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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의 여행의 순간] 후보정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들

  • Editor. 박 로드리고 세희
  • 입력 2019.09.02 09:30
  • 수정 2019.11.06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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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든 이가 심혈을 기울여야만 할 영역들은 여전히 세상에 남았다.

미국 뉴욕
미국 뉴욕

스티브 맥커리라는 거장이 있다. 세계 최고의 포토 저널리스트 그룹 ‘매그넘’에 소속된 그는 서울에서 대형 사진전을 가졌었고, 대구 사진 비엔날레에서 집중 조명을 받으며 한국에서도 꽤 알려졌다. 그러던 그가 몇 년 전 큰 구설수에 올랐다. 쿠바에서 찍은 그의 사진에서 포토샵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거리의 표지판과 행인이 겹친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포토샵으로 표지판을 조금 옮겨 놓은 것이었다. 그 사진이 발각된 후로 세계의 언론과 네티즌들은 조작된 사진 여러 장을 마저 찾아냈다. 강가를 찍은 사진 원본에서는 공놀이하는 아이들이 7명인데 사진집에 실린 사진에는 6명만 있다거나, 사진의 미적 요소를 해치는 잡다한 피사체들을 지우고 벽의 기울기를 바꾸는 식이었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는 결국 <타임>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태의 수습에 나섰다. 자신은 다큐멘터리로 사진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비주얼 스토리텔러’라고. 그동안 광고 사진도 촬영했고 미술의 영역의 작업도 해 왔다고. 사진의 사실성을 지나치게 왜곡하지 않는다면 포토샵 사용도 괜찮다, 그러나 자신을 포토 저널리스트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앞으로는 포토샵 사용을 최소화하겠다고 덧붙이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이미 그의 명성에는 금이 갈 대로 간 후였지만 저널리스트에서 비주얼 스토리텔러로 자신의 위치를 옮겨 놓으며 사기꾼으로 경력을 마감하는 일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시리아 알레포
시리아 알레포

후보정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사진의 근본적 내용을 바꾸는 ‘조작’은 부정해야겠지만, 후보정은 사진의 탄생 이래 여태 있어 왔던 정당한 과정이고 필수적인 공정이다. ‘사진은 찍는 것이 반, 암실이 반’이라는 선배들의 조언을 들으며 사진을 배웠었다. 카메라를 들고 밖에서 보내는 시간만큼 암실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아야만 제대로 된 사진작가가 될 수 있다고.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후보정이고, 어디서부터 조작일까? 안타깝지만 그 누구도 명확한 경계를 알지 못한다. 스티브 맥커리가 자신의 카테고리를 바꾸며 구사일생한 것처럼 잣대는 사진의 장르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체로 다큐멘터리나 저널리즘 분야에선 소극적인 후보정만 허용돼 밝기와 대조, 색온도 정도를 간단하게 보정한다(지면에 실린 사진들이 여기에 속한다). 상업 사진에선 적극적인 후보정도 왕왕 이루어지는데, 언젠가 패션 화보 촬영에서 모델의 팔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다른 모델의 팔을 가져와서 붙여 달라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받은 적도 있다. 미술 영역의 사진에선 후보정의 한계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여러 사진들을 합성하고 조작하고 변조해서 아예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기도 한다. 

티베트 라싸
티베트 라싸

어떤 장르든 후반 공정을 거치지 않은 날것의 이미지는 아직 사진이 아니다. 찍을 때부터 후보정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예상되는 보정의 영역에 따라 촬영의 방식과 태도를 달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절한 이미지에 적당한 보정이 더해져야만 완전한 사진이 될 수 있다. 다만 그 어떤 후보정으로도 절대 바꿀 수 없는 영역은 여전히 세상에 남았다. 빛의 방향을 살피는 일, 찰나를 기다리는 일, 줌렌즈 대신 발걸음으로 거리감을 바꾸는 일. 카메라를 든 이가 변함없이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사체를 한 번 더 사랑하는 일이다. 

 

*박 로드리고 세희는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촬영감독이다. 틈틈이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트래비>를 통해 여행사진을 찍는 기술보다는, 여행의 순간을 포착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글ㆍ사진 박 로드리고 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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