독 자주 보이는 임팔라
사파리에서 유독 자주 보이는 임팔라

길은 있지만,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 열대 초원 사바나에서 레인저(Ranger, 게임 드라이브를 진행하는 담당자) 레이나가 차를 세웠다. 순간 동물이 나타난 것인가 싶어 미어캣처럼 고개를 기웃거렸지만, 레이나가 가리킨 곳에는 코끼리 몸에서 방금 배출된 듯한 다섯 덩어리의 똥이 놓여 있었다. 한 마리의 동물이라도 더 찾아야 하는 시간에 갑자기 코끼리 똥이라니. 하지만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 동물들의 배설물과 발자국은 ‘나 찾아 봐라~’의 힌트가 된다는 것이다.

붉은 햇살을 머금은 바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가만히 정지해 있는 듯한 이곳에서, 방금 남긴 발자국과 배설물의 흔적은 그들의 이동 방향을 조금이라도 짐작하게 해 준다. 5분이 지나도록 신선한(?) 똥 관찰을 마치고 난 레이나는 다시 한 번 악셀을 밟았다. 붉은 바람이 머무는 사바나의 낯선 풍경 속으로. 

레인저 레이나의 시선 끝에서 동물들이 나타났다
레인저 레이나의 시선 끝에서 동물들이 나타났다
빅 파이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타날 때마다 모두의 탄성을 자아내는 기린
빅 파이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타날 때마다 모두의 탄성을 자아내는 기린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즐거움


요하네스버그 북동부에 위치한 크루거 국립공원은 1898년 개장한 아프리카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1만9,485km²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을 자랑한다. 면적으로 보자면 한국의 경상북도와 비슷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아프리카의 빅 파이브(BIG FIVE)로 불리는 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물소 외에도 얼룩소, 기린, 임팔라(Impala), 쿠두(Kudu)등 다양한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자연 그대로 모습이다.

사륜구동에 몸을 싣고 사바나를 누비다
사륜구동에 몸을 싣고 사바나를 누비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오후에 진행되는 게임 드라이브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사륜 구동 차량에 몸을 싣고 쌀쌀해져 가는 공기를 마시며 사바나를 누볐다. 처음 만나는 임팔라에 자연스레 탄성이 나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여기서는 길에 치이는 게 임팔라와 쿠두라고. 민망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도 설렘과 탄성을 멈출 수는 없었다. 사파리 차량 앞을 아무렇지 않게 뛰어다니는 얼룩말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 자연에 들어가 그들을 잠시나마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했다.

게임 드라이브 중 빼놓을 수 없는 시간이 바로 티타임이다. 오전에는 주로 빵과 차를, 오후에는 맥주 한 병을 마셨다. 열대초원 한가운데서 맥주라니. 맹수가 우리를 보고 있으면 어쩌지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러기에는 붉게 물드는 하늘이 너무 낭만적이고, 저녁 공기가 청량해서 긴장감을 마음에 넣어 둘 공간이 없었다. 누군가는 점프 사진으로, 누군가는 손에 든 맥주 사진으로 사바나의 일몰을 기억했다.

화려하게 저무는 일몰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외눈박이 사자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화려하게 저무는 일몰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외눈박이 사자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뜰 무렵, 게임 드라이브에 나서기로 했다. 빅 파이브를 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자동 기상했다. 부랴부랴 숙소를 나서는데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주인공은 쿠두. 개체 수가 많다고는 들었지만 숙소 앞에서 마주할 줄이야. 아침밥 먹기에 한창인 쿠두에게 지나가는 사람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 녀석에게는 일상이고, 나에게는 태어나서 처음인 순간. 괜스레 아침부터 설렘 지수가 폭발했다.

쿠두가 행운의 시발점인지 게임 드라이브에서는 표범을 제외한 빅 파이브를 모두 볼 수 있었다. 코끼리는 무리를 지어 눈앞을 지나갔고, 아침 식사를 끝낸 사자는 통통해진 배를 자랑하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코뿔소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아침 똥으로 후각을 테러했고, 물소는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에 등장하는 보고(Bogo) 경찰서장의 캐릭터를 단박에 떠올리게 했다. 남은 건 표범 하나였다.

텅 빈 거리에서 차가 멈췄다. 레인저가 가리키는 손끝에 무언가 쓸고 간 흔적이 있었다. 사냥을 마친 표범이 먹잇감을 물고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는 것. 트래커(Tracker, 동물의 흔적을 가지고 추적하는 담당자)가 내려 흔적이 난 방향을 쫓아서 숲으로 들어갔다. 결국은 찾지 못했지만, 한참 동안 숲에서 보이지 않던 트래커가 안전하게 돌아왔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표범을 보지 못했다는 실망감은 또 다른 동물이 채워 주었다. 우리나라 말로는 천산갑(Pangolin)이라 불리는 동물인데, 신기한 건 우리들보다 신나 보이는 레인저와 트래커였다. 천산갑의 존재에 모르고 살았으니 신기한 줄도 모르는 우리에 비해, 표범보다 보기 힘든 동물이라고 연신 사진을 찍는 모습에 덩달아 흥이 올라왔다. 그렇게 표범의 아쉬움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글·사진 정영은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남아프리카공화국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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